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아바타의 재능으로 동화율 돌파-67화 (67/204)

< 침식의 원인 >

앨런 메사크가 올린 SNS 메시지는 이번에도 엄청난 파급력을 자랑했다.

- 나 사기당했다. 잡화점에서 저주 구슬을 스킬 구슬로 속여 팔았어. 퍼킹! 플레이어끼린 그렇다 쳐도 NPC가 사기를 쳐? 게임 운영진은 책임져야 할 거야. 절대 그냥 넘어가지··· ···,

#그라운드 테라 잡화점 #가짜 스킬 구슬 #인벤토리 폭파 저주 #모든 아이템 강제 드랍 #마법사? 마기꾼? #본사 항의

불과 몇 시간 안에 전 세계로 퍼 날라져 관심이 집중됐고.

조롱과,

└ 크크크, 천하의 앨런 메사크가 사기를 당했다고?

└ 진짜라면 너무 좋은데?

└ 형! 형도 몇 년 전에 코인으로 사기 친 적 있잖아. 기억 안 나?

└ 저 형 또 관심 고팠네.

의심.

└ 인벤토리 폭파 저주라, 난 처음 들어봐.

└ 그래, 인벤토리가 터진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지.

└ 아니, 마법사 NPC들이 뭐가 아쉬워서 플레이어 인벤토리를 털어?

└ 그건 그렇지. 부유왕국이면 듀플렉스 대륙에서 제일 돈 많은 동네 아니냐!

└ 부유가 그 부유였어?

대부분 ‘저 새끼 또 지랄하는구나.’ 하는 반응이지만 오직 찬웅만 앨런이 왜 그런 일을 당했는지 알아챘다.

저건 일종의 실험이다.

인벤토리가 진짜 폭파되는지 알아보기 위한 실험.

‘이 새끼들 봐라?’

인벤토리 폭파, 바보가 아닌 이상 모를 리가 있나, 마법사들의 목표가 누구인지.

‘앞에선 싹싹하게 웃다가 뒤에선 이런 짓을 꾸미고 있었네.’

만약 이걸 몰랐다면 어땠을까.

아마 꼼짝없이 당했을 터.

‘가짜 스킬 구슬을 진짜로 보이게 만들어서 먹인 모양인데···.’

그럼 환각 마법?

보통 마법사들이 했다면 금방 발각됐을 것이다.

플레이어들에겐 아이템 정보를 확인하는 능력이 있으니까.

‘플레이어들의 눈을 가릴 정도라면···.’

최소 7서클.

그럼 부탑주 또는 탑주가 관련되었을 수도 있고.

그러나 이 사실을 안 순간 마법사들의 실험은 아무런 의미 없는 짓이 되어버렸다.

어림도 없는 수작.

‘알고도 당하면 바보지.’

어떡할까?

도시를 떠나는 것이 제일 간단하다.

안 보면 그만이다.

부유석은 대기실에 던져둬도 되고.

하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하지.

‘단단히 혼을 내줘야 하는데.’

그건 퀘스트 끝내놓고 천천히 생각하자.

찬웅은 게임에 접속했다.

언제나 첫 장소는 대기실.

대기실에 달린 이동 게이트들.

‘음?’

원래는 카쟌, 로그드라실, 마키나 공화국, 그라운드 테라였지만···, 표지판 글씨가 모조리 하나로 통일되어 있었다.

<테라퓨타 마탑 지하 비고>

어디로 가든 지하 비고에 도착한다.

‘아직 최종 퀘스트 끝나지 않았다는 거구나.’

뭐가 남았을까?

찬웅은 아무 문이나 잡아 열어젖혔다.

화아악!

“케이님!”

“아! 먼저 와 계셨네요.”

비고 입구에서 먼저 와 기다리고 있는 상큼한 딸기.

그런데 뭔가 할 말이 있는가 보다.

“저 있잖아요. 앨런 메사크라고 전기 자동차 CEO가 SNS에···.”

“알고 있습니다.”

“···네?”

“인벤토리 폭파 말이죠?”

“아하, 알고 계셨구나. 그럼 어떻게?”

“차차 생각해봐야죠.”

아무튼 퀘스트부터.

침식당한 마법사들을 잡으라는 건 다 완료됐고,

그때였다.

띠링!

[마지막 연계 퀘스트가 시작됩니다.]

‘뭘까?’

- 지하 비고 정화(2)

- 완료 조건 : 봉인된 지하 비고에서 침식의 원인을 제거하세요.(0/1)

- 보상 : 동화율과 반영률 상승 + 확인되지 않은 보상.

- 페널티 : 30분 시간제한. 초과시 퀘스트 실패.

‘흐음, 역시.’

침식지도 아닌데 침식당한 마법사들이 나타났다면 분명 그 원인도 있을 터, 마지막 퀘스트가 침식의 원인 제거라는 건 지극히 당연하다.

그런데 페널티라니.

30분 제한이라고?

만약 퀘스트가 실패하면 어떻게 되지?

“딸기씨, 현재 동화율은?”

“142%, 1% 올랐어요. 반영률은 그대로고요.”

막판에 죽어 퀘스트 완료 경험치를 받지 못한 딸기.

반면 현재 찬웅의 동화율은 161%, 반영률은 44%.

최소 7서클보다는 강한 놈이 나올 것 같은데, 조금 모자란가?

“빨리 움직여보죠.”

침식의 원인이 어디 있는지 아는 건 쉽다.

지금도 그 기분 나쁜 기운이 비고 안쪽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었으니까.

마법사들과 처음 싸웠던 장소를 지나고, 헬파이어로 인해 엉망으로 녹아버린 복도를 통과해서 계속 들어갔다.

‘어후,’

저릿저릿하다.

점점 더 농밀해진다.

찬웅은 직감했다.

이 복도를 지나면 침식의 원인이 보일 터.

이걸 진짜 30분 안에 끝내라고?

우뚝!

찬웅은 잠시 멈춰 섰다.

“풀도핑 해요.”

“네!”

비약은 미리 복용, 물약은 언제라도 마실 수 있게 꺼내서 준비.

심상치 않다.

7서클 침식 마법사 상대할 때보다 더 강력한 기운이 저 너머에서 느껴진다.

‘설마 8서클? ···아니야.’

이런 느낌을 받은 적이 있긴 하다.

로그드라실, 웨이브 방어전, 광룡 레지키쓰론.

‘이거 잘못하다간 지하 비고를 벗어날 수 없을 수도.’

퀘스트를 성공해야 지하 비고를 벗어날 수 있다고 했다.

실패하면 영영 여기 묶일지도.

‘···이거 미치겠네.’

하지만 걱정만 해서 뭘 하나?

부딪혀보자.

“갑시다.”

“···네네.”

찬웅은 복도를 지났다.

그리고 코너를 돌자마자.

[당신은 지하 비고 침식의 원인과 마주했습니다.]

“아!”

찬웅의 눈에 보이는 한 사람.

화려한 로브를 입고, 머리를 밑으로 떨군 채 은빛 쇠사슬로 꽁꽁 묶인 노인.

‘침식의 원인이 NPC?’

그에게서 지독한 침식의 기운이 마구마구 뿜어져 나왔다.

평범한 NPC라면 닿기만 해도 침식되어버릴 정도,

‘죽었나.’

바로 그때!

파앗!

방안에 가득 찬 환한 빛.

뭐지?

“딸기씨, ···어?”

뭔가 이상하다.

톱날검과 방패를 손에 들고 얼어붙은 듯 꼼짝도 하지 않는 딸기.

“딸기씨? 딸기씨···.”

눈은 뜨고 있었다.

그러나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시간이 정지된 듯한 느낌.

순간!

스윽!

노인이 고개를 들었다.

꿰뚫어 버릴 듯 형형한 눈빛으로 찬웅을 바라보는 노인.

그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어서 오라.”

“···어.”

찬웅은 멍하니 그 노인의 얼굴을 바라봤다.

본 적 있다.

딱 한 번 봤다.

실물이 아닌 그림으로, 마탑주와 지하 비고 워프 게이트를 가기 위해 지나갔던 통로, 그 벽에 걸려있던 초상화 중 하나에서.

“···브랜데인?”

“내 이름을 알고 있군. 그렇다. 내가 브랜데인이야.”

전혀 예상치도 못했다.

이 사람, 아니 NPC가 침식의 원인이었다니.

테라퓨타 역사상 최초이자 마지막 9서클 대마법사 브랜데인,

마탑을 건설하고, 침식의 위협에서 도시를 구하기 위해 도시를 통째로 들어 올린 기적을 행한 전설급 NPC,

그 브랜데인이 은빛 쇠사슬에 묶여있었다.

침식을 당한 것이 확실해 보이지만 거의 정상인이나 마찬가지.

그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오래 기다렸다. 허상과 실재가 뒤섞인 혼돈자, 안과 밖의 심판자, 그럼으로써 질서를 유지하는 균형자여.”

“···뭐?”

이건 또 무슨 소리.

혼돈자? 심판자? 균형자?

‘설마 날 보고 하는 소리?’

사람 잘못 봤겠지.

하긴 묶여있는 저자가 브랜데인이 확실하다면 최소 500년을 교류도 없이 비고에 갇혀 지냈다는 의미.

그렇다면 미쳐버렸나?

“아니다. 난 미치지 않았다.”

“···.”

“다만 침식의 기운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일뿐.”

미친 것도 아니고.

저렇게 또박또박 이야기하는데.

“주신이 그대를 인도하지 않았나?”

“어떻게?”

“그럼 어서 임무를 수행해라.”

“내 임무는 당신을 죽이는 겁니다만.”

“그래, 그거. 제발 날 안식에 들게 하라. 오로지 너만이 그럴 힘이 있으니까.”

대체 이게 뭐하자는 퀘스트지?

브랜데인이 살아있었다니,

그가 침식의 원인이라니,

게다가 죽여달라니.

그러나 자신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는 브랜데인의 눈빛은 한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저 여인은 걱정 마라. 잠시 차단했을 뿐이니.”

“···이유부터 말해봐요. 듣고 나서 결정할 테니, 왜 죽여달라는 거죠?”

“좀 길다만,”

“20분 안에.”

“조금 빠듯하지만 가능하겠군.”

아무리 퀘스트라지만 이유는 알아야지.

그리하여 브랜데인의 이야기가 시작됐다.

※ ※ ※

브랜데인이 9서클 마법사가 된 건 그의 나이 50세, 카시우스 제국의 궁정 마법사 출신으로서 친우였던 황제가 급사하자 모든 걸 정리하고 자신의 영지로 낙향했다.

황제의 아들들이 벌이는 추악한 권력 암투, 어느 편에도 들 생각이 없었다.

이제 자신의 인생을 살아야지.

마탑을 건설하기 시작한 시기도 그때, 영지에 정착하고 나서.

브랜데인이 마탑을 만든다던 소문이 대륙에 퍼지자 수많은 마법사들이 그의 영지로 몰려들었다.

브랜데인은 드워프에게 직접 찾아가 마탑의 기초 공사를 의뢰하고 마도공학자, 그리고 연금술사를 불러들여 당시에 현존하는 모든 마법의 총아를 마탑에 집어넣었다.

그리하여 거의 30년 만에 기적적으로 완성된 마탑.

그런데 전혀 의도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

브랜데인의 영지가 국가로 성장한 것, 30년 동안 마탑 건설을 위해 수많은 사람과 물자가 한곳으로 집중되었으니, 어찌 보면 예견된 결과였다.

작은 영지가 대륙의 절대 강자로 급부상하게 되는 계기였다.

카시우스 제국은 당연히 위협을 느꼈고.

마탑은 왕국의 상징이었다.

그리고 위력도 그 엄청났다.

이후에 벌어진 전쟁에서 그 가공할 힘을 증명해 보였으니까.

브랜데인을 제거하기 위해 제국이 보낸 연합국의 군대, 그들은 마탑 가까이 접근하지도 못했다.

마탑의 보조를 받아 무시무시한 광역 마법들이 끊임없이 쏟아져 내렸다.

탄탄한 방어, 그걸 바탕으로 마법 왕국도 반격을 시도했다.

이종족까지 끌어들인 마법 왕국 연합군 결성.

하지만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오랜 전쟁, 그 과정에서 의견 분쟁이 일어나 마공학자들과 연금술사들이 왕국에서 떨어져 나갔다.

그들이 만든 독자적인 국가, 마키나 공화국.

별 상관없다.

아직 그깟 기름쟁이들과 약쟁이들이 없으면 어떤가!

결국 전쟁이 끝났다.

하지만 전쟁을 끝낸 주체는 제국도, 마법 왕국도 아니었다.

침식!

갑자기 일어난 저주.

모든 것을 멸망시키는 파괴적인 기운.

마을 하나가 사라졌다.

도시 전체가 침식지가 되었다.

작은 왕국이 전부 폐허로 변했다.

마법 왕국에도 밀어닥친 침식의 위협.

그것도 한복판에!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브랜데인이 내린 선택은 마탑만이라도 살려보는 것.

그래서 어처구니없는 결단을 내렸다.

무식하게도 도시 하나를 공중에 띄워버렸다.

그것이 바로 부유 왕국의 출현.

그 과정에서 브랜데인은 깨달음을 얻었다.

자신의 모든 마법력을 퍼부은 결과였다.

9서클을 초월한 경지.

이걸 뭐라고 불러야 하나?

창조의 힘? 신의 경지?

자신감을 얻게 된 브랜데인은 자신이 직접 침식의 원인을 제거하기로 마음먹었다.

플라이 마법을 펼쳐 침식지 한복판으로 날아갔다.

독이든, 저주든, 사악한 악마의 권능이든, 다 부숴버리면 그만, 그럴 자신도 있었고, 또한 그렇게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리고 브랜데인은 침식당했다.

너무 오만했다.

깨달음을 얻어 새로 구축된 신체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영혼마저 조각조각 흩어진다.

하지만 브랜데인은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도시로 귀환해 지하 비고 전체를 봉인하고 자신조차 스스로 꽁꽁 묶었다.

침식과의 사투.

1년, 10년, 100년···.

이게 무슨 꼴이지?

9서클, 아니 그마저 초월한 대마법사가 고작 외부의 기운에 의해 침식당해?

대체 왜?

브랜데인은 자신을 관조했다.

육체에 침범한 침식의 기운을 분석하고, 변질되어가는 영혼을 성찰하고, 보고 또 보고, 인식하고 사유하고, 가설을 세우고 증명해보고.

그러던 어느 날!

브랜데인은 자신의 영혼과 정면으로 마주했다.

충격이었다.

영혼의 본질.

그 위에 덧씌워진 이상한 문자.

001010101100110100010...

이게 대체 뭔가? 처음 보는 이상한 기호, 작대기와 동그라미의 의미 없는 나열, 이게 영혼의 본질이라고? 그리고 문득 내려다본 자신의 손, 몸, 다리, 발,

01001011101011...

아아아....

브랜데인은 깨달았다.

이건 실체가 아니다.

생명의 기운도, 영적인 영험함도, 아무 것도 느낄 수 없었다.

괴이한 기호로 된 허상일 뿐.

모두 가짜다.

마치 마공학자들이 만들어낸 골렘과 자신이 뭐가 다를까?

마법도, 마탑도, 사람들도, 동식물도, 자신마저도, 모두 존재하지 않는 거짓 세상.

브랜데인은 절망했다.

또한 분노했다.

신과 세상을 향해 저주를 퍼부었다.

한참을 그러다가 또 생겨난 의문.

왜 자신은 화를 내고 있지?

왜 스스로 생각하고 사유하고 있지?

왜 자유의지를 가지고 행동하며 욕망을 분출하고 뜨겁게 살아왔지?

만약 만들어진 존재라는 이런 근본적인 의문을 가질 수도 없을 터.

시키는 대로 하면 되니까.

무언가 더 있다.

그래서 또 다시 관조에 들어갔다.

100년이 지나고 200년, 300년이 지나고, 결국 브랜데인은 해답을 얻었다.

결국 자신의 영혼은 진짜였다.

그렇다.

이 세상이 허상일지라도 오직 영혼만큼은 진짜.

숫자는 덧씌워진 것일 뿐.

그리고 그로 인해 허상에 ‘갇혀’ 있었고.

희망이 보인다.

진짜는 가짜에 가려져 있었다.

가짜를 걷어내면 본질을 되찾을 수 있을 터.

그리고 여기.

그 일을 해줄 인간이 나타났다.

혼돈자이자 심판자이며 동시에 균형자인 케이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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