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린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
찬웅은 로그아웃하고 최기병에게 전화를 걸었다.
“당분간 출근할 일 없죠?”
- 네, 각성 플레이어들 재택근무로 전환했습니다. 걱정마시고 자유롭게 시간 보내세요.
최기병은 찬웅의 스케줄을 감안해 APS 각성 플레이어의 업무 계획을 짠다.
현실 대면을 최소화하려는 의도.
“참! 헤스티아 성국 대신전은 언제 갈까요?”
초대권 문제는 최기병에게 일임했다.
그거 가지고 신경 쓸 시간도 없고.
- 그렇지 않아도 그 문제 때문에 말씀드릴 게 있는데.
“뭔데요?”
- 초대권 10장 중 스폰서인 화정 그룹에 2장, 케이님과 딸기님께 1장씩, 4장은 확정이 되었는데, 나머지 6장을 누구에게 배분할지 고민 중입니다.
그게 무슨 고민이라고,
“대신전 성황의 축복을 받으면 일반 용병 플레이어들이 각성할 확률이 높다면서요. 그러면 재능있는 APS 소속 용병 플레이어들을 데리고 가면 안 되나? 이참에 팀장님도 각성하시죠.”
- 으음, 전 필요가 없어서.
“왜요? 안 하는 것보다 낫잖아요. APS를 책임지시는 분이고.”
- 그 이유가 아니라 ···이, 이미 각성해서.
“···네?”
이게 무슨 소리, 벌써 각성했다니.
- 카쟌 침식지 보스 죽이고 나서 저도 각성했습니다. 그리고 찬웅씨 아바타 대역인 이필동 과장도.
“아!”
그때 각성했구나.
어떻게 하지?
축하해야 하나?
- 전 솔직히 각성 플레이어들을 더 늘리는 것도 조심스럽습니다. 사람이란 게 힘을 얻으면 어찌 될지 또 모르니까요. 각성 대상은 신중하게 선정해야 합니다.
하긴, 찬웅도 동의한다.
각성하게 되면 인간의 기준을 초월하는 힘을 가지게 될 터, 그로 인해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모른다.
- 그래서 몇 장 정도는 적당한 가격에 팔려고요. 그렇지 않아도 미국 측에서 문의가 와서, 비율은 7대3 정도로 하려는데.
“뭘요? 초대권 팔아서 코인을 나누자는 말이신가?”
- 네, 찬웅님이 7, APS가 3. 우리도 인적 자원이 부족해서, 예산이 더 필요합니다.
“흐음,”
카쟌 공략을 기점으로 게임의 메타가 변했다.
적극적인 침식지 공략.
그를 위해선 용병 플레이어의 추가 확보가 절실하고, 뿐인가? 캡슐도 구매해야지.
‘나도 코인은 이미 충분히 많은데···.’
그래서.
“네, 파세요, 단 이익의 7대3은 좀 그렇고, 5대5로 합시다. 공략할 때 APS도 논 건 아니잖아요.”
- 아, 아니 괜찮습···.
“그렇게 합시다. 단! 좋은 가격에 팔아보세요.”
찬웅은 최기병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전화를 끊었다.
이때까지도 별생각 없었다.
초대권에 대한 사람들의 욕망과 관심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 ※ ※
진(眞) 아이템의 출현.
많은 것이 바뀌었다.
게임 속에서나 나오던 것이 왜 현실에 나타나는가 하는 궁금증은 여전했지만 어쨌든 사실이니까.
특히나 권력자들.
불치병을 호전시켜주는 치유 물약이나 신체 특정 능력을 영구히 향상해주는 영약 종류에 대한 욕망과 관심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더구나 이제 비밀도 아니게 된 각성, 그 신비한 힘에 대한 갈망.
누군들 원하지 않을까?
문제는 확률이 너무 희박하다는 것.
어떤 사람은 진(眞) 아이템 하나를 뽑기 위해 전 재산을 털어 넣었는데 구경도 못 했고, 어떤 사람들은 심심해서 하나만 깠는데 그게 진(眞) 아이템이었다는 얘기도 심심찮게 돌았다.
그런데 확정 뽑기권이나 다름없는 대신전 초대권이 나왔다.
축복을 받으면 진(眞) 아이템 나올 확률이 대폭 상승한다.
게다가 각성의 기회도.
한국 APS에서 초대권을 분양할 거란 소문이 퍼지자 국내, 국외 할 것 없이 돈 많고 힘 있는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현 그룹 표창주 회장이 노구를 이끌고 직접 최기병을 찾아왔다.
“얼마를 원하든 지불할 용의가 있소. 3장, 아니 2장이라도, 화정 그룹 정규광이 냈던 금액의 2배! 어떻소?”
“···죄송하지만 그건 어렵습니다.”
“어, 어렵다니?”
“처음 화정 그룹 정규광 회장과 스폰 계약을 맺었을 때 국내에 한정해 초대권 독점을 요구해와서, 국내 기업엔 분양하지 않을 계획입니다.”
“허허!”
당황한 표정의 표창주 회장.
“1장이라도 안 되겠나?”
“제가 처음 제안서를 보냈을 때 수락하셨어야죠.”
“그, 그땐 몰랐으니까, 성공할 줄 알았나?”
“죄송하지만 다음 기회를 노려보시죠.”
“···.”
표창주 회장은 후회스러워 미칠 지경.
정규광은 ‘케이’라는 플레이어가 레이드에 참가한다는 것만으로 투자를 결정했다고 한다.
‘케이라, 그렇게 대단한 인물이었나?’
직접 만나보고 싶지만 정체도 모르고.
가장 부러운 것이 정규광이 먹은 영약, 그 나이에도 마치 생생한 젊은 놈처럼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걸 보니, 부아가 치민다.
초대권을 받으면 자신이 직접 헤스티아 성국 대신전에 가서 축복을 받을 심산이었다.
더구나 화정이 삼룡 자동차 인수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진(眞) 아이템에서 얻어낸 신기술을 자동차에 적용하면 한국에서 차지하는 대현 자동차의 독점적 지위가 흔들릴 터.
‘이제 초대권 2장으로 더 많은 진(眞) 아이템을 뽑을 텐데···.’
하는 수 없다.
다음 레이드를 노려야지.
최기병을 찾아온 인물은 또 있었다.
캐리 로빈슨 주한 미국 대사.
“글로리 오브 쓰론건에 대해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덕택에 최악의 참사를 막을 수 있었습니다.”
“천만에요. 그리고 감사는 케이가 받아야죠,”
“꼭 전해주세요. 미국은 은혜를 잊지 않겠다고.”
이제 그가 찾아온 본론.
“초대권 때문에 오셨죠?”
“네, 맞습니다. 몇 장이나 주실 수 있습니까?”
“몇 장 필요하신데요?”
“최대한 많이! 코인은 준비되어 있습니다.”
“흐음, 미국이야 오래된 우리 우방이니까 최대 2장 정도는 드릴 용의가 있지만.”
“1장만 더 써보세요. 장당 3천만 코인, 아니 3장에 1억 코인 드리겠습니다.”
최기병은 기분이 으쓱하지만 한편으론 난감했다.
호가호위(狐假虎威), 케이가 얻어낸 성과로 배짱을 부리는 게 부끄럽기도 하고.
“죄송하지만 내부에서 세운 원칙이라, 그나마 미국이라서 2장이 배정되어 있습니다만.”
“···어쩔 수 없군요. 그거라도 감사하게 받아야죠.”
아직 이야기할 게 남았는지 조용히 최기병에게 상체를 숙이며 말하는 캐리 미국 대사.
“혹시 중국이나 러시아에 초대권을 분양할 계획이신지···.”
“아뇨, 절대 그럴 계획 없습니다.”
“탁월한 결정입니다.”
처음부터 논외였다.
게임 안에서나 밖에서 한국과 케이에게 비열한 짓거리를 해왔던 중국, 그리고 각성 플레이어를 동원해 타국을 침략 중인 러시아.
그러나 세상일이라는 게 언제나 뜻대로 되지만은 않았다.
최기병으로선 별로 만나고 싶지 않았던 인물이 그를 찾아왔다.
“최기병 팀장이라고 했나? 말은 많이 들었지만 직접 만나는 건 처음이군.”
“네, 의원님.”
조대만 국회의원, 야당의 4선 중진, 주중 한국 대사를 역임했고, 중국통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하지. 곧 중국 대사관에서 연락이 올 거야. 대신전 초대권을 넘겨주게. 적당한 가격으로,”
“···네?”
“화정에 2장을 넘겨주고 받은 코인이 이천만이었나? 그럼 장당 천만이군. 내가 장당 천 오백만씩 받아줄 테니 3장을 중국으로 배정해.”
마치 결정 난 것마냥, 천 오백만 코인이 큰돈인 것처럼, 그것도 자기가 힘을 써서 그렇게 된 것같이 으스대며 말하는 조대만.
“의원님, 죄송하지만 중국에 분양할 계획은 없습니다.”
“···뭐? 내가 잘못 들은 건 아니겠지?”
“네, 중국은 안 됩니다.”
“허어,”
“그리고 초대권의 권리는 케이에게 있습니다. 정부도 관여할 부분이 아니라···,”
“케이는 한국인 아닌가?”
조대만은 살살 달래듯이.
“이봐, 최팀장. 우리가 중국과의 무역에서 얻는 이익이 얼만지나 아나? 한한령 때문에 많이 줄었어도 무역 흑자 1위 국가가 중국이야.”
“···.”
“국익을 생각하자고, 국익! 케이라는 자도 이해할 거야.”
맨날 하는 말이 국익, 저들은 국익에 얼마나 보탬이 되었다고,
“다시 한번 말씀드리죠. 초대권에 중국의 몫은 없습니다.”
“흐음, 그럼 이렇게 하지. 내가 케이와 만나보겠네. 게임에 접속해서···.”
“안 됩니다. 꿈도 꾸지 마십시오.”
“이런 건방진!”
얼굴이 붉어질 대로 붉어진 조대만.
“좋아. 마음대로 해. 국정 조사 각오하고. 그동안 APS에서 예산을 얼마나 공정하게 썼는지 궁금하군.”
솔직히 하나도 무섭지 않다.
다만,
‘귀찮아지겠네.’
조대만 뿐만이 아니다.
“이건 특혜 아니오? 화정 그룹엔 2장을 주고 다른 기업엔 한 장도 주지 않는다니.”
“···.”
이번엔 여당 국회의원 김윤명.
차장 검사 출신으로 아직도 검찰 내부에 상당한 세력을 가지고 있었다.
‘미치겠네.’
각성도 했겠다, 확 엎어버려?
“제안서는 모든 기업에 들어갔습니다만.”
“정규광 회장에게 더 많은 정보가 갔을 가능성은 없단 말인가?”
“네, 없습니다.”
“그러지 말고 남은 초대권들 대기업에 분양합시다. 좋은 게 좋은 거지.”
“이미 결정 난 사항이라,”
“번복하면?”
“안 할 겁니다.”
단호한 최기병의 대처, 김윤명의 반응도 조대만과 비슷했다.
“케이와 만나게 해줘. 내가 직접 이야기해보지.”
“안된다는 거 잘 아실 텐데요?”
“쯧, 이제보니 싸움꾼이시구만. 날 만만하게 봤어. 오늘 안으로 시민단체에서 고발장이 들어갈 거야. 검찰 조사 어떻게 받을지 준비하게. 초대권 행사 중지 가처분 신청부터 할 테니까.”
가지가지 한다.
애초에 자기들 것도 아닌데 염치도 없이···.
그러나 저들도 단단히 준비한 듯했다.
먼저 언론이 불을 지폈다.
<카쟌 침식지 보스 레이드, 국가 기관 주도로 이루어져>
<공략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유명 플레이어 케이, 알고 보니 정부가 육성한 용병 플레이어?>
<국가 세금으로 육성한 용병 플레이어라면 국익에 보탬이 되어야>
가짜뉴스로 APS와 케이를 먼저 찔러보고.
<보상으로 받은 대신전 초대권, 일부 기업에 분양 특혜>
<화정 그룹과의 밀착 의혹, 검찰, 혐의가 나타나면 수사하겠다>
<시민단체, 관련자들 배임 횡령으로 고발>
있지도 않은 의혹을 부풀리고.
<한중 관계 이대로 좋은가? 관계 정상화 절호의 기회>
<중국 측도 우호의 메시지를 보내, 초대권 공유하면 한한령 철회>
<중국과의 초대권 공유로 얻을 수 있는 경제적 효과는 약 300조 규모>
경제적 효과 운운하며 말도 안 되는 수치를 들이밀었다.
물론 여론전도 서슴지 않았다.
└ 그 케이가 정부 소속이라고? 마법사를 무릎 꿇린?
└ 전부터 정부 차원에서 플레이어들을 육성한다는 소문이 있었잖아. 케이도 그렇게 컸겠지.
└ 와! 이제 납득이 가네. 케이가 무슨 대통령 아들이라도 되나?
└ 초대권도 마음대로 하면 안 되지. 국회 동의를 받아야지.
└ 싯팔! 청원하러 가자.
밝혀져선 안 되는 사안까지 알려지게 생겼다.
초대권 행사 중지 가처분 신청은 그렇다 쳐도 케이에 대한 별의별 소문들이 나돌고 있었다.
최기병은 조금 황당했다.
아니, 갑자기 억지를 부려오다니.
청와대에도 별 뾰족한 수가 없는지, 대응책을 내지 못했고.
사안이 심각해졌다.
뭐가 어떻게 됐든, 무식하게 치고 들어오는데, 당할 재주가 있나.
‘이렇게 된 이상.’
하는 수 없다.
먼저 최고 결정권자에게 보고는 해야지.
최기병은 스마트폰을 들고 메시지를 보냈다.
그가 메시지를 보내는 최고 결정권자는 당연히 찬웅, 케이였다.
※ ※ ※
모든 이슈를 삼켜버린 초대권 분쟁.
찬웅도 뉴스를 통해 알았다.
메시지를 받고 최기병과 모처에서 만나서 이유를 들어보니.
“그러니까 초대권을 달라? 대기업과 중국에?”
“욕심 때문이겠죠. 누구라도 눈이 돌아갈 만한 보상이라서···,”
뭐 그건 이해하지만,
보스 공략에 그 어떤 도움도 안 준 사람들이 되지도 않은 욕심을 부려?
“일반 국민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레이드에서 케이님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사실 공략의 주체는 케이, APS 소속 플레이어들은 단순 참여자.
정부에서도 알고 있다.
아니, 지금 생떼를 쓰는 사람도 알고 있을 터.
여론전을 통해 진실을 호도하면 어쩔 수 없이 굴복할 거라고 여긴 모양.
솔직히 찬웅도 기분이 상했다.
한 번으로 그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흔들어 대면 다음 레이드도 어려워진다.
차후 레이드 할 때마다 숟가락을 얹으려는 세력들도 늘어날 테고.
‘외부에 의해 휘둘리면서까지 레이드를 할 이유는 없지.’
초대권은 케이의 인벤토리 안에 있다.
효력도 한 달, 시간도 많이 남았고,
“최팀장님.”
“말씀하십시오,”
“언론에 흘리세요. 앞으로 침식지 보스 공략 레이드는 미국과 함께하겠다고,”
“···네?”
깜짝 놀라는 최기병.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할 겁니다. 미국엔 제가 통보할게요.”
“어, 으음, 호, 혹시 한국을 떠나시겠다는···?”
“아뇨, 아직 그럴 생각은 없지만···, 오해는 바로 잡아줘야죠.”
솔직히 누구와 한들 무슨 상관일까?
목적은 침식지를 정화해서 빌런 각성 플레이어들이 출현하는 걸 미연에 방지하는 것.
그런 의미에서 보면 한국보다 미국이 오히려 낫다.
당연히 미국은 대환영이었다.
환영의 정도가 지나칠 만큼.
찬웅이 마이클 피트에게 자신의 의사를 전하자, 몇시간 후 조셉 라이든 미국 대통령이 SNS에 글 하나를 올렸다.
- 미스터 K, 우린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