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톤 포지 침식지 공략(1) >
스톤 포지 침식지 공략(1)
찬웅이 레이드 답사를 위해 온 곳은 바로 드워프들의 도시 스톤 포지.
혼죠 추적을 위해 스톤 포지 157번 광구 침식지에 와본 적 있었다.
그래서 게이트도 이미 달려있고.
듀플렉스 대륙의 거의 모든 금속이 바로 이곳, 스톤 포지에서 생산된다. 석탄에 철광석, 구리, 금과 은, 미스릴, 아타만타이트, 오리하르콘, 그리고 마정석까지.
도시를 중심으로 동서남북 사방으로 뻗어있는 광구들, 드워프들은 각각의 광산마다 번호를 매겨 관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역시 침식지.
스톤 포지의 침식지는 꽤나 특이하고 그래서 유명하다.
광물이 매장되어 있는 광산이 침식됐다.
그것도 각각 독립적인 지역으로 말이다.
광산 하나하나가 침식지라고 보면 된다.
한두 개가 아니다.
대륙에 남은 253개의 침식지 중 스톤 포지에만 22개가 몰려있었다.
그래서 스톤 포지는 저주받은 도시로 불리기도 한다.
‘플레이어들은 안 보이지만 활기는 넘쳐나는구나.’
곳곳에 제철소와 대장간이 있어서 열기가 후끈후끈하다.
마도구 아티팩트 등불이 도시를 밝혀줘서 대낮처럼 환하고.
옆으로 커다란 도랑 같은 것도 보인다.
‘하수도인가? 물은 흐르지 않는데···,’
순간!
취익! 취이이익!
철커덕, 철커덕, 철커덕···.
“와!”
기차가 지나가고 있었다.
드워프 광부와 광물을 가득 싣고 운행하는 작은 열차.
‘도랑이 아니라 기찻길이었어?’
확실히 기차가 있어야 할 터, 드워프 광부들이 캐내는 엄청난 양의 광물들을 운반하려면 반드시 필수적인 이동 수단.
‘나중에 타보자.’
그전에 여기 온 목적부터.
‘흐음, 광산 침식지···, 동굴이라 공략이 까다롭긴 해.’
침식지 특성상 많은 병력을 투입하지도 못한다.
소수 정예만 가능한 스톤 포지 침식지.
그래서 선택했지만.
파워 스틱 밤, 폭탄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 아쉽다.
잘못 터뜨렸다간 광산 연쇄 붕괴가 일어날지도 모른다.
‘일단 아무거나 하나 골라서 들어가 보자.’
그때였다.
“이방인 케이?”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
아무도 없는데?
“이쪽이오.”
소리는 밑에서 들려왔다.
그래서 내려다보니.
“아! 아, 안녕하세요.”
허리춤 정도에서 밑에서 자신을 올려보는 드워프 한 명.
“당신이 케이 맞소? 동명이인이 아닌, 카쟌과 위트리라 침식지를 공략한 그 케이 말이오.”
“맞습니다만.”
“오! 드디어 스톤 포지에 납셨군. 난 이곳의 경비대장 매톡 브론즈라고 하오.”
“안녕하세요. 브론즈씨, 케이입니다.”
“부탁할 것이 있소만,”
“제가 들어드릴 수 있는 거라면···.”
“드워프 국왕께 그대를 소개해드릴까 하는데 혹시 시간이 나면 같이 가겠소?”
안 될 것 있나?
당연히 가야지.
“네, 만나보죠.”
“그럼 따라오시오.”
찬웅은 드워프 경비대장 매톡 브론즈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스톤 포지를 매톡과 함께 걷는 찬웅, 곳곳에서 들리는 망치 두드리는 소리, 지나가는 짜리몽땅한 드워프들이 연신 그를 쳐다보며 수군댔다.
왕궁은 도시 중앙에 있었다.
왕궁이라기보다는 거대한 대장간에 가까운 모습.
깡깡깡깡!
거대한 모루, 웃통을 벗고 제 몸보다 큰 망치를 쉴새 없이 내려치는 드워프.
경비대장 매톡이 저벅저벅 걸어가 대뜸 소리쳤다.
“스틸해머. 스틸해머? 스틸해머! ···씨발, 옆에서 누가 부르면 대답 좀 하라고! 왕이면 다야?”
그러자 웃통을 벗은 드워프가 경비대장을 힐끗 보더니 퉁명스럽게 말했다.
“이 새끼가, 감히 국왕한테 소리를 질러?”
“허구한 날 망치만 두드리니 가는 귀가 먹었구먼.”
“아직 쌩쌩해! 그러는 넌 일도 하지 않고 여긴 왜 왔냐?”
옆에서 스틸해머를 돕던 드워프 관리들이,
“망치질을 못 해 경비대장 시켜줬더니 놀고 처자빠졌어?”
“하아, 나도 경비대장 하고 싶다.”
“근데 저 이방인은 누구야? 왜 여기까지 데리고 왔어?”
“이름이 케이? 케이라 어디서 많이 들어 봤는데···,”
다시 망치질하려던 드워프 국왕 썬더 스틸해머가 고개를 갸웃하더니, 갑자기 망치를 멀리 던져버리고 찬웅 앞으로 달려왔다.
“케이? 케이가 맞소?”
“네.”
“아니, 카쟌과 위트리아 침식지를 정화한 그 케이가 맞냐고 물었소!”
“맞는데요.”
갑자기 옆에서 만세를 부르는 드워프 관리들.
“오오오! 케이가 왔다. 스톤 포지의 좆 같은 침식지를 정화하러 이방인 대왕 케이가 왔다.”
뭐야?
‘···낯뜨겁게.’
※ ※ ※
드워프 국왕 썬더 스틸해머는 자신의 거처에서 스톤 포지 광산 지도를 펼쳤다.
1번에서 158번까지 번호가 매겨진 광산들, 거미줄처럼 얽히고 얽힌 모습이 마치 서울 지하철 노선도 같았다.
“바로 여기! 69번 광구! 여기가 문제요. 이방인 케이.”
지도 한쪽을 손가락으로 쿡쿡 찔러가며 열변을 토하는 스틸해머
“다른 왕국엔 많아 봐야 한두 개씩 있는 침식지가 이 지하도시에 22개씩 몰려있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쳐. 그 침식지가 죄다 광산이라는 것도 받아들인다고. 하지만!”
한숨을 푹 쉬더니,
“침식된 69번 광산때문에 다른 광산들에 접근조차 할 수 없소. 그것도 다 희귀광물에 알짜배기들, 여기만 정화하면 채굴 가능한 광산이 50개 이상 늘어난단 말이오.”
찬웅도 지도를 보니 알 것 같다.
‘서울 지하철로 치면 환승역 같은 곳인가?’
현재 스톤 포지엔 158개의 광산이 있다.
그중 22개가 침식되었고, 그럼 계산상으로 136개의 광산은 정상이어야 하지만 현재 채굴되고 있는 광산은 고작 60개 정도.
스톤 포지 광산의 특징 때문이다.
광산의 입구인 광구와 열차가 지나는 갱도가 서로 중복된 경우가 많다.
그런데 광산 하나가 침식되면?
다른 광산에도 영향을 미쳐 침식되지 않은 곳이라 해도 아예 들어가지 못한다.
“그나마 우회가 가능한 곳은 옆쪽으로 뚫어서 진입하고 있지만···.”
드워프 국왕 썬더 스틸해머의 요점은 69번 침식지만 정화하면 그 때문에 막혀있던 광구와 갱도가 속 시원하게 뚫린다는 말이다. 무려 50개나.
“69번만 부탁하오. 아낌없이 지원해 주겠소. 무기, 방패, 갑옷, 드워프제 명품으로 싹 교체해주지.”
그거야 당연한 거고.
그래서 찬웅은 넌지시 엄살을 부리며 말했다.
“스톤 포지 침식지는 조금 특별하잖아요. 침식지가 광산이라 공략하기 무척 어렵고, 그래서 아시다시피 이곳에 온 플레이어들도 별로 안 보이고.”
“커험! 뭐, 그, 그렇긴 한데···.”
“다른 침식지는 200명이고, 300명이고, 마음대로 투입할 수 있지만 스톤 포지 침식지는 인원의 제한이 있어요.”
이건 엄살이 아니라 진실.
“스톤 포지에 온 것도 침식지 레이드가 결정되어서가 아니라 그냥 답사차 왔을 뿐입니다.”
찬웅이 부정적으로 나오자 다급해지는 스틸해머.
“그, 그럼 이건 어떻소?”
“네? 뭘요?”
“69번 침식지를 공략해 준다면 정화된 광산의 소유권을 그대에게 넘겨주겠소.”
“···광산 소유권?”
“그렇소. 69번은 마정석 광산이요. 매장량이 엄청나다오.”
광산 소유권이라, 이거 괜찮은데?
듀플렉스 스페이스에서 마정석은 여전히 가격이 높게 형성되어 있었다.
즉 코인을 무더기로 벌 수 있다는 뜻.
드워프로서도 마정석 광산은 그다지 중요한 광물은 아니다. 마정석 광산이 한 개만 있나? 그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건 금속 광물이다.
69번이 중요한 이유는 그 때문에 희귀 광산 채굴 갱도가 막혀버렸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 광산을 정화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데, 무슨 짓까지 했는지 아시오?”
“그걸 제가 어떻게?”
“헤스티아 성국에다가 헌금으로 1억 코인을 갖다 바쳤지. 그리고 성수(聖水)를 공급받아서 69번 광산에다 쏟아부었소. 그때 들이부은 성수의 양만 아마 200만 톤 정도 될 거요.”
“···.”
미쳤구나.
성수(聖水) 200만 톤.
그 정도면 광산 안이 질퍽하겠네.
하긴 성수로 해결될 문제였다면 벌써 끝났지.
플레이어도 필요 없었을 테고.
아무튼 절실해 보인다.
이 정도면 승낙해주자.
“좋습니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검토해보죠.”
“오오오! 감사, 정말 고맙소. 그럼 언제···?”
“최대한 빨리 준비해서 다시 오겠습니다.”
결정됐다.
다음 공략 예정지.
스톤 포지 지하도시 69번 광산 침식지.
※ ※ ※
갑자기 분주해진 한국 APS 본부.
다음 침식지 공략이 결정됐기 때문이다.
“케이씨는 참가하는 거겠죠?”
“네, 그런데 소수 정예만 갑니다. 아! 현재 경호 요원으로 빠진 각성 플레이어는 제외하고요.”
“몇 명요?”
“글쎄요. 최대 30명은 넘지 않을 겁니다.”
“그, 그 숫자로 돼요?”
신여은이 뭐가 문제냐는 듯 말했다.
“케이씨만 참가하면 뭐···, 숫자가 문젠가?”
“하하하, 맞습니다. 딸기씨도 있는데.”
“그래서 말인데, 이번에 대신전 초대권이 4장 있는데, 우현수, 고유섭, 봉춘섭, 마태길 플레이어, 네 분이 갔다 오세요.”
“···도움이 됩니까? 축복은 진(眞) 아이템에 관계된 것으로 아는데.”
“네, 충분하게 도움 됩니다. 아바타 신체 능력이 향상되니까요.”
그리고 어렵게 말을 꺼내는 최기병.
“민도연씨는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다음 순번으로.”
“아! 괜찮아요. 저도 염치가 있어요. 들어온 지 얼마나 됐다고.”
오랜만에 모이니 분위기도 화기애애하다.
“참! 설악산 흔들바위는 어떻게 됐나요? 범인 잡았어요?”
“원래 자리에 올려두긴 했는데, 누가 했는진 잘···.”
“범인 잡아야 하는 거 아닌가? 레이드 하기 전에 잡으러 가요.”
“수사 전담 요원들이 수사 중에 있습니다.”
“아! 그 국정원 출신 이필동 과장님이라는 분, 그런데 그분은 비각성자 아니신가?”
“괜찮아요. 의외로 노련한 사람이니까. 그리고 경찰 출신의 각성 플레이어 한 분도 동행했습니다.”
이필동의 각성은 여전히 비밀.
찬웅의 대역을 위해 각성 사실을 숨겨야 하기 때문.
“그럼 오늘은 이만 회의를 마칩니다.”
“레이드 연습은?”
“오늘은 각자 알아서 점검하세요. 본격적인 훈련은 내일부터.”
찬웅도 함께 있었지만 나서지 않았다.
딸기도 APS 안에선 절대 아는 척을 하지 않았고.
대신,
[케이] : 저 탈것 얻었어요.
[상큼한 딸기] : 또요? 부키가 있잖아요. 유령마.
[케이] : 그래요. 그 부키. 드디어 생겼네요.
[상큼한 딸기] : 무슨, 어머? 혹시?
[케이] : 네, 진(眞)으로.
[상큼한 딸기] : 세, 세상에!
신여은의 놀라는 모습이 머리 속에서 그려진다.
[상큼한 딸기] : 하늘을 막 날아요? 게임에서처럼?
[케이] : 당연하죠. 다음에 태워드려요?
[상큼한 딸기] : 어머! 어떻게 거절해요. 꼭 태워주세요.
[케이] : 그런데 요즘 너무 바쁘신 거 같아서.
[상큼한 딸기] : 하나도 안 바빠요. 저 시간 남아돌아요.
안 바쁘긴.
APS 내에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그녀였다.
오죽하면 민도연도 그녀에게 달라붙는 판국에.
※ ※ ※
약속을 잡고 찬웅은 집으로 돌아와 캡슐에 접속해서 테라퓨타로 왔다.
마탑주 브랜달을 만나.
“자, 여기 있어요. 부탁하신 7서클 쉴드 마법 스크롤 50장이.”
“매번 고맙네.”
“천만에요. 그리고 이것도.”
“이 스크롤들은 뭐야?”
“이번 침식지가 동굴이라면서요. 그래서 6서클 라이트 마법 스크롤도 준비했어요. 최대 5시간 정도 지속되는 거라 몇 개만 찢으면 시야 확보는 문제없을 거예요.”
역시 브랜달이다.
뭐가 필요한지 요구하기도 전에 먼저 준비도 해주고,
“그리고 이건 섬광 마법 수정 구슬, 동굴 몬스터들은 밝은 빛에 약해요. 위험할 때 한번 터뜨려주면 돼요.”
“···어, 고마워.”
너무나 고마운 브랜달의 마음 씀씀이.
보답을 해줬으면 좋겠는데,
‘그래, 이제 때가 됐지.’
찬웅은 인벤토리에서 지팡이를 꺼냈다.
[대마법사 브랜데인의 마계목 지팡이.]
[등급 : 없음]
[장비 종류 : 무기]
[귀속 여부 : 거래 가능]
[장비 기술 : 없음]
대마법사 브랜데인이 이 지팡이를 처음 만들었을 때 마탑주의 유산으로서 전승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찬웅에게 목숨을 잃고 드랍 아이템으로 귀속되어버려 직접 넘겨주진 못하지만···, 그래도 방법이 있다.
“지, 지팡이는 왜 꺼내시는지.”
“가만히 있어 봐.”
브랜달의 머리에 손을 얹은 찬웅.
‘마법사 브랜달에게 마탑 제어 권한 전체 양도.’
[제어 권한 전체 양도 시 기존 마계목 지팡이 기능 상실.]
[동의하면 예. 동의하지 않으면 아니요.]
‘예.’
[기존 사용자 등록 삭제.]
[마법사 브랜달에게 마탑 제어 권한 전체 양도 실행.]
[새로운 사용자로 마법사 브랜달 지정.]
“···어?”
브랜달이 입을 딱 벌렸다.
“케, 케이님!”
“앞으로 형이라 불러.”
“혀엉!!!”
“잘 들어. 커다란 힘엔 그에 상응하는 책임이 뒤따르는 법이야. 잘 사용해.”
“맹세할게요. 마법사의 서클을 걸고!”
그리고 미처 말릴 새도 없이.
“케이 형님의 신뢰에 보답하겠습니다. 만약 케이님을 실망하게 하는 일을 하면 제 온몸의 마나는 공중으로 흩어지고 모든 서클이 부서질 겁니다.”
브랜달의 심장 부위가 밝게 빛났다.
“야! 너 그, 그거···.”
속칭 마법사의 맹세.
자신의 서클을 걸고 스스로에게 제약을 거는 것.
“너 미쳤나?”
“괜찮아요. 열심히 잘하면 되죠.”
아직 애라서 그런가?
너무 충동적이다.
아무튼 이제 기능을 상실한 지팡이.
“휴우, 나도 모르겠다. 이건 너 가져. 이제 쓸모도 없다.”
“와! 마계목이잖아요. 세계수보다 약간 떨어지지만 그래도 지팡이 자체가 보물인데.”
“스크롤 가격으로 퉁 치자. 네가 적당한 마법 부여해서 써.”
“흐흐흐, 아무리 생각해도 형이 밑지는데요?”
뜬금없이 마법사의 맹세 같은 걸 저질러 버린 놈이 뭐가 좋다고 웃는지.
‘조심하자.’
앞으로 브랜달에게 실망하면 안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