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아바타의 재능으로 동화율 돌파-82화 (82/204)

< 뒷수습 >

농장에 있던 인질들은 약 700여 명, 하마터면 최악의 참사가 될뻔한 사건이었다.

진압팀이 총출동했지만 정작 사건을 해결한 건 단 한 사람, 군대와 FBI에게 남은 일은 뒷수습뿐.

“기자들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무조건 막아!”

“취재 헬기도 날아오고 있다고···,”

“가까이 오면 격추해버린다고 경고해.”

언론 통제부터 하고.

다음은 인질.

인질들을 다루기 힘들 것 같았는데 의외로 순순히 말을 잘 들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농장 안으로 진입을 막으려 스스럼없이 목숨을 끊으려 했던 사람들 아닌가.

“정말 저항이 없었나?”

“전혀요. 모두 매우 협조적입니다.”

“의외로군.”

“그렇습니다. 신도들 반응이 다양합니다. 왜 여기 있는지 모르겠다고 하고, 머릿속이 맑아졌다, 자신이 멍청했다, 등등.”

이제 와서?

보통 사이비 단체 교인들은 이런 식으로 나오지 않았다.

대부분 격렬한 저항을 하기 마련인데,

혹시?

“···세뇌당했었나?”

“우리도 그렇게 판단하고 있습니다.”

불행 중 다행.

말 그대로 세뇌가 풀렸는지, 아니면 이후에 있을 법적 문제 때문인지, 신도들이 순순히 지시에 잘 따라와 주니 처리가 순조롭다.

마이클 피트는 빌 크리스토퍼 FBI 국장과 함께 헛간 건물로 들어갔다.

여기서 죽은 시신은 5구.

교주 스캇 딜런과는 달리 시체가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었다.

“신도들의 증언에 따르면 사도, 아니 각성 플레이어들이 확실하답니다. 세례를 받아 인간을 초월한 힘을 냈다고.”

현장 상황을 설명하는 FBI에서 프로파일러.

“보통 한방, 많아 봐야 두 방, 깔끔하게 처리했습니다. 특히 이 두 명은 인질들 틈에 섞여 식별이 어려웠을 텐데 정확하게 그들에게만 도끼가 날아왔다고.”

“그 말은 케이가 빌런이 누군지 알고 있었다는 말인가요?”

“그렇지 않고서는 설명이 안 되죠.”

케이가 일반인과 각성 플레이어를 판별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의미.

“이놈들을 보십시오.”

“아직도 자고 있습니까?”

“네,”

창고 한구석에서 수갑에 묶인 채 잠든 사람들.

모두 세례를 받지 못했지만 교주에게 충성을 맹세한 일반인들, 어떻게 보면 각성자들보다 더 악독했다고 신도들이 증언했다.

“총기를 들고 신도들을 협박하면서, 심지어 폭행과 강간도 서슴없이 저질렀던 놈들입니다.”

“···그런데 죽이지 않고 재웠다?”

“이상하죠? 죽어도 싼 놈들이지만 죽이지 않았어요.”

케이는 확실하게 구별하고 있었다.

그가 죽인 자들은 모두 각성 플레이어, 그것도 빌런들.

사료 창고도 같은 패턴.

어두컴컴한 구석에서 갑자기 나타나 눈 한번 깜짝할 새에 각성 빌런을 죽이고 일반 빌런은 재웠다.

조금 특이했던 건 바로 저택.

교주 스캇이 기거했던 저택 2층 침실.

“···하아.”

“미치겠군”

방 한가운데 놓인 처참한 시신.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엉망이었다.

지금까지 봤던 시신과는 차원이 다르다.

“대체 몇 방을 맞은 거죠?”

“이 공격은 감정이 잔뜩 실렸어. 보통 원한 관계로 얽히면 저러는데.”

“···전 이해합니다.”

프로파일러가 말했다.

“아시다시피 이 방에서 이 시체, 라틴계 빌런 로메오뿐만 아니라 곤히 잠자고 있던 어린아이 한 명도 있었죠.”

“그래, 폭탄 조끼를 입은, 참! 그러고 보니 폭탄은? 해체했나?”

“네, 안정적으로 해체하고 소년은 지금 병원에서 회복 중입니다.”

“잘됐군.”

폭탄이 터졌다면 어떻게 됐을까?

마이클 피트는 생각도 하기 싫었다.

만약 자신이 거기 있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로메로의 머리에 총알을 백 발 정도 박아줬을 터.

“여기 이 손목은 로메로의 것입니다. 여기 옆에 떨어진 물건은 폭탄 조끼 격발 장치고요. 아마도 격발 장치를 누르려다···.”

“케이에게 저지됐단 말이지?”

“그렇죠.”

그 후 상황이 머리에 그려진다.

케이의 분노.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른 빌런 로메로.

백번 죽어도 싸다.

“앞서 그가 했던 일을 종합해볼 때 원칙이 분명한 인물입니다. 나름의 기준도 있고, 정의감에, 과감한 결단력이라든지···, 어쨌든 점점 그 남자가 좋아집니다.”

빌 크리스토퍼도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쳤다.

“나도 그래. 마음에 들어. 그에게 불만을 가졌던 것이 후회스러울 정도야.”

마이클 피트도 동의하는바.

‘호감도 급상승이야.’

왠지 상남자 같은 느낌.

이런 힘을 가진 이가 빌런이 아니라는 게 감사할 지경.

‘계속 접촉을 유지해야 해.’

현재 케이와 소통할 수 있는 창구는 한국의 APS, 각성 플레이어 전담반뿐이다.

그럼 최기병과도 좋은 관계가 되어야 하고.

‘따로 전화라도 해야겠군.’

그것도 그렇지만 그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선물도 필요하다.

탈것 퀘스트 하나 넘겨주는 걸로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뜻.

뭐가 좋을까?

※ ※ ※

듀플렉스 스페이스 로그드라실 침식지.

거대한 산봉우리 꼭대기, 커다란 동굴.

드래곤 레어였다.

동굴 안쪽 넓디넓은 공동 한가운데, 초록색의 거대한 몸체를 바닥에 누인 생명체가 고개를 쳐들었다.

‘또 끊어졌어.’

이번엔 숫자가 꽤 많다.

바깥세상에 뿌려뒀던 씨앗이 무려 15개나 사라졌다.

아무리 티끌만큼이라고는 하나, 자신의 권능을 이어받은 사도들이 소멸을 당해?

이 세상의 힘이 저쪽으로 흘러 들어가는 방식, 자신도 그걸 이용해 종복들을 만들어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자꾸 씨앗이 사라지면 강대한 힘을 가진 드래곤으로서도 별다른 방법이 없다.

어떤 연유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보고 싶지만 이 허상의 공간에 꼼짝없이 갇힌 터라 그마저도 여의치 않고.

‘답답하군.’

레지키쓰론이 바깥 상황을 알 방법은 사도들이 자신을 찾아왔을 때뿐이다.

‘아직 뿌려둔 씨앗이 많이 남아있지만.’

그가 사도들에게 내린 명은 세력을 키우라는 것.

재능있는 이들을 데려와 자신에게 힘을 받아 가라는 것.

‘하지만 씨앗들이 자꾸만 소멸하게 되면···.’

사도들은 도구에 불과한 놈들이긴 하나 사라지면 좋지 않다.

순간!

“군주시여!”

- 어서 오라. 나의 이방인 사도여.

마침 궁금증을 풀어줄 사도가 레어로 찾아왔다.

- 네가 사는 나라가 어디라고 했느냐?

“태양의 나라, 아시아의 등불, 일본이란 나라이옵니다.”

- 그렇군. 허면 거긴 어떠냐. 나의 사도들이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구나. 요즘 사도들의 연결이 끊어지고 있어 심히 걱정스럽도다.

“···어, 사실 그 문제 때문에 군주님을 알현하러 왔습니다.”

그 문제라니?

“바깥에서 위대하신 군주님의 사도들이 소멸하고 있나이다.”

크르릉,

레지키쓰론의 눈이 세로로 찢어졌다.

무의식중에 발현된 드래곤의 피어!

- 대체 누가! 감히 내 사도들을!

사시나무처럼 떨면서 답하는 일본인 플레이어.

“의, 의심되는 노, 놈이 있긴 하옵니다만, 아, 아직 확실치 않아서,”

- 대답해보라! 누구냐?

“케이, 케이라는 놈입니다.”

- ···케이?

“놈의 정확한 정체는 알지 못하오나 분명 그놈이 틀림없사옵니다.”

레지키쓰론은 그 큰 머리를 갸우뚱했다.

- 그놈이 누구길래?

가만!

그러고 보니···,

‘아!’

뼈아픈 옛 기억이 떠오른다.

로그드라실 침공 당시, 자신의 콧잔등에 작달막한 도끼를 꽂아 넣었던 그 벌레.

‘알만하군.’

이방인 중에서도 특이했던,

바깥세상에서 왔지만 미약하게나마 허상의 기운도 함께 가지고 있었던 바로 그놈, 놈에게 징벌을 내리고자 했을 때 세계수가 놈을 구했다.

- 그렇구나. 케이란 놈이 대계를 망치고 있었구나.

“분부만 내리소서. 당장 달려가 놈을···.”

- 아니다. 너는 그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아아아, 이 허약하고 불충한 종복을 용서하소서.”

- 하지만 그대로 놔둘 수는 없는 노릇이고.

“부디 혜안을 알려주십시오.”

- 그놈이 사는 나라는?

“한국이라는 배은망덕한 국가입니다. 마침 가까운 곳이기도 합니다.”

- 정체는 모른다고 했지?

“그, 그렇습니다.”

정체야 드러내게 하면 될 일이고.

레지키쓰론은 아공간에서 물건 하나를 꺼냈다.

용의 혈정.

드래곤 피를 모아 만든 생명의 근원.

여기 드래곤 하나의 피가 오롯이 농축되어 있었다.

- 이걸 가지고 헤스티아 성국의 침식지로 가거라.

“거, 거긴?”

- 가서 진혈의 군주를 만나 케이의 존재에 대해 밝히고 놈을 제거하라고 전해라.

“···네?”

- 진혈의 군주, 야비하고 더러운 놈이긴 하나 그 힘만은 인정하는바, 혈정을 주면 만족해할 터, 착수금이라 하고 성공하면 하나 더 내어준다고 하면···.

“아!”

- 그리고 너도 분발하거라. 네가 사는 그 일본을 장악할 때가 되지 않았느냐?

“알겠사옵니다. 반드시 그리될 것이옵니다.”

진혈의 군주는 인간의 습성을 잘 알고 있어서, 어떻게 보면 인간의 천적, 놈의 사도들도 그러할 터.

비록 혈정이 귀한 물건이긴 하지만 레지키쓰론은 아깝지 않았다.

케이라는 놈은 세계수의 보호를 받고 있다.

최우선으로 제거해야 할 대적.

놈을 죽일 수만 있다면 그까짓 혈정 몇 개가 무슨 대수일까.

※ ※ ※

최기병은 본부에서 대통령의 전화를 직접 받았다.

“네네, 아닙니다. 하하, 감사합니다. ···아! 그건 저도 잘, 케이와는 오직 게임 안에서만 소통하기 때문에. 그, 글쎄요. 무리해서 알아내려 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최기병.

“후우,”

그 모습에 이필동이 살짝 놀려대듯 말했다.

“우리 팀장님 출세하셨어. 대통령이 직접 전화도 다 주시고.”

“미국 대통령이 핫라인으로 청와대에 고맙다고 전해왔답니다. ···재주는 케이가 부리는데 감사는 엄한 사람들이 받네요.”

“깔끔하게 처리했나 봐요?”

“네.”

최기병이 전화를 받은 곳은 청와대뿐만이 아니었다.

마이클 피트 국무 차관보와 빌 크리스토퍼 FBI 국장도 뭐가 급한지 한밤중에 연락을 해왔다.

케이를 보내줘서 고맙다는 내용인데.

안 봐도 뻔하다.

그가 늘 해왔던 대로.

절대 불가능한 상황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의뢰를 처리했겠지.

“참! 미국에서도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면서요? 빌런 새끼가 아바타처럼 가루로 흩어지는 거.”

”그래요. 이제 눈으로 확인했으니까, 다 알게 됐죠.”

미국도 알아서 대비할 것이다.

거기가 어떤 나라인데.

게임 속 침식지 보스 몬스터가 현실에 영향력을 끼치려고 한다.

침식지 보스가 어디 레지키쓰론 한놈 뿐인가?

아직 남아있는 254개의 침식지.

그곳을 장악하고 있는 다수의 침식당한 괴물들.

“어휴, NPC 새끼가, 게임을 중지시킬 수도 없고.”

“오히려 더 좋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라고 뭐 당하고만 있습니까? 저번 캬잔 레이드로 침식지 하나가 소멸했는데, 이제 게임의 목적 또한 그쪽으로 움직일 테고.”

“그래서 말인데, 다른 토벌 계획 없습니까? 하나 더 처리하면 동화율도 오르고 반영률에, 진(眞) 아이템까지.”

“케이가 오면 말해봐야죠.”

게임 안에서도, 그리고 밖에서도.

점점 주목받고 있는 케이의 존재.

그나마 그의 정체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어 망정이지.

“케이는 한국으로 오고 있답니까?”

“아마도 지금쯤 도착했을 겁니다.”

“다행이네요. 미국이 안 보내주면 어떡할까 했는데.”

“그 사람을 누가 잡아요? 아무튼 자나 깨나 보안! 어디 가서 술도 마시지 마세요. 술김에 헛소리라도 하는 날엔···.”

“어허, 제 출신 어딘지 까먹었습니까? 국정원입니다. 국정원.”

“네네. 어련하시겠어요.”

영원한 비밀은 없다.

하지만 될 수 있으면 오래 비밀이 유지되어야 한다.

이 황당한 상황이 끝날 때까지.

※ ※ ※

찬웅은 긴 비행을 마치고 인천공항에 착륙했다.

인벤토리에서 바이크를 꺼내 타고 집으로.

‘좀 쉬다가···.’

청소도 하고, 밀린 빨래도 하고, 샤워도 하고···,

그런데 스마트폰 알림음이 들려왔다.

띠링.

‘누구지?’

강찬웅의 이름으로 된 스마트폰이 아닌, 최기병이 준 대포폰, 이 번호를 아는 사람은 최기병과 딸기 말고는 없다.

최기병은 집에 오기 전 통화했으니까.

‘딸기로구나.’

[상큼한 딸기] : 케이님?

맞다.

그녀였다.

[케이] : 말씀하세요.

[상큼한 딸기] : 저 취직했어요!

[케이] : 그래요?

취직했다는 말이 뭐 그리 대단한 건지 모르겠지만.

[상큼한 딸기] : 아빠가 변호사시거든요. 그래서 오늘부터 출근했어요.

[케이] : 아하.

[상큼한 딸기] : 헤헤, 혹시라도 법률 자문받으실 일 있으면 연락해주세요. 제 첫 직장이라.

[케이] : 혹시 자랑하시는 거?

[상큼한 딸기] : 맞아요. 헤헤.

찬웅은 그녀의 마음이 이해가 간다.

오랜 기간 병원에 누워 게임만 하던 그녀였다.

24살 꽃다운 나이, 학교나 제대로 다녔을까.

‘전에 APS에 관심을 가지는 것 같은데···,’

거긴 마음을 접었나 보다.

잘된 일이다.

APS가 평범한 직장도 아니고, 아무리 재능있는 플레이어지만 게임과 현실이 똑같을까.

‘게임 안에서만 보면 되지.’

현실에서 사적으로 만나도 되고.

자신의 정체?

알면 어때?

한 명 더 안다고 해도 상관없다.

딸기가 입이 가볍지도 않을뿐더러, 또 최기병과 이필동, 구종수도 이미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는데.

아무튼 좀 쉬다가 미국에서 넘겨받은 탈것 퀘스트나 하러 가야지.

※ ※ ※

상큼한 딸기, 신여은은 스마트폰 메시지 어플을 종료하고 침대에 누웠다.

솔직히 APS에 들어가고 싶다.

그러나 마음을 접었다.

케이 때문에.

그와 APS는 서로 협력 관계.

게임 속에서, 혹은 현실에서 자주 접촉해서 함께 일을 처리한다.

APS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그러다 현실에서 마주치게 되면?’

그녀는 확신하고 있었다.

아무리 얼굴을 감춰도 가까이 있으면 반드시 알게 될 거라고.

‘한강에서 마주쳤던 그 남자도 분명 케이님이었을 거야.’

그는 신분을 감춰야 하는 사람.

그녀는 최기병이 자신의 병원으로 찾아왔던 때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자신은 비밀을 감추는데 능하지 않다.

감춘다고 해도 표정에서 티가 날 정도로 허술하고,

누군지 몰라야 한다.

비밀을 지켜주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

‘내가 그 사람 정체를 알아선 안 돼.’

그래서 거리를 두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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