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침식당한 마법사(2) >
찬웅과 딸기는 천천히 나아갔다.
복도를 걸어 다음 방으로, 방을 확인한 후, 다시 복도로, 그러다 또 마주친 마법사 무리.
“4서클, 3명 다.”
“제가 먼저 시선 끌게요.”
쐑!
파악!
딸기는 결코 주저하지 않았다.
입으로 치유 물약 병을 물고 무조건 방패 돌진.
물론 마법사들의 공격은 오로지 딸기에게만 집중되고.
그렇게 마법사들을 묶어두면 찬웅은 바람길 산책 순간 가속으로 한 놈씩, 한 놈씩 처리하다 보면 끝.
정형화된 패턴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손발이 착착 맞았다.
- 완료 조건 : 봉인된 지하 비고에서 침식당한 마법사들을 처치하세요.(7/13)
“아이 씨!”
“왜요?”
“보세요. 여기 바짝 익었어요,”
파이어 애로우, 파이어 볼, 파이어 스피어 등, 화염 마법을 상대하느라 화상을 입었나 보다.
훤하게 보이는 허벅다리 안쪽을 보여주면서 호들갑 떠는 딸기.
“···굳이 보여줄 필요는,”
“뭐, 어때요? 어차피 아바타인데.”
“네. 그렇죠.”
순간!
스윽, 스윽,
복도 끝에서 느껴지는 인기척,
“···쉴 틈을 안 주는구나.”
“저거 잡고 좀 쉽시다. 물약 도핑하고.”
치유 물약과 자원 재생 물약, 그리고 여러 저항 비약을 복용한 후, 어둠 속으로 스르륵 사라지는 찬웅.
딸기는 용감하게 방패를 들고 복도 중앙을 걸어갔다.
역시 3마리.
이번엔 5서클이 두 명, 4서클이 하나.
‘어렵겠는데.’
찬웅은 일단 은신막은 계속 발현한 채로 뒤로 물러났다.
딸기도 그가 뭘 하려는지 눈치챘다.
“야야야! 여기 봐! 여기!”
땅! 땅! 땅!
톱날검으로 방패를 두드리면서 마법사들의 시선을 주목하게 만든 후에.
“덤벼!”
당연히 딸기를 향해 엄청난 마법들이 쏟아졌다.
콰쾅! 츠츠츠츳! 쏴아아악!
화염에, 냉기, 전격···, 반사 방패도 한계가 있지.
특히 4서클과 5서클의 위력 차이는 크다.
그러나.
“으드득! 으아아악!”
딸기는 이빨을 꽉 깨물고 마치 바위처럼 끝까지 버텼다.
‘조금만 더.’
딸기가 홀로 분투하는 와중에도 움직이지 않는 찬웅.
3명의 침식당한 마법사 무리들이 끝을 내겠다는 듯 마법 공격을 하면서 앞으로 다가왔다.
순간!
멈칫!
“ξμ?”
갑자기 우뚝 멈추는 5서클 마법사.
다른 한 명도.
‘알아챘네.’
스팟!
찬웅은 5서클 한 명의 뒤에 나타나 도끼를 내려찍었다.
블링크를 시전할 틈도 주지 않고 미친 듯이 도끼로,
콱콱콱콱!
찡!
순식간에 쉴드가 깨어지고.
콱콱콱콱!
머리까지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됐어!’
기습 성공.
나머지는 쉬웠다.
찬웅이 블링크로 도망치는 5서클 마법사를 상대하는 사이,
위잉, 윙!
딸기의 톱날검이 4서클 침식당한 마법사의 쉴드를 갈아버렸고,
콰악!
찬웅도 끈질기게 한 놈을 따라잡아 앙증맞은 머리 따개로 끝내버렸다.
- 완료 조건 : 봉인된 지하 비고에서 침식당한 마법사들을 처치하세요.(10/13)
그리고,
[아바타 케이가 동화율을 1% 돌파했습니다.]
[아바타 상큼한 딸기가 동화율을 1% 돌파했습니다.]
또 한 번씩의 동화율 돌파.
“좀 쉴까요?”
“하악, 하악···, 네네!”
많이 지쳤다.
그 자리에서 털썩 주저앉은 상큼한 딸기.
“아야! 이, 이게 뭐야?”
뭔가 꼈나?
손을 엉덩이 밑으로 넣어 동그란 돌멩이 하나를 꺼내더니,
“어머? 케이님! 이거···,”
“어?”
[진(眞) 스킬 구슬 : 쉴드(3서클)]
이젠 하다 하다 엉덩이에 깔릴 정도.
···더 없나?
‘없구나.’
스킬 구슬 하나 더.
서클이 명시된 구슬은 성장형이 아니다.
그래도 이게 어딘가?
딸기가 자원 재생 물약을 꼴깍 마셔가며 물었다.
“3마리 남았죠?”
“네, 하지만 만만하게 보면 안 돼요. 그 3마리가 핵심일 수 있으니까.”
“방심은 절대 안 하지만, 하아, 동화율 조금만 더 올리고 올걸.”
“괜찮아요. 그 정도면.”
그녀도 무려 2명의 전설 등급 NPC와 교류를 가진 플레이어다.
이까짓 침식당한 마법사들에게 털릴 실력은 아니다.
다만,
“6서클은 또 모르겠네요.”
“···뭐, 최악의 경우 죽는 것밖에 더 하겠어요?”
“그렇긴 하지만.”
테라퓨타에서도 6서클 마법사는 극히 희귀하다.
또한 웬만한 소국의 궁정 마법사가 6서클.
일단 시동어가 지극히 짧아지고 탄탄한 방어에, 능력을 상승시켜주는 버프 마법, 대상을 괴롭히는 디버프, 지역에 작용하는 광역기, 그리고 끊이지 않고 퍼부어대는 연속기.
“해봅시다. 그래야 대책이 나오니까.”
다시 안쪽으로 전진.
복도를 지났다.
아무것도 없는 방도 지나 다시 복도로.
그리고 마침내.
“···ϧϷϏϟ.”
“σϽϧϴ?”
알 수 없는 말을 지껄이며 나타난 2명의 침식당한 마법사.
동그라미가 몇 개야?
하나, 둘, 셋, 넷···.
‘후우,’
나올 줄 알았다.
동심원이 6개, 6서클이다.
그것도 2명 모두.
‘난이도가 확 올랐네.’
안 되겠다.
무조건 한 마리 처치하고 보자.
찬웅은 가속 물약을 미리 입에 물었다.
그리고 딸기에겐.
[케이] : 천천히 뒤로 물러나요.
[상큼한 딸기] : 네? 아, 알겠어요.
딸기는 방패를 우뚝 세우고 한 걸음씩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먹이를 포착한 사냥개처럼 다가서는 2명의 마법사들.
찬웅은 은신막을 발현한 채로 가만히 복도 중앙에서 대기했다.
하지만 놈들은 역시 6서클.
우우우웅!
순간! 복도 전체에 강력한 역장이 펼쳐졌다.
“으윽!”
캔슬레이션.
모든 마법적 효과를 무효화시키는 6서클 마법.
당연히 찬웅의 은신막도 해제됐다.
‘이 새끼들이!’
좋다.
진심으로 상대해주지.
자신은 에루인의 제자, 과거 엘프의 원수들을 찾아 한놈 한놈씩 뚝배기를 깨고 다녔던 암살자 루인의 후계자.
그녀가 갈아버린 마법사들이 얼마나 많았나?
6서클은 수도 없이 많았고, 심지어 7서클, 그리고 8서클도 그녀를 두려워했다.
더구나 마법 저항력, 그리고 침식의 기운에 상성이 좋은 플레이어의 포스, 전설 등급 아이템과 전설급 스킬.
가속 물약을 마시고.
[10초간 스피드가 대폭 향상됩니다.]
스킬 증폭 물약도 꺼내서,
[10초간 스킬의 위력이 대폭 향상됩니다.]
팟!
암살자로서의 포지션은 이제 사라졌다.
이제는 힘과 힘의 대결.
파바밧!
파밧!
수없이 쏟아지는 강력한 마법 공격들을 뚫어버리고 빛살처럼 돌진하는 찬웅.
도끼에서 번뜩이는 섬광이 복도 안을 가득 채웠다.
한 손엔 강타, 한 손엔 별빛 가르기.
때로는 도끼를 날렸다가 회수했다가, 때로는 주먹으로, 때로는 발길질로.
딸기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자신이 배웠던 스킬들을 모두 한 번에 사용하면서.
‘단단한 피부, 마지막 저항! 철벽!’
파앗!
방패를 앞세우고 용감하게 돌진하는 딸기.
꽈르릉!
화끈한 불의 벽이 층층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두려울 필요가 없다,
진짜 죽기밖에 더 하겠나?
파이어 스톰, 체인 라이트닝, 아이스 필드, 갖가지 범위 마법들이 어지럽게 펼쳐졌다.
파팟! 파파팟!
그에 맞선 찬웅과 딸기의 반격.
사방에 난무하는 도끼질, 소름 끼치게 돌아가는 톱날.
지잉!
다시 생겨난 쉴드를,
콰직!
쨍!
또 깨버리고.
핏!
블링크로 달아나는 놈을 붙잡아 콱콱! 콱콱! 손에 걸리는 대로 찍고 또 찍고.
콰당!
파이어 스톰에 당해 벽에 처박힌 딸기도,
아그작!
상급 치유 물약을 병째 씹어 먹고 무작정 돌진,
쐐액!
콰당!
또 돌진.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난다.
누가 누군지 구별이 안 될 정도.
하지만 약한 고리가 제일 먼저 끊어졌다.
“아악!”
결국 방패를 놓치며 쓰러진 딸기.
열심히 해냈다.
안쓰럽지만 이놈 먼저.
“ρσχ, θᛈομ···,”
콱! 콱! 콱! 콱!
‘한 놈 잡았어.’
띠링!
- 완료 조건 : 봉인된 지하 비고에서 침식당한 마법사들을 처치하세요(11/13)
[아바타 케이가 반영률을 1% 돌파했습니다.]
[아바타 상큼한 딸기가 반영률을 1% 돌파했습니다.]
반영률 상승.
나머지는?
팟!
찬웅은 블링크로 도망가려는 놈의 머리카락을 잡아챘다.
“넌 못 도망가!”
“ζ, ζΠ?”
“죽어!”
찬웅은 도끼를 높게 치켜세웠다.
이제 마무리다.
그런데 바로 그때!
스우우우웅!
“···음?”
“아!”
갑자기 무거워지는 비고 내부의 공기.
통각을 줄였음에도 화끈해지는 발바닥.
불꽃.
보기만 해도 무시무시한 불꽃이 발밑에서 솟아 나온다.
녹아내리는 바닥.
쩌억 갈라진 틈 사이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시커먼 불길.
“이런!”
그리고 찬웅은 목격했다.
복도 끝에서 유유히 한 손을 들어 자신들을 가리키며 서 있는 마법사 하나를.
‘7서클이구나.’
염화의 불꽃, 지옥의 불, 7서클 마법의 궁극기.
헬파이어가 복도 전체를 달궜다.
헬파이어, 꺼지지 않은 지옥의 불.
현실에선 아파치 혹은 코브라 등 공격용 헬기가 탑재하고 다니는 대전차 미사일.
마법이든, 미사일이든, 지옥을 만드는 건 동일하다.
헬파이어는 아군이든 적군이든 가리지 않았다.
찬웅에게 잡혀있는 6서클의 침식당한 마법사가 먼저 녹았다.
띠링!
- 완료 조건 : 봉인된 지하 비고에서 침식당한 마법사들을 처치하세요.(12/13)
딸기도 녹았고.
“···아씨!”
[파티원 아바타 상큼한 딸기가 사망했습니다.]
찬웅은 멈추지 않고 움직였다.
온몸에 지옥의 염화가 붙어 활활 타고 있음에도.
팟!
뜨겁다.
게임인데도 아프다.
‘씨발 새끼가 비겁하게?’
찬웅은 불덩어리 상태로 놈을 향해 쇄도했다.
팟! 팟! 팟!
‘이제 다···, 윽!’
우지끈!
놈이 시전한 강력한 중력장에 바닥으로 납작 붙어버렸지만,
“씨이···, 발!”
다시 일어나서,
팟! 팟!
결국은 가까이 붙었다.
핏!
하지만 허무하게도 블링크를 이용해 달아나는 7서클 마법사.
심지어 스르륵, 모습이 사라졌다.
‘···투명화?’
아직도 계속되는 헬파이어, 블링크와 투명화 마법으로 자신을 비웃듯 도망치는 놈.
찬웅은 자신이 여기서 죽을 거라는 건 안다.
‘하지만 순순히 죽어줄 순 없어. 갈 때 가더라도···.’
찌지직, 찌직!
아바타 케이의 몸이 천천히 녹아내린다.
그나마 마법 저항과 화염 저항의 비약, 플레이어의 상성으로 버티고 있지만 이것도 곧 끝날 터, 아니 여태까지 버틴 게 이상할 정도.
통증은 더더욱 거세졌지만, 찬웅은 정신을 집중했다.
집중할수록 마음은 차분해진다.
찬웅은 도끼를 힘차게 꼬나쥐었다.
염화의 불꽃에도 녹지 않고 버티는 암살자 루인의 앙증맞은 머리 따개를.
도끼가 부르르 떨린다.
살이 에일 듯 빛나는 도끼날,
더불어 찬웅의 기세도 더더욱 날카로워졌다.
순간!
아랫배에서 가느다랗게 움직이는 포스의 기운, 시원한 청량감, 최고조에 달한 감각과 정신력.
느껴진다.
놈이 어디에 숨어있는지.
‘저기,’
그러자 무의식적으로 움직여지는 몸.
팟! 팟! 팟! 팟···,
“ϐεχϧ?”
피피핏!
놈이 황급하게 달아났지만 찬웅은 더 빨랐다.
“λμν, ξξξξ! οπρ!”
도끼가 저절로 휘둘러졌다.
기운이 느껴지는 대로, 포스가 이끄는 대로.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절대 피할 수 없게끔, 최적의 경로를 점해서.
‘뭐지? 이 느낌은···,’
츠피리릿!
슥!
‘···걸렸나?’
허공만 벤 건 아니다.
손끝에 감각이 느껴진다.
툭!
바닥에 떨어지는 무언가.
목인가?
눈으로는 확인할 수가 없었다.
다만.
띠링.
- 완료 조건 : 봉인된 지하 비고에서 침식당한 마법사들을 처치하세요.(완료.)
‘해치웠네.’
[아바타 케이가 동화율을 1% 돌파했습니다.]
[아바타 케이가 동화율을 1% 돌파했습니다.]
두 번의 동화율 돌파.
[아바타 케이가 반영률을 1% 돌파했습니다.]
[아바타 케이가 반영률을 1% 돌파했습니다.]
또한 두 번의 반영률 돌파.
그러나.
[아바타 케이의 동화율이 1% 하락했습니다.]
[아바타 케이의 반영률이 1% 하락했습니다.]
[당신은 사망했습니다.]
강제 접속 종료.
그래도 1% 이익.
※ ※ ※
대현 병원 VIP 입원실.
위이잉!
찬웅은 캡슐에서 일어났다.
기분이 멍하다.
아직 그 뜨거운 열기가 남아있는 것 같다.
‘그래도 막판에 퀘스트 끝냈으니까.’
접속 페널티도 24시간.
동화율과 반영률도 오른 셈이고.
‘그때 도끼를 어떻게 움직였더라?’
묘한 경험이었다.
도끼와 자신이 한 몸이 된 듯한 느낌.
팔과 손이 도끼로 변한 기분, 도끼가 바로 손이었고, 손이 바로 도끼였다.
바람길 산책도 그랬다.
저쪽에 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이미 그곳에 있었다.
바깥이라 확인할 순 없지만 스킬 숙련도가 올라간 것 같기도 하고.
케톡!
최기병이 준 대포폰으로 들어온 SNS 메시지가 들어왔다.
‘딸기구나.’
닉네임도 아바타 명과 같다.
[상큼한 딸기] : ㅠㅠ
[케이] : 괜찮아요.
[상큼한 딸기] : 퀘스트는요?
[케이] : 끝냈어요.
[상큼한 딸기] : 와! 나이스!
[케이] : 하지만 저만 경험치 받았네요.
[상큼한 딸기] : 그건 상관없어요.
[케이] : 아무튼 내일 접속해야 하니 푹 쉬세요.
[상큼한 딸기] : 네! 알겠습니다.
그때!
똑똑,
누구지?
의사인가?
‘···아! 맞다.’
헬파이어에 뇌까지 익어버린 모양.
찬웅은 병실 문을 열었다.
그러자 바로 밑에 놓인 제법 부피가 큰 상자, 열어보니 21개의 스킬 구슬과 진 마법 스크롤 5장이 들어 있었다.
‘나중에 정리하자.’
일단 인벤토리에 모두 보관.
‘딸기도 택배 받았겠지?’
그녀도 방출 스킬이 익숙해지면 거의 정상인처럼 생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나저나 심심하네.’
퇴원해도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