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 혼돈의 시대(1) >
일본 후쿠시마 자위대 특수초인각성대 본부.
지잉,
혼죠는 오만상 찡그린 얼굴로 캡슐에서 몸을 일으켰다.
“크윽!”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프다.
송곳으로 후벼판 느낌.
‘···왜지?’
스톤 포지 침식지에서 케이를 만나 사망했다.
지금 아픈 곳은 놈에게 당한 부위와 일치했고.
하지만 그건 게임 안에서가 아닌가?
도끼를 맞은 것도 아바타, 죽은 것도 아바타.
“으윽, 으으으···,”
힘겹게 캡슐에서 일어나 비틀비틀 의자에 앉는 혼죠.
가상에서 죽었는데, 아직 그때의 공포가 잊히질 않는다.
아마도 트라우마가 생겼나 보다.
뇌가 일으킨 착각 때문에 현실에서도 아픔을 느끼는 건가?
“칙쇼!”
온몸이 욱신욱신, 특히 가슴 통증은 마치 심근경색의 전조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참기 힘들었다.
이럴 땐 방법이 있다.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땐 포스를 끌어올려 온몸 구석구석으로 돌리면 조금 나아진다.
혼죠가 예전에 익혔던 진(眞) 스킬 방출.
현실에서도 포스를 운용하게 해주는 능력.
‘···가만!’
어떻게 하는 거였더라?
심지어,
‘포스가···,’
하나도 느껴지질 않는다.
‘어, 없어? 진짜 없다고?’
어디 간 걸까?
예상치 못한 죽음에 몸이 놀라서 그런가 보다.
잠시 쉬다 보면 괜찮아지겠지.
‘···.’
하지만 오산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또 흘러도 사라진 포스의 힘이 돌아오질 않는다.
‘이런···.’
포스가 사라지니 무기력하다.
의식만 해도 무럭무럭 솟아오르던 포스였다.
혼죠의 자신감의 원천, 죽기 직전 동화율 167%, 반영률 30%, 현실에서 포스 수치가 2,000이 넘는 그였다.
근데 흔적조차 없이 사라졌다니.
그 공허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아니야. 아닐 거야!’
혼죠는 아픈 몸을 이끌고 집무실 금고로 다가갔다.
지문인식으로 된 금고 잠금장치를 열어.
‘자원 재생 물약을 마시면···,’
금고 안에 보관된 몇 개의 진(眞) 아이템 소모품.
혼죠는 그중에서 자원 재생 물약을 꺼내 들이켰다.
꿀꺽꿀꺽.
한 병 다 비웠다.
이제 곧 포스가 돌아올 터
‘···.’
그러나 한참이 지나도 포스는커녕 오히려 점점 심해지는 가슴의 통증.
“허억!”
이유가 뭐지?
그뿐만이 아니다.
어렵게 구한 진(眞) 스킬 구슬로 익혔던 기술들.
지금은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대체 뭐 때문에···,’
혹시 케이라는 놈과 관계가 있을까?
놈에게 죽어 동화율과 반영률이 바닥까지 떨어졌나?
혼죠는 고개를 돌려 벽에 걸린 거울을 쳐다봤다.
“하아···,”
거울에 비친 모습.
나이에 맞지 않게 젊고 생기 넘쳤던 자신은 어디 가고 추레한 행색의 중늙은이만 남아있었다.
“케이, 이놈!!!”
다 그놈 때문이다.
용서할 수 없다.
이제 전면전.
게임 안이든 밖이든 놈을 찾아서 반드시 죽인다.
순간!
똑똑똑.
집무실 문을 노크하는 소리.
“들어오지 마···,”
미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문을 열고 들어오는 시마모토 부관.
제기랄! 이 모습을 들키면 안 되는데.
“무, 무슨 일이야?”
“오늘 랜덤 상자 현황에 대해 보고드리러 왔습니다. 진(眞) 하급 마정석 1개, 그리고 자원 재생 물약 1병 나왔습니다.”
“알았어. 그만 나가봐.”
그런데 용무를 끝내고도 시마모토는 멀뚱멀뚱하게 서 있었다.
“왜? 다른 용건이라도 있나?”
“아, 아닙니다. 얼굴이 좋지 않아 보여서, 어디 편찮은 데라도···,”
“···밤을 꼬박 새워서 그래. 이만 나가봐.”
“네, 알겠습니다. 충성!”
문을 닫고 나가는 시마모토.
불안한 마음의 혼죠, 큰일이다.
그가 자위대를 장악할 수 있었던 힘.
어디서 나왔을까?
간단하다.
혼죠가 자위대 각성 플레이어 중에서 제일 강했기 때문이다. 오로지 자신의 무력으로 일본 정부와 관료, 언론 방송 등을 휘어잡아 왔다.
동화율이 떨어져도, 반영률이 하락해도, 포스는 남아있어야 하는데.
혼죠는 저도 모르게 손톱을 잘근잘근 씹었다.
하루아침에 무기력한 존재가 되고 말았다.
아니 그보다 더 나빠졌다.
각성한 이후로 포스는 혼죠를 지탱하게 해준 힘이었으며, 자신감의 원천이었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이었다.
“이래선 아, 안돼···, 허억!”
통증이 더 심해진다.
원인이 뭔지 알아보려면 일단 게임에 접속해봐야 한다.
하지만 사망 페널티로 3일 동안 접속할 수 없으니.
그날부터 혼죠는 모든 대외활동을 중지한 채 칩거에 들어갔다.
문을 꼭꼭 걸어 잠금 채, 누구도 들어오지 못하게, 심지어 의료진들도.
시름시름.
급격하게 노화가 찾아온 혼죠, 가슴 통증은 줄어들 기미가 안 보이고.
그리고 3일 후.
혼죠는 게임 캡슐로 다가갔다.
제대로 걸을 수조차 없이 몸이 쇠약해졌지만 안간힘을 써가며 뚜껑을 열고 캡슐 안에 누웠다.
‘제발···,’
아무 일 없기를.
접속.
‘···어?’
근데 이게 무슨 일이지?
자신의 아바타 [진격의 야마토]는 온데간데없고 그저 텅 빈 대기실만이.
[어서 오세요. 고객님! 듀플렉스 스페이스의 세상으로 오신 걸 환영합니다.]
[가입을 위해 고객님의 개인 정보를 확인합니다.]
“···뭐?”
이건 아바타를 만들지 않고 처음 접속했을 때 나오는 메시지 아닌가.
[확인되었습니다.]
[혼죠 쇼헤이 고객님, 듀플렉스 스페이스 최초 접속을 축하드립니다.]
[접속축하금으로 D코인 50개를 지급합니다.]
“최초?”
사라졌다. 아바타가 사라져버렸다.
2년 전 최초 게임이 서비스될 때부터 공을 들여 키워왔던 [진격의 야마토]가 없다.
[아바타 생성을 시작합니다.]
[아바타의 성별을 정해주십시오.]
“왜? 왜!!!”
혼죠는 깨달았다.
왜 현실에서 포스가 사라졌는지.
원인은 사라져버린 아바타.
“케이, 케이 이 개새끼!!! 주, 죽인다. 바, 반드시 죽여버린다!”
아득한 절망감.
닥쳐오는 분노.
항의할 데도 없다.
본사에 항의하면 들어주기나 할까?
듀플렉스 스페이스 게임 본사는 불친절하기로 유명하다. 아니 애초에 운영자가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
힘을 잃었다는 것이 알려지면?
그동안 충성을 맹세했던 놈들이 단번에 적으로 변해 자신을 물어뜯을 터.
혼죠의 판단은 빨랐다.
하지만 빠르다고 해서 다 옳지는 않다.
아바타를 생성하고, 전직 튜토리얼까지 한달음에 끝낸 후, 로그아웃해서 캡슐 밖으로 나와 금고를 열어 주사기를 꺼내는 혼죠,
정제 마정석 가루와 필로폰이 섞인 각성 유도제.
서슴없이 팔뚝에 꽂아 넣었다.
‘다시 각성하면 돼. 한번 갔던 길이잖아. 동화율은 금방 돌파할 거고.’
그리고 캡슐에 누워 접속.
잠시 후.
캡슐에 누운 혼죠의 몸이 푸드득, 푸드득 경련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혼죠 쇼헤이 플레이어님의 바이탈에 이상이 생겼습니다.]
[지금 즉시 게임이 강제 종료됩니다.]
“크윽! 컥, 커어···.”
게임 접속용 캡슐의 긴급 구난 서비스가 작동했다.
응급 구조대가 도착했고 혼죠의 부하들도 집무실로 들이닥쳤지만,
“대장님!!!”
캡슐 안에서 발견된 혼죠의 싸늘한 시체.
원인은 급성심근경색이었다.
※ ※ ※
한국 APS 본부.
침식지 보스 레이드 준비는 그리 간단치가 않다.
공략 예정 침식지에 대한 정보도 수집해야 하고, 그에 맞는 전략도 세워야 하고, 소모품 구입에, 예행 연습까지.
최기병은 오늘도 야근.
그렇지 않아도 정신이 없는데 해외 각국 정부에서 문의가 쇄도하고 있었다.
내용은 하나.
마키나 공화국에서 생산하는 파워 스틱 밤을 구매하고 싶으니 케이와 다리를 놓아 달라고.
미국 용병 플레이어들에 의해 널리 소문이 퍼졌다.
침식지 잡몹들은 폭탄 한 방으로 전멸시킬 수 있다느니, 보스에게도 충분히 통한다더니···.
효과야 두말할 필요 없지만 개당 100만 코인이라는 비싼 가격이라 개인이 그걸 산다는 건 꿈도 꾸지 못한다.
그래서 문의가 들어오는 곳은 거의 정부에서 운영하는 공격대.
그 문제 때문에 찬웅도 APS에 있었다.
집에 가봐야 할 일도 없고.
“중국에서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100개를 구매하고 싶다던데···,”
“안 됩니다. 거절하세요.”
단호한 찬웅.
사실 100개면 1억 코인, 데우스칩과 3%의 중개수수료를 받기로 약속했다.
그저 소개장을 써 주는 대가, 앉아서 3백만 코인을 버는 셈이지만 이상하게도 중국엔 마음이 가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찬웅의 눈치를 보며 입을 여는 최기병.
“···외교 통상부에서 연락이 들어왔습니다만.”
“중국이 협박이라도 해왔답니까? 또 대국, 소국 운운하면서.”
“뭐, 비슷합니다.”
그럴 줄 알았다.
제 버릇 개 주나?
“전에 진(眞) 치유 물약 입찰 당시 중국 플레이어 습격을 여전히 부인하고 있죠?”
“네, 아무것도 모른다고 오리발만 내밀고 있습니다.”
“그럼 파워 스틱 밤 소개장을 쓸 이유가 있나요?”
“알겠습니다. 케이님 입장 확실하게 전달하겠습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씹는다고, 폭탄이 없으면 인력으로 갈아 넣겠지. 전 세계에서 용병 플레이어가 제일 많은 국가는 아직 중국이니까.
순간!
문을 박차고 들어오는 이필동.
“큰일 났습니다.”
“아니, 이 밤에 무슨···, 빌런이라도 나타났어요?”
“그, 그게 아니라.”
이필동이 조용히 목소리를 줄여가며 말을 이었다.
“일본 후쿠시마에서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조금 전에 미국에서 국정원으로 넘어온 정보가 있는데.”
“후쿠시마라면···, 자위대 특수초인각성대 본부가 있는 곳 아닙니까?”
“맞습니다. 몇 시간 전 부대장 혼죠 쇼헤이 소장이 급성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고.”
“네? 각성 플레이어가···, 심장마비? 그런 말도 안 되는,”
깜짝 놀라는 최기병.
혼죠는 일본 각성자들 중 동화율과 반영률이 가장 높다고 알려진 인물, 그런데 뜬금없이 심장마비?
하지만 찬웅의 표정엔 변화가 없었다.
‘플레이어 킬 때문인가?’
아마도 영향을 미치긴 했을 터.
플레이어 킬의 설명.
[선택한 플레이어 아바타를 게임 데이터에서 삭제하고 실질적인 피해를 줍니다. 동화율과 반영률에 따라 효과가 증대합니다.]
‘도끼로 아바타 가슴부위만 집중해서 찍었으니까.’
플레이어 킬이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 유추가 된다.
실질적인 피해.
아바타 삭제뿐만 아니라 플레이어의 현실 육체에도 타격을 준다는 의미.
“현재 자위대 상황은요?”
“그것까진 아직 잘, 아무튼 국정원도 일본에 있는 정보원들을 총동원해서 사태 파악에 나서고 있습니다.”
혼죠는 일본의 실질적 지배자나 다름없었다.
일본 내 각성 플레이어들을 자위대로 끌어와서 막강한 권력을 누리던 그.
“어떻게 될진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하나 있습니다.”
“뭐죠?”
“혼죠가 죽었으니 내부에서 권력투쟁이 시작될 겁니다. 자위대를 장악하는 사람이 곧 일본의 지배자가 될 테니까요.”
“···한국엔 피해가 없을까요?”
“없을 겁니다. 또 없도록 해야죠. 미국에서도 주시하고 있고.”
일본은 바로 옆 나라.
그곳에서 사건이 터지면 한국도 문제가 생긴다.
“이거 아귀다툼이 벌어지겠군요.”
“어후, 이거 기뻐해야 하나?”
“그러면서 눈은 웃고 있네요. 이과장님.”
“···들켰나?”
일본 내각도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칼날 같은 카리스마로 자신들을 억압했던 절대 권력자가 사라졌으니까.
찬웅은 일단 두고 보기로 했다.
제압할 필요가 생기면 개입하면 그만.
일본은 헤엄쳐 갈 수 있을 만큼 가까우니까.
※ ※ ※
점점 늘어나는 용병 플레이어.
당연히 각성 플레이어들도 그랬고.
갑자기 포스라는 힘이 주어졌을 때 초기 각성 플레이어들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당혹스러운 마음에 병원에 찾아가기도 하고, SNS에 올려 물어보기도 하고, 또는 힘에 취해 사고를 치기도 하고.
그래서 정부에서 그들을 적발해내는 건 크게 어렵지 않았다.
성향을 봐서 통제 가능하다 싶으면 영입하고, 빌런으로 간주되면 제거하고.
하지만 각성 플레이어의 존재가 이제 비밀이 아니게 된 지금, 사람들은 영리해졌다.
무조건 숨겼다.
SNS에 올리지도 않고, 전처럼 떠벌리고 다니지 않았다.
그러나 그 조용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억눌렸던 것이 한 번에 터지듯 세계 곳곳에서 터지는 각성 플레이어의 범죄.
영국에선 축구 경기 도중에 일어난 훌리건들의 난동으로 10명이 사망했다.
사건 조사 과정에서 드러난 실체, 사망한 10명이 모두 같은 팀의 훌리건이었다는 것, 사인은 경추 골절, 또한 살해 용의자는 단 한 명, 각성 플레이어였다.
런던 경찰들이 총출동했지만 범인은 아직 잡히지 않고 있고.
멕시코에선 마약 밀매 카르텔 조직원들이 거의 몰살 당한 사건이 일어났다.
목격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마체테를 든 남자가 카르텔 조직의 자택에 침입해 조직원들의 목을 보이는 대로 참수했단다.
총격전이 일어났고 마체테를 든 남자는 총알을 수십 발이나 맞은 상태에서도 무려 54명의 인명을 살상했다고 한다.
그러다 그 남자도 자택에서 사망했고.
그뿐만이 아니다.
캐나다, 이탈리아, 스페인, 터키, 마카오, 남아프리카 공화국, 오스트레일리아···, 속속 일어나는 빌런 관련 범죄.
한국이라고 피해갈 리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