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탈것 퀘스트 >
이제 탈것 퀘스트나 해보자.
캡슐에 누워.
“윽!”
이젠 만성이 되어버린 고통을 겪고 대기실로 접속.
‘어디···.’
마이클 피트에게서 받은 탈것 퀘스트 장소와 열쇠.
말라가 왕국 국경 근처에 위치한 작은 마을, 침식지와 가깝긴 하지만 침식지는 아니다.
‘마을 이름이 코호트 요새였지.’
게이트를 달 수 있나?
NPC나 사람도 거의 없다던데.
카쟌 침식지 공략이 끝나 이제 거기 갈 이유가 없으니 변경해보자.
“카쟌 게이트 변경.”
[변경할 도시 이름을 설정해주십시오.]
“코호트 요새.”
[변경할 도시가 말라가 왕국 변경 코호트 요새로 설정되었습니다.]
찬웅은 게이트 손잡이를 잡고 활짝 열었다.
화아악!
코호트 요새엔 플레이어라고는 단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하긴, 침식지도 없는 동네.
말라가 왕국이란 작은 나라의, 그것도 변방에 위치한 산골 요새 마을.
그러나 알고 보면 이곳도 유서 깊은 곳이다.
500년 전, 한창 대륙 전쟁이 발발했을 때 군사적 요충지로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무엇보다 유명한 코호트 요새를 유명하게 한 것은 바로 말라가 왕국 건국왕 전설이었다.
또한 그 전설은 마이클 피트가 아마도 탈것과 관련된 퀘스트일 거라고 말했던 첫 번째 이유.
전설에 의하면 건국왕 알마라가 이곳 코호트에서 야생마 한 마리를 사로잡아 자신의 군마로 삼았다.
말라가 왕국 건국왕 알마라가 타고 다녔던 대륙 최고의 명마 부케파, 지금도 마을 한 중앙엔 부케파를 기리는 거대한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이제는 낡아서 군데군데 칠도 벗겨지고 장식품도 몇 개 떨어져 나간 명마 부케파의 동상, 그리고 퀘스트를 수행하는 장소도 바로 그 동상이었다.
일종의 워프 포인트.
파티도 불가.
오직 한 사람만 입장 가능한 장소.
동상 아래 받침대에 눈에 보이지도 않을 작은 열쇠 구멍이 있었다.
“여긴가?”
마이클에게서 받은 열쇠를 인벤토리에서 꺼내는 찬웅, 구멍에 열쇠를 꽂아 넣으니,
철컥!
순간!
빛무리가 내려오고.
화아아악!
처음 보는 낯선 공간으로 이동했다.
“오!”
넓게 펼쳐진 고원의 초지, 그곳에서 풀을 뜯고 뛰어노는 수백 마리의 백색 야생마들.
모두 똑같이 생겼다.
탈것과 관련된 퀘스트라 판단되는 두 번째 이유.
[퀘스트가 발동됐습니다.]
- 부키를 잡으세요. (제한 시간 : 30분)
- 완료 조건 : 부키 찾아서 올라타기.
- 보상 : 야생마 부키의 특별한 선물.
하지만 이 퀘스트는 보상이 애매하다.
탈것이라는 보상이 정확하게 명시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마이클 피트도 확실하게 장담하지 못하고 ‘탈 것 추정 퀘스트’라고 한거고.
‘연계 퀘스트는 아닌가?’
그럼 연계라고 표시되었을 터.
대체 선물이 뭐지?
‘부키’라는 이름으로 보아 명마 부케파와 연관이 있는 것 같은데.
‘해보면 알겠지.’
서둘러야 한다.
타임어택 퀘스트.
30분이면 결코 긴 시간이 아니다.
저 수많은 말들 중 누가 부키인지도 모르고.
‘아무거나 잡아보자.’
파팟! 팟! 팟!
바람길 산책 순간 가속.
야생마 무리 중앙으로 뛰어드는 찬웅.
우선 한 마리 잡아서,
덥석!
파앗!
“어?”
사라졌네?
“푸르륵, 푸륵!”
어디선가에서 들리는 말의 울음소리.
자신을 조롱하는 듯한 느낌.
스슷, 스스슷, 스스스스슷!
그리고 다시 야생마 수십 마리가 더 늘어났다.
‘환영이었어?’
그런 것 같다.
이 초원에 존재하는 말들은 거의 다 환영.
결국 ‘부키’라는 야생마 한 마리만 진짜.
‘죄다 똑같이 생긴 이유가 있었네.’
뭐, 좋다.
잡아서 타면 된다.
다시 바람길 산책!
스팟!
이놈은?
파앗!
가짜,
저놈은?
파앗!
또 가짜.
.
.
.
‘이런 씨바알···,’
그때였다.
섬뜩!
등 뒤에서 느껴지는 불길한 기운.
츠팟!
암살자 루인의 빛과 어둠 세트 효과로 인한 쉴드 발동.
하지만,
째앵,
순식간에 깨어지더니.
퍼억!
강한 충격으로 나동그라지는 찬웅.
“어우!”
온몸이 저려 왔다.
이런 공격은 처음 당해본다.
쉴드가 없었다면 분명 죽었을 터.
“푸르륵, 푸르르르르···,”
비웃어? 이 말 새끼가.
또 늘어나는 말들의 환영.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너무 우습게 봤다.
미국 플레이어들이 성공하지 못했다고 했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집중하자.
우우우웅,
찬웅의 아바타 케이에서 일어나는 포스의 기운.
초지에서도 바람이 분다.
매우 강하게 분다.
바람길 산책은 바람을 이용하는 것.
이미 그 극의를 경험한 찬웅,
파앗, 파앗, 파앗···,
처음엔 천천히.
야생마 무리를 주위를 탐색하듯 돌다가,
‘지금!’
팟! 팟! 팟! 팟! 팟! 팟···.
마음 가는 곳에 이미 몸이 가 있다.
‘이건 아니고, 이것도 아니고, 저건···,’
순간!
섬뜩!
‘거기구나.’
츠팟!
오른쪽에서 머리를 향해 날아드는 야생마의 발굽.
가볍게 비껴내고는,
덥석!
손에 느껴지는 부드러운 말갈기의 감촉.
“잡았다!”
팟!
야생마가 찬웅을 털어내려 몸부림쳤지만 어느새 찬웅은 말갈기를 움켜잡고 놈의 등에 타고 있었다.
“니가 부키야?”
“푸르르륵! 푸륵!”
파박, 파박! 파바바박!
허리를 아래위로 움직이며 미친 듯이 날뛰는 야생마 부키.
“···내가 떨어질 것 같냐?”
사실 떨어질 뻔했다.
하지만 허벅다리에 힘을 꽉 주고,
파박, 파박! 파바바박!
한참을 날뛰다 어느덧.
“푸르르, 푸르, 푸릇.”
조용해지는 야생마 부키.
‘끝났나?’
그런가 보다.
샤라라라락.
사라지기 시작하는 야생마들,
그리고 부키도.
‘왜 사라져?’
남은 건 찬웅 혼자뿐.
‘어려운 건 아니었지만’
이건 오직 찬웅만이 수행할 수 있는 퀘스트.
일반 용병 플레이어들은 잡지도 못하고 뒷발에 걷어차여 죽기 십상.
띠링,
- 부키 찾아서 올라타기. (완료)
‘근데 보상 안 주고 어디 간 거야?’
그런데 발밑에 뭔가 있었다.
“응?”
바닥에 얌전하게 놓인 말 편자.
‘이게 보상이야? 이걸 가지고 뭐 하라고···.’
[퀘스트가 완료되었습니다. 코호트 요새로 이동합니다.]
화아아악!
찬웅은 동상 밑에 다시 나타났다.
진짜 이걸로 끝?
이 말 편자는 무슨 용도지?
그렇게 무심코 동상을 바라봤는데···,
“아!”
이제 알겠다.
명마 부케파 동상, 다른 3개의 다리는 말편자가 박혀있었지만 오른쪽 앞다리는 말편자가 없었다.
‘크기도 딱 맞네.’
저기다 부착하라는 건가.
찬웅은 동상 위로 올라가 보상으로 받은 말 편자를 붙였다.
딸각.
갑자기!
찌지지지직!
갈라지기 시작하는 말의 동상.
후두둑, 후둑, 투두둑.
동상을 구성하던 금속이 떨어진다.
‘뭐지?’
그리고.
“와!”
동상 표면이 벗겨지자 모습을 드러내는 군마.
하늘에 떠 반투명한 형체로 날개까지 펄럭이며 찬웅을 바라보고 있었다.
‘진짜 탈것?’
천천히 찬우의 앞에 내려서서 머리를 가까이 들이미는 말.
동시에 말에 관한 정보가 홀로그램으로 떠올랐다.
[이름 : 부키(봉인)]
[소환수 : 유령마]
[등급 : ???]
[액티브 스킬 : 뒷발차기(1단계), 환영(1단계), 활강(1단계)]
[패시브 스킬 : 지칠 줄 모르는 체력(1단계), 쾌속(1단계)]
[???] : 봉인
[???] : 봉인
탈것은 탈것인데,
‘상태창이라고?’
무슨 소환수가 상태창씩이나.
‘스킬도 있고.’
봉인과 물음표는 또 뭘까?
왜 저렇게 덕지덕지 붙었나?
하지만 봉인은 풀라고 있는 것, 진(眞)이 아닌 것이 아쉽다.
‘설마 탈것에 진(眞)이 있을 리가.’
현실에서 유령마?
‘···아니야. 있을 수도 있지.’
아무튼 게임 속에서 쓸만한 탈것 하나 얻었다.
[소환수 유령마 부키와 계약하시겠습니까?]
“당연히!”
따끔,
아바타 케이의 손등에 유령마 부키의 소환 문신이 새겨졌다.
‘문신 방식인가?’
새로운 탈 것을 얻었으면 바로 시승식 해봐야지.
날개가 달린 유령 군마.
그 말은 하늘을 날 수도 있다는 의미.
‘일단 어떻게 하는지부터.’
손등에 그려진 문신을 말의 머리에 접촉시키자.
스르륵,
사라지는 유령 군마.
‘이건 역소환이고,’
찬웅은 문신이 새겨진 손을 땅바닥에 짚었다.
그러자 쑤우우웅,
유령 군마가 땅바닥에서 솟아 올라왔다.
‘소환은 이렇게.’
그럼 타보자.
날개가 달렸으니 하늘을 날겠지.
찬웅이 다가가자 스스로 타기 좋게 엎드리는 유령마 부키.
“가자.”
타앗!
유령마가 땅을 박차고 나른다.
“하하!”
펄럭펄럭,
하늘 높이 높이,
그러다가 긴 날개를 쭉 펴서.
활강 비행으로 쐐애애액!
승차감도 좋다.
안장이나 등자도 달려 있지 않은데 엉덩이가 말 등에 착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생각보다 괜찮네.’
밑으로 길게 이어진 산맥들이 보인다.
NPC 제외하고 나는 탈 것을 가진 플레이어들이 몇이나 될까?
아마 한 사람도 없을 터.
이참에 갈 데까지 가보자.
한참을 비행하니 저 앞에 거무죽죽한 땅 표면이 눈에 들어왔다.
‘···침식지?’
저긴 또 어딜까?
보스는 어떤 놈이고.
나는 탈것을 타고 있으니 가서 확인해보면 그만.
쐐애애액!
찬웅이 이끄는 방향으로 날아가는 유령마.
곧 침식지.
그런데?
휘이익!
뭔가에 겁먹은 듯 다급하게 선회하는 유령마.
왜 이래?
“저쪽으로 들어가.”
휘이이잉.
하지만 말을 듣지 않는다.
계속 제자리에서 빙빙 돌 뿐.
‘설마?’
침식지가 아닌 다른 방향으로 말머리를 돌리니.
쐐애액!
그쪽으론 유령마가 빠르게 날아간다.
‘···뭐야?’
침식지를 들어가지 못한다고?
거기 들어가지 못하는 부류는 딱 하나.
“너 NPC였니?”
“푸륵.”
“···.”
배신당한 느낌.
아니, 침식지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탈것을 어디다 쓰나?
“환장하겠네.”
결국 듀플렉스 대륙 관광용.
하긴, 일반적인 탈것들은 아이템, 그래서 인벤토리 안에도 들어간다.
그러나 유령마는 소환 문신으로 어느 곳으로부터 불러오는 것.
“상태창 있을 때부터 알아봤다.”
“푸륵, 푸르르르···,”
왠지 풀이 죽은 모습.
‘···감정도 있고,’
그래서 조금 미안하다.
“알았어. 이제 뭐라고 안 할게.”
“푸륵!”
봉인이 풀리면 나아지려나?
물음표도.
그런데 어떻게 하는 거지?
‘흐음, 혹시···.’
이 게임에는 거의 만병통치약처럼 통하는 기능이 있다.
바로 축복!
‘곧 대신전으로 갈 일이 있으니까.’
그래, 한번 받아보자.
그런데 이놈은 유령마.
축복을 받다가 성불해버리는 건 아니겠지?
※ ※ ※
듀플렉스 스페이스 가상 현실 세계.
헤스티아 성국은 동서남북 모든 방향에 침식지가 존재했다.
동쪽의 썩어버린 레비아탄, 서쪽 타락한 다크엘크 여왕, 남쪽 부정한 물의 정령왕, 그리고 북쪽 진혈의 군주.
일본인 각성 플레이어, 레지키쓰론의 사도, 미츠이 히무라는 진혈의 군주 렐리스와 만났다.
미츠이도 침식의 기운이 섞인 빌런인지라 침식지는 무사통과.
- 쯧쯧, 우습지도 않구나.
진혈의 군주 렐리스는 혀를 찼다.
그 오만한 초록 도마뱀이 살인 청부를 해와?
그것도 하찮은 이방인 놈을?
하지만 놈의 종복이 가져온 혈정을 보고 군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순혈의 뱀파이어 여왕, 렐리스, 비록 목적이 있어 스스로 침식을 택했지만 혈정은 종족을 유지하는 힘의 근원, 게다가 드래곤의 피로 만든 강력한 혈정.
- 이게 몇 개나 더 있다고?
“자, 잘 모르겠사옵니다만 케이를 처리하면 더 주어질 거라는···.”
- 흐음, 그래?
렐리스는 마음을 굳혔다.
드래곤의 혈정을 눈으로 본 이상 이미 결정됐다고 봐야 한다.
- 내 종복들은 그깟 브레쓰 몇 방으로 만들어지는 초록 도마뱀의 사도 수준이 아니란다.
머리를 조아리며 그녀의 허락이 떨어지길 기다리는 미츠이.
- 침식과 순혈의 힘을 섞어 만든 사도들이다. 가격 대비 측면에선 가성비가 뛰어나진 않지만···.
가성비?
원래 플레이어와 NPC가 나누는 대화는 원활한 소통을 위해 시스템에 의해 특정 단어가 걸러지기 마련.
그런데 NPC가 가성비라는 단어를 쓰는 건 처음 듣는다.
- 내가 사도들을 선정하는 원칙이 있다. 일단 OECD 회원국 중 G10 안에 포함된 국가만이 대상이야.
자신의 귀를 의심하는 미츠이.
“···OECD 말입니까?”
- 그래, 그들이 이방인들의 세상을 주도하는 국가가 아니더냐?
어떻게 알고 있지?
- G10 국가 안에서도 정치가, 고위 공무원, 다국적 기업의 CEO, 학계의 저명한 학자들, 영향력 있는 엔터테이너 등, 각국에 1명씩, 모두 10명밖에 만들지 않았다.
“···.”
- 이 말은 꼭 전하거라. 내 사도들은 비싸다. 혈정 한두 개 가지고는 턱없이 부족할 터.
“아, 알겠습니다.”
- 그래, 그 케이라는 놈의 국적은?
“한국입니다. 배은망덕한 조센징···.”
- 한국? 호오, 최근 선진국으로 편입된 나라구나. G10에 속해있는 한류 열풍의 주역이자 문화 강국, 망해가는 일본과 달리 동아시아 질서의 중심으로 성장하고 있고.
무슨···.
- 당연히 한국에도 나의 사도가 있지. 그것도 꽤나 힘있는.
미츠이는 왠지 분한 마음이 들었지만 내색할 수는 없었다.
- 의뢰를 받아들이겠다. 혈정이나 더 준비해두라고 일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