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로리 오브 쓰론(4) >
마이클 피트 국무 차관보는 백악관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네, 대통령님, 그렇게 하겠습니다.”
전화를 끊자 급하게 질문하는 빌 크리스토퍼 FBI 국장.
“대응 원칙이 변했나? 아직 인질 구출이 우선인가?”
“···강제 진압 작전 승인되었습니다.”
“그렇군. 잘 됐어.”
현 작전 상황을 동시 송출 화면을 통해 지켜보고 있던 백악관.
좀 전에 젊은 청년이 나와 쇠꼬챙이로 자신의 턱을 찔러버린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은 것이 틀림없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강제 진압.
“FBI 소속 테러 진압팀을 부르겠네.”
“네, 군 작전팀도 준비 중입니다.”
“각성 플레이어들은?”
“그들도 합류해야죠.”
결국 이렇게 되었다.
내부 상황이 어떤지 알 수 없으니 일단 보이는 대로 사살하는 무자비한 작전이 될 터.
“아참! 케이는?”
“도무지 연락이 안 됩니다.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요.”
“아직 도착하지 않았나?”
“글쎄요. 아니면 이미 농장 안에 들어가 있을지도···.”
“어차피 강제 진압할 텐데, 뭐, 작전 시작되면 알아서 하겠지.”
미국 측 각성 플레이어도 작전을 준비했다.
아바타 명 [이카루스], 동화율 162%, 반영률 30%의 각성 플레이어 잭 해리스는 장비와 무기를 점검하고 방금 지시받은 내용을 떠올렸다.
‘일반인 인질들은 보호, 구출하고, 빌런들은 무조건 사살이라···.’
솔직히 웃기는 얘기.
교주 스캇 딜런의 정체야 밝혀졌지만 그놈 말고는 아무것도 모른다.
‘누가 인질인지, 누가 각성 플레이어인지 어떻게 알아?’
항복하면 살리고, 덤비면 죽여야지.
그나저나 한국에서 온다는 플레이어는 왜 감감무소식일까?
‘최소한 내부 상황만 파악해도 희생을 줄일 수 있을 텐데.’
잭 해리스도 들은 바 있다.
잠입과 암살에 특화되었다고 알려진 각성 플레이어일뿐더러 게임 안에서도 유명세를 치렀던 용병 플레이어니까.
특히 그라운드 테라에서 마법사를 굴복시켰던 일화는 지금도 인터넷에서 회자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면 뭘 해?
코빼기도 안 보이는데.
정부 측에도 불만이 있었다.
‘부를 거면 처음부터 불렀어야지.’
[애널써커]와 [로드오브게임]은 침식지 보스 레이드 준비로 이번 작전에서 제외, 그래서 잭 해리스의 어깨는 무거웠고.
“야간투시경, 방독면, 수면 가스 모조리 챙겨.”
“···아이들은 어떡해? 인질 중에 아이들도 많잖아.”
“걔들이 무슨 죄가 있어. 살려야지.”
“나도 당연히 살리고 싶지, 하지만 그게 잘 될까?”
“···.”
동료의 물음에 잭 해리스는 답하지 못했다.
강제 진압 상황이 벌어지면 농장 안은 아수라장이 될 터.
‘제기랄!’
빌런화된 각성 플레이어를 처리해온 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손에 피를 묻혔지만 일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문제는 죄가 없는 일반인들.
오늘만큼은 진짜 작전에서 빠지고 싶다.
※ ※ ※
농장 저택 안방 창문에서 밖의 상황을 주시하던 로메로가 말했다.
“군인들 움직임이 달라졌어. 장갑차 시동 걸렸고, 헬기 소리도 나는 것 같은데?”
“어디 봐. ···곧 들이닥치겠군.”
“그럼?”
“슬슬 시작하자. 데리고 들어와.”
글로리 오브 쓰론, 교주 스캇의 지시에 잠시 밖으로 나갔다가 어린 소년 하나를 데리고 들어온 로메로.
소년의 상체에는 묵직해 보이는 조끼가 입혀져 있었다.
스캇은 소년에게 다가가 말했다.
“이름이 뭐랬지?”
“에단이요. 교주님. 에단 스미스.”
“그래, 에단. 내가 해 줘야 할 일이 있단다.”
“다 할게요. 대신···.”
에단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는 스캇.
“걱정 마. 엄마, 아빠는 괜찮을 거야.”
“정말요?”
“그럼! 항상 믿음이 중요하단다.”
“믿을게요. 교주님.”
그동안 로메로는 에단의 뒤에서 폭탄 조끼의 신관을 조작했다.
“다 됐어. 격발 장치만 누르면 돼.”
“그건 로메로, 네가 가지고 있어.”
스캇은 두꺼운 패딩 점퍼를 에단에게 입혀줬다.
이러면 조끼가 보이지 않을 터.
“좀 있다가 농장 밖으로 나가서 저 아저씨들에게 말해. 도와달라고, 그럼 집에 갈 수 있어.”
“네!”
누가 알겠나?
천진난만한 아이에게 폭탄 조끼가 입혀져 있을지.
포위망 한가운데서 아이가 입은 조끼가 터지면 그것이 바로 탈출 신호.
“사도들에게 연락해. 준비하라고.”
“알았어.”
로메로는 무전기를 켰다.
떠날 때가 됐지만 스캇은 여전히 아쉬웠다.
이 근거지를 마련하느라 얼마나 고생했는데.
캡슐을 구매하고, 인질 역할과 세례의 재료가 되어줄 일반인들을 모으고, 그들을 세뇌하고···,
순조롭게 성장 궤도에 올라왔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들켜버리고 말았다.
‘종교 단체를 세우는 게 아니었나?’
아니다.
적절한 판단이었다.
미국에,
그것도 남부 지역에,
이와 비슷한 사이비 종교 단체가 얼마나 많나?
글로리 오브 쓰론이란 명칭도 그렇다.
미 전역에 흩어져 있는 사도들을 모으려면 이렇게라도 힌트를 줘야 했다.
‘솔직히 들킬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데···.’
어떻게 콕 집어서 들이닥쳤지?
별다른 사고도 치지 않았다.
게다가 레지키쓰론도 아니고 그냥 ‘쓰론’, 흔하디흔한 말, 이것과 각성 플레이어를 연결할 접점은 없었다.
어쨌든 일은 벌어졌다.
미국보다 더 치안이 엉망인 국가로 숨는다.
절대 들킬 리 없는 곳으로.
그런데 심각한 표정으로 얼굴을 굳히고 있는 로메로.
“으음···,”
무전기를 들고 한참을 헤매고 있었다.
“왜 그래?”
“우리 사도들이 연락을 받지 않아. 헛간, 사료 창고, 심지어 저택 지하실에도.”
“···뭐? 그게 무슨 말인데? 무전기 채널은? 잘못 설정한 거 아니야?”
“이봐, 스캇! 난 바보가 아니야. 몇 번이고 확인했다고.”
“그럼 왜···.”
순간 스캇에게 밀려드는 불길한 느낌.
‘설마 진압 작전이?’
그럴 리 없다.
건물마다 존재하는 수백 명의 인질, 그들 틈에 숨은 각성 플레이어들.
절대 진압은 불가능하다.
누가 누구인지 어떻게 구별하나?
결국 다 죽일 수밖에 없고, 진압과정에서 총소리나 폭음이 울려야 정상인데.
“다시 해봐! 아니면 나갔다 오던지.”
“알았어. 가보고 올게.”
순간!
삐거덕.
열리는 방문.
‘음?’
하지만 방문만 열리고 들어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스캇은 분명 느꼈다.
‘누군가 왔어.’
보이진 않지만 무조건 있다.
공기의 흐름이 달라졌다.
그리고 미세하게 들리는 인기척.
‘···투명화?’
확실하다.
여기, 방안에, 한 사람 더 있다.
“로메로!”
“···왜, 왜?”
“애를 잡아. 빨리!”
순간!
픽, 하고 쓰러지는 소년.
“어?”
“뭐 했어? 잡고만 있으라고 했잖아.”
“···나, 난 아무것도 안 했어. 그냥 잠자는 것 같은데?”
잠을 잔다고?
갑자기?
“퍼킹! 로메로! 격발 장치 꺼내!”
로메로도 알아차린 모양.
“누구냐! 모습을 드러내, 안 그러면 눌러버린다!”
로메로는 주머니에서 폭탄 장치의 격발 장치를 꺼냈다.
스스슷!
온몸에서 돋아나는 용의 비늘.
“못 누를 줄 알아? 우린 폭탄 터져도 안 죽어. 살 수 있다고, 대신 이 꼬마의 몸이 산산조각이 나도 괜찮단 말이지?”
폭탄 격발기의 보호 장치를 해제하는 로메로.
스캇은 슬금슬금 창문 쪽으로 다가갔다.
로메로도 스캇을 따라 움직였다.
격발기를 누르는 동시에 창문 밖으로 탈출하려는 의도.
“좋아! 원하는 대로 터뜨려 주···.”
그때였다.
팟!
허공에서 튀어나오는 도끼.
서걱!
격발기를 든 로메로의 오른손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툭!
“끄아악!”
번쩍번쩍, 섬광을 일으키며 춤을 추는 쌍도끼.
파앗! 츠팟! 파파팟!
도끼가 로메로의 어깨에 박힌다.
가슴팍에도 박힌다.
정수리에도 박힌다.
얼굴의 미간 사이, 광대뼈, 목덜미, 복부와 등짝, 옆구리···,
콱! 콰콱! 콱! 콱! 콱! 콱! 콱···.
현란하게 움직이는 무자비한 도끼질.
몸을 부르르 떨면서 꼼짝도 하지 못한 채 그 도끼를 온몸으로 다 받아내는 로메로.
이윽고,
도끼질이 멈췄다.
고요한 저택의 안방.
기우뚱.
도끼에 의해 만신창이가 된 로메로가 그대로 앞으로 넘어갔다.
털썩,
스캇 딜런은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다.
로메로가 당할 때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어, 어떻게 저런 움직임이.’
언제 나타났지?
어떻게 저렇게 빠르지?
얼마나 강한 힘을 가지고 있길래.
용의 피부가 도끼 몇 방에 썩은 나무처럼 갈라져 버렸다.
로메로는 저항도 못 하고 죽어버렸다.
스캇은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쌍도끼를 든 채 소름 끼치는 눈빛으로 자신을 노려보는 남자.
용의 피어가 발현되고 있었지만 조금도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오히려 자신의 오금이 저려 왔다.
후들거리는 다리, 떨리는 손, 바싹바싹 말라오는 입 안.
‘···싸워야 하나?’
어림도 없는 소리.
저 남자와 맞서는 건 미친 짓.
로메로처럼 자신의 몸도 저 도끼에 의해 난자당할 것이 분명할 터.
꿀꺽,
스캇을 곁눈으로 창문 밖 상황을 주시했다.
아직 진압 작전은 시작되지 않았다.
도망치려면 지금.
찬웅도 지금 놈이 무엇을 하려는지 알았다.
그래서.
“야!”
“···.”
“어디 한번 도망쳐봐.”
“···.”
“가루로 만들어줄게.”
“죽엇!”
순간!
찬웅의 얼굴로 날아오는 시퍼런 단검.
하지만 살짝 고개를 틀어 피하고,
와장창!
창문 유리를 뚫고 총알처럼 쏘아지는 스캇의 몸.
스팟!
찬웅도 잔영을 남기며 사라졌다.
스캇은 전신의 포스를 두 자리에 집중시켰다.
유리창을 깨고 2층 안방에서 농장 앞마당을 향해.
군인들이 농장을 포위하고 있을 테지만 하나도 무섭지 않다.
차라리 군인들을 상대하는 게 쉽지, 저 뒤에 자신을 쫓아오는 정체불명의 남자가 훨씬 두렵다.
땅으로 착지하려는 순간!
서걱!
뜨끔!
발목이 시리다.
“허억!”
스캇은 두 발로 땅을 짚지 못했다.
“이, 이런!”
어느새 잘려져 땅에 나뒹구는 오른발.
츠피릿!
쐐애액!
콰직!
“끄억! ”
기괴한 소리를 내며 스캇의 왼쪽 무릎에 박히는 도끼.
“어허헉,”
스캇은 엎드린 채 필사적으로 도망쳤다.
이미 글렀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벗어나고 싶었다.
저 무시무시한 악마에게서.
찬웅은 천천히 걸어갔다.
벌레처럼 꿈틀거리는 놈.
어린아이에게 폭탄 조끼를 입혀 터뜨리려 했던 새끼다.
이대로 쉽게 죽여야 하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
찬웅은 놈의 머리카락을 움켜잡았다.
“제, 제발···.”
“살려달라고 빌지 마! 역겨우니까.”
“으아아아···,”
찬웅은 한 손을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
그리고,
콱!
“큭!”
도끼를 놈의 심장에 박아넣었다.
“꺼어어억!”
도끼를 통해 놈의 몸속으로 파고드는 찬웅의 포스,
우우웅···,
“지옥에나 가라! 개새끼야.”
포스가 도끼를 통해 놈의 몸속으로 흘러 들어가 침식의 기운을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하체부터 가루가 되어 사라지는 스캇의 육신.
파사사삭!
순식간에 흩날리는 가루.
푸스스스스스···,
결국 스캇은 시체도 남기지 못했다.
농장 밖이 시끄러워졌다.
장갑차가 들어오고 군인들도 안으로 진입하는 중.
찬웅은 인벤토리에서 전화기를 꺼냈다.
“마이클?”
- ···네, 접니다.
“끝났어요. 남은 사람들은 일반인밖에 없어요.”
- 아아···.
“아무튼 빌런 15명 다 죽었으니까 천천히 들어와요. 조심해서.”
빨리 집에 가자.
비행기 시간 얼마 남지 않았다.
스르륵.
사라지는 찬웅의 몸,
팟! 파파파팟!
눈 깜짝할 새 이미 농장 밖을 벗어나고 있었다.
※ ※ ※
마이클 피트 국무 차관보는 망원경을 통해 이미 지켜보고 있었다.
와장창!
유리창을 뚫고 나오는 괴한, 한눈에 알아봤다.
글로리 오브 쓰론의 교주 스캇 딜런.
왜 저렇게 허둥지둥 도망가?
그것도 공포에 질린 얼굴로.
그리고 그 남자가 나타났다.
후드를 뒤집어쓴 동양인 남자.
그의 손에 들린 쌍도끼.
‘···케이.’
맞다.
바로 그였다.
게임 속 아바타 그대로 현실에서 그 모습을 드러냈다.
발목이 잘리고, 무릎이 도끼에 박히고···,
기어코,
프스스스스,
가루가 되어 사라지는 스캇의 육신.
“미, 미친!”
게임에서 아바타가 죽임을 당할 때 나타나는 것과 똑같은 그 현상.
‘···정말이었어?’
섬뜩하다.
사람이 어떻게 가루로?
그리고 걸려온 전화.
농장 안에 각성 플레이어를 모두 다 처리했다는 내용.
그 말을 남기고 케이는 시야에서 사라졌다.
빌 크리스토퍼 FBI 국장도 경악했다.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니겠지? ···무슨 말도 안 되는.”
그러나 저 광경을 목격한 이는 한 둘이 아니었다.
“근데 전화는 누가?”
“케이, 케이에게 걸려왔습니다.”
“···뭐라고 하던가?”
“끝났답니다.”
“음?”
“빌런들 다 처리했다고 천천히 들어오라네요.”
“하하하···.”
군대와 각성 플레이어가 농장 안으로 진입했지만 그 어떤 불상사도 일어나지 않았다.
겁에 질려 두 손을 번쩍 들고 바깥으로 나오는 인질들, 건물 안에서 죽은 듯 잠들어 있는 사람들, 농장 전체에서 발견된 시신은 고작 15구, 아니 하나가 사라졌으니 14구.
케이의 말대로였다.
이미 상황은 끝나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