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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아바타의 재능으로 동화율 돌파-86화 (86/204)

< 합류 >

찬웅은 빌라 내부 산책로에서 가볍게 운동 중.

요즘 신문을 봐도 케이의 이름이 나오고, TV를 틀어도 케이 이름이 나온다.

심지어 얼굴까지.

TV 뉴스 자료화면에 나온 케이의 현실 추정 외모.

아바타를 바탕으로 만들었단다.

보통 사람들은 자신의 실제 얼굴로 아바타를 생성하니까.

당연히 하나도 안 닮았다.

애초에 아바타 만들 때 랜덤이었는데.

그리고 초미의 관심사.

<과연 케이는 미국으로 갈 것인가?>

가긴 어딜가?

보통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오해를 한다.

커뮤니티 사이트를 들어가 봐도 죄다 이런 반응, 미국으로 가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는 둥, 한국에 붙잡아 둬야 한다는 둥···.

케이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말이다.

게임 안에서 미국 공격대와 레이드 함께하는 것뿐, 물론 레이드 보상이 어느 나라에 가느냐가 중대한 문제이긴 하지만.

그러나 아직 남아있는 침식지가 무려 254개.

조급할 필요가 없다.

미국과 영원히 함께하는 것도 아니고.

이번 건 어디까지나 경고.

처음부터 코인을 투자하던지, 아니면 아이템 지원이라도 했어야지.

다 끝나고 나서 숟가락만 얹는 건 얼마나 염치없는 행동인가.

‘빨리 집에 들어가 접속이나 하자.’

마이클 피트와 만나기로 했다.

아무래도 레이드가 매우 힘들었던 모양.

전멸을 당해 막심한 피해를 입었다고 하고.

‘아무튼 이틀 후에 접속 페널티가 풀리니까···,’

그때였다.

“어머? 여기서 만나네요?”

누구지?

산책로에서 만난 레깅스 차림의 여자.

키도 크고, 몸매도···, 선글라스를 써서 알아보기 힘들어서,

“아!”

이제 알겠다.

“민도연씨?”

“맞아요. 강찬웅씨였죠? 여기 사시나 봐요.”

“네, 얼마 전에 이사 왔습니다.”

“아하, 그럼 우리 같은 직장에다 이웃인가?”

“그런 셈이죠.”

집값이 비싼 동네라 주민들이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는데, 민도연까지 여기 살다니.

“촬영 때문에 그동안 집에 거의 못 들어왔는데, 우연히 산책로에서 마주치네.”

“오늘은 일이 없으신가 봐요.”

“네, 그래서 게임이나 하려고요. 참! 찬웅씨도 뉴스 봤죠?”

“무슨?”

“케이님이요. 미국 공격대와 함께하신다는 내용.”

“봐, 봤습니다만.”

화가 단단히 나 보이는 민도연.

“미꾸라지들 때문에 이게 웬 난리인지,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도 모르고, 현실에서 만나면 오줌이나 찔끔 쌀 새끼들이.”

입이 무지하게 험하다.

“···민도연씨는 현실의 케이를 잘 아시는지.”

“같이 작전도 했지만 전에 개인적으로 한번 본 적 있어요. 으흠, 조금 무섭긴 해도 얼마나 멋진 분인데.”

멋지다고?

그랬었나?

“아무튼 케이님이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하아, 만나보지 못하니 위로를 해드릴 수도 없고,”

“···.”

무슨 이유에선지 모르지만 촉촉하게 변하는 민도연의 눈빛.

조금 뻘쭘하다.

민망하기까지.

슬슬 인사하고 헤어질 타이밍을 보던 참에···.

띠리리링!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가 온 모양이네요. 받아보세요. 전 이만···,”

“네. APS에서 뵐게요.”

민도연이 떠나는 걸 확인하고 찬웅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

순간!

저 멀리서 민도연이 다시 몸을 틀면서 크게 소리쳤다.

“다음에 우리 밥 한 끼 해요. 술 한잔하면 더 좋고. 당분간 촬영이 없어서 저 시간 많아요.”

“···네.”

한국인의 밥 먹자는 인사는 으레 하는 인사치레이긴 하지만, 대답은 해주고.

찬웅은 다시 전화기를 얼굴에 댔다.

“여보세요? 누구신지.”

- ···저 딸기요.

딸기구나.

이제 보니 이 전화기는 최기병이 준 대포폰.

이 번호를 아는 사람은 최기병, 이필동, 그리고 상큼한 딸기 신여은이니.

- 아까 여자분 목소리가 들리던데,

“아! 같은 빌라에 사는 이웃입니다.”

- 그, 그러시구나.

전화기를 통해 들었나 보다.

앞으로 조심해서 받아야지.

그런데 어째 딸기의 목소리가 잠겨있는 것 같다.

“왜 전화를?”

평소엔 메시지만 보내던 딸기.

- ···저, 정말 미국으로 가실 거예요?

“제가요?”

- 뉴스에서 막 떠들어대던데.

딸기도 뉴스를 본 모양.

“레이드를 같이 하겠다는 거지, 미국으로 가진 않습니다. 그것도 이번 한 번만요.”

- 잘됐다. 다행이네요.

딸기도 이런 오해는 하는 판국에.

“혹시 이틀 후에 시간 있어요?”

- 모레요? 어, 없어도 만들어야죠.

“그럼 저하고 보스 레이드나 하러 갑시다.”

- ···우리 둘만?

“어제 미국 공격대가 침식지 보스 레이드 했는데 실패했답니다. 그래서 3일 후에 다시 도전한다던데, 어때요? 같이 갈래요?”

- 네!

약속도 잡아놨고.

미국도 로그드라실 이벤트 공적도 10위에 빛나는 상큼한 딸기가 합류한다고 하면 반대는 하지 않을 터.

‘이제 접속해야지.’

한편,

상큼한 딸기, 신여은은 전화를 끊고 난 뒤, 손톱을 잘근 씹었다.

마음이 초조했다.

전화기 너머에서 들린 젊은 여자의 목소리.

‘누구지?’

술 한잔하자고···, 촬영도 없다는 건 무슨 뜻?

불안하다.

케이와 자신은 게임 동료 말고는 아무런 사이도 아니지만, 직접 만난 것도 몇 번 안 되지만 , 그냥 기분이 그렇다.

‘···정체를 감추고 있지만 케이님도 다른 신분으로 일상생활 하는 사람이잖아.’

맞다.

그의 말대로 같은 동네에 사는 이웃이겠지.

딸기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 ※ ※

황량한 코호트 요새.

플레이어와 NPC가 많지 않은 곳이라 여기서 만나기로 했다.

아바타 명 [로켓보이], 마이클 피트.

“···상황이 심각합니다. 부디 도와주시길.”

“레이드 하나 실패한 걸 가지고, 무슨 심각씩이나.”

“저, 그, 그게···.”

설명을 들어보니 그럴 만도 하다.

한국 카쟌 공략을 모델로 레이드 준비를 위해 투자를 받았는데, 실패로 인해 처지가 곤란하게 됐다고.

“왜 투자를? 미국 정부가 돈이 없나요?”

“로비가 들어왔습니다. 필요 없었지만 거의 강제적인 투자였죠. 그래서 헤지펀드에게서···.”

문제는 그 헤지펀드의 구성원들이 미국에서도 방귀 꽤나 낀다는 권력자들.

미국도 사람 사는 곳인가 보다.

한국처럼 진(眞) 아이템에 대한 욕망은 다를 바 없었다.

한 끗 차이의 안타까운 실패라든지, 졌잘싸 실패라든지, 그랬다면 다음 기회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을 텐데, 아예 전멸해버렸으니 무조건 압박이 들어왔겠지.

“게다가 NPC에게도 후원을 받은 터라,”

“NPC라면?”

“인피니티 공격대가 도전한 침식지가 대륙 남부의 제타 왕국에 있습니다. 그곳의 침식지가 500년 전만 해도 대륙의 이름난 곡창지대였답니다. 그래서 제타 왕국의 국왕 로빈 라제타에게 장비와 소모품을 지원받았지만···.”

침식지 정화도 NPC들의 숙원.

그런데 처참하게 실패.

보는 눈이 곱지 않다고 한다.

“그리고 이번 전멸로 용병 플레이어들의 동화율과 반영률이 대폭 하락했습니다. 다, 당연히 현실에서의 각성 플레이어들의 능력도···.”

“···.”

이래저래 실패의 여파가 상당한 듯.

어쩌겠나?

“알겠습니다. 약속은 약속이니까 참가할게요.”

“가, 감사합니다.”

“저 말고 한 명 더 갈 거예요.”

“누구···.”

“플레이어 상큼한 딸기라고.”

“아! 들은 적 있습니다. 로그드라실 공적도 10위, 우리야 너무 좋죠.”

하지만 계약은 변경해야 한다.

처음부터 합류시켰으면 모를까.

“단! 조건이 있습니다.”

“무슨?”

“이번 공략 성공하면 초대권 3장 받아 갈게요.”

“으음···,”

난감한 표정의 마이클 피트.

하지만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도 아니다.

“약속드리겠습니다.”

“좋아요. 떨어진 동화율, 반영률 복구해봅시다. 나중에 제타 왕국 침식지 보스 몬스터 정보나 알려주세요.”

“네! 정리해서 바로 보내드릴게요.”

“그럼 이틀 후에 제타 왕국 성도에서 보죠.”

시간이 있으니까 준비는 해둬야지.

게임 안에선 물론 현실에서의 컨디션도 매우 중요하다.

이틀은 금방 지나갔다.

※ ※ ※

최기병은 또 한 번 긴 한숨을 토해냈다.

“하아,”

결국 미국은 실패했고 케이는 합류했다.

“휴···,”

멍청하기는!

미국 최강 공격대라고 잘도 떠들어대더니만.

“에휴,”

그러자 이필동 과장이 발끈하면서 소리쳤다.

“아! 쫌! 누가 보면 나라 망한 줄 알겠네.”

“차라리 나라가 망했으면 좋겠어요.”

“···.”

최기병의 머릿속은 온갖 잡다한 상상이 떠오르고 있었다.

침식지 보스 레이드를 하면서 미국 플레이어들과 교분을 쌓는 케이, 결과는 물론 침식지 보스 공략 성공!

그러자 백악관의 대대적인 구애, 집도 사주고, 자동차도 사주고, 비행기도 한 대 뽑아주고···.

결국 현실에서도 미국으로 떠나는 케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사실 이필동도 불안하긴 마찬가지.

그의 걱정은 전혀 다른 종류였지만.

“최팀장님, 만약에 말입니다.”

“만약에 뭐요?”

“강찬···, 아니 케이가 만약 한국을 떠날 결심을 하게 되면 미국에서도 정체를 숨겨야 하겠죠? 이곳에서처럼 몇몇 사람만 아는 식으로.”

“뭐, 사람들이 많이 알면 곤란하니까, 그렇게 할 수도.”

“그럼 기존에 그의 정체를 아는 우리들은 어떻게 될까요?”

어떻게 되긴 뭐가 어떻게 돼?

“조용히 살면 되죠.”

“에이, 과연 그럴까요? 우리와의 인연도 끊어졌겠다, 정체가 폭로될지도 모르는데?”

“그럼 우릴 죽이기라도 한단 말입니까?”

“···그게 비밀을 유지하기에 가장 깔끔하니까.”

질색하는 최기병.

이필동이 평소에도 헛소리 잘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케이, 함부로 사람 죽이고 다니는 사람이 아닙니다. 알잖아요. 그 양반 절대 일반인 건드리지 않는 거.”

“네네, 잘 알죠. 일반인은 안 죽이죠. 각성 플레이어만 죽이지.”

“그걸 아는 사람이···, 어?”

순간 최기병은 말을 멈췄다.

동시에 등 뒤로 식은땀이 주르르 흐른다.

맞다.

케이는 각성 플레이어만 죽인다.

그리고 자신과 이필동은 각성했다.

빌런은 아니지만 못 죽일 것도 없지.

“···케이를 미국으로 보내면 절대 안 되겠네요.”

“그렇죠.”

“좋은 방법 없습니까?”

“흐음, 이건 어떻습니까?”

이필동의 잔머리는 최기병도 인정하는바.

“가정을 꾸리게 하는 거죠. 케이가 아닌 강찬웅으로서, 결혼하고, 애도 낳고.”

“결혼? 중매라도 서잔 말씀?”

“마침 우리 APS 각성 플레이어 중에 딱 어울리는 여자분도 있잖아요.”

“···응?”

괜찮은데?

“좀 더 자세하게 말해봐요.”

“그러니까 제 계획은 민도연씨와···,”

최기병과 이필동은 머리를 맞대고 쑥덕이기 시작했다.

결혼해도 한국을 못 떠나는 건 아니지만 최소한 발목은 잡을 수 있을 것이다.

※ ※ ※

듀플렉스 대륙 남부 제타 왕국.

한때 대륙 전체를 먹여 살릴 만큼 엄청난 곡창지대가 있던 곳이었다.

대륙의 거의 모든 국가가 그러하듯, 침식 때문에 제타 왕국도 원래 있던 근거지를 잃고 구석으로 내몰렸다.

그래서 지금은 남부 산맥의 길게 이어진 절벽 너머에 새로운 수도를 세워 침식지가 정화되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옛 수도의 이름은 위트리아, 지금 수도의 이름도 위트리아.

높은 성벽에서 잃어버린 땅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제타 왕국 국왕 로빈 라제타, 마음이 편치 않다.

침식지를 정화할 수 있다고 큰소리 떵떵 쳤던 이방인들이 어이없이 실패했기 때문에,

그도 카쟌 침식지가 정화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래서 잔뜩 기대했는데.

로빈 국왕이 이방인 [애널써커]에게 불퉁거리며 말했다.

“또 뭘 바라는 거요? 해달라는 거 다 해줬는데.”

“정해진 인원을 제외하고는 다른 이방인들을 절벽 너머로 넘어가지 못하게 해주십사하고···.”

“다른 이방인들을? 숫자가 많으면 더 좋지 않소.”

“그게, 사정이 있습니다. 침식지가 정화되면 어중이떠중이들이 다 몰려들기 때문에.”

위트리아에서 침식지로 가는 길은 단 하나.

절벽에 세워져 있기 때문에 다리를 지나야 한다.

애널써커의 부탁은 그 다리를 막아달라는 이야기.

속사정이 있었다.

첫 시도에 성공했다면 모를까, 실패했기 때문에 공략 예정 침식지가 탄로난 상황.

지금도 많은 플레이어들이 몰려오는 중, 혹시라도 성공하면 옆에서 슬쩍 끼어들어 상자도 까고, 각성의 행운도 기대해보고.

하지만 각성 플레이어가 이런 식으로 늘어나는 건 위험하다.

침식지 공략을 다른 곳으로 옮겨볼 수도 있지만 일단 결정난 사항이라 바꾸기도 어렵고, 또한 한번 경험해봤으니 두 번째는 더 낫지 않을까.

“그대들이 직접 하지 그러오. 침식지가 정화된다는 보장도 없는데.”

“우리가 직접 길목을 막으면 항의가 들어와서, 그럼 곤란해지기 때문에.”

“쯧쯧, 침식지 정화도 실패하고, 길목도 못 막고, 내가 아직도 그대들을 신뢰해야 하나?”

까칠해진 로빈 국왕.

애널써커도 변명 거리가 없다.

‘첫 번째에 성공했어야 하는데.’

그래도 달래보자.

“3일 전과는 다를 겁니다. 우리도 인원을 보충했습니다.”

“무슨 소린지, 그때 그 병력을 똑같이 끌고 와서는.”

“아닙니다. 혹시 아실지는 모르겠지만 케이라는 이방인이 있는데.”

“뭐, 이방인들이 다 거기서 거기··· 자, 잠깐!”

순간!

눈이 휘둥그레진 로빈 국왕.

“다시 말해보시오. 누가 온다고?”

“케이입니다.”

“허어, 만약 거짓말을 하는 거라면···.”

“아! 저기 오네요. 유령마를 타고 날아오는 저 이방인, 저자가 케이입니다.”

로빈 국왕은 성벽 난간으로 황급하게 달려가 하늘에서 날아오는 날개 달린 말을 주목했다.

“오오오! 정말 케이님이구나!”

그러더니,

“여봐라!”

“네, 전하!”

“당장 환영식을 준비하라. 케이님이 오셨구나.”

“아! 정말입니까?”

로빈국왕은 애널써커 따윈 안중에도 없었다.

감격한 표정으로 오직 케이만을 바라볼 뿐.

반면 애널써커는 입맛이 쓰다.

‘···케이가 저렇게 유명했나?’

알 리가 없었다.

전설적인 암살자 루인의 제자, 레지키쓰론을 패퇴시킨 자, 마키나 공화국의 명예 연구원, 테라퓨타의 막후 지배자, 카쟌의 영웅.

듀플렉스 스페이스 메인 NPC들에게 이방인 [케이]의 명성이 널리 알려졌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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