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탁 >
어떤 게임이든 그렇다.
아무리 게임성이 좋고 잘 만든 게임이면 뭘 하나? 유저, 혹은 플레이어들이 없으면 그 게임은 망한다.
반대로 현질유도, 똥확률, 개판 운영의 망겜이라도, 플레이하는 사람들이 많으면 흥한 게임이고.
그래서 듀플렉스 스페이스 CEO 게리 스탁턴도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 바로 원활한 플레이어 관리, 기존 플레이어들은 계속 묶어두고 반면 신규 플레이어들은 지속적으로 유입시킨다.
캡슐 3천 개 파괴는 보통 문제가 아니다.
플레이어 3천 명이 게임을 못 하게 된다는 의미니까.
그럼 침식지 공략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고.
“일본 자위대 새끼들이 무슨 짓을 했는데?”
“그전에 이미 악연이 있었고, 또 이번엔 마정석으로 강제 각성 인체실험을 하다가 발각된 거 같아요.”
“···병신새끼들, 게임에나 열중할 것이지.”
그럼 알아서 각성하게 될 텐데.
“케이가 또 캡슐을 파괴하면 어떻게 하죠?”
“···나도 답답해. 그렇지 않아도 캡슐 생산 물량이 딸려 미치겠는데.”
“제재를 가할 방법은 없어요?”
“케이는 시스템에 의해 자유의지를 부여받은 플레이어야. 강제적으로 막고 나서면 오히려 우리에게 제재가 떨어져.”
“으으으···, 무슨 제재일지 짐작이 가요.”
아마도 또 ‘세상’에 갇히게 되겠지.
“그럼?”
“정중하게 부탁하는 수밖에, 게임 플레이에 문제가 생기는 행위는 가급적 자제해 달라고,”
“거절하면요? 그럼 방법이 없잖아요.”
“흐음, 대가를 주면 되지 않을까?”
“어떤···.”
게리 스탁턴은 태블릿을 조작해 게임 내부 영상 하나를 띄웠다.
“이거 어때? 이거면 좋은 거래 같은데.”
그러자 살며시 인상을 찌푸리는 엘리.
“너무 이르지 않을까요?”
“침식지도 2개나 공략하고 마탑도 정상화시킨 플레이어야. 차고 넘쳐. 시스템도 허락할걸?”
“그럼 직접 만나보실 겁니까?”
“미쳤어? 나보고 접속하라고?”
“···그럼 결국 저보고 하라는 거네요.”
“빙고!”
게리 스탁턴의 뻔뻔한 말에 엘리의 표정이 썩어들어갔다.
“내 할 일은 끝났어. 이제는 그쪽과 엮이기 싫단 말이야. 난 조용히 살래.”
“저라고 좋은 줄 아세요?”
“어허! 내가 왜 엘리를 탈출시켰는지 벌써 잊었어?”
“···알겠습니다.”
게리 스탁턴은 아예 선베드에 등을 대고 누워버렸다.
“난 그냥 삶을 즐길 거야. 얼마나 멋진 세상이야.”
“그런 것 같아요. 이곳에 온 후 잠을 주무시지 않았죠. 한번 잠들면 백년이고, 천년이고 기약도 없이 주무셨으면서.”
“흐흐흐, 자는 시간이 아까워. 자, 오늘은 무슨 게임을 할까.”
“···게임?”
“어허, 가상현실 말고, 스마트폰 게임, 이게 진짜 게임이지. 디펜스 게임이나 해볼까?”
듀플렉스 스페이스는 게리 스탁턴이 직접 만든 게임이다.
하지만 그는 단 한 번도 접속하지 않았다.
심지어 만들 때조차도.
※ ※ ※
찬웅이 대검찰청 테러 사건을 알게 된 건 한국으로 와서였다.
비행기를 타고 인천공항에 도착, 집으로 돌아와 TV를 틀어보니 온통 그 뉴스로 도배.
‘···대검찰청 테러?’
사망자 32명, 하지만 중상자도 많아 더 늘어날지도 모르고, 이런 참혹한 사태를 자행한 사람이 겨우 한사람이라니.
<대검찰청의 비극, 가해자는 성폭력 전과자.>
<한국도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니다.>
<전문 경호 요원 배치를 검찰에서 거절해.>
<검찰의 아집으로 빚어진 대참사.>
<미국 윌스트리트 클럽 학살 사건의 교훈을 잊었나?>
워낙 큰 사건이라 언론의 입을 막을 수도 없었나 보다,
<빌런 각성 플레이어 현장에서 사살.>
<사건 발생 10분 안에 진압이 이루어져.>
<소문만 무성하다 실체로 드러난 한국 각성 플레이어 전담반.>
<배우 민도연도 각성자? 목격자들 증언 잇달아.>
<각성 플레이어의 존재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대비해야.>
대응은 무리 없이 잘 이루어졌고.
하지만.
‘이제 빼도 박도 못하게 까발려졌구나.’
집에서 좀 쉬고 싶지만···.
‘출근해야겠지?’
찬웅은 APS 본부로 출근했다.
그런데 들어가는 길목부터 분주하다.
무슨 사람들이 저렇게 많지?
“오토바이 왔다!”
“어디, 어디? 그냥 직원이야? 아니면 각성자?”
“일단 찍고 봐!”
“저기요, 각성자신가요?”
“한 말씀만 해주세요. 민도연씨가 각성자 맞습니까?”
“APS엔 몇 명의 각성자들이 있나요?”
기자들이었다.
우르르르.
개떼처럼 몰려오는 그들.
“하아···.”
찰칵, 찰칵, 찰칵!
플래시가 쉴새 없이 터지고.
다행히 헬멧을 쓰고 와서 망정이지.
‘여긴 어떻게 알고 왔어?’
부우웅.
별수 없이 오토바이를 뒤로 돌리고 한적한 골목길로 갔다.
사람들이 없는 걸 확인하고, CCTV도 체크하고,
스르륵, 은신막 발현, 스슷, 오토바이는 인벤토리에.
그렇게 찬웅은 옥상을 통해 APS 본부 건물로 들어갔다.
“어서 오십시오.”
초췌한 안색으로 찬웅을 맞이하는 최기병.
“얼굴만 봐도 고생이 느껴지네요. ···다른 각성 플레이어들은?”
“상황이 이런데 정상 출근이 되겠습니까? 당분간 재택근무로 돌렸습니다.”
“어떻게 됐는지 자세하게 들을 수 있나요?”
“보고드리겠습니다.”
보고라는 단어를 쓸 필요는 없는데.
대검찰청 테러 사건의 결과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하는 최기병.
최초 사건이 벌어졌을 당시부터 민도연과 딸기와 활약까지, 그러나 워낙 크게 터져 사건 통제를 할 수 없었단다.
“어쨌든 피해가 커지기 전에 막아서 다행이네요.”
“네, 민도연씨와 딸기씨가 큰 역할을 했습니다.”
빌런 각성 플레이어 범죄의 특성상, 일어나면 자연재해다.
언제, 어디서 사건이 발생할지 모른다.
하지만 일어나고 나서는 정부의 책임.
최대한 빨리 범죄자를 잡아 후속 사건이 일어나지 않게끔 막아야 한다.
그런 면에서 APS는 제 역량을 충분히 발휘했다고 할 수 있고.
이 과정에서 비록 APS의 존재가 밝혀졌지만 어떻게 보면 순기능도 있다.
범죄 억지력.
빌런들도 긴장할 터, 자신들만을 전문적으로 전담하는 국가기관이 있다는 것, 섣불리 설치다가는 저런 꼴을 당할 수 있다는 경고.
“참! 일본에 갔다 오신 건 어떻게 됐는지.”
“나름 성과가 있었습니다.”
찬웅은 최기병에게 서류 한 뭉치를 꺼냈다.
“이건···.”
“일본 자위대에서 마정석 마약을 가지고 인체실험을 했다는 증거요.”
“아!”
“서류가 자필로 작성되어 있어요. 혼죠와 간부들의 도장도 찍혀있고. 일단 수고스럽지만 사진을 한 장 한 장 찍어서 파일로 만들어주세요.”
처음부터 컴퓨터 파일로 만들어두지.
그러고 보면 일본은 일본이다.
“폭로하실 생각입니까?”
“해야죠. 그러나 해줄 사람은 따로 있습니다.”
미국을 움직일 생각.
한일 관계를 생각하면 한국이 아무리 진실을 말해도 일본은 무시할 것이 뻔하다.
“미국으로 보내세요. 제가 따로 연락할 테니까.”
들어줄 수밖에 없다.
적어도 미국과의 관계에서 찬웅, 즉 케이는 철저한 갑의 위치에 있으니까.
※ ※ ※
일본에서 이나자와 일본 내각 관방장관이 자위대 혼죠 부대장 살해 진범으로 케이를 지목했을 때, 일본인들은 하나같이 분노했다.
└ 은혜를 모르는 족속들입니다. 무조건 단교해야 합니다.
└ 명백한 주권 침해야. 이참에 자위대를 정상적인 군대로 바꾸자.
└ 난 혼죠님을 만나본 적 있어. 언제나 일본만 걱정하던 사람이었는데.
└ 일본 플레이어들은 뭐 하고 있지? 현실에서 선전포고가 안 되면 게임 안에서라도 해야지
└ 케이를 죽이자. 아니 조센징은 모조리 죽여!
└ ···게임에서 한국인인지 어떻게 알고?
일본 전역으로 퍼져나가는 케이에 대한 분노.
일본인 플레이어들이 조직한 ‘케이 척살대’라는 공격대가 무수하게 생겨날 정도였으니.
그러던 와중에 미국 브래들리 국무장관의 기자회견이 터졌다.
“···우리는 일본 자위대에서 주도적으로 인체실험을 자행했다는 증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자국의 군대가 자국의 국민들을 대상으로 추악한 짓거리를 저질렀다는 명백한 증거, 여길 보십시오.”
브래들리 국무장관 옆쪽 대형화면에 띄워진 서류의 사진.
“사망한 혼죠 부대장의 직인이 찍힌 서류입니다. 직인이 위조될 수도 있지 않냐고요? 그럼 여기 희생당한 분들의 명단은 어떡할 겁니까?”
아무리 오리발을 내밀어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
“실험체로 선정된 일본 국민들 총 114명, 그중에 사망한 인원만 93명, 다소 긴 시간이 될지 모르겠지만 애도하는 마음으로 희생자들의 이름을 호명하겠습니다. 사이타마현(縣) 가와고에시(市) 후타야시지로, 요코하마시(市) 사이토 이치로, 나가노현(縣) 마쯔모토시(市) 미나미 코토···.”
그리고 일본이 발칵 뒤집혔다.
희생자들의 지역과 실명이 그대로 뉴스에서 흘러나왔다.
이건 절대 덮을 수 없는 증거.
게다가 희생자들 대부분이 가족도 없는 고아들이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일본 자위대의 위상은 한순간에 추락했다.
그렇지 않아도 접속용 캡슐이 모조리 파괴되어 자위대 각성 플레이어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는데.
결국 대규모 탈영.
자위대 특수초인각성대 소속 각성자들의 연이은 이탈에 시마모토 헤이치는 분통을 터뜨렸다.
“뭐? 전역 요청? 이 빠가 새끼들이! 당장 소집해!”
“하, 하지만 이미 모두 부대 밖을 나간 상황이라···, 어디 있는지 파악도 되지 않습니다.”
“무조건 다 잡아들여.”
둥지 밖을 떠난 자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평범한 일반인도 아니고, 어떻게 잡아?
자위대는 와해 수순.
혼죠라는 구심점이 사라지고, 시설물도 파괴되었으며, 여론도 좋지 않다.
일본 정부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나카타 총리 주재로 열린 내각 대신 회의.
“당장 탈영한 각성 플레이어들을 포섭해. 돈이 얼마나 들든 상관없어.”
“접근해보겠습니다.”
“하늘이 주신 기회야. 절대 놓치면 안 돼!”
“흐흐흐, 알고 보면 케이라는 조센징이 준 기회 아닙니까.”
“의외야, 추잡한 조센징도 쓸 데가 있다니.”
정부 말고도 이 사태를 기회로 삼는 세력이 있었다.
일본에 존재하는 레지키쓰론의 사도, 미츠이 히무라, 진혈의 군주를 만나 케이의 청부 살해를 의뢰한 인물.
‘군주님의 명을 실행할 때군.’
각자의 나라에서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을 키워라.
목적 달성을 위해선 안정된 사회보다 이렇게 혼란스러울수록 좋다.
‘주워 담아야지.’
미츠이 히무라도 각성자 포섭에 나섰다.
그는 자위대나 정부보다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할 수 있는 자신이 있었다.
이미 일본 내 야쿠자 조직을 장악한 미츠이.
합법보다는 불법, 그로써 얻어지는 자유, 돈과 여자, 향락···, 그리고 그들을 레지키쓰론의 세례를 받게 하면?
‘일본은 내가 먹어.’
※ ※ ※
게임이나 하자.
그동안 접속을 못 했으니.
찬웅은 대기실에 있었다.
‘어디가 좋을까?’
폭탄도 있겠다, 마탑에서 만든 7서클 쉴드 스크롤도 있겠다, 전보다 공략은 훨씬 쉬워졌다.
‘우리 플레이어들 능력도 강해졌고.’
적어도 비지성체 침식지 보스는 무리 없이 해치울 수 있을 터.
그리고 공략 성공하면 얻어지는 무한한 혜택.
점점 강해질 것이다.
자신도, APS 용병 플레이어도.
순간!
왜애애앵! 왱! 왱!
“응?”
귓가에서 들리는 날갯짓 소리.
“이거 꼭···,”
모기?
가상현실 게임, 그것도 대기실 안인데도 모기가 구현되어 있나?
환청이겠지 하며 무심코 두리번거리는 찬웅.
그런데?
“어?”
작은 나비처럼 하늘거리며 나타난 비행체.
모기는 확실히 아니다.
그보다 훨씬 크다.
뭐지?
인형인가?
아주 작은 인간의 모습.
4장의 날개가 파르르 떨면서 찬웅의 주위를 이리저리 날아가고 있었다.
‘···요정이구나.’
대륙에서도 거의 멸종했다고 알려진 요정,
그런데 여긴 대기실이잖아.
[안녕하세요. 플레이어 케이.]
말도 하네?
“누구세요?”
[전 듀플렉스 스페이스 가상현실 게임 개발팀 실장으로 일하고 있는 엘리라고 합니다.]
“···네?”
게임 개발팀 실장이라고?
처음 본다.
게임과 관련된 사람이 말을 걸어오다니, 아니 애초에 게임회사 직원이 있는지도 몰랐다. 만났다는 사람도 들어본 적 없고.
하지만 대기실에 들어왔다.
게임과 관련된 직원이 아니라면 불가능하다.
“무슨 일로 오셨죠?”
[흐음, 부탁드릴 것이 있어서요. 제발 들어 주시길.]
부탁이라.
뭘까?
[승낙하시면 보상도 드릴게요.]
‘음?’
보상 달란 소리도 안 했는데 준다면 탱큐지.
먼저 보상의 뭔지 물어보고.
“어떤 보상이죠?”
[이거 어때요?]
뾰로롱! 뾰롱, 뿅뿅!
엘리라는 요정이 날개를 털어 가루를 뿌리자 3차원 입체 영상이 대기실에 떠올랐다.
“···이건?”
모를 수가 없다.
바로 며칠 전에 얻은 소환 탈것.
“부키?”
[네! 이거 드릴게요.]
“그거 이미 있는데···,”
가만!
“서, 설마?”
[그래요. 진(眞)으로.]
“···.”
게임 속 탈것을 진(眞)으로 준다니.
대체 무슨 부탁이길래?
뭐 드래곤이라도 잡아와야 하나?
[그러니까 제발···.]
긴장되는 순간.
[게임 접속용 캡슐을 파괴하지 말아 주세요.]
“···네?”
고작 그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