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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아바타의 재능으로 동화율 돌파-79화 (79/204)

< 글로리 오브 쓰론(2) >

최기병도 로그아웃했지만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APS 직원들은 3일 휴가를 받아 여가를 즐기고 있었고, 심지어 새로 각성한 5명의 플레이어들도 비밀 유지 서약서와 계약서를 작성하고 퇴근했다.

연희동 본부에서 밤부터 아침까지 꼬박 새운 사람은 최기병 혼자뿐.

‘벌써 해가 떴네.’

진(眞) 아이템을 분류하고, 새로운 각성 플레이어들의 자세한 신원도 파악하고, 보고서 작성에, 발표 준비까지.

하지만 희한하게 하나도 피곤하지 않았다.

‘후우, 각성이라니.’

그랬다.

최기병도 각성했다.

각성 플레이어 숫자를 조사하다 혹시 몰라 자신도 상태창을 확인했는데, 떡하니 박혀있는 반영률 스탯.

케이가 준 엔트의 독 저항 열매, 그리고 배리어 아이템과 쉴드 스크롤, 해독 물약 빨아가며 가시 독침에 죽지 않고 간신히 버틴 것이 각성이라는 결과로 돌아온 것.

실무책임자가 각성을 해버렸으니, 난감하기도 하고, 심란하기도 하고, 또 기분이 묘하기도 하고.

‘지금은 급한 거부터 처리하자.’

새벽에 미국 백악관 관리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전에 레지키쓰론의 사도에 의해 슬쩍 정보를 흘렸더니 미국도 조사를 진행한 모양.

자세한 건 밝히지 않았지만 빌런들의 거처를 발견했단다.

현재 심각한 상황이라고 하니, 협조해줘야지.

번역이야 알아서 할 테니까 한글로 작성해서 메일로 넘기고.

그들도 이미 알고 있었다.

케이의 존재를.

물론 자세한 관계까진 파악하지 못한 듯했지만.

다음은 진(眞) 아이템 분류작업.

모두 10개의 진 아이템.

‘마정석이 제일 많군.’

하급, 중급 합쳐서 6개.

그 외에도 중급 체력의 영약, 자원 재생 물약, 무려 현실 포스를 100이나 올려주는 하급 힘의 영약,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소중한 아이템 진(眞) 스킬 구슬 : 파동 찌르기.

‘스킬 구슬을 누구에게 줄지 이것도 고민이네.’

검을 잘 쓰는 사람이라면 우현수.

하지만 고유섭이 신경 쓰이고.

그때였다.

똑똑.

문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

누구지?

“들어오세요.”

이필동 과장이 주뼛거리며 방으로 들어왔다.

“어? 이과장님, 웬일이세요. 집에서 좀 쉬시지.”

“아이고, 쉬기는 뭘 쉽니까? 마음도 복잡하고 해서.”

“밥 먹고 게임만 하는 양반이, 복잡은 무슨.”

복잡하기로 따지면 자신만 할까.

안 그래도 전혀 예상치 못한 각성 때문에 기분이 뒤숭숭한 판에.

“그런데 아침부터 무슨 일입니까?”

“사실 어제 게임 안에서 못한 말이 있는데···.”

“지금 하세요.”

그러자 크게 심호흡하면서 이필동이 말했다.

“저, 가, 각성했습니다.”

“···뭐라고요?”

황당한 표정의 최기병.

하긴 찬웅의 대역, [먹튀왕트롤러] 이필동도 끝까지 살아남았다.

“상태창에 반영률 떴어요. 13%, 동화율은 147%고.”

“왜 어제 얘기를, 아! 맞다. 말할 수 없는 처지였지.”

찬웅을 대신하고 있는 이필동인데, 사람들은 이미 각성한 걸로 알고 있는데, 거기서 또 각성했다고 말할 수는 없었을 터.

“이제 어떡하죠?”

어떡하긴!

“뭐, 계약서 다시 써야죠.”

“그럼 다른 각성 플레이어들과 함께 활동해야 하나요?”

“···.”

이건 좀 생각해봐야 할 문제.

이필동이 활동을 하려면 그도 가상현실 게임 아바타를 공개해야 한다.

하지만 이미 찬웅의 대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상황, 이필동의 대역도 세워야 하나? 대역의 대역을···.

“구종수 형사는? 지금 동화율이 얼맙니까?”

“120%대로 알고 있어요. 최근에 아바타를 만들어서.”

“레벨 차이가 너무 나네. ···어쩔 수 없네요. 일단 이과장님 각성은 숨기는 걸로 합시다.”

“그러죠.”

이필동은 속이 후련하다는 듯 시원하게 미소 지었다.

“최팀장님, 앞으로 나한테 잘하세요. 그래야 내가 보호도 해주고 그러지.”

그러자 같잖다는 듯 코웃음 치는 최기병.

“이과장님.”

“넵!”

“각성 혼자만 한 줄 아세요?”

“에이, 나도 알죠. 5명이잖아요. 아니다. 나까지 6명.”

“거기에 한 명 더 추가해봐요.”

“7명이라고요? 누구···, 어, 서, 설마?”

이필동 과장이 한 손으로 입을 막고 한 손으로는 최기병을 가리켰다.

“최팀장님도?”

“네, 나도.”

잠시, 사무실에 흐르는 침묵.

“어쩌죠? 우리?”

“···뭐, 엎질러진 물이니까, 이제부터 고민해봅시다.”

모난 놈 옆에 있으면 자기도 정 맞는다더니,

케이와 함께하면서 많은 것이 달라졌다.

“좋게 좋게 생각하죠.”

“안 그래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이제 일하자.

이번 침식지 보스 공략으로 얻어낸 성과는 보고서를 작성해서 청와대에 올릴 예정.

앞으로 게임 플레이의 방향이 바뀔 것이다.

사냥만 해서 동화율 올리고 코인을 버는 소극적인 플레이가 아닌 침식지 보스를 직접 공략하는 적극적인 플레이로.

그래야 한다.

게임이 현실 세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변화의 결과가 어떤 형태일런지 아직은 확실치 않다.

그렇다면?

현실에서 게임을 변화시켜야지.

침식지를 정화해서.

※ ※ ※

3일 동안의 휴가.

당연히 찬웅도 휴가를 받았다.

휴가 동안 게임 접속은 잠시 쉴 생각.

아침 일찍 한강 변으로 나왔다.

‘확실히 이동 수단이 있으니 편하긴 해.’

바이크를 타니 금방 도착.

이번 동화율과 반영률 돌파로 인벤토리가 매우 넓어졌다. 그래서 바이크를 인벤토리 안에 보관하는 것도 가능해졌고.

‘가볍게 뛰어볼까?’

이렇게 사람들 틈에 어울려 누리는 평범한 일상.

‘오늘은 백화점에 가서 쇼핑이나 해야겠다.’

입을 옷이 별로 없다.

또 집이 너무 넓어서 채워 넣을 것이 필요하기도 하고,

순간!

저 앞에서 이쪽으로 뛰어오는 젊은 여자 한 명.

한강 변에서 운동하는 처자들을 만나는 거야 이상한 것도 없지만···, 매우 낯이 익다.

‘어···,’

딸기?

그런 것 같다.

상큼한 딸기, 신여은.

그녀는 찬웅의 얼굴을 모르지만 찬웅은 그녀의 얼굴을 안다.

‘많이 이뻐졌네.’

아닌 게 아니라 매우 좋아졌다.

어젯밤 택배로 배달된 상급 치유 물약을 먹었을 터.

‘진짜 서울 좁다, 좁아.’

한강 변에서 운동한다는 말은 예전에 들었다.

그런데 이렇게 우연하게 마주칠 줄이야.

마주 달려오는 딸기, 하지만 찬웅은 그냥 지나쳤다.

아는 체할 상황도 아니었으니까.

스윽,

딸기, 신여은은 달리다가 잠시 멈췄다.

‘음?’

뭔가 이상한 기분을 느껴서였다.

방금 자신을 스쳐 지나갔던 남자.

‘누구지?’

낯설지 않은데,

‘느낌이 이상해. 혹시···,’

에이, 그럴 리가.

케이일 리가 없지.

신여은은 다시 달렸다.

달리는 순간에도 포스는 조금도 사용하지 않았다.

쭉쭉 뻗어나가는 다리.

자유로워진 신체.

달리는 와중에 딸기는 주머니에서 종이 쪼가리 한 장을 꺼냈다.

APS 팀장 [와치맨]에게서 얻어낸 전화번호를 로그아웃하자마자 메모해둔 것.

각성 플레이어들이 함께한다는 APS, 각성 플레이어 전담반.

무엇을 하는 곳인지는 안다.

전화번호를 받기 전 와치맨에게서 간략하게 설명을 들었다.

‘결국 나쁜 사람들 잡는 일이잖아.’

그녀도 천상 용병 플레이어, 또 어쩌면 몬스터보다 플레이어들을 상대하는데 특화된 재능, 그래서 두려움 같은 건 없다.

‘민도연도 가입했다던데, 나라고 안 될 건 없지.’

오랜 투병 생활로 침대에만 누워 있던 터라 사회생활도 해보고 싶고, 소속감도 느끼고 싶고, 가치 있는 일도 해보고 싶은 마음.

그러나 취업에 필요한 스펙도 하나도 없고.

‘어딜 가든 취직 잘 안 될 테니까.’

하지만 허락을 맡아야 할 상대가 있다.

케이.

자신이 이런 고민을 할 수 있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

케이와 APS는 현실에서 작전을 같이 진행하는 사이, 그럼 자신이 APS에 들어간다고 하면 불편해할지도 모른다.

‘하지 말라고 하면 하지 말아야지.’

정 사회생활 하고 싶으면 간단한 아르바이트부터 시작해도 된다.

※ ※ ※

찬웅은 휴가 동안 푹 쉬었다.

게임 접속을 한 번도 안 한 건 아니었다.

로그드라실가서 에루인 만나 감사 인사도 하고, 마키나 공화국 데우스칩과 연구원 마리도 만나서 차 한잔하고, 테라퓨타 마탑 브랜달도 보고.

아무튼 그러고 나서 또 쉬는 중.

그런데,

지이잉, 갑자기 울리는 스마트폰.

‘음?’

이 폰으로 전화가 올 사람은 최기병 팀장 말고는 없는데.

“여보세요.”

- 저, 급한 일이 생겼는데, 잠시 뵐 수 있을까요?

“아! 그렇게 해요, 시간 많으니까.”

- 네, 바로 집 앞에 가겠습니다.

찬웅은 최기병과 만났다.

자동차를 타고 조용한 곳으로 이동해서.

“먼저 보여드릴 것이 있습니다.”

“뭐죠?”

최기병이 꺼낸 건 태블릿.

“미국 텍사스 포스워스 부근의 한 농장에서 촬영된 영상입니다.”

“이걸 왜···. 어?”

찬웅도 확인했다.

농장에 지어진 건물들마다 그려진 상징물, 녹색의 용, 그리고 그 밑에 쓰인 글귀.

“글로리 오브 쓰론?”

“네, 최근 생겨난 신흥 종교 ‘글로리 오브 쓰론’입니다. 쓰론이라는 이름을 유추해볼 때 레지키쓰론의 사도 같습니다. 종교화된 형태로 미국에서 숨어있었고요.”

“···종교?”

“배후에 빌런, 군주의 사도인 각성 플레이어들이 존재하는 게 틀림없습니다.”

세상에!

종교라니, 섬찟하다.

게임 NPC를 신으로 믿어?

헬기에서 찍은 듯한 영상은 계속 재생되었다.

쉴 새 없이 들리는 무전, 농장으로 진입해 들어가는 군인들, 하늘에 뜬 공격용 헬기, 장갑차, 심지어 탱크까지.

하지만.

“아!”

영상에서 들리는 작전 지휘관의 다급한 목소리.

“What? ···Fucking! STOP! STOP!!!”

농장 건물에서 총기를 들고나오는 노인들, 여자들, 그리고 아이들, 각성 플레이어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인질인가요?”

“네, 미국 측에서 추산하기로 최소 1,000여 명 이상의 일반인들이 농장에 있는 걸로 파악했습니다.”

“이 많은 사람이 어디서?”

“아무튼 종교니까, 이들은 일반 신도 같은데,”

어쨌든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로 인해 작전 중지.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젊은 여인 한 명이 자신의 관자놀이에 권총을 갖다대고 그대로 당겨버렸으니까.

타앙!

‘씨발 새끼들이,’

접근하면 무조건 자결하겠다는 의지의 표현, 자발적인 행동은 절대 아닐 것이다.

“안에 각성 플레이어도 있습니까?”

“네, 숫자는 모르지만 확실하게 있습니다. 그것도 꽤 많이.”

“아마 점점 늘어나겠죠.”

농장 안에 캡슐이 있으면, 그래서 일반 사람들이 군주의 세례를 받으면···,

‘이런 식으로 세력을 키우고 있었나?’

하긴 세력 확장에 종교만한 것도 없지.

조심스레 말하는 최기병.

“미국 측에서 케이님을 만나고 싶다는 요청이 왔습니다. 게임 안에서요.”

어떡할까?

일단 만나보자.

※ ※ ※

그라운드 테라.

찬웅은 그곳에서 백악관 관리라는 플레이어와 만났다.

아바타 명 [로켓보이], 실제 이름은···.

“반갑습니다. 미스터 케이, 백안관 국무차관보 마이클 피트입니다.”

“케이입니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마이클 피트.

“한국 APS 소속은 아니시고, 대신 임시 계약 관계인 걸로 파악하고 있습니다만, 의뢰를 주고 대가를 받는···, 맞습니까?”

“맞아요.”

“저희도 케이님께 의뢰를 부탁하고자 합니다.”

의뢰라,

글로리 오브 쓰론, 사이비 종교단체를 처리해달라는 건가?

“미스터 케이는 잠입과 암살에 특화된 스킬을 가지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것까지 알고 있었어?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

지금까지 해온 일이 다 그랬으니까.

“농장 안의 정보가 필요합니다. 인질의 정확한 숫자, 각성 플레이어 숫자는 몇 명인지, 그들이 어느 정도의 무장을 갖추고 있는지···.”

“···,”

미국이 요구하는 건 잠입과 정보 수집.

“충분한 대가를 지불하겠습니다. 원하는 건 뭐든.”

그렇지 않아도 가려고 했다.

대가도 준다고 하니 금상첨화지.

뭘로 할까?

코인?

아니다. 돈은 충분하다.

대신 게임에서 가장 필요한 걸로.

“혹시 미국이 보유하고 있는 탈 것 아이템은 없습니까? 되도록 영웅 등급 이상으로.”

“···아!”

마이클 피트는 살짝 당황했다.

코인을 예상하고 왔는데.

물론 현실과 마찬가지로 게임 속에서도 빠른 탈 것은 필수적인 요소,

‘탈것, 탈것이라···, 그것도 영웅 이상이라면?’

곰곰이 생각하다가.

“아하!”

뭔가 생각났다는 듯 탄성을 지르며.

“우리 미국 정부 소속의 용병 플레이어가 수행하다 실패한 퀘스트가 있습니다. 우린 그걸 탈것과 관련된 퀘스트라고 판단하고 있는데···, 그 퀘스트를 넘겨드리면 안 되겠습니까?”

“공유가 되나요?”

“특정 지역에 진입하면 자동으로 주어지는 퀘스트입니다. 정확한 장소와 거길 들어갈 수 있는 열쇠를 넘겨드리겠습니다.”

괜찮은 것 같다.

코인으로 살 수 있는 탈것은 기껏해야 레어.

하지만 퀘스트라면?

“단! 해결해드리지는 못해요. 불가능하다 싶을 정도의 난이도라서, 160%대의 미국 용병 플레이어도 성공 못 했습니다.”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보상이 좋다는 건 진리.

촉이 온다.

최소 영웅급, 아니면 전설까지도.

“괜찮아요. 제가 받겠습니다.”

“잠시만, 지금 바로 넘겨드리죠.”

메시지를 통해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마이클 피트.

어차피 처리했어야 할 일.

게다가 적당한 대가도 받을 테니.

아무리 먼 나라지만 감히 도마뱀 새끼가 현실에 영향력을 끼치는 짓은 가만히 두고 볼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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