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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아바타의 재능으로 동화율 돌파-92화 (92/204)

< APS 신입. >

최기병과 이필동은 찬웅보다 조금 늦게 도착했다.

결국 남은 건 현장 정리지만 현 상황에선 이게 더 중요하다.

죽은 진종설의 시신을 살펴보는 이필동.

‘이번엔 시체를 남겼어. ···이유가 있겠지만.’

공식적인 사망 처리를 해야 한다.

진종설의 정체야 뭐든 간에 현직 차장 검사, 따라서 확실한 후속 처리도 필요하고.

가재는 게 편이라고, 제 조직 하나는 끔찍하게 챙기는 검찰 아닌가.

“흉기는 잘 수거했지?”

“네.”

“바로 국과수로 보내. 진(眞) 아이템이니까 검사 끝나면 반드시 다시 챙겨오고.”

이필동이 현장 전면에 나서서 진두지휘했다.

최기병은 아직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듯 어벙벙했고.

“신광식 변호사와 부인은?”

“일단 병원으로 옮겼습니다. 하지만 다친 곳은 없어 보입니다. 그저 깊게 잠들었을 뿐,”

“그래? 잘됐네. 나중에 깨어나면 진술 확보하고 녹취해.”

인명 피해가 없어서 다행.

죽은 놈은 진종설, 이 개자식밖에 없으니까.

“그리고 진종설 주변 탐문 조사해봐. 이 새끼 빌런이었잖아. 지금까지 조용하게 살아왔을 리가 없어. 국정원에 이야기해둘 테니까 협조받으면 될 거야.”

“네, 알겠습니다.”

이필동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우두커니 서 있는 최기병에게 다가갔다.

‘어휴···.’

보면 볼수록 안쓰러운 마음.

하긴, 입버릇처럼 비밀 유지, 비밀 유지 떠들고 다니던 사람이 바로 본인인데, 하마터면 케이의 정체까지 누설할 뻔했으니.

“최팀장님.”

“···네, 네?”

“기운 내세요. 최팀장님 잘못 아닙니다. 제가 거기 있었다고 해도 똑같이 걸려들었을 겁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정보는 말하지 않았잖아요.”

“···.”

그러나 대꾸 없이 침묵하는 최기병.

헤어나오려면 조금 더 시간을 줘야 할 것 같고.

‘참! 찬웅씨는 어디 계시나···,’

찬웅은 집주변 한적한 곳에서 딸기와 함께 있었다.

딸기도 힘든 상황, 물리적 고통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괜찮을 겁니다. 부모님들은 아무 이상 없어요.”

“···정말 뭐라고 감사를 드려야 할지.”

“제가 아니라 딸기씨가 끝까지 버텨주셔서 무사한 겁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

아무튼 정신 공격 시전자가 사망했으니 여은의 부모에게 스며들었던 침식의 기운도 깨끗하게 사라졌다.

“근데 딸기씨는 아무렇지도 않았나요? 진종설, 그놈은 상대방에게 친근감을 유도하는 스킬을 갖추고 있던 모양이던데.”

“처음엔 살짝 넘어갈 뻔했지만 이상하게 꺼림칙한 기분이, 으음, 게임 속에서 침식지 몬스터와 만난 느낌?”

“···어, 침식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어요?”

“네, 그런 것 같아요.”

하긴 딸기라면 그럴 만 하다.

“이제 저 어쩌죠?”

“글쎄요.”

물은 엎질러졌다.

신여은이 각성 플레이어라는 사실, 이젠 비밀이 아니게 됐다.

차라리 이참에···,

“APS 가입하는 게 어때요?”

“네?”

“그래서 공식적으로 보호도 받고, 가족들 경호도 해줄 겁니다.”

“···.”

이번 진종설과의 싸움에서도 보여줬듯이 그녀는 현실에서도 충분한 재능이 있다.

어쩌면 자신을 제외하고 가장 강한 플레이어일지도 모른다.

“그, 그래도 될까요?”

“당연하죠. 어디까지나 여은씨 선택입니다.”

“그럼···,”

표정을 보니 결심했나 보다.

그전에 이미 APS에 가입하고 싶은 마음을 비치기도 했었고,

이게 맞다.

그녀의 가족을 위해서도,

그렇다면,

“한가지 알려드릴 것이 더 있어요.”

“네. 들을게요.”

“제 이름은 강찬웅입니다.”

“···아!”

깜짝 놀라는 신여은.

갑자기?

케이의 본명이···, 강찬웅?

“그리고 APS에 소속되어 있고요.”

“무, 무슨···,”

“만약 여은씨가 APS에 들어오면 절 처음 보는 척해야 할 거예요.”

그녀는 당황했다.

들어서는 안 될 내용을 들어버린 느낌.

케이의 정체를 알고 싶지 않았는데, 알면 안 되는데.

“단 3명을 제외하고는 제가 케이인지 모릅니다. 아! 이제 한 명 더 늘어났네요. 여은씨까지 4명. 최기병 팀장, 이필동, 구종수님인데, 그중에서 제 대역은···.”

찬웅은 조목조목 설명했다.

앞으로 한 팀에서 활동할 텐데 주의 사항 정도는 알려줘야지.

“그, 그럼 APS에 출근하면 케이님 실제 모습 볼 수 있는 건가요?”

“그런 셈이죠.”

그녀의 표정이 묘하다.

기뻐하는 것 같기도 하고, 불안해하는 것 같기도 하고.

“제가 APS 가입 기념 선물도 드릴게요.”

“서, 선물?”

“이 방패는 랜덤 상자에서 뽑은 거죠?”

“맞아요.”

“방패만 있으면 짝이 안 맞으니까, 이건 제가 그 전에 뽑아 놓은 건데···.”

인벤토리에서 검 한 자루를 꺼내는 찬웅.

“이거, 쓸만할 겁니다.”

“···진(眞) 아이템? 이 귀한걸.”

“전 필요 없어요. 도끼가 있으니까. 자! 받아요.”

신여은은 엉겁결에 찬웅이 건넨 은빛 검을 받아들었다.

[진(眞) 드워프제 미스릴 합금 롱소드]

[등급 : 영웅]

[무기 종류 : 검]

[귀속 여부 : 거래 가능]

[무기 기술 : 샤프니스]

검과 방패.

이로써 더 강해졌겠지.

사도들과도 비등하게 맞설 수 있을 테고.

‘스킬도 하나 챙겨줘야 하는데···,’

뭐가 좋을까?

※ ※ ※

사상 초유의 사태.

대검찰청 차장 검사 피살.

검찰은 매우 당황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진종설은 현행범이니까, 아침에 평화로운 가정을 습격해서 흉기로 난동을 부린 건 틀림없는 사실이니까.

사건 조사를 위해 대검찰청 부장검사가 직접 나와 최기병과 만났다.

“하나만 확인해주십시오. 진종설 차장 검사님이 각성 플레이어가 확실한 겁니까?”

“네, 그것도 빌런 각성자입니다. 국과수에 연락해보셨죠? 흉기에서 진검사의 지문이 나왔고, 또한 그 흉기도 진(眞) 아이템이었습니다.”

“하아.”

망연자실한 표정의 부장검사.

사람 좋기로 소문난 진종설이었다.

그 특유의 친화력으로 그를 따르는 사람도 많았고, 따라서 차기, 차차기 검찰총장으로 거의 낙점 받았던 상황.

“아마 뒤를 캐보면 밝혀지지 않은 범죄들이 속속 드러날 겁니다.”

“설마···,”

“당장 진검사의 아내만 봐도, 8개월 전부터 실종상태였다죠? 진검사는 집 나갔다고 말했지만 처가에도 가지 않았고,”

“···.”

최기병은 진검사의 아내가 어떻게 됐을지 짐작이 갔다.

케이가 추정하기론 그가 빌런이 된 건 약 8개월 전, 흡혈귀의 힘을 받은 사도, 놈의 아내는 첫 희생자였을 터.

그러나 부장검사가 최기병을 만나러 온 다른 목적이 있었다.

“일단 진검사님이 저지른 행위는 인정하겠습니다. 범죄가 맞죠. 하지만 그 대처 방법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뜬금없는 소리.

최기병이 눈을 끔벅이며 물었다.

“···무슨 소릴?”

“이건 사적 제재나 다름없습니다. 아무리 흉악한 범죄자라도 수사와 징벌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져야···.”

맞다.

검찰이었지.

그동안 APS가 검찰을 배제하고 빌런 범죄자들을 잡아 족치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

법을 도구로 권력을 제멋대로 휘두르는 조직, 조직에 해가 된다고 판단하면 사돈의 팔촌까지 탈탈 털어 없는 죄도 만들어내지만, 정작 제 식구들은 철저하게 보호하면서 기소조차 하지 않은 내로남불의 전형.

“이 사건도 그렇습니다. 혐의점이 포착되면 먼저 검찰에 알렸어야죠. 그리고 우리의 수사 지휘를 받아 움직이는 것이 제대로 된 순서 아닙니까. ”

“···수사 지휘?”

“법적인 절차를 말하는 겁니다. 물론 APS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업무 수행이 불법적인 행위로 이어지면 빌런이나 뭐가 다를까요? 따라서 검찰의 통제를 받아야 했습니다.”

“하하···.”

최기병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APS의 특수성은 인정하겠지만 검찰 지휘하에서 움직여라.

의도야 뻔하다.

너희보다는 검찰이 위에 있다.

뭐 이런 얘기.

“우리 APS가 민간단체입니까?”

“아뇨, 공적 기관은 맞습니다. 그러나 수사권이 없는 건 확실하죠. 그리고 적어도 신여은씨와 그 수수께끼의 케이는 APS 소속도 아니고.”

하아, 이 새끼 봐라?

‘수사권?’

부장검사가 독단적으로 나올 리는 없을 테고, 아마 총장의 지시를 받고 왔을 터.

그래, 언젠간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

이참에 못을 박고 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고.

“그래요. 그럼 검찰이 지휘하시죠. 이참에 공개적으로 못을 박는 것도 좋겠군요. 언론에다가도 알리고.”

“잘 생각하셨습니다. 그럼 법무부에 정식적으로 통보를,”

“그런데 그거 아십니까?”

“뭘···.”

대답 대신 최기병은 품에서 담배 한 가치를 꺼내 물었다.

불을 붙이고, 연기를 깊숙이 빨아들여,

“후···,”

연기가 자신의 얼굴로 오자 인상을 오만상 찌푸리는 부장검사.

“박달환이 누군지 기억나세요?”

“···알고 있습니다. 그 연쇄살인마.”

“처음 놈이 우리의 감시를 뿌리치고 도망갔을 때 APS측 요원과 국정원 요원들이 무려 7명이나 죽었습니다. 처참하게. 그 뒤로 민가에 숨어들어 놈에게 죽은 민간인은 몇 명일까요?”

“···.”

잠시 침묵이 흐른다.

“또 부산에서 빌런 각성 플레이어를 생포할 때는 군 특수부대와 우리 측 각성 플레이어들도 함께 투입됐었죠. 그 와중에 크레모아와 총기를 가지고 빌런을 상대했는데 어떻게 됐는지 아세요?”

“그, 그거야 수사 보고서를 보지 못해서.”

“크레모아 쇠구슬을 온몸에 맞고도 살아서 움직이더랍니다. 결국 대물 저격총으로 간신히 사살하긴 했지만···,”

꿀꺽, 침을 삼키는 부장검사.

“다른 예를 들어볼까요? 중국과 일본 각성 플레이어들이 한국으로 잠입해서 어떤 짓거리를 자행했는지 혹시 알고 계십니까?”

“아, 아니 오해 마세요. 우리 뜻은 그게 아니고.”

“미국 월스트리드 학살 사건은 어떻습니까? 글로리 오브 쓰론이란 사교 집단 이야긴 들어보셨나요? 아프리카에선 각성 플레이어 한 명이 대통령 관저를 습격해 경호원 및 대통령 일가족 모조리 죽인 사실도 있어요.”

최기병은 점점 거칠어졌다.

“검찰이 수사권을 가지고 우릴 지휘하시겠다? 씨발, 우리가 협조 안 하면 어쩌려고.”

“오,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법적 절차? 빌런 각성 플레이어 한 명 잡아 수갑 채워서 검찰 조사실로 넣어줘? 정말 니들이 수사해볼래? 대검찰청 쑥대밭 만들어줄까? 운 좋으면 몇 명은 살아남겠네.”

콰앙!

튼튼한 원목 탁자에 냅다 주먹을 꽂아버리는 최기병,

우지끈!

탁자가 두 동강이 나버렸다.

부장검사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

“헉! 자, 잠시 진정을···,”

“막상 빌런들 마주치면 오줌이나 지릴 거면서···, 이 멍청한 새끼야! 그저 암기 하나 잘해서 검사된 새끼들이, 뭐? 수사지휘권?”

최기병은 맺힌 걸 이 기회에 다 풀려는 듯했다.

“가서 네 상관에게 똑똑히 전해! 다시 한번 검찰 수사 지휘 운운하면 내가 빌런이 될지도 모른다고.”

“아아, 어, 으음, 저···,”

“됐고, 이만 꺼져!”

그러자 부장검사는 허둥지둥 일어나 방안을 빠져나갔다.

아직은 평화로워서 그런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얼마나 많은 빌런 관련 범죄들이 일어나는지 몰라서 그런다.

한국이 그마나 평화로운 건 케이 때문이란 걸 알 리가 있나?

※ ※ ※

갑자기 일어난 사태로 APS 각성 플레이어 회의가 취소되고, 이틀 후, 월요일에 다시 열린 회의, 안건은 다음 침식지 공략과 대신전 초대권 활용.

각성 플레이어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찬웅도 참석했고.

의자에 앉은 최기병이 일어나서.

“회의를 진행하기에 앞서 소개해 드릴 분이 있습니다.”

“누군데요?”

“높으신 분이라도 오시나?”

“혹시 신입?”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는 최기병.

“네, 맞습니다. APS 신입 요원입니다. 어렵게 모셨어요.”

어렵게 모셨다라,

민도연이 눈빛을 반짝 빛내며 물었다.

“으음, 신입이란 사람이 케이님인가요?”

“설마?”

“아니지. 한국 사람이잖아. 가능성 있지.”

“케이는 아닙니다.”

“에이, 기대했는데.”

최기병이 밖을 향해 소리쳤다.

“들어오시죠.”

엉거주춤, 안색이 빨개진 채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여자 한 명.

좌중이 조용하다.

‘또 여자네?’

‘민도연씨까지 두 명이구나.’

‘다른 나라엔 여성 각성 플레이어들이 몇 없다던데.’

‘우리나라 여자들이 기가 센 거야, 뭐야?’

다들 속으로 비슷한 생각.

“안녕하세요. 신여은이라고 합니다.”

“어서 오세요.”

“환영합니다.”

겉으로는 환영한다고 했지만 우현수와 고유섭의 반응은 심드렁하다.

“흐음, 뭐, 아바타 이름이 어떻게 되시죠?”

그러자 부끄러운 듯 기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하는 신여은.

“으음, 사, 상큼한 딸기라고 해요.”

“···어?”

“네?”

“뭐, 뭐라고요?”

잘못 들었나?

“상큼한 딸기요.”

“···.”

“···.”

“···.”

갑자기 침묵이 내려앉은 회의실.

모두 눈이 동그래진 채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더니.

“상큼한 딸기?”

“지, 진짜입니까?”

“···딸기씨? 그 유명한 딸기씨?”

“세상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벌떡 일어나.

“여, 영광입니다. 봉춘섭이라고 합니다.”

“고유섭입니다.”

“그 유명한 플레이어를 직접 보게 될 줄이야.”

“각성 플레이어셨구나. 어쩐지,”

찬웅도 너스레를 떨면서.

“처음 뵙겠습니다. 강찬웅입니다.”

“···네, 반가워요.”

아직 이런 자리가 익숙하지 않은 탓인가?

신여은의 얼굴이 진짜 딸기처럼 빨개졌다.

여전히 계속되는 열광적인 반응.

하긴, [상큼한 딸기]라면 적어도 듀플렉스 스페이스 가상 현실 게임 안에서 거의 연예인이나 마찬가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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