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 혼돈의 시대(2) >
일본 자위대 특수초인각성대.
절대 권력자인 혼죠 부대장이 죽었다.
그리하여 생긴 힘의 공백.
누가 혼죠의 뒤를 이을 것인가?
권력에 대한 갈망이야 모든 이들이 다 가지고 있는 원초적 본능.
혼죠의 부관이자 심복이었던 시마모토 헤이치 일등육좌에겐 특히 그랬다.
‘안정적으로 권력을 인수해야 해.’
자위대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오직 혼죠의 명령에만 복종했던 각성 플레이어들이 방황하고 있었다.
그 틈을 노려 세력 규합에 나서고 있는 자위대 파벌들.
이래선 안 된다.
자칫하면 자위대가 사분오열되어 권력 암투만 벌이다 자멸할지도 모른다.
각성 플레이어들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구심점이 필요하다.
어떻게?
시마모토는 먼저 혼죠 소장이 왜 죽었는지부터 파헤쳐보기로 했다.
사인은 심근 경색.
솔직히 말도 안 된다.
일본 내 최강의 각성 플레이어가 심장마비로 죽어?
‘혼죠는 실험체를 데리고 스톤 포지 침식지에서 접속한 이후로 3일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잖아. 거기서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하긴 이상하긴 했다.
안색도 좋지 않아 보였고.
더구나 3일, 사망 페널티 기간과 겹치지 않나.
시마모토는 혼죠와 함께 당시 157번 광구 침식지에 갔던 자위대 장교를 호출했다.
“···도끼라고?”
“으음, 확실합니다. 작은 손도끼였습니다. 피할 수도 없이 빠르게 날아왔습니다. 그래서 제가 죽었고요.”
“부대장님은?”
“그, 글쎄요. 강제 로그아웃되기 전까진 살아계셨는데···.”
“혼죠 부대장님도 사망하신 걸 봤나?”
“···그건 모, 못 봤습니다.”
도끼.
한 방에 죽어서 로그아웃됐단다.
혼죠 또한 죽었을 테고.
‘가만! 그러고 보니?’
시마모토가 살아있던 혼죠를 마지막으로 봤던 당시, 보고를 하기 위해 집무실 문을 노크하기 직전.
집무실 안에서 혼죠가 지르던 고성을 들었다.
그때는 무심코 흘렸는데···.
‘케이, 케이라는 말을 들었던 것 같아. 확실해.’
케이의 주무기는 도끼.
그놈이다.
어떤 수작을 부린지는 알 수 없지만 혼죠의 죽음에 케이라는 놈이 관여했다.
‘좋은 기회군.’
케이라는 공동의 적을 만든다.
그런 식으로 자위대 각성 플레이어들을 응집시킬 명분을 만들어 냄과 동시에 자연스럽게 권력을 장악한다.
‘내각을 움직여야겠어.’
기자회견도 하고.
사실 진짜 케이가 그랬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놈을 죽일 자신도 없다.
그러나 자위대의 혼란을 잠재우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 아울러 자연스러운 권력 이양도.
※ ※ ※
시마모토는 빠르게 움직였다.
시간을 다투는 일.
도쿄에서 이나자와 일본 내각 관방장관이 기자들이 모인 회견장 앞에 섰다.
국내외 기자들이 모두 모인 현장.
“먼저 혼죠 부대장의 죽음에 애도를 표합니다. 그는 조국과 민족을 사랑했던 자랑스러운 일본인이었으며 평소 언행과 품성은 칭송받아 마땅한 참군인이었습니다.”
관방장관으로선 정말 하고 싶지 않은 기자회견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자위대의 명령을 듣지 않으면 자신과 가족들은 그날로 죽은 목숨.
“죽음의 진실은 반드시 밝혀져야 합니다. 우리 내각 정보실은 혼죠 부대장의 죽음에 특정 플레이어가 연관되었다는 정황을 포착했습니다.”
카메라 플래시가 쉴 새 없이 터졌다.
“공식적으로 플레이어 케이에게 답변을 요구합니다. 당신이 혼죠 부대장을 죽였습니까? 진실을 회피하지 마십시오. 목격자도 확보했습니다. 이는 명백한 주권 침해 행위이며, 우리 일본 정부와 자위대는···.”
기자회견 내용은 전 세계로 보도됐다.
당연히 한국에서도 대서특필되었고, 찬웅 또한 그 뉴스를 봤다.
‘쯧, 내가 실수했네.’
깔끔한 마무리가 자신의 전매특허나 마찬가지였는데, 이번은 그렇지 못했다.
‘역시 그냥 내버려 둬선 안 되는 거였어.’
일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신경 쓰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저쪽이 도발한 이상 가만히 못 있지.
‘그렇지 않아도 마음에 걸린 게 있었는데···.’
혼죠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엿들었던 대화 내용.
마정석을 기반으로 한 인체 약물 실험.
‘혼죠가 칭송받아 마땅한 참군인이었다고?’
같잖은 말이다.
파렴치하고 천인공노할 놈이 바로 혼죠.
찬웅은 미국 마이클 피트와 연락해서 마키나 공화국 뉴팩토리에서 만났다.
“케이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네, 저도, 참! 대신전엔 갔다 오셨나요?”
“그건 아직···, 미국 내에서도 초대권에 대한 잡음이 만만치 않아서.”
그렇겠지.
미국이라고 다를까?
“그런데 무슨 일로···,”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어서요.”
“네, 뭐든.”
“혹시 일본이 마정석을 기반으로 만든 마약으로 일반 플레이어를 강제 각성시키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계세요?”
“···어.”
당황하는 마이클 피트.
“그걸 어떻게?”
알고 있구나.
알면서도 모른 척하고 있었고.
그렇다면?
“미국도 하고 있나요?”
“···.”
마이클 피트는 고민했다.
진실을 말해야 하나?
그냥 얼버무릴까?
거짓말했다가 진실이 밝혀지면 케이와의 관계가 틀어질 수 있다.
“···네, 미국도 마정석을 이용한 슈퍼 솔저 프로젝트가 있습니다.”
“으흠.”
살짝 실망이다.
적어도 한국은 그런 프로젝트가 없다.
헬조선이니 뭐니 해도, 다른 나라에 비하면 양반이지.
찬웅의 표정이 굳어지자 다급하게 변명하는 마이클 피트.
“하지만 일본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일본의 방식은 문제가 많습니다. 우린 아직 인체실험도 실행하지 않은 상황이고요.”
“일본 말고도 강제 각성 프로젝트를 시행하는 국가들이 더 있습니까? 미국 빼고.”
“네, 대표적으로 러시아가 있습니다.”
그럴 줄 알았다.
약물하면 러시아지.
아무튼 미국과 러시아가 그런 실험을 하든 말든 현재 찬웅이 목표로 삼는 나라는 일본.
“저에 대한 뉴스는 들으셨죠?”
“알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일본에 한번 갔다 와야 할 것 같아서.”
꿀꺽,
마이클은 마른침을 삼켰다.
‘일본에 간다는 걸 왜 내게 알리는 거지?’
진짜 혼죠의 죽음에 연관이 있나?
“그래서 부탁이 있습니다. 조금 부담스러울지 모르지만.”
“마, 말씀하세요.”
“혹시 폭약 같은 거 구할 수 있나요? 인명 살상용 말고 시설물 파괴용으로. 약물로 인체실험까지 하는 놈들을 그냥 둘 순 없지 않습니까.”
그제야 마이클은 깨달았다.
케이가 왜 자신을 만나러 왔는지.
“···백악관에 보고를 올려보겠습니다.”
“될 수 있으면 일본에서 받았으면 하는데.”
이건 경고다.
겉으로 보기엔 일본에 대한 경고지만 미국에게도 화살이 겨눠질 수 있다는 경고.
‘이 기회에 백지화해야겠어.’
마이클 피트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슈퍼 솔저 프로젝트, 윤리적으로 문제가 많은 계획이었다.
그리고 들어가는 마정석에 비해 연구 성과도 극미했고,
“겨, 결정되면 바로 연락드리죠.”
“기다릴게요.”
그러고 나서 찬웅은 로그아웃했다..
그리고 몇 시간 후 최기병을 통해 마이클 피트의 확답이 왔다.
요구한 물건이 준비되었다고.
‘그럼 일본으로 가볼까?’
찬웅은 인천공항으로 갔다.
일본으로 떠나는 비행기를 확인한 후,
스르륵.
공항 직원들이 승객의 짐을 실을 때를 틈타 화물칸으로 스며들었다.
※ ※ ※
찬웅이 일본으로 떠났을 때.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유송무 검찰 총장은 뼛속까지 검찰이었다.
범죄자를 수사하고 기소해서 재판까지 넘기는 일은 오로지 검찰에게만 주어진 권한이라고 항상 생각해왔다.
하지만 요즘 일어나는 일련의 상황들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연쇄 살인마 박달환을 비롯해, 부산의 팔성파 사건, 그리고 믿음직한 부하였던 진종설 차장 검사 피살까지.
법치주의 국가에서 즉결처분이 웬 말인가?
검찰은 수사는커녕 정보 접근도 허용되지 않고 있으니.
‘꼴이 말이 아니야.’
APS는 검찰이 가진 고유 권한을 너무나 태연하게 무시하고 있었다.
‘이래선 안 돼.’
물론 특수성은 인정한다.
APS가 쫓는 범죄자들이 평범한 놈들은 아니라는 걸, 그러나 검찰이 참여조차 못 한다는 건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그래서 APS에서 대검찰청에 각성 플레이어 경호 인력을 배치해주겠다고 제안한 걸 단칼에 거절했다.
각성 플레이어를 배치해서 대검을 감시하겠다고?
‘어디서 그런 뻔한 수작질을!’
검사 긴급회의를 소집한 유송무 총장.
대강당에 각 지역 고검장에서부터 평검사까지 모였다.
“다들 한마디씩 해봐.”
진종설 사건으로 구겨진 검찰의 체면, 아직 국민들에게 알려지진 않았지만.
“법무부에 압박을 넣어야 합니다. 검찰의 지휘를 받는다고 해도 달라질 건 없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보고를 받는 주체가 검찰이고, APS는 해왔던 그대로 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APS가 검찰 산하 조직으로 들어오는 게 맞습니다.”
“APS 팀장이라 해봐야 하급 공무원이죠. 빌런 수사를 독점하면서 조직을 키우면서 한자리 크게 차지해보려는 심산 같은데···,”
모두 비슷한 생각들.
하긴 검찰의 고유 권한이 넘어가게 생겼는데, 가만히 있을 수 있나.
“목적이 뻔히 보입니다. 빌런들 수사한다면서 점차 몸집을 불려 나갈 것이고, 그러다 보면 APS가 빌런이 아닌 일반 범죄 수사 영역까지 침범해올 겁니다.”
“하아, 솔직히 전 아직도 진종설 차장 검사님 피살 사건이 의심스럽습니다. 다들 아시잖아요? 그럴 분이 아니지 않습니까?”
“과거 육군 3군단 사건도 마찬가집니다. 과연 조창대 군단장이 각성자였을까요? 쿠데타 혐의를 뒤집어씌워 처리한 것이 아닌지.”
“우리 의지를 보여줍시다.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총사퇴하죠.”
“제가 최기병 뒤를 파볼까요? 검찰의 무서움을 몸소 느끼게 해주겠습니다.”
“그걸론 부족합니다. 아예 APS 조직 전체를 전면 수사해야죠.”
수많은 발언이 쏟아졌다.
검사들의 의기(義氣)에 가슴이 웅장해지는 유송무 검찰 총장.
“좋아! 자네들 뜻을 잘 알겠네. 나도 같은 생각이기도 하고, 먼저 법무부에 우리 입장을···,”
그때였다.
벌컥! 하고 열리는 회의실 문.
“크, 큰일 났습니다.”
검찰 수사관 한 명이 황급하게 달려와 대검 간부에게 귓속말로 말했다.
화들짝 놀라며 되묻는 대검 간부.
“뭐? 또 피살사건이라고? 북부지검 검사가?”
동시에 회의실 이곳저곳에서 울리는 메시지 알림음.
유송무 검찰 총장도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 서울 북부지검 남태석 검사, 자택에서 피살.
“이게 무슨···,”
검찰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검사 피살이 벌서 두 번째.
잠시 후 대회의장에 설치된 프로젝터를 통해 사건 현장의 사진이 대형 스크린에 송출되었다.
“아!”
“···미, 미친!”
“세, 세상에.”
남태석으로 보이는 시신.
상체와 하체가 반으로 접힌 처참한 모습이었다.
그 옆에는 형편없이 구겨진 철 덩어리가 보이고.
“아, 아파트 현관문이잖아?”
“손자국도 있습니다.”
“손자국? ···사람이 저렇게 했다고?”
정황상 누군가 아파트 철문을 뜯고 들어가 범행을 저지른 것이 확실하다.
그럼 누구겠나?
바로 빌런 각성 플레이어.
“빨리 수사를···,”
“우리가 먼저 잡아야 합니다. 군부대와 경찰 특공대에 병력 지원을 요청해서.”
그 순간!
콰아앙!
박살 나는 대강당 문짝.
그리고 부서진 문을 발로 차면서 정체불명의 남자가 들이닥쳤다.
길죽한 2번 아이언 골프채를 들고서.
“개새끼들아! 수사는 무슨! 날 어떻게 한다고? 여기 왔잖아! 잡아 봐, 새끼들아!”
대검찰청 대학살 사건의 시작이었다.
※ ※ ※
학살이 일어나기 1시간 전.
최기병을 비롯한 APS 요원들은 이미 남태석 검사의 집에 나와 있었다.
빌런 각성 플레이어의 짓으로 의심되는 사건이 발생하면 제일 먼저 APS로 통보가 오게 되어 있었다.
“어우, 반으로 접혔네요. 원한인가?”
“그렇죠. 더 쉽게 죽이는 방법도 있는데.”
“지문도 덕지덕지 남겼어요. ···이거 곤란하네. 빨리 잡아야겠어요.”
맞다.
자신을 찾아도 상관없다는 태도.
이런 경우가 제일 무섭다.
범행이 한 번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지문조회는?”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곧···, 아! 결과가 나왔습니다.”
“누구야?”
“이름 박일국, 남자고요. 나이는 40살입니다. 전과가 있어 금방 찾을 수 있었습니다.”
“무슨 전과?”
“미성년자 성폭행, 박일국을 기소한 담당 검사가 피살된 남태석입니다.”
“그래?”
추측이 맞았다.
살인의 의도는 복수였다.
자신을 이렇게 만든 검사에 대한 복수.
그렇다면?
“박일국 성폭행 피해자는? 빨리 연락해봐.”
“제가 해보죠.”
이필동이 나섰지만 그럴 필요도 없었다.
“어, 오늘 사건 기록 살펴보니 신사동에서 살인 사건이 또 있었습니다. 목이 졸려 사망한 여성 피해자인데, 빌런에 의한 사건이 아니라고 판단했는지 우리 쪽으로 넘어오진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피해자와 박일국의 성폭력 피해자 이름이 같습니다.”
“하아,”
벌써 두건의 살인 사건 발생.
“보복 범죄네요.”
“대원들에게 연락하겠습니다.”
“스마트폰으로 박일국 인상착의도 전송해요.”
대체 어디로 갔지?
빨리 찾지 않으면 대형 범죄로 이어진다.
바로 그 순간!
지이이잉,
최기병의 스마트폰에서 울리는 진동음.
“여보세요. 최기병입니다. ···네? 뭐라고요?"
기어코 일이 터졌다.
"대, 대검찰청이 습격당했다고?”
이게 무슨 날벼락.
옆에서 듣고 있던 이필동도.
“이런···, 대검찰청에 우리 측 각성 플레이어 경호 요원 없습니까?”
“없어요. 그쪽에서 거절해서,”
“빨리 출동합시다.”
APS 각성 플레이어 전체 소집.
우현수, 고유섭, 마태길, 봉춘섭은 APS 본부에서 대기하다가 연락을 받았다.
“네, 즉시 검찰청으로 출동하겠습니다.”
전화를 끊자마자 물어오는 고유섭.
“현수야, 무슨 일이야?”
“대검찰청이 습격을 받고 있다고,”
“설마 빌런?”
“어.”
“씨팔! 빨리!”
바로 출동.
딸기는 부모님과 함께 밥을 먹다가 메시지를 받았다.
“아빠, 엄마! 저 나갔다가 올게요.”
“···여은아. 혹시?”
“괜찮아요. 걱정하지 마세요.”
“조, 조심해야 해.”
딸기는 집에서 방패와 검이든 커다란 가방을 어깨에 메고 무작정 달렸다.
달리는 것이 편하다.
사람들이 놀라서 쳐다보겠지만 그게 중요한가?
민도연이 메시지를 본 건 촬영장으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띠링,
메시지를 읽자마자.
“오빠!”
“왜?”
“차 돌려. 서초구 대검찰청으로 가.”
“···뭐?”
“빨리! 지금 돌려!”
연예인을 태운 벤이 신호를 무시하고 불법 유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