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아바타의 재능으로 동화율 돌파-61화 (61/204)

< 지하 비고. >

찬웅은 솔직히 마법사들을 믿지 않았다.

자신에게 부유석이 있다는 걸 알기 전과 알고 난 후의 태도 변화, 특히 마탑주의 친절은 너무 과했고.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고, 원하는 걸 얻고 나면 어떻게 돌변할지 모를 일, 그래서 마탑주를 만난 자리에서도 부유석을 넘겨주지 않았다.

‘방심하면 안 돼. 수작 부릴 수도 있어.’

아마 그럴 가능성이 높다.

긴장의 끈을 놓으면 안 된다.

최종 퀘스트가 완수될 때까지 부유석은 인벤토리에 고이 보관, 줄지 안 줄지도 그때 가서 결정.

‘그나마 브랜달 그놈은 괜찮던데.’

사실 마법사들에 대한 감정은 조금도 없다.

데이터 쪼가리에 불과한 NPC에게 감정을 느끼면 그게 더 우스운 일이지.

물론 거의 인간과 다를 바 없지만 말이다.

‘딸기나 불러오자.’

같이 들어가야지.

비고로 들어가는 길은 의외로 지하에 있지 않았다.

마탑주가 머무는 최상층 꼭대기, 그리고 마법에 의해 단단하게 잠겨진 문이 겹겹이 있는 긴 복도를 지나야 한다.

찬웅은 딸기와 함께 마탑주 브랜카인의 안내를 받아 복도를 지났다.

등이 굽어 머리가 땅에 닿을 듯해도 용케 걸어 다니는 마탑주, 문을 열고, 들어가고, 또 열고, 또 들어가고,

“이 복도 벽에 걸린 초상화들은 역대 마탑주님들인가요?”

“그렇네.”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한 초상화들, 그 밑에 쓰인 이름들, 브랜타스, 브랜진, 브랜키피아, 브랜핀···,

초상화를 유심히 살펴보던 딸기가 말했다.

“브랜으로 시작하는 걸 보니 혈족분들인 것 같은데 하나도 안 닮았어요.”

그러자 브랜카인이 잠시 멈추며 말했다.

“당연하지. 이방인 딸기, 혈족이 아니니까.”

“네?”

“고위 마법사가 가정을 꾸릴 만큼 한가한 사람처럼 보이나? 뭐, 그래도 결혼해서 시간을 낭비하는 족속들도 있지만.”

결혼이 시간 낭비라, 그럼 당신은 어떻게 태어났는지 묻고 싶다.

“브랜은 마탑을 세우신 초대 마탑주를 기리기 위해 붙이는 칭호, 현 마탑주, 그리고 부탑주, 그리고 후계자, 총 3명만이 브랜이란 칭호를 붙일 수 있지.”

“브랜달은 손자 아니었나요?”

“양손일세. 브랜카인도 양자고.”

아하.

그랬구나.

이윽고 브랜카인은 마지막 초상화에서 멈췄다.

“바로 이분이 초대 마탑주, 테라퓨타 역사상 유일한 9서클 대마법사, 브랜데인님일세.”

브랜데인.

크고 아름다운 지팡이를 든 전형적인 대마법사.

“도시를 띄운 직후, 침식지 보스 데몬을 죽이러 떠났지만 다시 돌아오시지 않았다고 전해져 오고있지.”

그럼에도 전설.

최초로 마탑을 건설하고 침식의 위협을 피하고자 도시를 통째로 들어 올린 인물.

역시 사진을 보는 듯 생생하다.

“이쪽으로.”

복도 끝 마지막 문을 열자 그제야 보이는 워프 게이트.

“여기를 통하면 비고에 도착하네. 다시 묻겠네. 정말 들어갈 텐가?”

“네.”

“듣기론 이방인들도 한번 죽을 때마다 힘이 약해진다고 하던데.”

“그렇긴 하지만, 그 정돈 감수해야죠.”

찬웅은 딸기와 함께 워프 게이트 위에 섰다.

“준비됐죠?”

“넵, 싸부님!”

“갑시다.”

스슷!

‘갔군.’

브랜카인은 굽었던 허리를 곧게 폈다.

때로는 왜소하고 처량하게 보이는 건 좋은 전략일 수 있다.

이방인 케이,

분수에 맞지 않게 축복받은 부유석을 소유한 자.

‘돼지 목의 진주야.’

놈이 순순히 부유석을 내놓는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없겠지만 만에 하나라도 거부하거나 과도한 대가를 요구한다면···.

브랜카인은 메시지 마법을 실행했다.

- 부르셨습니까?

“브랜스톤, 아공간 약탈 저주를 실험해 봐야겠다. 적당한 이방인 하나를 물색해 보거라.”

- 아버님, 굳이 그럴 필요가···, 잘 구슬리거나 충분한 대가를 약속해서 부유석을 넘겨받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딱하구나! 브랜스톤! 그러다 놈이 끝내 내놓지 않으면? 그때도 비굴하게 엎드려 빌 셈이더냐? 그 하찮은 이방인들에게?”

- ···.

“신은 우리를 버렸다. 저 천박한 이방인들이 우리에게 올 축복을 다 빼앗아 갔지. 우리에게 와야 할 부유석이 저놈에게 있는 걸 봤지 않나?”

- 알겠습니다.

“최대한 빠르게 실험체를 데리고 오너라.”

이방인들이 신에게 받은 능력 중 하나인 아공간.

사실 그놈들의 능력은 테라퓨타 마법사들의 아공간 마법과 크게 다르지 않다.

놈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건 불과 2년여, 그러나 테라퓨타 마탑은 오백 년을 넘게 이어져 오고 있었다.

그 기간 동안 아공간 약탈에 대한 연구가 없었을까?

다만 아공간 약탈 저주 마법이 이방인에게도 적용되는지 아직 실험해 보지 않았을 뿐.

‘클클클, 이방인이여, 세상은 그리 만만하지 않다네.’

어차피 놈은 비고 안에서 죽는다.

그리하여 본신의 힘이 약해져서 돌아올 것이다.

그럼 아공간 약탈 저주 마법은 더더욱 잘 먹힐 테고.

※ ※ ※

<제목 : 케이가 대체 누구냐?>

오늘 그라운드 테라에서 이상한 아바타 봤음. 이름이 ‘케이’던데, 고위급 마법사와 치고 박고 싸우려 하더니 나중에 마법사가 옷자락 잡고 늘어지더라. 제발 용서해달라고 그 아바타 케이에게 빔. 왠지 통쾌했음.

└ 야! 오만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마법사 NPC가 플레이어에게 질질 짰다고? 말이 되는 소릴 해야지.

└ 그런데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 나도 봤다. 아주 절절 메더만.

└ 정말이냐?

└ 그러고 보니 로그드라실 이벤트 때도 그 비슷한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엘프들이 아바타에게 말도 걸고 막 엥겨 붙더라고, 그 아바타도 케이였던 것 같은데.

└ 오! 나도 기억나.

└ 재미난 거 알려줄까? 뉴팩토리 중앙 광장에서 봤는데, 어느 한 아바타가 휘파람을 부니까 골렘 경비견들이 달려와서 헥헥거리고 배를 보이며 눕더라.

└ ···설마 그 아바타도 케이?

└ 빙고!

└ 대체 케이가 누구냐?

인터넷에서 떠도는 이야기는 신빙성이 떨어지지만 한번 퍼지면 걷잡을 수 없었다.

케이를 몰랐던 사람들은 케이를 알게 되었고, 원래 케이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었던 사람들은 그가 현재 그라운드 테라에 있다는 정보를 확보했다.

중국 상하이.

중국 각성 플레이어 관리청 본부.

진위앙은 한국 상황에 대한 보고를 받는 중, 이번 실패로 또 자신의 능력에 의심을 받고 있었다.

거의 벼랑으로 몰린 상황, 한 번만 더 실수하면 영영 끝일 터.

“뭐? 그자가 케이?”

“틀림없습니다. 목격한 자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마법사 NPC들이 설설 기었다고?

그 뒤에 나오는 보고는 더 기가 막혔다.

로그드라실 엘프들, 그리고 뉴팩토리 골렘 경비견.

까도 까도 나오는 양파 같은 놈.

이런 플레이어는 처음, 진(眞) 치유 물약은 아무것도 아니다.

단순히 게임을 잘해서 그런가, 아니면 치트를 쓰고 있나?

하긴 둘 중 어느 하나라도 상관없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그라운드 테라라, 그럼 한국 APS 놈들은?”

“알아보니 로그드라실에서 사냥 중이라고 합니다. 새로 들어온 각성 플레이어와 손발을 맞춰본다면서···.”

“그 강찬웅이란 자와 말인가?”

“네.”

확실해졌다.

케이가 한국인이긴 하지만 APS와는 거리를 두고 움직이는 게 분명하다.

‘단순한 거래 관계일 거야.’

그렇다면 중국에게도 기회가 있다.

물론 과거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지만 서로 얻을 이익을 생각하면 그건 아무것도 아니고.

“그라운드 테라로 게이트 찍어놓은 플레이어들 있지?”

“네, 많이 있습니다.”

“그중 동화율 150% 이상 플레이어들 10명만 준비시켜. 나하고 같이 그라운드 테라로 간다.”

미국이라고 손 놓고 있는 건 아니었다.

특히 한국에서 나타났다던 치유 물약이 진품이며 그걸 넘긴 플레이어가 케이, 그리고 그런 식으로 진(眞) 아이템을 넘긴 것이 한 번이 아니라는 소문을 들었을 때부터 요주의 대상이었다.

“데려옵시다.”

“미국으로요? ···가능할까요?”

“가능하게 해봐야죠. 우리가 쓸 수 있는 코인은?”

“코인이야, 1억이라도 쓸 수 있죠.”

“그라운드 테라로 협상가 파견하세요. 케이와 접촉해봅시다.”

1억 코인이면 현 시세로 약 4억 달러.

만약 케이란 플레이어를 중심으로 떠돌고 있는 소문이 모두 사실이라면 4억 달러가 아까울까?

※ ※ ※

찬웅과 딸기는 워프 게이트를 통해 비고에 도착했다.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캄캄한 어둠,

찬웅은 인벤토리에서 영약 두 병을 꺼내 하나를 딸기에게 건넸다.

“이거 마셔요.”

“이건···?”

“인식의 영약입니다. 드시면 잘 보일 거예요.”

“감사합니다.”

생각해보니 현실에선 인식의 영약을 마셨지만 정작 게임 안에선 먹지 않고 있었다. 진(眞)도 아닌 일반 아이템인데 아낄 이유도 없고,

시각이 극대화되자 그제야 주위 모습들이 보인다.

여긴 비고, 즉 창고.

마탑의 창고 안에 무언가 보관되어 있었다면? 보통 물건들은 아닐 것이다.

눈 크게 뜨고 찾아봐야지.

천천히 한 걸음씩.

그러자,

띠링!

‘음?’

메시지가 들려왔다.

[봉인된 지하 비고 입구에 도착하셨습니다.]

[지하 비고에서는 대기실 귀환과 로그아웃이 제한됩니다.]

[사망 시 게임 접속이 강제 종료됩니다.]

“···뭐야?”

“어머?”

“딸기씨도 들었어요?”

“네, 들었어요.”

퀘스트와 상관없이 울리는 특정 지역에 있는 사람이라면 다 들리는 메시지인가 보다.

아무튼 귀환도 안 되고, 로그아웃도 안 되고, 게다가 사망한 후에 종료?

게다가 입장했는데 퀘스트 완료 메시지도 뜨지 않았다.

“죽어서 나가라는 말이네. 뭐 이런 퀘스트가. ···이거 잘못하다간 영영 여기 묶이겠는데?”

“으음, 전 괜찮아요. 혼자도 아니잖아요.”

그리고.

[사망 시 동화율과 반영률 하락은 1%로 고정됩니다.]

[접속 제한 페널티는 24시간으로 변경됩니다.]

[게임 재접속 시 지하 비고 입구에서 다시 시작합니다.]

[최종 퀘스트 완료 시 모든 제한이 풀립니다.]

“···.”

페널티가 완화된 건 다행이지만 그만큼 많이 죽을 수도 있다는 의미.

그리고 재접속해도 여기란다.

최종 퀘스트를 수행해야 여길 벗어날 수 있다는 뜻.

“으스스하네. 제가 괜히 딸기씨 데려와서.”

“어우, 천만에요. 절대 그런 말 하지 마세요. 저 죽고 또 죽어서 동화율 0%가 되어도 상관없어요.”

“설마 그럴 일 있을까요?”

“그렇겠죠?”

그건 그렇고, 퀘스트 완료 메시지는 언제 뜨지?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 봐요.”

“네!”

깜깜한 지하 비고 입구에서 한 걸음 한 걸음 안쪽을 향해 나아가는 찬웅과 딸기.

들어가면 갈수록 찐득한 무언가가 공기에 섞여 흘러나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이 느낌, 낯설지 않다.

딸기도 그걸 깨달았나 보다.

“으음, 기분이 이상해요, 마치···.”

“침식지?”

“네, 침식지 안으로 계속 들어가면 느껴지는 그 기운요. 지하라 그런가? 사실 도시 밑은 침식지잖아요.”

하지만 침식 작용이 지상에서 멀리 떨어진 하늘까진 영향을 주지 않는다.

그랬다면 공중 도시가 벌써 침식당했겠지.

“저긴 선반 같은데···,”

“네, 하지만 비어있네요.”

창고는 텅텅 비어있는 것 같다.

봉인되었다면서! 아무나 들어올 수 없다는 거 아닌가?

그럼 물건은 보존되어 있어야지.

그때였다.

툭!

데구르르르르···.

무언가 발에 걸려 저쪽으로 굴러갔다.

‘돌멩인가?’

순간!

띠링!

- 공중 도시 테라퓨타 마탑의 봉인된 지하 비고에 입장하세요.(완료)

퀘스트 완료.

‘이제야 완료됐네.’

뒤를 이어 나오는 알림음.

[보상이 지급됩니다.]

‘보상? 어디 있는데? ···설마?’

찬웅은 허리를 굽혀 발에 차여 저쪽으로 굴러간 돌멩이를 찾아 주웠다.

그건 돌멩이가 아니었다.

“오!”

[진(眞) 스킬 구슬 : 무기 막기]

이게 바닥에 굴러다닌다고?

진짜?

“사부님, 뭔데요?”

“이거 보세요.”

“···와! 세, 세상에!”

딸기도 깜짝 놀랐다.

안 놀랠 수가 있나.

”진짜에요? 진(眞) 스킬 구슬이라면···,”

“네, 현실에서도 사용 가능한 거죠. 단 각성 플레이어에 한해서만···.”

랜덤 박스를 까도 잘 안 나오는 게 바로 스킬 구슬.

그런데 과연 하나뿐일까?

“계속 찾아봐요. 더 있을 것 같은데.”

“아, 알았어요.”

잠시 후.

“찾았어요. 여기, 이쪽에 많이 있어요!”

[진(眞) 스킬 구슬 : 약점 포착]

한두 개가 아니었다.

[진(眞) 스킬 구슬 : 일점 찌르기]

[진(眞) 스킬 구슬 : 폭발 화살]

[진(眞) 스킬 구슬 : 방출]

“빨리 주워요.”

“이쪽에 모아둘까요?”

“네.”

대박.

초대박.

[진(眞) 스킬 구슬 : 얼음 칼날]

[진(眞) 스킬 구슬 : 패스트 스텝]

[진(眞) 스킬 구슬 : 마법 저항(5서클)]

.

.

.

툭, 툭, 툭,

데구르르르.

발에 차여 바닥에 굴러다닐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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