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킹 오브 마르스 >
언론에는 그냥 술 먹다가 생긴 우발적인 범행으로 보도된 살인 사건, HTS 그룹 재벌 3세와 유명 여배우, 그리고 매니저가 연루된 사실도 알려졌다.
국민들의 비난은 재벌 기업에게 몰렸다.
그림이 그려지지 않나!
철없는 재벌이 유명 여배우를 어찌해보려다 매니저와 싸움이 붙어 서로 죽고 죽이는 사건이 발생했겠지.
물론 사실관계가 다른 부분이 있지만.
APS와 국정원, 그리고 청와대는 발칵 뒤집혔다.
재벌 3세가 죽어서?
망나니짓하다가 죽은 건데 뭐가 불쌍한가? 오히려 향후 터질 게 분명한 폭탄이 미리 제거되었으니 더 좋은 일.
문제는 이홍종과 같은 놈들이 더 있을 수 있다는 것, 민도연의 증언으로 확인되었고, 더구나 현장에 누가 있었나?
바로 케이였다.
그가 이홍종을 취조하는 방식으로 진실을 밝혀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민도연은 기절한척하면서 그걸 주워들었을 뿐이고.
최기병이 꽉 조인 넥타이를 풀면서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안쓰러운 눈길로 바라보는 이필동, 자신이야 게임만 하면 되지만 이렇게 일이 터지면 죽어 나가는 건 실무자.
“갔다 왔어요? 청와대 분위기는요?”
“휴우, 몰라서 묻는 겁니까? 난리도 아닙니다.”
“하긴, 클럽에서 두 명이나 죽었는데, 그래도 그만하길 다행인 듯···.”
“다행요? 지금 그 말이 입에서 나옵니까?”
“아! 죄송!”
“요즘 이과장님 직장생활 편한가 봐요. 살도 조금 찌셨고.”
“···.”
이필동은 재빠르게 화제를 전환했다.
“현장에서 발견된 휴대폰에서 나온 단서는요? 이홍종이 두 개나 들고 다녔다면서요?”
“국정원에서 포렌식으로 복원 중입니다. 곧 뭐가 나오겠죠.”
세상에!
처음 사건이 발생하고 현장에 달려가서 민도연의 증언을 들었을 때 최기병은 정말 경악했다.
가상현실 게임의 NPC 광룡 레지키쓰론이 군주라니, 놈의 세례를 받아 힘을 얻은 각성 플레이어가 존재한다니.
간단한 일이 아니다.
이레귤러 각성 플레이어들이 곳곳에 숨어있다는 뜻, 빌런 성향이 확실한 시한폭탄들이 말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국가적 위기, 아니 전 세계에 닥친 위협, 조금 과장하면 멸망의 징조라고 해도 과하지 않다.
“그때 로그드라실 방어전에 모인 용병 숫자가 몇 명이었을까요.”
“흐음, 약 20만 이상?”
“그중 1%만 세례를 받아도 2천 명이 넘겠네.”
“그것만이라면 다행이게요? 민도연씨의 추가 증언이 있었어요. 놈의 입에서 다른 군주라는 말이 나왔다고 합니다.”
“···네? 하아, 미치겠네요.”
맞다.
미칠 일이다.
레지키쓰론 하나만이 아니라 다른 군주가 더 있다.
숫자가 몇 명인지도 모르고.
“듀플렉스 스페이스 가상현실의 모든 침식지 보스들이 그···, 군주는 아니겠죠?”
“전들 알겠습니까? 아무튼 오늘부터 퇴근 못 하시는 거 아시죠?”
“···에이씨!”
할 일이 많다.
이홍종이 남긴 단서가 모조리 파악될 때까지.
“그럼 이 정보는 우리만 알고 있나요?”
“나중에 충분한 정보가 모이면 미국이나 유럽과 공유해야죠.”
“그럼 케이님의 존재를 드러낼 수밖에 없는데.”
“어쩔 수 없어요. 물론 그전에 밝혀도 괜찮은지 먼저 물어보는 단계는 당연히 거쳐야 하고.”
솔직히 정보 공유가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이미 알고 있을 수도.
“참! 민도연씨는 지금 어떻게?”
“충격을 받았는지 요양 중입니다.”
“참나, 팔자도 사나워, 평범한 사람이 어떻게 그런 일에 휘말려서, 이제 여배우 생활도 힘들겠어요. 좋아하던 배우였는데.”
“경찰들이 보호하고 있으니 괜찮을 겁니다. 복귀도 하겠죠. 시간이 약이니까.”
“그럼 HTS 그룹 반응은?”
“지들이 뭘 어쩌겠습니까? 이홍종 그 새끼가 살인범인 게 확실한데.”
※ ※ ※
HTS 그룹도 비상이었다.
특히 이복동 회장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둘째 아들이 목이 잘린 처참한 시신으로 돌아왔다.
물론 아들이 아무런 잘못을 하지 않은 건 아니다.
경찰이 보여준 CCTV 영상.
그 안에선 샴페인 병으로 사람을 죽이는 장면이 고스란히 찍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아들이 죽어야 할 이유인가?
경찰에 잡혀 재판에 넘겨지면 심신 미약으로 감옥에서 3년도 안 살고 나올 수도 있었다.
더구나 아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누가 죽였는지도 이야기해주지 않았다.
다만 그 현장에 민도연이란 배우가 있었다는 건 알아냈다.
그렇다면 그년은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누가 아들을 죽였는지.
“지금 그년은 어디 있어?”
“병원에서 요양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당장 자리를 마련해봐.”
“하, 하지만 경찰들이 지키고 있어서.”
“경찰? 그게 문제가 되나? 무조건 만나봐야겠어.”
아비 된 도리로서 아들의 원한은 풀어줘야지.
그리고 아들을 죽인 자가 누구든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해줄 것이다.
※ ※ ※
찬웅은 집으로 돌아왔다. 옛집이 아닌 새집으로.
사건이 일어난 현장에 있었지만 굳이 드러낼 필요는 없었다.
자신 대신 진술을 해줄 목격자가 있으니까.
‘민도연이라고 했지?’
시간이 지나고 나니 알겠다.
그녀가 누군지.
‘배우였구나.’
그동안 용케 숨겼다.
자신이 각성 플레이어라는 사실을.
각밍 아웃.
각성 플레이어라고 밝힐지, 숨길지는 그녀의 선택.
하지만 현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에 대한 진술을 빼먹지 않고 다 할 것이다.
그래야 그녀가 살아남을 수 있고···, 무려 재벌 3세가 죽은 사건이지 않나.
그나저나 APS는 그 정보를 어떻게 다룰까.
생각만 해도 골치 아프다.
아직은 전화가 걸려오지 않는 걸 보니 굳이 나설 이유는 없는 것 같다.
정부는 정부대로, 자신은 자신대로, 각자의 방식으로 대응하면 된다.
찬웅은 택시를 잡아타고 새로 이사한 빌라촌에 도착해서 경비실에 오늘 새로 이사 온 사람이라는 걸 확인시켜주고 난 뒤 동호수를 찾아서 집 앞에 왔다.
‘여긴가?’
수많은 외제차들 사이에서 홀로 주차된 오토바이.
‘다음에 몰아보고,’
면허증이 있다지만 너무 오래되어서 잘 탈 수나 있을지 모르겠다.
차근차근 연습해서 타고 다녀야지.
찬웅은 최기병에게 미리 받은 비밀번호를 누르고 안으로 들어갔다.
“와!”
무심결에 흘러나온 탄성.
크다.
집이 너무 크다.
너무 텅 비어서 을씨년스러운 느낌, 나중에 가구나 인테리어 제품 채워 넣으면 되긴 하지만.
‘이거 방이 몇 개야? ···청소는 어떻게 하냐?’
거실 안엔 이미 캡슐이 설치되어 있었다.
‘이사는 깔끔하게 했네.’
이 큰집이 자신의 소유라니.
‘돈이 얼만데!’
웬만하면 푹 쉬면서 새집이 주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싶지만···.
‘하아, 너무 바빠.’
해야 할 것이 무척 많다.
현실의 일 처리했으니 다음은 게임.
여기든, 거기든, 똑같이 문제가 산적해 있고, 자신은 그걸 해결해야 한다. 어느 곳 하나 빼먹으면 두 군데 모두 말썽이 생긴다.
특히나 군주라는 놈들의 개입.
대체 이 게임은 가상인가, 아니면 또 다른 현실일까.
찬웅은 일단 노트북을 열었다.
할 일도 없고, 침식지들이 어디 어디 있는지, 그리고 보스들은 어떤 놈들인지 확인이나 해보자.
‘그라운드 테라 침식지는 보스는 어떤 놈이야? 이 새끼도 군주인가?’
※ ※ ※
[킹 오브 마르스]
‘화성의 왕’은 미국의 용병 플레이어.
아바타로만 본다면 다른 플레이어들과 별 다를 바 없지만 현실에선 상황이 다르다.
전기차로 큰돈을 벌었고, 대기권 밖으로 우주선을 쏘아 올리면서, 심지어 코인도 만들었다 망했고, 여러 과학 분야에 대규모 투자를 하는 유명 CEO, 앨런 메사크.
게임에도 재능이 있어 동화율 160%에 다다른 최상위 랭커지만 불만이 하나 있었다.
쓸만한 스킬이 별로 없다는 것.
랜덤 D박스를 수도 없이 깠지만 나오는 건 고작 범용 스킬들, 그래서 이곳 그라운드 테라로 왔다.
‘소문으로 이곳 NPC들과 친화력을 높이면 고급 스킬 구슬을 대가로 한 의뢰도 준다던데···.’
앨런은 용병 사무소에서 의뢰를 받기 전에 먼저 잡화용품점부터 들렀다.
“어서 와라, 이방인, 킹 오브 마르스.”
“치유 물약하고 각종 도핑 물약을 좀 봅시다.”
“처음 왔나?”
“그렇다면?”
“그럴 줄 알았다. 물약 따윈 여기서 팔지 않는다. 하찮은 연금술사의 물건은.”
“그럼 뭘 팔아?”
“이거, 사용법도 간편하고 무게도 가볍지.”
“아, 스크롤.”
잡화점에 파견 나온 마법사가 보여주는 물건들.
[마법 스크롤 : 중급 힐링], [마법 스크롤 : 헤이스트(4서클)], [마법 스크롤 : 포스 생성], [마법 스크롤 : 큐어 포이즌] 등등.
스크롤도 물약의 효과와 다르지 않다.
“그럼, 힐링 스크롤 상급 30장, 중급 40장, 헤이스트 20장, 포스 생성 30장···,”
넉넉하게 사자.
사냥하려면 많이 필요하니까.
“그밖에 더 필요한 건?”
“흐음, 혹시 스킬 구슬도 구할 수 있을까? 평범한 것 말고, 끝내주는 걸로. 뭐, 있을 것 같진 않지만,”
“하! 작은 잡화점이라고 무시하나? ···마침 들어온 물건이 나온 게 있긴 한데.”
“스킬 구슬?”
“그래.”
“보여줘. 쓸만하면 무조건 사지.”
잡화점 마법사가 묘한 눈길로 앨런을 쳐다보더니.
“이게 마탑에서 뒤로 흘러나온 물건이라, 함부로 내보이면···.”
“비밀로 할게. 걱정 말고 물건이나 내놔 봐.”
“흐음.”
서랍을 열더니 구슬 하나를 조심스럽게 꺼내는 마법사.
“보면 알 거야. 이 물건은 이방인에게 절대 안 파는 물건이라는 걸.”
“그거야 아이템 정보로 확인하면 다 나오니 속이면 곤란···, 응?”
꿀꺽,
앨런 메사크는 마른침을 삼켰다.
[스킬 구슬 : 블리자드(7서클)]
‘미친!’
7서클 블리자드.
효용성이 매우 뛰어난 얼음계열 마법.
저거면 그라운드 테라의 침식지를 쓸고 다닐 수 있다.
자신이 가장 원했던 원거리 광역 마법 스킬.
“어, 얼마?”
“100만 코인.”
가격도 매우 싸다.
100만이면 거저.
“바로 사지.”
“좋아, 입금해.”
코인이 들어온 걸 확인한 후, 마법사는 스킬 구슬을 건네주며 급하게 말했다.
“빨리 아공간에 넣어. 그리고 조용한 데서 먹고,”
“아, 알았어”.
“명심해! 절대 비밀로 해야 해!”
잔뜩 신이 난 앨런은 그 길로 잡화점을 빠져나갔다.
나가는 걸 확인하고는 즉시 메시지 마법을 실행하는 마법사.
“네, 한 명 보냈습니다. 처음 온 놈 맞습니다. 아바타 명 [킹 오브 마르스], 이곳에서 사간 스크롤의 품목과 개수는···.”
누가 볼 새라 조용한 곳을 찾아 발걸음을 옮기는 앨런 메사크, 가슴이 터져 미칠 것만 같았다.
뭐든 1등이 되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이 스킬이면 최강의 용병 플레이어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다.
또한 동화율 올리다 보면 자신도 행운이 찾아오지 않을까? 각성이라는 행운 말이다..
이윽고, 사람 하나 안 다니는 골목길.
‘아무도 없지?’
여기서 먹자.
앨런은 사람이 없는 걸 다시 한번 확인한 후, 인벤토리에서 스킬 구슬을 꺼내 삼켰다.
그런데···.
[아공간 폭파 저주 구슬을 섭취하셨습니다.]
[1분간 아공간 폭파 저주에 걸립니다.]
‘···뭐?’
그때였다.
콰콰쾅!
꽈르르르륵! 꽝꽝!
하늘에서 떨어지는 수십 개의 불덩어리.
“허억!”
퍼벅! 퍼버버벅!
앨런은 그 불덩어리 대 폭발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동시에,
“끄아아악!”
도저히 피할 수 없는 거대한 불의 창이 자신의 가슴팍을 관통했다.
콰아악!
퍼펑!
그대로 터져나가는 앨런의 몸.
터졌다.
인간 폭탄처럼 터졌다.
그리고 가루가 되어 사라지기 직전 앨런은 목격했다.
사방으로 흩날리는 마법 스크롤, 원래 가지고 있었던 각종 장비와 소모품들이 마치 비처럼 내리는 모습.
‘저, 저게···.’
모두 다 자신의 인벤토리 안에 들어 있었던 물건.
‘왓더헬?’
죽어서 아이템 몇 개 흘릴 수 있다.
그런데 인벤토리가 터졌다고?
‘퍼킹! ···설마 사기? NPC가 사기를 쳤어?’
[당신은 사망했습니다.]
잡화점 마법사가 판 그 구슬은 블리자드 스킬 구슬이 아니었다.
하긴 그게 고작 100만 코인일 리 없지.
“개자식들! 절대 가만있지 않겠어!”
강제 접속 종료.
앨런의 몸이 터지고 난 후, 테라퓨타의 부탑주 브랜스톤이 허공에서 천천히 떨어졌다.
“흐음, 스크롤 개수가 몇 개였지? 하나, 둘, 셋, 넷···,”
꼼꼼하게 셌다.
“···다 토해냈군.”
주위에 너절하게 널린 수많은 아이템.
일단은 실험 성공.
놈은 모르겠지만 7서클의 환각 마법이 펼쳐졌다.
아이템의 정보를 가리는 마법.
조금만 더 신경 써서 정보를 확인했다면 환각이 바로 풀렸을 터, 사실 욕망에 눈먼 플레이어가 환각 마법에 저항한다는 것 극히 어렵다.
먹는 순간 잘못된 걸 깨달았겠지만···, 그래서 이세계로 돌아가 길길이 날뛸 테지만,
‘알아도 상관없어.’
이방인들이야 멍청하니까.
제 세상에서 떠들어봐야 누가 믿어줄까.
그저 불평불만 가득한 많은 플레이어 중 한 명, 아무런 문제도 생기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부탑주 브랜스톤이 간과한 것이 있었다.
아니, 애초에 알 턱이 없었다.
그들이 이세계라고 불리는 현실에서 앨런 메사크가 결코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심지어 보기 드문 관종이라는 걸.
게다가 그를 추종하는 사람도 많다는 걸.
그래서 그가 어떤 내용을 SNS에 올리기만 하면 전 세계적으로 화제를 불러일으킨다는 걸.
그것도 무서운 속도로 몇 분 안에 널리 퍼진다는 사실을.
물론 사람들이 그가 하는 말을 모두 다 믿는 건 아니다.
이미 SNS로 신용할 수 없는 떠버리 기질을 드러냈고,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로 관심을 끌려고 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에.
그러나 문제는 찬웅이 봤다.
게임에 접속하기 직전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