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플레이어 킬. >
플레이어 킬, PK.
지극히 평범한 게임 플레이 중 하나.
게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해봤고, 또 당해보기도 했을 만큼 특별하지도 않은 행위.
PK를 함으로써 얻어지는 결과는?
피해자는 죽어서 아이템을 떨구거나 레벨이 하락하는 정도, 가해자는 악 성향으로 변해 마을로 진입할 수 없다든지, 거래에 불이익을 받는다든지, 딱 거기까지다.
하지만 암살자 루인의 앙증맞은 머리 따개에 옵션으로 붙은 ‘플레이어 킬’은 통상적으로 알고 있는 그런 PK와는 의미 자체가 다르다.
‘각성 플레이어를 게임 안에서 처리할 수 있다는 말이잖아.’
하긴, 원래 그런 게임이니까.
단지 자신에게 이런 힘이 주어졌다는 게 이상할 뿐이지.
축복으로 인한 효과가 하나 더 있다.
진(眞) 마공학자 데우스칩의 넉넉한 허리띠의 오류 수정.
[진(眞) 마공학자 데우스칩의 넉넉한 허리띠.]
[등급 : 전설]
[장비 종류 : 허리띠]
[귀속 여부 : 습득 시 귀속]
[장비 기술 : 에고 시스템 / 접속 / 인벤토리 확장]
현실에선 무리 없이 작동했지만 게임 안에선 오류로 표시됐던 에고 시스템과 접속.
‘오류가 수정됐다면?’
찬웅은 허리띠에 포스를 불어넣었다.
그리고.
‘지금 와서 오류를 수정한 이유는?’
[답변할 수 없는 질문입니다.]
접속이 됐다.
또한 에고 시스템의 음성.
보조 운영자.
세계수.
이제 세계수를 직접 대면하지 않아도 게임 속 언제 어디서나 소통할 수 있게 된 것, 물론 현실에서도.
성황의 축복으로 얻어낸 플레이어 킬과 보조 운영자와의 상시적 소통.
대체 무슨 의도일까?
‘···가만!’
시험해보자.
밖에서 얻어낼 수 있던 정보를 여기서도 얻어낼 수 있는지.
‘아바타 애널써커가 접속하고 있는 장소는?’
[답변해드리겠습니다. 플로아 왕국 릴로시 부근 침식지에서 몬스터를 사냥 중입니다. 게임 속 아바타의 위치 좌표는···.]
똑같다.
현실과 게임 속에서의 허리띠 기능이 다를 바 없다.
메인 서버 접속, 정보 취득, 그리고 해킹.
‘활동 범위의 제한이 없어졌구나.’
듀플렉스 스페이스 가상현실은 하나로 연결된 오픈 월드, 대기실에 설치된 게이트를 통해 어디든 마음대로 갈 수 있다.
만약 미국이나 유럽, 혹은 중국에 빌런 플레이어가 있다고 치자.
놈의 신상 정보를 알면 아바타의 이름은 물론이고 어디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다 알 수 있다.
‘허리띠의 내비게이션 기능을 이용해 플레이어 킬로 아바타를 삭제하면···.’
현실 빌런을 게임 안에서 무력화시킬 수 있다.
굳이 놈이 있는 국가로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지 않아도 된다.
물론 단점은 있다.
빌런의 신분이 확실하게 특정되어야 한다. 누군지 알아야지 잡든지 하지.
그리고 게임에 접속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 접속하지 않으면 어쩔 수 없이 현실에서 직접 잡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사도들을 상대하는데 극히 제한적이다.
진종설의 예로 알 수 있듯, 사도의 정보는 메인 서버에서도 알아내기 어렵다.
이런저런 단점들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축복받을 만하네.’
오길 잘했다.
다른 사람들은 뭐가 달라졌으려나.
그런데,
“응?”
성황 알스테어는 여전히 엎드려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설마 죽었나?”
쿡쿡, 또 한 번 찔러본다.
“···안 죽었습니다.”
“어, 그럼 왜 시체처럼.”
“끄응,”
힘겹게 일어나는 알스테어.
“만족하십니까?”
“네, 꽤 만족하고 있습니다.”
“다행이군요. 고생한 보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능력을?”
“전 그대가 축복으로 얻은 능력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축복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에요. 원래 가지고 있던 당신의 능력을 확정 짓고 구체화 시켰을 뿐.”
원래 가지고 있던 능력이라, 이런 거 가져본 적 없는데.
“그리고 다음번엔 꼭 먼저 통보해주시고 오세요. 갑자기 들이닥치지 말고, 아! 다른 이방인들은 얼마든지 괜찮습니다.”
무리한 듯 힘겹게 말하는 성황,
살짝 미안하다.
앞으로 여기 올 일이 많을 것 같아서.
“나는 쉬어야 해서.”
“아, 네, 그럼 다음에 뵙죠. 성황 저하.”
“···될 수 있으면 나중에.”
찬웅은 별관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밖에서 그를 기다리는 사람들.
“소득이 있었습니까?”
“네, 케이님은?”
“온 보람이 있었어요.”
“다행이네요. 참! 상자는 좀 까셨는지?”
“···.”
그걸 깜빡하다니,
하지만 상관없다.
다음에 까면 되니까.
최기병은 얼굴이 잔뜩 상기된 표정.
이제 초대권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감을 잡았기 때문이다.
소수 정예.
양보다는 질.
초대권으로 각성 플레이어 숫자를 늘리는 건 의미 없다.
일반 빌런이라면 모를까, 사도들이라면?
‘사도에 대항하려면 기존 각성 플레이어들이 더 강해져야 해.’
현재 APS가 보유한 초대권은 모두 4장.
‘소속된 멤버 중 재능있는 플레이어들을 먼저···.’
사실 APS에서 실질적으로 활동하는 각성 플레이어들은 몇 안 된다.
물론 카쟌 공략 후 꽤 많은 용병 플레이어들이 각성했지만 그들 대부분은 청와대 혹은 국회, 대법원에 경호 요원으로 차출되어 나갔다.
높으신 분들 지켜야지.
어쩔 수 없다.
요인 경호, 그건 최초 APS를 결성한 목적이기도 하니까.
‘그럼 우현수, 고유섭, 봉춘섭, 마태길, 그리고 민도연씨인데···,’
한 장이 모자란다.
누굴 빼야 할지 이미 정해져 있지만.
※ ※ ※
찬웅과 딸기는 집에서 접속했지만 최기병과 이필동, 구종수는 APS 본부 캡슐을 이용했다.
로그아웃 후, 정문 바로 앞에서 초조하게 택배가 오기를 바라고 있는 그들.
“어?”
“왔다.”
“진짜 언제 나타난 거지?”
택배가 오는 방식은 매번 경험했지만 볼 때마다 신기했다.
분명 아무도 없었는데, 그 어떤 인기척 없었는데, 순식간에 나타나는 커다란 박스.
“빨리 열어봐요.”
랜덤 상자를 까서 물약이나 마정석같은 소모품이 많이 나왔다.
그러나 최기병과 이필동이 기대하는 건 따로 있었다.
[진(眞) 무법자의 대검.]
“오! 똑같네요. 아바타가 가지고 있던 그 검.”
이필동도.
[진(眞) 방랑 기사의 건틀릿]
“흐흐, 내 유일한 영웅 등급 아이템이 찐으로 나왔네.”
스킬은 로그아웃하자마자 몸으로 깨달았다.
최기병은 철갑 피부, 이필동은 폭발 찌르기.
“본부 안에 수련장 있죠?”
“한번 붙어보자는 말씀입니까?”
“왜요? 우리 최팀장님 겁나시나?”
“뭐래? 콜!”
가만히 지켜보던 구종수가.
“제가 심판 봐 드릴게요.”
“심판은 무슨,”
“그래요. 같이 한번 수련해봅시다.”
“···전 이제 갓 각성했는데,”
“연습해야 늘어요. 빨리 가요.”
“어어, 나, 난 심판만.”
한편,
찬웅은 로그아웃하지 않고 대기실에 있었다.
새로 얻은 능력.
정확하게는 머리 따개에 추가된 옵션.
한번 시험해보고 가야지.
문제는 대상을 정하는 것.
죄도 없는 무고한 사람들에게 능력을 막 쓸 수는 없는 노릇.
그럼 자신과 악연이 있는, 거의 빌런이라 여겨도 될 만큼 질이 안 좋은 대상에게.
‘중국의 [대국혼]은 각성 플레이어가 아니었지?’
대국혼은 탈락.
마침 적당한 대상이 있다.
‘일본 자위대 특수초인각성대 부대장 혼죠의 아바타는 뭐지?’
[답변해드리겠습니다. 자위대 소장 혼죠 쇼헤이의 아바타 명은 ‘진격의 야마토’입니다.]
‘아바타 [진격의 야마토]가 접속하고 있는 장소는?’
[답변해드리겠습니다. 드워프의 도시 스톤 포지에서 157번 광구 침식지로 이동 중입니다. ]
‘스톤 포지라.’
드워프들의 왕국.
거대한 산맥 뚫어 건설된 지하도시.
이곳의 침식지는 광산들이다.
광산이라고 죄다 침식된 것은 아니지만 기존 광산의 절반 이상이 침식을 당했다고 한다.
‘한번은 가봐야 하는 곳이니까 문은 달아두자.’
그리고 플레이어 킬 실험도 해보고.
[게이트 설치에 드는 비용은 16,000D코인입니다. 추가하시겠습니까?]
“추가!”
[게이트와 연결된 장소가 없습니다.]
[도시를 설정해 주세요.]
“드워프 왕국 스톤 포지.”
[한번 설정하면 한 달간 변경이 불가능합니다. 괜찮으십니까?]
“설정!”
[게이트 통로가 드워프 왕국 스톤 포지로 설정되었습니다.]
그리고 허리띠에 포스를 불어넣어,
‘혼죠가 있는 장소까지 내비게이션으로 안내 부탁해.’
※ ※ ※
스톤 포지 광구 침식지는 플레이어들이 기피하는 사냥터 중 하나.
음습한 분위기, 빛 한점 들어오지 않아 횃불이나 라이트 마법 스크롤에 의지해야 하는 동굴 형식의 침식지. 그래서 마치 던전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아바타 명 [진격의 야마토], 일본 특수초인각성대 부대장 혼죠가 가장 애용하는 곳이기도 하다.
“오늘은 3명인가?”
“네, 동화율 140 후반대 용병들입니다.”
“가족들은?”
“2명은 고아, 1명은 집에서 거의 포기한 자식이라 찾을 사람도 없고요.”
처음 각성 플레이어의 존재가 알려진 후, 세계 각국 정부에선 인위적인 방식으로 각성을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많은 연구를 해왔다.
통제 가능한 각성 플레이어.
그 자체로서 전략 무기 아닌가.
혼죠도 그중 한 명.
자신만의 비법으로 각성 플레이어를 만들어 내고 그 힘을 바탕으로 자위대를 장악, 나아가 일본 내각 정부까지 손아귀에 넣었다.
“시간이 다 됐군. 슬슬 시작해.”
“네!”
혼죠가 지시를 내리자 후위에 서 있던 3명의 용병이 침식된 동굴 박쥐를 향해 나아갔다.
오늘의 실험체들.
바깥에서 자위대 연구원들이 캡슐에서 접속 중인 3명의 플레이어에게 약물을 주입할 것이다.
마정석을 가루로 정제해, 거기에 필로폰을 섞어, 기타 화학 물질을 첨가해 만든 각성 유도제.
효과가 있을까?
의외로 있다.
없었다면 계속하지도 않았지.
10명에게 주사하면 1명은 각성하는 식.
문제는 마정석의 수급이 여의치 않다는 것.
그리고 실험체들의 조달이 어렵다는 것.
심각한 부작용이 있다.
각성하지 못하면 죽는다.
각성에 실패한 이들은 죽거나 폐인이 된다. 물론 그 폐인 된 플레이어도 비밀 유지를 위해 죽여버리지만.
혼죠 쇼헤이의 조부는 그 옛날 관동군 방역급수부 본부에서 근무했던 장교였다.
흔히 731부대라고 알려진 그곳.
혼죠는 조부가 존경스러웠다.
누구는 악마의 부대라며 비난하지만 관동군 방역급수부의 생체실험으로 얼마나 많은 의학의 진보를 이뤄냈나?
지금도 그렇다.
조부의 유산이 오롯이 혼죠에게 이어져 자위대의 비상을 위한 발판이 되어주고 있었다.
서걱! 서거걱! 푹! 퍼억!
용감하게 싸우는 각성 실험체들.
각성 유도제 주사가 주입됐나 보다.
확실히 몸놀림이 다르다.
하지만.
털썩, 털썩, 털썩,
동굴 박쥐를 잡다가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지는 실험체 아바타, 그러더니 빛으로 화해 사라진다.
강제 로그아웃 현상.
“···실패군.”
“네, 안타깝지만.”
“그래, 무려 3개의 마정석이 들어갔는데, 나가면 시체부터 소각해. 살아남은 놈이 있으면 바로 죽여버리고.”
혼죠는 소모된 마정석이 아까울 뿐이었다.
“···필로폰 양을 조금 줄여볼까요?”
“안 돼! 오히려 반대로 더 넣어.”
“그럼 실험체에게 부담이···,”
“뭐가 문제야? 각성만 하면 괜찮아질 텐데, 그리고 실험체들이야 뒈져도 상관없어.”
“하지만 실험체들도 조달하기 점점 어려워져서.”
그러자 태연한 표정으로 대안을 제시하는 혼죠.
“납치라도 해와. 쓸모없는 잉여 인간들, 집구석에 박혀 밥만 축내는 놈들이 널리고 널렸는데.”
“···나, 납치 말입니까?”
“그래, 부락민들이나 조센징, 대일본에 아무런 도움도 안 되는 종자들. 죽어도 상관없는 놈들.”
“알겠습니다.”
실험체야 문제도 아니다.
그 어떤 죄책감도 없다.
혼죠의 고민은 오직 각성 유도제에 들어가는 마정석.
‘본토에선 공급이 부족하고 중국이나 동남아에서 가지고 와야 하는데.’
다른 진(眞) 아이템에 비해 가격이 그리 비싸지 않은 것이 다행,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츠피릿!
공기를 가르는 파공음.
“음?”
콰작!
“꺽!”
소름 끼치는 소리.
혼죠는 목격했다.
옆에 서 있던 부관의 머리에 박힌 도끼 한 자루를.
‘···도끼?’
가루가 되어 사라지는 부관.
혹시 몬스터?
하지만 아니었다.
동굴 저편에 서서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아바타 하나.
“너, 넌?”
“더러운 이야기 잘 들었다. 이 개새끼야!”
정체불명의 아바타가 저벅저벅 걸어왔다.
그리고 드러나는 아바타 명.
“···케이?”
케이라니, 저놈이 어떻게 여기에.
혼죠는 슬슬 뒷걸음질 쳤다.
소문을 들어서 안다.
듣고 싶지 않아도 들려왔다.
자신과도 악연이 있었다.
용병 플레이어 최강으로 알려졌으며 케이를 죽이려면 공격대를 조직해야 한다는 소문도 있었다.
‘제기랄, 피, 피해야···,’
혼죠는 그대로 달렸다.
안전지역에까지 가서 귀환해야 한다.
그러나.
팟! 팟!
“어헉!”
어느새 앞에 나타난 케이.
“네가 사람 새끼냐?”
“···무, 무슨 소릴 하는지?”
허리띠의 내비게이션 기능을 이용해 혼죠가 있는 곳에 도착한 후, 은식막을 발현해 몰래 뒤를 쫓았다.
그런데 실험이라고?
내용을 들어보니 충격적.
“실험체라고? 그래, 나도 솔직히 실험체가 필요했거든. 똑같이 당해봐.”
“···어, 어떻게?”
“그냥 죽어!”
서슬 퍼런 도끼가 혼죠의 아바타 [진격의 야마토]의 가슴팍에 떨어져 내렸다.
콰악!
“악!”
콱! 콱! 콱! 콱···,
미친 듯 춤을 추는 쌍도끼.
플레이어 킬 발동.
프스스, 혼죠도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과연 어떻게 될까?
‘확인해봐야 하는데···,’
그때였다.
[아바타 진격의 야마토가 게임 데이터베이스에서 삭제되었습니다.]
‘됐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