< 에너지 혁명의 시작. >
그냥 아무거나 막 주워서 확인해도 진(眞) 마정석이었다.
혹시나 몰라 도끼로 벽을 깊게 파고 들어가 아직 채굴되지 않은 마정석을 캐냈는데도 진이었다.
‘···성수(聖水) 때문인가?’
그걸로는 안 되지.
그랬다면 200만 톤을 쏟아부었을 때 싹 정화되었겠지.
원래 침식지를 정화하면 그 지역에 축복 비슷한 것이 터진다.
지금 들려오는 메시지를 들어도 안다.
[듀플렉스 전 대륙에 공지합니다.]
[스톤 포지 69번 침식지 보스 길잃은 침식 드워프 69가 현 시간부로 소멸했습니다.]
[스톤 포지의 금속 생산량이 대폭 늘어납니다.]
[공략 참가한 플레이어들에게 특별한 혜택이 주어집니다.]
[정화된 지역에 30초 동안 주신의 축복이 내립니다.]
거기에 이미 뿌려놓았던 성수(聖水)까지 정화됐다.
그리하여 시너지, 즉 상승작용.
정화의 축복과 성수(聖水)의 축복이 동시에 효과를 발휘하면서 이 69번 침식지는 거의 천국처럼 변했다.
박스 오픈 타임은 겨우 30초.
놀라다 보니 어느덧 시간이 지났다.
물론 그 짧은 시간에도 할 건 다 했지만.
최기병도 일을 시작했다.
진(眞) 마정석은 차후에 고민하고 먼저 각성 현황부터.
“상태창에 반영률 스탯 생기신 분?”
그러자,
“저, 저요.”
“떴습니다.”
“···저도.”
“손!”
“네.”
.
.
.
미치겠다.
10명 모두?
절반 정도 각성하면 대박이라 생각했는데,
미리 적성검사를 통해서 선별해왔길래 망정이지.
‘지부창설 금방 되겠는데?’
사실 정부에서도 지부창설을 빨리 서둘러줬으면 하는 눈치.
이번 레이드도 각 국가 기관의 전폭적인 지지에서 이루어졌다.
대검찰청 테러 사건을 보고 높으신 분들이 기겁한 것, 그래서 테러가 또 일어날까 두려워 여야 할 것 없이 정부 소속 각성 플레이어를 늘리는 방안에 적극 찬성하고 나왔다.
덕분에 국회에서 온갖 딴지를 걸어가며 미뤄왔던 APS 지원 추가 예산안 결정이 신속하게 통과됐고.
찬웅도 만족했다.
가장 작은 침식지에서 가장 큰 대박을 이뤄냈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케이님께 헤스티아 성국에서 발송한 우편이 인벤토리에 도착했습니다.]
우편을 확인해보니.
‘···뭐야? 겨우 2장?’
초대권 2장.
살짝 실망이다.
‘침식지가 작아서 그런가?’
그래도 난이도가 꽤 있는 침식지인데.
통로형식이라 대규모 인원을 투입하지 못하고, 좁은 공간에서 비행 몬스터 동굴 박쥐를 상대해야 하는 점, 은신 몬스터라고 할 수 있는 동굴 슬라임, 그리고 공격대 전멸의 주요 원인인 구르는 대형 바윗돌.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공격대원 하나하나의 개인 역량이 중요시되는 침식지.
하긴 규격 외의 플레이어가 둘씩이나 참여하긴 했지만.
‘이참에 여기서 꿀 좀 빨다가 가자.’
당분간 스톤 포지에서 활동해야겠다.
그때!
우르르르,
정화된 갱도를 통해 몰려오는 드워프들, 다른 광산에서 일하다 연결 통로의 침식의 기운이 사라졌다는 걸 느끼고 부리나케 몰려왔다.
“오오오오오!”
“이, 이게 꿈이야 생시야!”
“아니, 케이, 케이 말로만 들었지만···.”
“이제 보니 소문이 더 축소된 느낌이군.”
“광산 정상화해야지. 갱도 수리부터 하자고.”
모두들 감격한 표정.
당연했다.
침식지 정화는 듀플렉스 대륙 모든 NPC의 숙원,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위업을 불과 몇 시간 안에 처리해준 케이.
“이럴 게 아니라 잔치를 열어야지.”
“맥주 창고를 부수자!”
“고기를 구워라!”
난리도 아니었다.
열차를 타고 귀환하자 사방에서 함성이 울려 퍼졌다.
마치 시골 도시에서 세계적인 슈퍼스타가 콘서트를 여는 현장 같았다.
이쯤 되자 APS 공격대원들이 머쓱할 정도, 분위기 봐서 로그아웃하려 해도 드워프들이 놓아주질 않으니.
드워프 국왕 썬더 스틸해머가 찬웅에게 다가왔다.
“이방인 케이, 정말 고맙소. 그대는 스톤 포지의 은인이오. 필요한 거 더 없는지?”
“안 그래도, 국왕님 협조가 필요해서요.”
“다 들어드리지. 장인들 정신 못 차리게 굴려서 이번엔 그대 마음에 쏙 드는 장비를 만들어···.”
“당분간 스톤 포지에서 침식지 몇 개 더 정화할 예정입니다.”
만면에 미소를 띠며 고개를 주억이는 스틸해머.
“암! 그럼, 해야지, 정화, 정화해···, 가만! 뭐라고 다시 말해주겠소?”
“아무래도 하나로는 부족해서 몇 개 더 정화하고 가려고.”
“으어, 아, 아니, 이게 무슨,”
드워프들은 뼛속까지 광부이자 대장장이였다.
잠자고 있던 광물들이 나를 캐주세요! 제련해주세요! 라며 처절하게 울부짖는 소리를 들어 왔지만 침식 때문에 곡괭이로 건드려보지도 못했다.
그 기간이 무려 5백 년.
그래서 69번 광산 침식지 정화만으로도 뛸 듯이 기뻐하던 참이었는데.
“내, 내가 저, 정신이 없어서, ···몇 개 더 하신다고?”
“네.”
“저, 정화를?”
“그렇죠.”
“아아아! 뭐, 뭐든 말만 해주시오. 우릴 노예처럼 부려 먹어도 좋소,”
“그럼 먼저 이 69번 마정석 광산 보수작업과 경비가 필요하고 또···.”
스틸해머의 머리가 빠르게 아래위로 움직였다.
찬웅이 여기서 죽으라고 해도 서슴없이 실행할 기세.
최기병이 다가와 물었다.
“정말 더 할 생각입니까?”
“겨우 초대권 2장 받았잖아요. 모자랍니다. 다른 광산 침식지도 이와 비슷한 패턴이라면···,”
“그렇죠. 거저먹는 거죠.”
하나 더.
성수의 효과를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다.
그럼 다른 광산에도 적용되지 않을까.
‘예를 들어 미스릴 광산이라든지.’
그럼 성수가 더 필요하다.
‘대신전에 가서 물어봐야겠군.’
성수 재고가 충분했으면 좋겠다.
“그나저나 진(眞) 마정석 광산은 어떻게 하실 작정입니까?”
“글쎄요.”
“물량이 어마어마할 것 같은데···.”
현재 세계 각국에서 진행하고 있는 진(眞) 아이템 분석 실험.
주로 화염 마법 관련 아이템 연구가 활발하다.
불!
인간이 지구의 지배자가 될 수 있는 원동력을 제공한 근원.
‘파이어 볼’ 진(眞) 마법 스크롤, 혹은 ‘파이어 필드’ 마법을 내장한 진(眞) 마법 반지, 또는 ‘파이어 월’을 사용할 수 있는 진(眞) 스태프 등등.
이런 화염 마법의 원동력이 마정석에서 나온다는 건 이미 밝혀진 사실, 게다가 아주 소량으로 석유나 원자력 이상의 에너지를 낼 수 있다는 것까지.
실제로 전기를 생산하는 단계까지 왔다.
어떻게?
화력발전소가 전기를 생성하는 원리와 똑같다.
석유나 석탄, 천연가스 대신 화염 마법 스크롤이나 아티팩트의 문양을 응용해 만든 가열기를 제작한다.
원료가 되는 정제 마정석을 투입해서 불을 일으킨다.
에너지를 이용해 물을 끓인다.
그리고 발생하는 수증기로 터빈을 돌린다.
발전소를 새로 만들 이유도 없다.
기존의 화력발전소를 이용하면 되니까.
화석연료를 연소시켜 일으킨 불이 아니다.
마법의 힘이 작용한 불이다.
지구 온난화를 해결하고 미세먼지도 없는 깨끗한 에너지, 차세대 대체 에너지로서 마정석은 부족함이 없었다.
단점이라면 지속적인 공급이 안 된다는 것.
랜덤 D박스에서 나오는 마정석으론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69번 진(眞) 마정석 광산이라면?
최기병이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우리 정부가 마정석을 매입하는 걸로 진행하면 안 될는지···.”
“돈은 코인으로 받고요?”
“코인 특성상 변동성이 크긴 하지만 제일 간편하니까요.”
코인의 장점.
익명성이 완벽하게 보장된다는 것.
D코인 거래를 전담하는 미국 디멕스 코인 거래소, 공식적인 은행 면허를 취득해 플레이어들의 계좌를 관리한다.
소문엔 디멕스 코인 거래소가 듀플렉스 스페이스 가상현실 게임회사의 소유라는 말도 있고.
계좌 명의는 아바타 명.
신용카드도 발급하고 체크카드, 스마트폰 앱도 있어 타인과의 개인 거래도 가능하고, 환전한 돈을 타은행에서도 인출할 수 있다.
물론 거래 내역은 철저하게 보호되어 절대 기록이 남지 않는다.
찬웅도 이런 방식으로 케이의 계좌에서 자신의 실명 계좌로 코인을 송금해 돈을 쓰고 있었다.
이렇다 보니 기축통화의 지위가 달러에서 D코인으로 넘어가고 있는 상황, 심지어 국제 거래에서 코인 통화량이 달러 통화량을 앞질렀다는 말도 들려올 정도.
“네, 그렇게 진행 시키죠.”
일단 국내에 먼저 유통시킨다.
생산량을 봐서 수출도 고려해보고.
※ ※ ※
또 한 번의 침식지 공략.
국내, 아니 세계가 들썩였다.
게임 속 보스를 죽인 것이 뭐 그리 대단한 거라고 치부할 수 있겠지만, 보상이 현실에서 나타난다는 것이 중요하다.
또 그 보상이 하나라도 가볍게 여길 수 없는 엄청난 것들이고.
케이가 참여하는 침식지 보스 레이드.
이미 세 번째 성공.
네 번째도 당연히 성공할 터.
투자 요청이 쇄도하고 있었다.
대신전 초대권 한 장에 5천만, 아니 1억 코인까지 내겠다는 큰손들도 줄을 섰다.
처음 최기병이 직접 기업을 찾아가 투자 제안서를 돌렸을 당시와는 전혀 상반된 분위기.
그 와중에 화정 호텔 스카이라운지에서 청년 경제인 모임이 열렸다.
재벌가 대현 유통 부사장인 표환욱도 청년 경제인 모임에 참석했다.
“대체 투자를 안 받는 이유가 뭐래?”
“예산이 충분하다고 하더라고, 투자금 필요 없다던데?”
“뭐야? 전에는 이곳저곳 손 벌리더니만.”
“국회에서 APS 예산이 신속하게 통과됐다네.”
“아마 대검찰청 테러의 여파 때문에 그럴걸. ”
다른 테이블에서도 온통 그 이야기뿐.
신분이 밝혀진 플레이어에 대한 관심도 뜨겁다.
“넌 APS에 아는 사람들 없어?”
“글쎄, 몇몇 용병 플레이어들은 알고 있는데···,”
“어중이떠중이 말고, 영향력 있는 플레이어 말이야.”
“누구?”
“그 뭐냐, 상쾌한 포도? 망고? 신광식 변호사 딸이라던···.”
“환욱이 너 그 게임 안 하는구나. 상큼한 딸기도 모르고.”
“이제 해보려고.”
표환욱은 솔직히 후회하고 있었다.
원래 게임에는 흥미가 없었다.
현실에서 누릴 수 있는 게 널렸는데, 왜 굳이 캡슐에만 처박혀 게임을 할까?
하지만 이젠 상황이 달라졌다.
“상큼한 딸기라···,”
“왜 접근해보게?”
“그럼 안돼?”
“안될 건 없지만.”
물론 케이의 정체를 알아내서 직접 접촉할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조심해. 케이와 제일 친한 플레이어가 상큼한 딸기라는 소문이 있어.”
“···그럼 민도연은?”
“HTS 건설 이홍종이 어떻게 죽었는지 몰라?”
“뭐 어때? 해코지하자는 것도 아니고, 그냥 한번 만나보자는 건데.”
사실 표환욱이 안달 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의 아버지, 대현 그룹 표창주 회장이 활력의 영약, 혹은 대신전 초대권을 가지고 오면 자신이 가진 그룹 지분을 모조리 넘겨주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뿐인가?
대현 그룹 지배권을 노리는 재벌가 일원들이 필사적으로 APS와 접촉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표환욱이 앉아있는 테이블로 다가오는 한 남자.
“환욱이 왔냐?”
“···어, 으음, 지, 지혁아, 오랜만이다.”
화정 그룹 정규광의 아들 정지혁.
투자자 신분으로 카쟌 침식지 레이드에 참가해 대신전까지 갔다 온 그였다.
과거엔 평범하고 표환욱과도 매우 친한 사이였지만 요즘은 데면데면하다.
정지혁이 달라졌다는 소문때문이었다.
그것도 별로 안 좋은 쪽으로.
“엿들으려고 한 건 아닌데, 상큼한 딸기와 민도연을 만나겠다고?”
“응? 아, 아니 결정된 건 아니고,”
“그래? 다행이네.”
의자 뒤로 돌아가는 정지혁, 그러더니 표환욱의 어깨에 두 손을 살며시 올렸다.
친근함의 표현 같았지만.
“어어억!”
“왜 그래? 환욱아.”
“어, 어깨···.”
“응? 내가 어쨌다고.”
“···아, 아파! 정말 아파.”
비릿하게 미소 짓는 정지혁, 조용히 표환욱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그냥 조용히 살아. 헛짓거리하지 말고.”
“으으으, 제, 제발 놔줘.”
“네가 그 사람들 만나서 뭐 하게? 사업에나 신경 써. 거긴 내 구역이야.”
“···으아, 아, 알았어.”
그제야 정지혁은 표환욱의 어깨에서 손을 떼면서 말했다.
“멍청한 새끼, 어딜 감히 눈독을 들여.”
정지혁도 신여은 혹은 민도연에게 접근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둘 중 하나만 꼬시면 APS와의 관계는 더더욱 돈독해질 테고, 그럼 화정 그룹은 물론 한국 경제계를 지배할 힘을 얻게 된다.
그럴 자신도 있다.
재벌가 출신에 각성 플레이어.
환상적인 조합 아닌가?
“그럼 잘 놀다가.”
정지혁이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고 자리를 떠났지만 표환욱은 고개를 숙인 채 움직이지 않았다.
굴욕감, 수치심, 그리고 분노.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놈은 각성 플레이어였으니까.
※ ※ ※
국정원 특수 감시팀.
그들의 임무는 각성 플레이어로 의심되는 자들을 감시하고 혹시라도 빌런 성향을 보이는지 확인하는 것.
그래서 대신전에 갔다 온 정지혁도 당연히 감시 대상이었다.
정지혁을 전담하고 있는 현장 감시 요원에게 보고를 받는 국정원 감시팀장.
“또 저질렀어? 이번엔 표환욱과 마찰을 일으켰다고?”
- 네, 포스를 사용해 표환욱의 어깨를 움켜잡았습니다.
“쯧, 이 새끼, 골치 아프네.”
정지혁의 성향이 확실한 빌런이면 손을 쓰겠는데···,
포스를 멋대로 사용하고 다니지만 빌런이라 하기에도 애매하고, 어저께는 부하 직원 한 명을 비슷한 방법으로 겁박했다.
“어쨌든 보고는 해야겠지?”
APS에서 알아서 판단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