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쟌 침식지 보스 공략(3) >
레이드 준비기간 이틀.
찬웅은 파티원들과 함께 슬슬 사냥하며 손발을 맞춰갔다.
얼마 전 최기병이 테랴퓨타에서 가지고 온 스킬 구슬들, 공격대 인원들에게 골고루 나눠주고 지금은 숙련도를 올리는 중.
스킬 구슬 매입 비용 1500만 코인은 브랜달을 거쳐 찬웅의 계좌로 들어왔다.
코인 시세를 감안하면 한화로 약 800억, 그 돈은 코인 계좌에 고이 모셔뒀다.
오늘은 드디어 카쟌 침식지 보스 공략 당일, 선인장 잡으러 가는 날, 그 전에 대기실에서 사냥하면서 번 코인으로 랜덤 상자를.
[D박스에서 ‘이빨 빠진 구리그릇’ 하나를 획득하셨습니다.]
[D박스에서 ‘가속 물약’ 한 병을 획득하셨습니다.]
[D박스에서 ‘264 D코인’을 획득하셨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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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꽝만 나오지 않았다.
[주신(主神)의 축복이 D박스에 깃듭니다.]
‘오랜만이네.’
[D박스에서 ‘진(眞) 중급 치유 물약’ 한 병을 획득하셨습니다.]
[D박스에서 ‘진(眞) 상급 마정석’ 한 개를 획득하셨습니다.]
치유 물약도 나오고, 마정석도.
[D박스에서 ‘진(眞) 드워프제 미스릴 합금 롱소드’를 획득하셨습니다.]
“오!”
무기 아이템도 나왔다.
그러고 보니 이건 또 처음이네.
[진(眞) 드워프제 미스릴 합금 롱소드]
[등급 : 영웅]
[무기 종류 : 검]
[귀속 여부 : 거래 가능]
[무기 기술 : 샤프니스]
‘영웅이지만 내가 쓸 건 아니구나.’
이건 검이다.
쓸 일 있을까?
‘도끼면 되지.’
어쨌든 득템이니 보관해두면 되고.
찬웅은 카쟌 침식지로 통하는 게이트를 열었다.
화악!
※ ※ ※
카쟌 시내.
레이드를 앞둔 시점이라 그런지 사람들도 많고 분위기도 좋다.
NPC들도 마찬가지.
이방인들이 옛 오아시스에 자리 잡고 있는 침식지 보스를 처리한다고 하자 얼굴에 기대감이 역력한 모습.
드디어 오늘이다.
NPC들의 숙원, 플레이어들에겐 침식지 정화라는 위업, 그리고 딸려오는 이익까지.
찬웅이 나타나자 헐레벌떡 달려오는 최기병.
“케, 케이님!”
“네, 준비는 다 끝나셨죠.”
“그렇긴 한데, 케이님을 찾는 사람들이···,”
“저요? 누가···?”
그러자 저쪽에서 다가오는 사람들.
키가 늘씬, 아름다운 금발, 그리고 귀는 뾰족.
‘엘프? 아!’
한눈에 알아봤다.
10여 명의 엘프들을 이끌고 나타난 레인저 스마엘.
“레인저 스마엘, 오랜만이네요.”
“네, 케이님.”
“그런데 어쩐 일로···.”
“침식지 보스 몬스터 공략하신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왔어요.”
“벌써 소문이 퍼졌나?”
“아마 대륙에서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을 거예요.”
하긴, 침식지 하나가 줄어들지도 모르는데,
또한 레이드를 주도하는 이가 바로 케이, 사실 케이의 이름은 NPC들 사이에서 꽤 많이 알려졌다.
레지키쓰론에게 한 방 먹이고, 잃어버렸던 마키나 공화국의 마그누스 골렘의 엔진 코어를 되찾아줬으며, 축복받은 부유석과 잃어버린 지팡이를 되찾아 마탑 정상화에 깊숙이 관여한 이방인.
그런데 엘프들이 왜···, 그들은 공략 참가도 못 할 텐데.
“에루인 장로님의 전언을 직접 말씀드리려 찾아왔어요.”
“아하,”
그러면 그렇지.
“마, 말할게요. 험험, 사랑하는 제자야. 용감하게 나서서 새역사를 기록하거라···. 어후, 전하는 나도 손발이 막 오그라드네요.”
“하하하, 감사한다고 전해주세요. 그리고 꼭 성공하겠다고,”
“참! 선물도 가져왔어요.”
엘프 스마엘이 작은 자루 하나를 찬웅에게 건넸다.
“이건···.”
뭐지?
아이템 정보가.
[수호신 엔트의 열매]
[등급 : 영웅]
[종류 : 소모품]
[귀속 여부 : 거래 가능]
[효과 : 1회 복용 한정 영구적으로 독성 저항력을 상승시킵니다]
10개의 나무 열매.
맛이 어떨지는 모르지만 그게 중요한가?
‘독 저항력 상승, 마침 제일 필요했던 거네.’
이거 먹고 독 저항의 비약까지 복용하면 맹독 선인장 가시 독침을 상대하기 쉬울 터, 해독 물약도 있으니까.
“감사해요. 잘 먹을게요.”
“꼭 성공하길 바래요.”
찬웅을 찾아온 건 엘프들만이 아니었다.
화려한 로브를 입고 나타난 마법사들.
그중에 6개의 동심원이 그려진 마법사가 나섰다.
“케이님, 부탑주 로미오라고 합니다.”
“어서 오세요.”
“탑주님의 선물을 전해드리려고 찾아왔습니다.”
브랜달이?
“여기, 5서클 등급의 쉴드 주문 마법 스크롤 200장입니다.”
“···.”
이 사람들 왜 이러나.
스킬 구슬 준 것만 해도 감사한데.
“장신구에 걸린 쉴드 마법과는 별개로 작동하는 겁니다. 중첩할 수 있고, 또 연속 사용도 가능합니다.”
타락한 맹독 선인장 공략에서 필수적인 아이템.
“정말 고마워요. 꼭 필요했던 건데, 탑주님께 잘 쓰겠다고 전해주세요.”
“하하, 탑주님도 좋아하시겠네요. 부디 이 대륙에 아직 희망이 있다는 걸 보여주십시오.”
마법사들도 대륙의 원주민들이다.
당연히 침식지를 해결하는 건 그들의 숙원이고.
순간,
“어이, 용건 끝났으면 그만 꺼지지? 잘난 척하지 말고.”
어느새 나타난 작고 귀여운 소녀.
찬웅은 그녀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마키나 공화국 뉴팩토리 중앙 마공학 연구소 직원 마리.
“···건방진 기름쟁이 년이 어디서? 케이님께 감사해라. 이분이 아니었으면 넌 오늘 여기서 죽었을 테니까.”
“아이고, 무섭네, 무서워. 허접한 마법사 놈들이, 너 나중에 보자.”
마리가 찬웅에게 달려와 꾸벅 인사부터 했다.
“오랜만에 뵙네요. 명예 연구원 케이님.”
“반가워요. 마리.”
“데우스칩님이 지시하셔서 저도 선물 드리려고 왔어요.”
“무슨?”
“마키나 공화국 연금술사들과 마공학자들이 심혈을 기울여서 만든 물건이랍니다. 여기 허리띠에 부착하는 건데···,”
마리가 가져온 건 수십 개의 총알 같은 것이 달린 길다란 탄띠.
“30개의 가속 앰플 자동 주입기랍니다.”
“가속 앰플?”
“가속 물약의 업그레이드 버전이에요. 이건 유지 시간이 30초, 재사용 대기 시간 1분. 그리고 에고 허리띠에 부착해서 의식만 하면 자동으로 주입되어요.”
기존 가속 물약은 유지 시간 10초, 쿨타임 10분이니 비교도 안 되는 물건,
이거 괜찮다.
바람길 산책 효율을 극대화해줄 아이템.
“···이거 더 있나요?”
“하아, 재료가 많이 들어서, 많이 만들려고 했는데 30개밖에, 죄송해요.”
“아, 아뇨! 정말 감사합니다, 데우스칩님에게 고맙다고 전해주세요.”
“네!”
예감이 좋다.
무조건 성공한다.
그 모습에 APS 소속 플레이어들은 말이 없었다.
도대체 믿지 못할 일들이 계속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엘프에, 마법사에, 중앙 마공학 연구소까지.
“저 케이라는 양반, 듀플렉스 스페이스 게임회사 대표인가?”
“한국 사람이라던데.”
“그럼 NPC들이 왜?”
“그거야 나도 모르지.”
최기병도 용건이 있었다.
NPC들과 인사가 끝나자 두 명의 낯선 플레이어들을 데리고 찬웅에게 다가와,
“이분들은?”
“투자자들입니다. 화정 그룹 소속의···.”
2천만 코인을 투자한 후원자들.
“아버지에게 말씀 많이 들었어요. 정지은입니다.”
“케이입니다.”
“정지혁입니다. 아버지께서 안부 좀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
“네, 저도 안부 전해주세요.”
누군지 짐작이 간다.
화정 그룹 정규광 회장의 자식들, 가족이라면 믿을 수 있겠지.
최기병이 화정 그룹에 처음 제안서를 건넸을 때 정규광 회장이 제일 먼저 한 질문이 있었다.
‘케이는? 참가하는 건가?’
‘외부 조력자로 참여할 예정입니다.’
‘그렇군. 그럼 우리가 투자하지. 참! 다른 기업에도 제안서를 보냈나?’
‘네, 최소 2천만 코인을 예산으로 잡고 있어서.’
‘다른 데는 안 가도 되네.’
‘네?’
‘우리가 다 부담하지. 대신 그만큼의 초대권을 배정해주고,’
그래서 얻어낸 금액이 2천만 코인, 다른 기업에선 응답이 없었으니 당연히 초대권도 2장을 배정해줬다.
이제 공략하러 가야 한다.
너무 지체했다.
“빨리 출발하죠.”
“네.”
그리하여 탈것을 탄 약 150명의 공격대가 카쟌을 출발해 침식지로 향했다.
※ ※ ※
APS 공격대가 떠나고 한 시간 후, 카쟌 시내에 또 다른 플레이어들이 속속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거의 [대국]이라는 명칭을 달고 있는 그들.
“한국 놈들은?”
“한 시간 전에 침식지로 출발했습니다.”
“좋아! 다 모이면 천천히 따라간다.”
중국이라는 나라답게 무려 500명이 시내에 모였다.
그들을 지휘하는 건 진위앙의 참모 더우렌, 아바타명 [중화의별].
더우렌은 중화각성용사는 아니지만 군 장교 출신으로 대규모 병력을 지휘하는데 능란한 인물,
“계획은 단순하다. 한국 공격대의 뒤를 쫓아서 놈들이 보스를 공략할 때까지 기다린다. 그리고 성공할 기미가 보이면 즉시 뒤를 친다.”
“놈들이 실패해서 전멸하면요?”
“그럼 빠져야지. 단! [케이]는 살아있으면 안 돼! 반드시 죽여야 해. 놈이 제 1목표야.”
“알겠습니다.”
더우렌의 지시는 은밀하게 각 조장에게 전해졌고, 조장들은 조원들에게 지시했다.
하지만 그들이 실수한 것이 있었다.
가까이 있어 굳이 친구 메시지 기능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
물론 누구도 듣지 못하게 조용히 입에서 귀로 전했지만 카쟌 시내엔 플레이어들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그들이 나누는 대화를 귀 밝은 NPC 하나가 듣고 있었다는 걸.
그 귀 밝은 NPC가 엘프들이 부리는 바람의 정령이라는 걸.
정령에게서 사실을 듣고 화가 난 엘프 레인저 스마엘이 활줄을 활대에 걸었다.
그녀가 데리고 온 10명의 레인저들도 마찬가지.
“하! 이런 미친놈들을 봤나? 감히 케이님을?”
테라퓨타의 부탑주 로미오가 완드를 뽑아 들었다.
그를 따르는 6명의 마법사들도,
“오랜만에 몸 좀 풀겠군. 싹 녹여주지.”
중앙 마공학 연구소에서 파견나온 연구원 마리는,
“침식지에 들어가기 전에 끝내야겠네. 케이님이 귀찮아하실지 모르니까.”
그러자 부탑주 로미오가 실실거리며 말했다.
“기름쟁이년아, 넌 혼자잖아. 괜히 끼어들어서 귀찮게 하지 말고 네 집으로 꺼져.”
피식, 하면서 로미오를 비웃는 마리.
“내가 혼자 온 줄 알아?”
그러면서 마리는 자신의 손목을 툭툭 쳤다.
“이거 출장용 아공간 팔찌야. 여기 뭐가 들어있는지 모르지?”
“···뭐, 기껏해야 골렘 정도겠군.”
“그래 맞아. 기껏 골렘이다. 혼자 출장 나온 중앙 마공학 연구원이 얼마나 무서운지 보여줄게.”
“크크크, 좋다. 기대되는군. 어디 마음껏 날뛰어봐라. 뒤는 내가 보조해주지.”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어.”
서로 사이가 좋지 않은 그들이지만 목표가 하나로 합쳐졌으니 이 순간만큼은 한마음 한뜻이었다.
한국 APS, 후방 지원팀 소속, 용병 플레이어들도 성문 밖을 빠져나가는 500명의 공격대를 목격했다.
아바타명이 하나같이 [대국], 누구겠나? 그리고 왜 여기 왔겠나? 저 대규모 공격대가 말이다.
“씨발, 중국 놈들이,”
“빨리 팀장님께 메시지 날려. 500명의 중국 플레이어 공격대가 접근한다고,”
“넌?”
“조용히 뒤따라 가봐야지.”
“알았어. 들키지 말고, 문제 있으면 메시지 줘.”
※ ※ ※
더우렌이 지휘하는 500명의 중국 공격대가 카쟌 성문을 빠져나갔다.
“탈것을 꺼내! 천천히 출발한다. 놈들의 흔적을 쫓아.”
10열씩 줄을 맞춰 침식지로 행군하는 공격대, 더우렌의 가슴이 웅장해졌다.
급조해서 만든 공격대가 이 정도다.
시간이 더 있었다면 1,000명, 아니 2,000명, 3,000명도 조직할 수 있을 터, 이것이 중국의 저력.
‘쯧, 한국의 플레이어 따위가.’
솔직히 더우렌은 케이를 영입하려는 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놈이 범상치 않은 놈이라는 건 안다.
그러나 그래봤자 작은 소국의 일개 플레이어, 혼자서 뭘 하겠다고?
‘영입 시도가 불발된 것이 오히려 다행이야.’
이제 놈은 중국 인민 플레이어의 공식적인 표적이 됐다.
선택해야 할 것이다.
게임을 접든지, 아니면 엎드려 빌든지.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음?”
중국 공격대의 앞을 막고선 한 명의 소녀.
플레이어는 아니고, NPC로 보이는데.
“넌 뭐냐?”
“알 거 없고, 너희들은 여기 못 지나가.”
“···뭐? 이 새파랗게 어린 년이”
“잠깐만 기다려.”
연구원 마리는 사막 모래 위에 한 손을 짚었다.
그러자 삽시간에 그려지는 마법진.
“어···,”
뭐하는 거지?
더우렌은 불길한 기분을 느꼈다.
그래서 막으려고 했는데,
스팟! 파파팟!
쿠쿵! 쿠쿠쿠쿵!
모래 위를 뚫고 나오는 거대한 머리 하나.
‘로, 로봇?’
그럴 리가, 이 게임은 판타지 배경인데.
그럼?
“···골렘.”
그랬다.
대형 강철 골렘이었다.
중앙 마공학 연구소가 자랑하는 기가급 엔진 코어를 지닌 전투형 골렘 2기.
“이런,”
그뿐만이 아니었다.
“커컹! 컹컹! 컹!”
“컹컹컹!”
“크르르렁,”
역시 모래를 뚫고 나오는 10마리의 소형 골렘 경비견들.
청순한 얼굴의 연구원 마리가,
“자, 앞 열부터 순서대로···,”
골렘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죽여버려!”
쿵! 쿵! 쿵!
두두두두두!
골렘들이 돌진해오자 더우렌이 크게 소리쳤다.
“전투 준비! 어차피 몇 마리 안 돼! 거리를 벌려! 그리고 한 놈씩···, 응?”
말하다 말고 갑자기 하늘을 쳐다보는 더우렌.
무슨 매캐한 냄새가 나는데···,
“어?”
중국 각성 플레이어들도 목격했다.
이글이글 뜨거운 열기를 내뿜으며 하늘 위에 떠 있는 수십 개의 불덩어리들을.
“저건 또 무슨···,”
화륵! 화르르르,
후방에서 마법사 NPC 무리가 손을 위로 치켜든 채 주문을 캐스팅하고 있었다.
“피, 피해!”
“으아아아아···,”
마치 폭탄처럼 떨어지는 파이어볼.
콰쾅! 쾅쾅쾅!
기겁한 중국 각성 플레이어들이 이리저리 흩어졌다.
“도, 도망가! 무조건 침식지까지 달린다. 그럼 놈들은 쫓아오지 못해. 빠, 빨리.”
하지만,
퉁퉁, 투투퉁!
경쾌하게 들리는 줄 튕기는 소리.
푹! 푸푸푹!
저편에서 날아와 백발백중으로 중국 플레이어들의 머리에 헤드샷으로 꽂히는 화살,
“···엘프?”
골렘을 부리는 소녀에, 마법사들, 엘프까지?
근데 왜 우릴?
더우렌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