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쟌 침식지 보스 공략(2) >
여러 가지 이유가 있긴 하지만 찬웅이 이번 카쟌 침식지 레이드를 계획한 가장 중요한 명분은 침식 때문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침식의 기운을 달고 밖으로 나오는 빌런 각성 플레이어들, 평범한 빌런들도 버거운 판에 뚜렷한 목적성을 가진 놈들이 나타나 세상을 어지럽히면 어떻게 될까?
‘그런 놈들이 100명만 나타나도 나라가 망할 수도 있어.’
한국뿐이라면 말도 안 한다.
지금도 빌런 각성 플레이어로 의심되는 강력 사건들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
이제 병도 고치고, 돈도 벌고, 집도 사고 살만해졌는데, 나라가 망해?
‘절대 안 되지.’
당장 현장에서 수거한 백상억의 스마트폰만 봐도 그렇다.
레지키쓰론의 사도, 빌런 각성 플레이어로 의심되는 놈이 일본에 있고, 그럼 분명 거기서도 놈들이 활동하고 있을 터.
‘하지만 일본까지 갈 필요는 없지.’
한국만 신경 쓰기도 바쁘다.
그라운드 테라에서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등에서 스카웃을 요청해왔지만 찬웅은 한국을 떠날 생각이 없다.
몇십 년 전이었으면 모를까, 현재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이 바로 한국 아닌가.
‘한국에서 편하게 살자.’
아무런 걱정 없이.
그렇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간단하다.
‘원인이 되는 뿌리를 제거해야 해.’
로그드라실 침식지 보스 레지키쓰론.
하지만 지금 실력으로선 무리.
이 듀플렉스 스페이스 세상은 어디까지나 게임이다.
아니 게임의 방식으로 움직이는 또 하나의 현실이다.
게임의 법칙, 당장 공략할 수 있는 약한 놈부터 처리하면서 차근차근 레벨업, 동화율 돌파, 스킬 숙련도 올리고.
카쟌 침식지 ‘타락한 맹독 선인장’은 거쳐 가는 놈일 뿐.
그런 식으로 최종목표 광룡, 도마뱀 새끼에게 다가간다.
찬웅은 딸기와 함께 카쟌 침식지로 왔다.
그가 게임을 제일 처음 시작한 곳.
여기서 딸기와도 처음 만났고.
레이드를 위해 APS, 한국 각성 플레이어 전담반 전 인원들도 카쟌에 모였다.
총 152명의 플레이어, 일반 플레이어 144명과 6명의 각성 플레이어.
“말씀드렸듯이 이번 레이드는 APS 독자적으로 진행합니다. 하지만 외부 인원 2분을 초빙했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두 명의 남녀로 모인다.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딸기.
“로그드라실 방어전 공적 순위 10위에 빛나는 상큼한 딸기님, 그리고 케이님입니다. 전에 마키나 공화국 침식지 올드 팩토리에서 한 번 만난 적 있죠?”
그리고 이제야 기억이 난다는 듯 수군수군 말하는 플레이어들.
“아하!”
“그때 그···,”
“우리가 고기 방패였지 않나? 설마 이번에도···.”
“난 괜찮음. 그때 받은 배리어 생성 아이템, 아직도 요긴하게 써먹고 있잖아.”
“그렇지.”
중앙 마공학 연구소에서 생산한 배리어 아이템, 쉴드보다 더 효율이 좋고, 쿨타임도 1분으로 짧을뿐더러, 등급도 무려 영웅, 이건 랜덤 상자를 까야 나온다.
그런데 그 배리어 아이템이 무려 150개.
“이번엔 뭐 없나?”
“야! 또 바래면 도둑놈이지.”
“사실 우리 것도 아니잖아. APS 장비인데,”
최기병이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여러분들에게 확실하게 도움이 될 보상이 있습니다.”
“오!”
“뭡니까?”
“알려주세요.”
모두 기대에 찬 표정.
“공격대 전원에게 중급 스킬 구슬 하나씩 지급될 예정입니다. 스킬 종류는 특성과 성향에 따라 구분해서 드릴 거고요.”
“···중급?”
“대, 대박!”
“고기 방패도 괜찮네.”
일반 플레이어는 중급이지만 각성 플레이어는 상급으로 지급할 예정, 물론 그런 사실까지는 알려줄 필요는 없고.
“이번엔 고기 방패 아닙니다. 레이드 사냥입니다. 여러분 역할 굉장히 중요하고. 자, 그럼 간단한 파티 사냥으로 레이드 준비 시작합시다. 조 편성 시작할 테니 잘 들어주세요.”
떠들썩한 플레이어들을 뒤로하고 찬웅은 딸기와 대화 중이었다.
“일상생활은 조금 나아졌나요?”
“엄청요. 전 정말 제가 뛰어다닐 거라 생각도 못 했어요.”
“포스를 사용하지 않으면?”
“으음, 솔직히 많이 불편하죠. 그래서 하루에 많이 못 움직여요, 포스가 딸려서,”
찬웅은 딸기가 끝까지 살아남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성황의 축복도 받고 랜덤 박스를 까서 치유 물약도 뽑아냈으면 하는 마음.
“제가 무조건 보호해드릴게요. 케이님 움직이기 편하게.”
“살아남는 데 주력하세요.”
“여기서 백번 죽어도 상관없어요. 동화율 떨어지면 다시 올리면 되잖아요.”
“그럼 오랜만에 손발이나 맞춰봅시다. 저 사람들과 함께.”
“누구···, 아!”
딸기의 눈에 한곳에 모여있는 플레이어들이 보였다.
“저 사람들이 각성 플레이어?”
“맞아요. 총 5명.”
“[재능만점축케], [잠수군바리], [봉선미], [칼리파], [먹튀왕트롤러]···, 먹튀왕은 아바타 명이 왜 저래요? 어, 여자 아바타도 있네? 으흠, [롤리롤리팝]?”
“롤리팝 민도연이랍니다.”
“···네? 그, 그냥 이름이 민도연을 아닐 테고, 설마 그 민도연?”
“맞아요. 한류스타.”
“와!”
잠시 놀랐다가 다른 생각이 드는지 물끄러미 그들을 바라보는 딸기.
“케이님,”
“왜요?”
“저, 저도 APS에 들어간다고 하면···,”
“글쎄요. 그건 딸기씨가 선택해야죠.”
서 있으면 앉고 싶고, 앉아있으면 눕고 싶은 것이 사람 마음.
상큼한 딸기, 신여은의 마음이 그랬다.
오랫동안 투병 생활로 사회생활은 꿈도 꾸지 못했던 그녀.
지금은 밖으로 나다닐 정도로 좋아졌다.
실제 현실에서 사람들과 교류하고 싶은 마음이 왜 없을까?
하지만 현재로선 어렵다.
각성 플레이어긴 하지만 아직은 몸이 불편해서 일상생활만 겨우 하고 있으니까.
찬웅도 그녀의 마음을 알 것 같다.
자신도 그랬으니까.
집에만 틀어박혀 생활하는 것이 얼마나 고역인데.
APS 소속, 각성 플레이어도 찬웅과 딸기에 관해 이야기하는 중.
“저분이 케이님이구나.”
“게임 안에서 처음 봐?”
“네, 전 그때 군부대에서···,”
“저도요, 저분 아니었으면 우린 죽었겠죠. 그러고 보니 고맙다는 말도 못 했네요.”
봉춘섭과 마태길은 당장이라도 달려가 말이라도 걸어보고 싶었다.
“찬웅씬 어때요? 케이님 처음 보죠?”
“어음, 저, 저도 말씀은 많이 들었습니다.”
게임 속 찬웅의 아바타를 대신하는 이필동이 대충 얼버무렸다.
“민도연씨는?”
“저도 딱 한 번 봤죠. 현실에서, 저도 저분 아니었으면 죽었어요.”
케이.
민도연이 APS 가입을 결정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다.
혹시라도 이곳에서 활동하다 보면 다시 만날 기회가 생길 거라 여겼기 때문에.
‘근데, 쟤는 누구지? 상큼한 딸기? 아바타 명이 너무 유아틱 해.’
또한 그녀가 케이의 옆에 딱 붙어 있는 모습도 거슬린다.
‘···둘이 친한가?’
다른 플레이어도 딸기가 궁금한가 보다.
마태길이 각성 플레이어들에게 물었다.
“선배님, 저 상큼한 딸기라는 플레이어는 어떤 분이죠?”
“나도 몰라. 처음 봐. 로드그라실 이벤트 공적 순위가 10위라는 거 말고는.”
“케이님과 같이 다니는데 평범하진 않겠지.”
“갑옷하고 무기, 방패 보니까 돈 좀 발랐네요. 실력은 어떨까요?”
“이따가 같이 사냥해보면 알겠지.”
민도연은 살짝 후회됐다.
딸기에 비하면 자신의 장비가 조금 초라하다.
‘흐음, 현질 좀 하고 올 걸 그랬나?’
돈이야 쓸 만큼 있으니.
특히 상큼한 딸기의 톱날 칼과 방패가 부러웠다.
노출도가 심한 갑옷도 그렇고,
‘이따가 랜덤 박스나 까보자.’
※ ※ ※
대현 그룹 대회의실에서 열린 긴급 임원진 회의, 표창주 회장이 직접 회의를 주재하고 있었다.
“한 명씩 말해봐. 이 제안 어떻게 생각하나?”
그러자 대현의 부회장을 비롯해 각 사장단들이 의견을 내기 시작했다.
“전 부정적으로 봅니다. 만약 성공한다면야 1,000억이라도 투자를 해보겠지만···.”
“맞아요. 성공 가능성이 전혀 없습니다.”
“이건 보험도 못 드는 투자니, 차라리 그 돈 주고 진(眞) 아이템 매입이나 하는 게 좋죠.”
“저도 반댑니다.”
“저도.”
APS에서 온 제안에 대한 사장단들의 의견이 대부분 그랬다.
침식지 보스 공략을 계획 중인데, 성공하면 헤스티아 성국 대신전 초대권을 한 장 배정할 테니 코인을 투자하라는 것.
물론 공략 성공하면 대박이다.
얻을 수 있는 과실이 엄청나다.
이젠 비밀도 아니다.
랜덤 상자 깔 때 주신의 축복이라는 메시지가 들리면 100% 진 아이템을 획득하니까.
현재 미국에서 임상 시험 중인 신약들.
단백질 프로틴이나 스테로이드 제제를 대신할 수 있는 열화판 체력의 영약, 해독 물약을 토대로 만들어진 항독소제.
신약 부문만 그런가?
쉴드 반지에서 뽑아낸 충격 완화 기술도 거의 상용화 단계에 왔단다.
한국도 마찬가지.
얼마 전에 진(眞) 치유 물약을 낙찰받은 리셀트 제약은 피를 단숨에 멎게 하고 외상을 수 분 안에 완전하게 치료할 수 있는 치료제를 개발 중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활력의 영약만 얻으면?
대현의 표창주 회장은 화정 그룹 정규광 회장이 너무나 부럽다.
지팡이도 짚지 않고 생생하게 걸어 다니고, 골프, 테니스, 수영에, 별짓을 다 하고 다닌다.
“그러고 보니 화정 그룹은? 정규광이 반응은 어떤가? 놈도 예전에 카쟌 공략에 자본을 댔다가 실패했었지?”
“···아! 그, 그게 조금 이상해서.”
“뭔가? 말해보게.”
“화정 그룹에서 상당히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습니다. 들려오는 정보에 의하면 2천만 코인을 투자할 용의가 있다며 초대권을 2장 요구했다던데···.”
“응?”
의아한 얼굴의 표창주.
장규광이 적극적으로 움직인다고?
‘그 돈 귀신이?’
확실한 이익이 보장되어 있지 않으면 10원도 아까워할 놈이다.
그런데 2천만 코인을 투자한다라···.
“욕심이 정회장 눈을 멀게 했군.”
“활력의 영약 맛을 보더니, 앞뒤 안 보고 달려드는 거죠.”
“쯧쯧, 확실하지도 않은 사업에 2천만 코인을 태워? 실패하고 나서 정규광이가 지을 표정이 궁금하구만.”
대현뿐만이 아니었다.
오성 그룹, 세경 그룹, GL 그룹, HTS 그룹···, 모두 회의적이었다.
그래서 참여한 기업은 화정 그룹 말고는 없었다.
※ ※ ※
한국의 APS에서 카쟌 침식지 공략 시도 계획은 전 세계로 알려졌다.
중국 상하이 각성 플레이어 관리청 본부.
진위앙은 심기가 편치 않다.
‘거지새끼들이, 감히 날 엿 먹여?’
그라운드 테라, 건방진 태도의 케이와 최기병의 비릿한 미소가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게다가 분수도 모르고 보스 공략?
실패할 것이 뻔하지만···.
“관리청 인원 300, 아니 500명 선별해서 카쟌으로 투입 시켜.”
“네?”
“그럴 리 없겠지만 한국 놈들 보스 레이드 공략이 성공할 기미가 보이면···,”
“아! 알겠습니다. 우리가 먹어야죠.”
“단 한 놈도 살아서 귀환하지 못 하게 해.”
“네, 알겠습니다.”
미국.
마이클 피트 국무 차관보가 워싱턴의 조용한 커피숍에서 미국의 각성 플레이어 [애널써커]와 만났다.
애널써커의 본명은 알렉스 파에톤.
그와 만난 이유는 한국에서 계획하는 카쟌 침식지 성공 가능성을 묻기 위해서다.
왜냐하면 카쟌 공약 경험이 있는 플레이어이기 때문에.
비록 실패했지만···.
알렉스는 카쟌 침식지 공략 가능성을 한마디로 일축했다.
“불가능합니다.”
“그런가요? 보스 능력치로 따지면 토끼굴 보스와 비슷한 수준인 걸로 아는데.”
“그보다 훨씬 떨어져요. 선인장이잖아요. 갠 움직이지도 못하죠. 폭풍 뒷발 광토끼는 빠르기나 하지만.”
“네?”
마이클 피트는 의아한 표정.
불가능하다면서 또 훨씬 못하다는 건 뭐지?
그러자 알렉스, 애널써커가 말을 이었다.
“자, 일단 보스 서식지를 가려면 오염된 사막 왕도마뱀을 영역을 통과해야 하는데, 숫자가 매우 많습니다. 그래서 공격대가 필요하고요.”
“몇 명이나?”
“한 200명에서 300명쯤? 왕도마뱀 뚫는 데만 반나절 정도 걸립니다.”
그 정도 숫자의 공격대 인원 맞추는 건 어렵지 않을 테고.
“통과하면 그때부터가 본격적인 공략 시작입니다. 움직이지 못하기 때문에 자기 곁으로 접근하는 걸 끔찍하게 싫어하는 놈을 상대로.”
“어떻게 접근을 막습니까?”
“일정 영역 안에 플레이어가 들어가면 놈이 가시 공격을 날리는데, 그게 기관총처럼 쏟아집니다.”
“···기관총?”
“영화 본 적 있죠? 무슨 일병 구하기. 첫 장면에서 나치 놈들의 MG-42 기관총 쏘는 거.”
“네, 봤습니다.”
“그거와 비슷합니다. 가시 기관총.”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간다.
약하기 때문에, 아예 접근 못 하게 한다는 의미.
“그냥 무차별 난사, 물론 쉴드로 서너 방쯤은 막을 순 있죠. 근데 끊이지 않고 계속 쏴. 플레이어가 제 영역을 벗어날 때까지, 블링크 펼쳐도 접근하다 뒈져요.”
“흐음, 가시를 맞아주고 무식하게 돌진하면 어떻습니까?”
“하하하, 보스 네임이 뭐죠? 타락한 맹독 선인장입니다. 가시 하나하나가 다 독이에요.”
“···그렇다는 말은?”
“일단 보스 가까이 도착하기만 하면 이깁니다. 약하니까. 하지만 거기까지 가는 건···.”
“불가능하겠군요.”
“네.”
한국도 분명 이걸 알고 있을 텐데···.
어떻게 공략하겠다고.
‘안될 거야.’
케이라는 플레이어가 참가한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애널써커도 못하는 일을 할 수나 있을까?
그래서 마이클 피트는 거의 확신했다.
‘아마 전처럼 무리하게 달려들다 전멸하겠지.’
자타 공인 세계 최강의 플레이어이자 각성자인 애널써커, 알렉스 파에톤이 그렇게 말했으니까.
‘그건 그렇고, 현실에서도 침식이 나타난다라···.’
한국에서 넘어온 정보.
침식지 보스 NPC에게 지배를 받는 빌런 각성 플레이어들이 존재한다는 것.
‘얼토당토않은 이야기지만,’
애초에 이 게임 자체가 그렇지 않나.
‘조사는 해봐야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