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트리아 침식지 공략(1) >
인피니티 공격대와 만나기로 한 지 3시간 전.
그러니까 유령마가 제타 왕국의 수도 위트리아 상공에 나타나기 전에.
그전에 접속한 찬웅은 마키나 공화국 뉴팩토리로 가서 데우스칩을 만났다.
“응? 뭐하러 왔나? 바쁘신 분이···,”
“그냥 얼굴 보러 왔죠. 기간트 연구는 잘 되어갑니까?”
“용건이 그거 아닌 거 같은데, 또 뭘 뜯어가려고.”
“에이, 누굴 도둑으로 아시나, ···근데 진짜 뭐 없나요? 침식지 공략하러 가는데?”
“또?”
“네, 제타 왕국의 위트리아 침식지, 자잘한 놈들 한방에 싹 쓸어버릴 만한 거.”
데수스칩은 곰곰이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침식지 정화라면 어쩔 수 없지. 이건 어떤가?”
연구실 책상 위에서 짤막한 방망이처럼 생긴 막대기를 꺼내는 데우스 칩.
“이건?”
“연구소 신제품 [파워 스틱 밤], 마정석이 조밀하게 압축되어있지.”
밤(Bomb)이라면,
“···혹시 폭발물?”
“맞아.”
파워 스틱 밤.
생긴 것이 옛날 막대형 수류탄과 똑 닮았다.
“마그누스 기간트 엔진 코어를 연구하다 발상이 떠올라서 만들었네. 흡입, 압축, 폭발 공정을 응용해봤어.”
“아!”
찬웅이 올드팩토리에서 가져온 엑사급 코어 덕분.
현실과 마찬가지로 게임 속 세상도 변화하고 있었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사용 방법은?”
“양쪽 끝을 잡고 돌리면 폭탄이 준비되었다는 거야. 5초 후에 터져. 아무 데나 던지게. 폭발 반경이 꽤 되니 힘껏 던져야 할 거야.”
방식도 비슷하고.
“몇 개나 있어요?”
“아직 양산체제를 갖추지 않아서 견본으로 50개밖에 못 만들었어. 밑에 이야기해둘 테니 받아 가.”
효용성이 있는지 잘 몰라도 이런 걸 공짜로 받을 수 있나?
“코인이라도 드릴게요. 50개면 얼마죠?”
“오천.”
“생각보다 싸네요? 5000코인이면.”
“아니, 오천만.”
“···.”
하나에 100만 코인?
뭐 이래 비싸?
“개당 재료값만 70만 코인이야. 미스릴도 들어갔고, 게다가 마정석 수백 개를 정제해서 압축하고, 인건비에···,”
“으음, 10개만 주세요.”
“클클, 내가 자네에게 코인을 받을 것 같나? 다 가져가.”
“그, 그렇죠?”
다행이다.
“대신 손님 좀 끌어와.”
“손님?”
“요즘 이래저래 코인 들어가는 데가 많아. 그래서 자네가 좀 팔아줘.”
이 비싼 걸 누가 사나?
위력에 따라 다르겠지만.
“알았어요. 열심히 홍보해보겠습니다.”
“하지만 아무나에겐 팔지 않을 걸세.”
“네?”
“오로지 침식지 공략 용도, 또한 자네, 케이의 소개장을 들고 오는 이방인에게만,”
사는 사람 별로 없을 것 같은데.
그러나 저리 말하니 위력엔 자신이 있는 것 같고.
다음은 테라퓨타.
마탑주 브랜달과 만나서.
“또 침식지 정화라고요? 와! 대단하시다.”
“나도 필요해서 하는 거야.”
“그렇지 않아도 드릴 게 있었는데 잘됐네요.”
브랜달이 꺼낸 20장의 돌돌 말린 종이 뭉치.
[쉴드 스크롤(7서클)]
[등급 : 영웅]
[종류 : 소모품]
[귀속 여부 : 거래 가능]
[효과 : 7서클 쉴드 구현.]
“7서클 스크롤이네?”
“네, 7서클 스킬 구슬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스크롤은 제작할 수 있었어요.”
정상화된 마탑의 힘이 물품 제작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마법사들 수련도 마찬가지.
현재 서클의 개수를 늘린 마법사들도 많고.
“참! 넌 몇 서클이야?”
“5서클, 한참 멀었어요.”
“···.”
브랜달은 천재.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마지막으로 봤을 때가 3써클이었는데 그새 써클을 두 개나 올려?
하긴 그러니까 마법사들도 어린이 브랜달을 탑주로 인정하고 있지.
“혹시 블리자드나 파이어 레인 같은 마법 스크롤은?”
“그, 그건 아직···, 대규모 광역마법 주문은 스크롤에 담기 어려워요.”
“그래? 그럼 할 수 없지.”
“노력해볼게요!”
“괜찮아.”
그러자 은근슬쩍 말하는 브랜달.
“이거 한 장에 얼마야?”
“15만 코인 정도?”
“···.”
이것도 비싸다.
“내가 코인으로 살게.”
“에이, 형과 나 사이에 돈은 무슨, 아무튼 7서클 쉴드 마법 스크롤을 우리 마탑 주력 상품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
“마탑에 틀어박혀 연구하는 마법사들이 부쩍 늘어나서, 코인 먹는 귀신들도 아니고, 정말 미치겠어요.”
불쌍한 놈.
마탑주 자리가 만만한 게 아니란다.
어쨌든 7서클 쉴드 마법 스크롤을 20장이나 확보.
현재 가장 많이 쓰이는 쉴드 스크롤은 3서클, 그건 매우 싸다.
비싼 5서클 스크롤은 용병 플레이어들도 잘 안 쓰지만 그래도 치명타를 한번 막아주는 성능을 지녀 누구나 상비용으로 한 장쯤 가지고 다닌다.
이건 7서클.
서클 하나의 차이는 엄청나게 크다.
엄청 비싸지만 쉽사리 깨지지 않은 쉴드라는 의미.
‘비싸서 누가 사기는 할까?’
그래도 든든하다.
공격용 아이템 마정석 폭탄, 광역기가 마땅치 않은 찬웅에게 필수적인 물건.
방어용 소모품 7서클 쉴드 스크롤, 쉴드는 언제나 옳다. 든든한 방어가 갖춰지면 한 대라도 더 때릴 수 있으니까.
‘이젠 침식지 공략하러 가자.’
제타 왕국 위트리아.
이미 딸기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케이님!!!”
“반가워요. 직장 생활은 잘하고 계시는지···.”
“네!”
아직 약속 시간이 30분 정도 남았다.
“우리 드라이브나 하고 올래요?”
“···드라이브?”
찬웅은 탈것 부키를 소환했다.
“와! 나는 탈것, 새로 장만하신 건가요?”
“네, 좀 모자란 놈이긴 해도.”
찬웅이 가까이 다가가자 타기 좋게 스스로 무릎을 꿇는 부키.
딸기가 깜짝 놀랐다.
“얘가 모자란다고요? 이렇게나 똑똑한데?”
똑똑한 건 맞다.
치명적인 단점이 있어서 그렇지.
찬웅이 앞에 타고 딸기는 뒤에서 살며시 찬웅, 아니 정확히는 아바타 케이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푹신하네.’
게임 속에선 모든 촉감을 느낄 수 있지만 성적인 기분은 일어나지 않았다.
즉 아바타에게 성감대가 없다는 말.
하지만 정신적인 교감은 충분히 나눌 수 있다.
이 얼마나 건전한 게임인가?
물론 매우 마음에 들지 않지만.
파앗!
부키가 땅을 박차고 하늘을 날았다.
“꺄아악!”
“멋지죠?”
“엄청!”
저 밑에 보이는 위트리아.
저 넓은 평야에서 절벽 너머로 쫓겨난 도시, 침식지와 도시를 연결하는 통로는 오직 저 길다란 다리 하나.
유사시 다리만 끊으면 도시가 안전해지겠지만 그로 인해 강요받은 건 고립이었다.
다리를 건너서 조금만 가면 바로 침식지.
“푸르르르···,”
부키는 이번에도 날아가는 방향을 선회했다.
침식지로 들어가는 건 죽기보다 싫은 모양.
“그래, 돌아가자.”
다시 도시로.
성벽이 보인다.
그 위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 국왕으로 보이는 NPC와···,
‘애널써커?’
마침 잘 됐다.
유령마 부키는 성벽 위에 내려앉았다.
※ ※ ※
케이의 등장.
제타 왕국 로빈 국왕은 완전하게 무장해제 되었다.
“애널써커, 공격 부대에 참가하는 이방인 명단부터 주시오. 그들을 제외하곤 단 한 사람도 다리를 건너지 못하게 하겠소. 헌데 그전에 넘어간 이들은?”
“그건 제가 알아서 하죠.”
애널써커는 지금도 솔직히 믿을 수 없었다.
로빈 국왕의 변화, 원인은 단 하나, 바로 저 케이 때문이었다.
“카쟌의 영웅이여, 그대는 필요한 것이 없소? 침식지만 아니라면 기사단도 지원할 용의가 있지만···.”
“괜찮습니다. 필요한 건 다 준비를 해와서.”
“허허허, 역시! 뭐든 말만 하시오. 전적으로 협조하리다.”
연신 웃음을 터뜨리는 로빈 국왕.
누가 보면 벌써 침식지가 정화된 줄 알겠다.
‘소문은 들었지만···.’
애널써커라고 왜 케이에 대해 듣지 못했을까.
‘부풀려졌다고 생각했는데.’
흔히 그렇지 않나.
소문은 거의 과장되고 사실이 아닌 게 대부분, 사람들의 말이 입에서 입으로 옮겨지면서 작은 눈뭉치가 거대한 눈덩이로 변한다.
그렇다면 실력은 어떨까?
게다가 케이가 데리고 온 상큼한 딸기라는 플레이어는?
“처음 뵙겠습니다. 애널써커입니다. 소문이 과장됐다고 생각했는데 그 반대로군요.”
“···안녕하세요. 케이라고 합니다. 저도 많이 들었습니다. 으음, 워낙 아바타 명이 특이한 분이라.”
쓴웃음을 짓는 애널써커.
“장난삼아 막 지은 아바타 이름이라서, 항상 후회하고 있어요.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조금 더 평범한 이름으로 지었을 텐데.”
이래서 캐릭터 이름 지을 때는 두 번 세 번 고민해봐야 한다.
혼자만 알고 있으면 모를까, 유명해진다면?
단순하게 [케이]라고 지은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혹시 정보는 알고 오셨습니까?”
“네, 미리 읽어보고 왔습니다.”
“그럼 출발할까요?”
“리더가 한 분 더 계셨던 것 같은데.”
“아! [로드오브게임] 말이죠? 그 친구는 이번 공격대에서 빠졌습니다. 동화율이 많이 하락해서 이번에도 사망하면 부담이 크다고 해서,”
이해한다.
아마 그도 각성 플레이어일 터.
반면 애널써커는,
‘용감하네.’
리스크를 무서워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공적도 1위를 찍었지.
케이, 상큼한 딸기, 그리고 미국 인피니티 공격대는 위트리아에서 침식지로 가는 다리를 넘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다리를 통제하는 제타 왕국의 기사들과 병사들.
침식지까진 도보 이동.
그리 멀지 않다.
걸어가는 동안 진형을 갖추면서.
딸기가 찬웅에게 물었다.
“케이님, 여기 침식지 몬스터는 단일 개체죠?”
“네, 메뚜기들만 나옵니다. 바깥쪽은 비교적 약한 놈들이고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점점 강해지고 개체 수도 많아지죠.”
침식지가 옛 곡창지대여서 그런지 진짜 메뚜기만 나온다.
보스는 ‘굶주린 멸망의 메뚜기’
사실 곤충형 몬스터는 징그럽긴 해도 그리 강하지 않다.
방어력이 매우 낮고 공격력도 평범해서 웬만큼 동화율이 올라온 플레이어라면 쉽게 처리할 수 있는 수준.
그래서 애널써커도 여길 선택한 것이고.
문제는 메뚜기의 습성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몬스터의 특징들, 이놈들도 떼로 몰려다닌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날개가 침식 때문인지 퇴화하여 비행은 하지 못한다는 것, 또한 크기도 독수리만 해서 그리 크지 않다.
타닥!
침식지에 들어서자 폴짝폴짝 뛰어다니는 메뚜기들이 점점 늘어났다.
그러나 삼삼오오 파티를 지어 여유롭게 메뚜기들을 상대하는 미국 인피니티 공격대.
수월하게 처리했다.
보이는 대로 썰려 나가는 메뚜기.
찬웅도 인정했다.
“잘하긴 잘하네.”
“우린 할 일이 별로 없을 것 같아요.”
진짜 그랬다.
찬웅과 딸기는 무기도 꺼내지 않고 걸어만 갔다.
미국 공격대가 알아서 다 했다.
‘왜 실패했지?’
한국 APS 플레이어들보다 훨씬 수준이 높은데.
동화율도 비교도 안 될 테고.
공략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하지만 갑자기 손을 들어 공격대의 전진을 멈추는 애널써커.
“무슨 일 있습니까?”
“이 구역부터는 위험합니다. 메뚜기들 색깔 보세요.”
그러고 보니 그러네.
지금까지 거쳐온 메뚜기들이 흙색이었다면 여기서부터 보이는 메뚜기는 불길한 짙은 주황색.
“지금은 몇 마리 안 보이죠? 전진하다 보면 수가 계속 늘어나요. 어느새 포위되어 있고.”
현재 인피니티 공격대의 숫자는 300, 포위되면 위험하다.
“게다가 이 주황색 메뚜기들은 의식이 서로 연결된 군집체 같습니다. 보스 몬스터가 이들을 조종하는 거 같고요. 즉 저들은 한 몸이나 마찬가집니다.”
숫자가 많으면 좋겠지만 아무나 공격대에 넣을 순 없으니까.
애널써커의 지시에 공격대들이 마법 스크롤을 꺼냈다.
“파이어볼 마법 스크롤입니다. 메뚜기가 불에 약해서.”
꽤 준비를 많이 해왔다.
한번 전멸해서 그런가.
찌직!
파앗!
콰쾅!
거대한 불의 구체가 메뚜기들을 태웠다.
“전진!”
스크롤을 찢으며 앞으로 나아가는 공격대.
하지만 애널써커의 말대로였다.
주황 메뚜기가 점점 늘어난다.
그것도 떼로 나타났다.
타탁! 타타탁!
저기서 나타나는 메뚜기 떼, 저쪽도, 이쪽도.
이건 마치···,
‘저글링?’
폴짝폴짝.
가벼운 뜀박질 같지만 숫자가 너무 많아서 땅이 은은하게 진동할 정도,
특히 저 멀리서 다가오는 메뚜기 대부대가 위험하다.
타다다다닥! 탁! 탁! 탁! 탁! 탁···.
홍수가 난 것처럼 밀려오는 주황색의 물결.
지표면이 접히면서 다가오는 것 같다.
“세, 세상에! 전보다 더 많아졌어.”
"거의 두배? 아니, 세배."
“제기랄! 저건 안돼!”
“우, 우린 모조리 갈려 나갈 거야.”
“어떡하죠? 후퇴하는 게···,”
애널써커는 고민했다.
이 병력으론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는다.
후퇴하려면 지금.
‘케이는?’
그도 별수 없나 보다.
[상큼한 딸기]와 함께 멀뚱멀뚱 서 있기만 했다.
‘애초에 역부족이었나?’
하긴 아무리 강하다 해도 그저 플레이어일 뿐인데.
여기서 한 번 더 죽으면 동화율 복구가 힘들어진다.
‘나도 로드오브게임처럼 포기할 걸 그랬군.’
깨끗하게 포기하자.
침식지 공략은 무슨.
바로 그때!
“뒤로 물러서세요.”
찬웅이 나섰다.
“어떻게 하시려고, 설마 혼자서? 위험합니다. 후퇴를···,”
“괜찮아요. 해볼 것이 있어서.”
기회만 노리고 있었다.
데우스 칩에게서 받아온 파워 스틱 밤의 쇼케이스를.
‘제대로 위력이 나와줘야 할 텐데.’
그래야 비싸도 잘 팔리지.
잘 팔리면 코인을 더 벌 수 있을 테고, 그럼 이와 같은 발명품이 더 생길 터.
찬웅은 파워 스틱 밤의 양 끝을 잡고 돌렸다.
끄릭!
그러자,
찌리리릿!
찬란하게 빛나는 막대기.
“그건 뭐···.”
“기다려봐요!”
찬웅은 다가오는 메뚜기 거대 군집체를 향해 스틱 밤을 힘차게 던졌다.
휘리리리리릭!
툭!
정확하게 군집의 한 중앙에 떨어지는 폭탄.
순간!
쩌어어어어엉!!!
끔찍한 폭발이 일어났다.
꽈광! 꽈과과과쾅! 꽝! 쾅! 콰콰쾅!
폭발이 얼마나 강렬한지 밀려오는 열기의 폭풍에 아바타의 피부가 화상을 입을 정도, 포스의 힘으로 멀리 던져서 망정이지.
후두두둑! 후둑! 흐드득!
메뚜기들이 흩어진다.
가루로 변해 사라진다.
셀 수도 없이 까마득하게 덮쳐오던 메뚜기들이 온데간데없이 소멸했다.
‘어···,’
찬웅도 자신이 한 거지만 솔직히 놀랐다.
‘데우스칩, 이 양반, 대체 뭘 만든 거야?’
애널써커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인피니티 공격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
‘맙소사.’
‘미, 미친!’
폭발만큼이나 강렬한 인상.
파워 스틱 밤 PPL 대성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