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 혼돈의 시대(3) >
올해 40살의 박일국은 속칭 돌싱, 이혼남이었다.
이혼하고 싶어서 한 게 아니라 당했다.
물론 이유는 있었다.
자신은 전과자였으니까.
그것도 미성년자 성폭행 혐의로 실형까지 살다 나와 전자발찌까지 착용한 범죄자.
억울했다.
무미건조한 일상에 바람이라도 펴볼까 했던 것이 잘못이라면 잘못.
데이터 앱을 통해 만남을 성사시키고 같이 한잔하다가 모텔로 들어가서 즐거운 시간을 가졌는데, 갑자기 상대가 돌변했다.
자기가 미성년자라고? 게다가 강제로 추행까지 했다고?
이런 미친년이!
결국 돈이었다.
3천만 원을 요구해왔다. 주지 않으면 신고하겠다고.
당연히 박일국은 주지 않았다.
그리고 시작된 경찰 수사.
박일국은 무혐의로 끝날 것을 확신했다.
술에 취해 서로 팔짱을 끼고 모텔로 들어가는 CCTV 영상도 확보했으니까.
하지만 사건이 검찰로 송치된 순간 상황이 달라졌다.
피해자의 일관된 진술? 그게 증거가 된다고? 어처구니없었다.
그날로 박일국의 인생은 끝장났다.
회사에서 잘리고 이혼당하고, 가족들은 면회 한번 오지 않고···,
징역을 살고 나온 후, 게임에만 빠져들었다.
전자발찌를 찬 채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렇게 살다 죽으면 그만, 더는 살 의지도, 살아야 할 이유도 없었다.
그러다가 찾아온 각성.
힘을 얻은 후 박일국은 한가지 생각뿐이었다.
자신을 이렇게 만든 놈들에 대한 복수.
먼저 여자부터 찾아가서 목을 졸라 죽였다.
그리고 그 검사 새끼!
누가 봐도 무혐의인데 실적을 위해 CCTV 증거를 누락시켜 자신을 성범죄자로 만든 놈.
철문을 뜯고 집으로 쳐들어가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놈을 비웃어주고는 몸을 반으로 접어버렸다.
그런데도 성이 차지 않는다.
검사 동일체.
한 놈이 죄를 지었으면 그 책임도 다 함께 져야지.
바로 대검찰청으로 왔다.
지나가는 놈 아무나 붙잡아서 총장이 어디 있냐고 물어보니, 마침 전체 회의가 있다나?
검사들이 한군데 모여있다고?
이게 웬 행운인가?
박일국은 대강당의 나무 문을 발로 차 부숴버린 후 안으로 들어갔다.
퍼억! 퍽! 퍽! 퍽! 퍽! 퍽···,
자신이 죽인 남태석 검사의 집에서 가지고 온 골프채를 닥치는 대로 휘둘렀다.
“내, 내가 누군 줄 알고···, 아악!”
“살려, 컥!”
“아, 안 돼!”
말 그대로 양학, 양민 학살.
혼비백산으로 달아나는 검사들.
그나마 용케 탈출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박일국은 양몰이를 하듯 검사들을 강당 안쪽으로 밀어붙였다.
“낄낄낄, 좆도 아닌 새끼들이, 어딜 도망가? 도망가는 새끼들부터 먼저 죽인다!”
휘릿!
퍼억! 퍽!
골프채에 머리를 맞아 쓰러지는 검사들,
“끅!”
“제, 제발 때리지 마···, 악!”
유송무 검찰 총장은 도망가지 못했다.
그와 함께 있던 대검의 간부 검사들도.
이리 밀리고 저리 밀려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대강당 안쪽, 비상구로 가려면 저 미치광이 옆을 지나야 하는데 그럴 엄두도 내지 못했다.
‘아아아···,’
악몽을 꾸고 있는 건 아닐까?
너무나 비현실적이었다.
죽은 듯 쓰러져 움직이지 않는 검사들, 여기도 피, 저기도 피.
범죄자를 잡는 국가 기관이 범죄자에 의해 피습당했다.
당한 건 그렇다 치더라도 제대로 된 대응조차 못 하고 있다.
대체 무장 병력은 뭐 하고 있지?
순간!
우르르.
대강당으로 진입하는 경찰 특공대.
드디어 왔다.
유송무 총장의 눈에서 희망의 빛이 떠올랐다.
“손 들어!”
“꼼짝 마!”
“움직이면 쏜다!”
그러나 박일국은 재빨리 안쪽으로 달려가 아무나 한 명 잡고 자신의 방패로 세웠다.
공교롭게도 잡힌 사람이 검찰 총장.
“이, 이놈!”
“조용히 해! 개새끼야!”
그러고 나서.
“쏴봐! 쏴보라고.”
총을 쏠 수나 있을까?
인질이 검찰 총장인데?
“당장 꺼져! 안 꺼지면 이 새끼부터 먼저 죽인다.”
박일국의 손이 유송무 총장의 쇄골에 얹혔다.
뿌득,
뼈 부러지는 소리.
“끄아악!”
광기로 가득 찬 박일국이 바락바락 소리 질렀다.
“인질이 이 새끼뿐인 줄 알아? 다 죽여줘?”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경찰 특공대.
그때였다.
“경찰분들, 다 나가세요.”
어느새 대강당으로 뛰어 들어오는 젊은 여자 하나.
민도연이었다.
가까운 거리에서 차로 이동 중이어서 제일 먼저 도착한 그녀.
민도연은 욕지기가 치밀어오르는 걸 간신히 참았다.
마치 지옥 같은 현장.
머리가 터져 뇌수가 흐르는 사람, 앞으로 쓰러진 채 피를 쏟아내는 사람. 얼굴이 함몰되어 눈코입을 구별하지도 못하는 사람들.
그리고 인질을 잡고 있는 빌런 각성 플레이어.
‘이럴 땐 매뉴얼 대로···,’
아직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경찰 특공대에게.
“APS에서 나왔어요. 여긴 제가 맡습니다.”
툭!
신분증을 꺼내 던져주니,
그제야 총구를 내리고 슬금슬금 물러나 강당 밖으로 빠져나가는 경찰들.
박일국은 묘한 표정이었다.
저년은 누구지?
정체가 뭐길래 경찰들이 고분고분 말을 들어?
“···넌 뭐야? 가만, 너 어디서 많이 봤는데.”
“박일국! 이제 그만해. 다 끝났어.”
“음? 내 이름은 어떻게?”
“무슨 억하심정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건 너무하지 않아?”
“흐흐흐, 니가 뭘 안다고···,”
순간!
박일국이 잡고 있던 인질을 그녀에게 던졌다.
휘잇!
“미친!”
훨훨 날아오는 인질을 공중에서 받아 바닥으로 내려놓은 민도연.
하지만,
“죽어라! 개년아!”
파밧!
무시무시한 속도로 달려온 박일국이 민도연의 머리에 골프채를 휘둘렀다.
“윽!”
인질을 살피느라 제대로 방비를 못 했다.
피하기는 늦었고.
어쩔 수 없이 두 팔을 엑스자로 교차해서 막았지만.
빠각!
“아악!”
팔뚝에서 느껴지는 저릿한 통증.
‘무기만 있었어도.’
하지만 공격은 끝나지 않았다.
그녀의 복부에 박일국의 발길질이 작열했다.
퍼억!
“꺄악!”
휘리릭!
쿵!
벽으로 처박혀 신음하는 민도연, 그런 그녀를 집요하게 쫓아와 발로 밟아버리는 박일국.
콱콱콱콱!
“쌍년아! 죽어! 뒈지라고!!!”
“으윽, 윽윽윽!”
민도연은 고통을 참으며 끝까지 버텼다.
반격할 기회를 노려야 한다.
“이것 봐라! 꽤 단단하네. 너도 그거였어? 각성?”
“으으으···,”
촤악!
박일국은 민도연의 머리채를 잡았다.
“오! 너 가만히 보니 민도연 닮았구나?”
“···씨, 씨발 새끼!”
“이게 웬 떡이야. 팬이었는데···, 진짜는 아니지만 대리만족이라도 해봐?”
찌이익!
사정없이 찢겨나가는 민도연의 상의.
하지만 그녀는 활짝 웃고 있었다.
“···좋냐? 이거 완전 변태 아니야?”
“병신, 넌 이제 끝났어.”
“내가 왜···,”
갑자기 박일국은 위화감을 느꼈다.
뒤통수가 쎄하다.
그래서 뒤를 돌아봤는데.
쐐애애액!
뭔가가 시야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철판에, 가시가 비쭉 비쭉 나온 것이···,
‘방패?’
콰앙!
어느새 돌진해온 상큼한 딸기, 신여은이 방패 가격으로 박일국의 머리를 후려쳤다.
“커억!”
트럭에라도 치인 듯, 훨훨 날아가 바닥으로 나뒹구는 박일국,
“뭐, 뭐야?”
벌떡 일어나 골프채를 들고 반격을 준비하려 했지만.
“어?”
섬광이 번뜩인다.
서걱!
날카로운 무언가가 자신의 목을 스치고 지나갔다.
“끅.”
새하얀 은빛 검, 그리고 시퍼렇게 어린 포스.
박일국은 온몸에서 힘이 쭉 빠져나가는 걸 느꼈다.
울컥울컥,
동시에 목에서 뿜어져 나오는 새빨간 선혈.
“아, 아직 반도 모, 못 죽였는데···.”
박일국의 목을 벤 신여은은 검신에 묻은 핏물을 털어내며 검집에 넣은 후 쓰러진 민도연에게 다가갔다.
털썩!
그런 그녀의 뒤로 박일국이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괜찮아요? 도연씨?”
“너무 멋있잖아요. 딸기씨.”
“여은이라 불러주시면 안 될까요?”
“미안해요, 그런데 딸기가 더 입에 착착 붙어서···.”
“···다들 날 딸기라고만 불러.”
콰당!
대강당 문을 부수고 뒤늦게 도착한 APS 소속 플레이어들.
최기병도 왔다.
그러나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후우,”
이 참혹한 현장에 그저 한숨만 쉬어댈 뿐이었다.
※ ※ ※
일본 도쿄 공항에 착륙한 여객기.
화물칸이 열리자 스르륵, 찬웅이 밖으로 빠져나왔다.
기록에 남지 않는 완벽한 밀항.
공항은 빠져나온 찬웅은 인벤토리에서 바이크를 꺼냈다.
그리고 마이클 피트가 알려준 장소로.
후쿠시마 특수초인각성대 시설물이 파괴되면 자위대는 또 자신을 지목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관없다.
‘어쩌라고?’
기껏해야 전처럼 일본 내각을 움직여 비난 성명이나 내겠지.
계속 시끄럽게 떠들면 또 찾아가면 그만이다.
입을 꾹 다물 때까지.
부우우우웅!
약속 장소인 도쿄 변두리 창고 안에 와보니 커다란 트레일러 한 대가 주차되어 있었다.
뚝!
짐칸의 문은 커다란 자물쇠로 잠겨진 채로 있었지만 가볍게 잡아 끊어버리고.
끼이익!
트레일러 문을 열었다,
‘오!’
짐칸에 보관된 꽤 많은 숫자의 나무 상자들.
그 안엔 수류탄, 시한 신관이 달린 고체 폭탄, 연막탄과 소이탄, 그리고 한눈에 봐도 위력이 엄청날 것같은 액체 폭탄도, 다양한 폭발물이 들어있었다.
‘이건 뭐지?’
상자 위에 놓인 태블릿.
전원을 켜보니 바탕화면에 아이콘 하나가 보인다.
‘사용법?’
폭탄의 사용 방법이 담긴 동영상 같다.
‘꼼꼼하네.’
영상을 실행시키면서 인벤토리 안에 폭탄을 집어넣는 찬웅.
‘다 들어가고도 남겠어.’
이번 일을 위해 인벤토리를 비우고 와서 많은 양의 폭탄도 무리 없이 집어넣을 수 있다.
다시 도쿄역으로 가서 후쿠시마로 가는 신칸센 열차에 무임 승차하는 찬웅, 이런 모든 일련의 과정들은 허리띠 에고 시스템이 도움을 줬다.
‘후쿠시마 도착하면 자위대 기지까지 안내 부탁해.’
[답변해드리겠습니다. 최적의 경로를 탐색합니다.]
기차가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빈 좌석에 앉아있다가 승무원이 오면 슬쩍 자리를 피하고, 혹은 은신막 발현으로 안 보이게 숨고.
‘일본 내 각성 플레이어 명단을 알 수 없을까?’
[답변해드리겠습니다. 대상이 특정되어야 탐색이 가능합니다.]
‘안된다고?’
[정보를 알고 싶은 특정 플레이어의 이름과 사회적 신분을 제시해주십시오.]
그냥 무작위로 명단을 뽑을 수는 없는 모양.
뭐, 그래도 괜찮다.
플레이어 죽이러 가는 것이 아니라 건물과 시설을 파괴하러 가는 것.
어느덧 후쿠시마역에 도착한 신칸센 열차.
찬웅은 투명상태로 역을 빠져나와 바이크를 탔다.
부우우우웅.
처음 오는 곳이지만 문제없다.
허리띠 에고 시스템이 다 알아서 해주니까.
‘저기구나.’
각성 플레이어 부대가 있는 곳이라 그런지 경계가 삼엄하다.
그래도 자신이 여기 온 걸 알기나 하겠나?
스르르륵!
부대 담을 넘어 안으로 진입.
그러자 찬웅의 눈에 들어오는 철골 구조의 건축물들, 그중 가장 큰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와!’
3층으로 된 건물, 1층부터 3층까지 빽빽하게 설치되어 있는 게임 접속용 캡슐.
‘여기서 저기까지 100개라고 치면, 하나, 둘, 셋, 넷, ···열 개.’
1층에만 캡슐이 1,000개, 2층과 3층도 비슷하고, 그렇다면 최소 3,000개?
‘역시 돈 많은 나라야.’
한국 APS는 기껏해야 200개 정도인데.
찬웅은 창고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총을 들고 건물 안을 돌아다니는 군인들도 보였다.
‘화재경보기가···, 저깄네.’
시작하자.
인벤토리에서 연막탄 몇 개를 꺼내 곳곳에 던지고 화재경보기 작동.
따르르르르릉!
귀가 따가울 정도로 요란하게 울리는 경고음.
“어? 불?”
“불이야! 불이 났어.”
“저쪽에 연기가 나!”
“소화기 가져와!”
1층으로 사람들이 몰린 사이 3층으로 올라간 찬웅은 수류탄을 꺼냈다.
그리고 안전핀을 뽑아 비어있는 캡슐에다가,
휘익!
툭!
콰쾅!
개당 3억씩이나 하는 게임 접속용 캡슐이 폭발에 휘말려 산산조각으로 부숴졌다.
“헉! 포, 폭발이다!”
“무, 무슨?”
“대피해! 모두 접속 끊고 나와.”
벌컥, 벌컥, 벌컥, 벌컥, 벌컥···,
캡슐 뚜껑이 열리기 시작했다.
혼비백산하며 출구를 향해 도망치는 자위대 플레이어들.
찬웅은 손에 잡히는 대로 던졌다.
휘익! 휙휙!
수류탄, 소이탄, 엄청난 폭발력의 고체 폭탄까지.
2층에도 던지고, 1층에도 던지고.
쾅! 쾅! 콰콰쾅!
스팟! 팟팟팟팟!
던지고 나서 폭발 범위에서 벗어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인벤토리를 싹 비워버릴 생각으로 막 집어 던졌다.
콰쾅! 꽈광! 콰콰쾅!
치솟아 오르는 시뻘건 화염, 순식간에 건물 안이 불바다로 변했다.
‘어우! 뜨겁네.’
화염 저항의 비약 한 병쯤 들고 올 걸 그랬나?
이제 마무리하자.
인벤토리에 남은 폭탄 3개, 마치 액션영화의 악당들이 사용하는 것처럼 생긴 액체 폭탄.
크기도 매우 크다.
이건 위력이 다른 것들보다 셀 것 같으니까.
그래서 시한장치를 1분으로 설정.
휙! 휙! 휙!
골고루 뿌리고.
팟! 팟! 팟!
찬웅은 밖으로 대피했다.
그리고,
콰쾅! 콰콰콰콰콰콰콰쾅!!!
무시무시한 폭발의 위력.
철골로 이루어진, 각성 플레이어 양성을 위해 자위대가 수백억 엔을 투자해서 만든 대형 게임 접속 캡슐 센터가 붕괴하기 시작했다.
소방대가 도착했지만 도저히 진입할 엄두를 못냈다.
쿠쿠쿵! 콰쾅! 꽝!
매캐한 연기, 타오르는 화염, 캡슐 연쇄 폭발.
‘어우, 속이 다 시원하네.’
다음은?
파괴했으니 남은 건 약탈.
‘뭐 주워갈 거 없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