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중도시 테라퓨타(1) >
처음 세계 각국 정부에서 각성 플레이어를 확보했던 목적은 순전히 관리 차원, 그들에게 뭔가를 기대하거나, 특정 임무를 부여하려는 의도는 절대 아니었다.
위협 요소는 곁에 두고 감시한다.
그래야 사회가 안전해지니까.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각성 플레이어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통제가 가능하다면 그만한 무력 수단도 없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의 경우 어느 파벌이 얼마나 많은 각성 플레이어를 확보하느냐에 따라 정치적 입지가 달라졌다.
현재 상하이파가 중국 국무원 요직을 다 장악하고 있는 것도 각성 플레이어 때문, 숫자도 가장 많고, 또한 강한 자들이 즐비하다.
각성 플레이어들이 무슨 일을 하냐고?
간단하다.
압도적인 물리력을 바탕으로 한 정치 공작.
반대파 인물에 대한 협박, 납치, 암살.
기업인을 상대로 한 약탈, 산업 스파이 등등.
그래서 중국 각 정치 파벌은 각성 플레이어 육성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상하이파의 지원을 한 몸에 받으며 상하이 각성 플레이어 관리청 본부를 이끌고 있는 [대국혼], 진위앙은 침통한 표정으로 노트북으로 한국 TV뉴스를 시청하고 있었다.
- 서울 동작구 사당동에서 중국계 폭력조직 구성원으로 짐작되는 4구의 시신이 발견되어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경찰은 갈수록 조직화되고 위협적인 중국계 폭력조직들이 세력 다툼을 벌이다···, -
이미 한국에 심어놓은 빨대에게서 보고를 받았다.
뉴스에 나오는 중국계 폭력조직은 첸카이를 비롯한 중화각성용사를 일컫는 말.
“결국 6명이 가서 2명만 살아남은 건가?”
“마, 맞습니다.”
“그 2명도 한국 측에서 아무런 조건 없이 풀어준 거란 말이지?”
“···량량과 저우신입니다. 곧 있으면 상하이 공항을 통해 도착할 예정이라고.”
“제기랄! 이게 무슨 개망신인가? 량량과 저우신 들어오면 바로 튀어오라고 해.”
“네, 알겠습니다.”
공식적인 항의도 할 수 없는 일.
한국에선 치유 물약 입찰 같은 사실은 꺼내지도 않았고, 당연히 중국에서도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못했다.
4명이나 죽었다.
어떻게?
‘첸카이에, 류쉰, 왕룬보, 천웨이까지, 우리 용사들을 죽이려면 최소 그 비슷한 수준의 플레이어 6명은 필요해.’
그것도 적게 잡은 것.
도망도 가지 못하게 만들어 죽였으니 최소 10명 이상.
현재 알려진 한국 APS 소속 각성 플레이어는 4명, 아니 새로운 놈을 영입했다는 정보가 들어왔으니 그럼 총 5명.
‘숫자가 맞지 않아.’
그럼 간단하다.
한국 APS는 주력이 아니다.
비밀리에 육성하는 최소 10명 이상의 각성 플레이어 팀이 더 있다.
‘일본 자위대에서 섣부른 짓 하다가 된통 당했다는 소문이 정말이었나?’
숫자를 잘못 파악하고 덤벼들었으니 당해도 싸지.
‘확실하게 알아봐야겠군. 먼저 APS부터···,’
진위앙의 착각은 어쩌면 합리적이었다.
‘그나저나 케이라는 놈도 한국인인데···.’
치유 물약 확보 작전 실패는 기정사실.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치유 물약도 케이에게서 나왔다고 하니 차라리 그놈을 찾는 것이 더 편할 터, 물론 가상현실에서 말이다.
※ ※ ※
대현 병원 VIP 입원실.
찬웅은 잠시 스트래칭을 하며 게임에 접속할 준비를 했다.
어제, 딸기 신여은과의 전화 통화를 떠올렸다.
‘움직이는 건 어때요?’
‘힘이 강해진 건 확실한데, 아직 미세한 조절이 힘들어요.’
‘어떤 식으로?’
‘오른쪽 다리에 포스를 주입하면 왼쪽 다리가 약해지고, 상체에 집중하면 하체가 흔들리고···, 포스를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감이 오질 않아서 그런 거 같아요.’
‘상큼한 딸기 아바타였을 때 움직였던 포스를 생각하면 안 되나?’
‘그게···, 잘 안되네요.’
‘역시 스킬이 필요하겠군요. 방출 같은 거.’
‘아뇨! 필요 없어요. 이렇게 건강해진 걸로도 너무나 만족해요. 아무튼 누가 보는 데선 절대 힘쓰지 않을 테니까 안심하세요.’
방법이 있겠지.
생각 같아선 치유 물약 하나 더 주고 싶지만 그건 도를 넘어서는 호의, 파티원으로서 동등한 관계는 깨어지고 말 터, 결국엔 오래 가지 못한다.
천천히 생각해보고.
이제 접속해야지.
곧 딸기와 만날 시간이다.
그라운드 테라에서.
VIP 입원실에 설치된 캡슐형 접속기에 누워,
지이잉!
“윽!”
접속 완료.
그리고 이동 게이트를 열어젖혔다.
화아악!
※ ※ ※
NPC들은 플레이어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까?
한마디로 이방인.
엄밀하게 말하면 이세계(異世界)로부터 전이한 이방인의 영혼, 만들어진 육체를 가지고 영혼만 넘어온 터라 죽어도 죽지 않는 불사의 존재.
듀플렉스 대륙 토착민 NPC들은 플레이어들을 못마땅해하면서도 또한 부러워한다.
죽지 않는 불사의 영혼과 육신을 가졌음에도 침식지 구원의 거룩한 사명은 뒷전이고, 오로지 돈과 물질만을 중요시하는 욕망덩어리.
탐욕스러운 이방인들은 때때로 공동체 질서를 파괴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있어야 세계의 질서가 유지된다.
테라퓨타의 마법사들은 이런 이방인들을 가장 잘 이용하는 사람들, 의뢰를 주고 그것이 완수되었을 때 적절한 보상을 해주며 자신들은 이득을 취한다.
물론 플레이어들도 마법사들이 주는 보상이 매우 달콤하기에 테라퓨타의 위성도시, 그라운드 테라로 몰려온다.
하지만 문제도 있었다.
지극히 오만한 마법사들, 서클이 높을수록 더하다.
같은 NPC들끼리도 그런데 플레이어, 즉 이방인을 바라보는 그들의 시각이 어느 정도일까.
찬웅은 게이트를 통해 그라운드 테라에 도착했다.
‘용병 사무소 앞에서 만나기로 했지?’
그라운드 테라의 사냥은 의뢰를 받아서 하는 것이 좋다.
물론 그냥 나가서 사냥할 수도 있지만 의뢰를 받는 것이 이익이기 때문에.
의뢰?
그거 퀘스트 아닌가?
그렇지 않다.
확실하게 구분된다.
‘퀘스트’는 시스템 메시지가 뜨고 자동으로 집계가 되지만 ‘의뢰’는 메시지도 뜨지 않고 NPC와의 개인 거래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마법사들이 용병 사무소에서 의뢰를 걸어둔다.
의뢰의 내용은 주로 마법 재료 구하기.
슬라임 사체를 몇 개 이상 가지고 와라. 임프의 혓바닥을 가져와라, 이런 것들.
의뢰를 완수하면 마법사들이 코인을 준다.
심지어 의뢰 난이도에 따라 스킬 구슬도 준다.
그라운드 테라 용병 사무소는 저 높은 곳에 사시는 마법사 NPC들의 의뢰를 접수해 아바타 명을 등록한 용병들에게 배분하고 보상을 지급한다.
‘너무 일찍 왔나?’
아직 딸기가 오지 않았다.
한 30분 정도 일찍 접속해서 그런가 보다.
‘등록이나 해두자.’
부유석 퀘스트 때문에 왔긴 하지만 겸사겸사 사냥도 해야지.
그라운드 테라 침식지의 몬스터들은 가장 약한 슬라임부터, 임프, 헬하운드, 리빙아머, 키메라, 켈베로스···, 그리고 침식지 보스 데몬, 사냥해서 받은 코인으로 상자도 까고.
찬웅은 용병 사무소로 들어갔다.
“어서 와라. 이방인 케이. 의뢰를 받으러 왔나?”
보자마자 반말이네.
마법사들이 오만한 족속이라는 데우스칩의 말이 맞는 것 같다.
“아니, 등록하려고.”
“인제 보니 촌뜨기였군. 등록하고 난 뒤 첫 의뢰는 무조건 슬라임이야.”
“알았다고.”
“좋다. 등록해주지. 어디 보자. 이방인 케이라, 케이···, 케이?”
“왜?”
“아, 아니다. 등록됐다. 슬라임 의뢰는 저쪽 게시판으로.”
찬웅은 슬라임 사냥은 할 생각 없다.
끈적끈적한 미끌이들 잡아서 뭐 하게?
괜히 산성 물질 때문에 장비 상한다.
그래서 게시판은 쳐다보지도 않고 용병 사무소를 나갔다.
이 앞에서 딸기나 기다리자.
‘그나저나 우리 어린이 마법사 브랜달은 어디 있는 거야?’
여기 오면 바로 만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라운드 테라는 꽤 큰 도시다.
그리고 저 하늘 저편, 너무 멀어서 그저 까만 점으로만 보이는, 저것이 바로 부유왕국 테라퓨타 마법사들의 공중 도시.
그때였다.
웅성웅성,
용병 사무소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오는 무리,
금색 실로 화려하게 수놓은 로브를 입은 중년의 마법사를 선두로 갖가지 화려한 로브를 입은 젊은 마법사들이 뒤를 따르고 있었다.
‘누구지?’
제법 신분이 높은 것 같은데···.
공중 도시에서 왔나?
아무튼 신경 끄자.
저들을 만나러 온 게 아니니까.
그런데?
“네놈이 케이구나.”
“···응?”
아바타들이야 머리에 이름표가 떠 있으니까 이름을 아는 거야 이상할 것 없지만···.
“맞구나. 교활한 사기꾼놈! 가짜 물건으로 세상 물정도 모르는 어린애를 속여먹어?”
“···사기꾼? 무슨 내가 사기를 쳤다고?”
“당장 출입증을 내놓거라. 테라퓨타로 통하는 출입증 말이다. 감히 이방인 주제에 넘볼 걸 넘봐야지. 네놈은 선을 넘었다.”
“아···,”
어떤 상황인지 알 것 같다.
꼬맹이 브랜달이 자신에 대해서 말했겠지.
이방인이 축복받은 부유석을 가지고 있다고, 그래서 그에게 출입증을 줘 테라퓨타로 방문해주기로 약속했다고,
문제는 브랜달이 미성숙하다는 것, 아직 어리다. 그래서 어른들 눈에는 교활한 사기꾼에게 속아 출입증을 갈취당한 거라 판단한 모양.
“브랜달은?”
“하아, 잘못을 했으니 벌을 받아야지. 쯧쯧, 벌써 몇 번째인지···.”
슈슉! 슈슈슉! 슈슉!
마법사들의 등 뒤에서 갖가지 마법 이펙트들이 떠올랐다.
파이어볼, 아이스 스피어, 워터볼···,
“돌려주지 않으면 끝까지 네놈을 추적하겠다. 죽이고 또 죽여주마. 네가 대륙 어디에 있든!”
불쌍한 브랜달.
진실이 외면당했구나.
하긴!
말을 들어보니 한두 번이 아닌 것 같다.
그전에 저지른 전과가 있으니 믿어주지 않은 것 같고.
“그런데 물건이 진짜 있는지 알아보는 게 제대로 된 순서 아닌가?”
“하하하! 축복받은 부유석 말이냐? 그걸 이방인이 가지고 있다고? 씨알도 안 먹히는 소리···, 정말 가지고 있다면 꺼내라.”
“···꺼내라? 참나, 부탁해도 모자랄 판에,”
갑자기 기분이 나빠졌다.
퀘스트 안 하면 그만이지.
찬웅은 인벤토리에서 루인의 머리 따개를 꺼내 들었다.
그러자 눈에 이채를 띠며 흠칫 놀라는 중년의 마법사.
“넌···,”
그때였다.
“이 거지 같은 마법사 새끼들이.”
슈우우욱!
파악!
“죽을래?”
찬웅과 마법사들의 중간에,
아찔한 노출 갑옷을 착용하고 무시무시한 톱날검과 우우웅, 미세한 진동으로 떨리는 반사 방패를 들고 허공에서 날아와 착지하는 상큼한 딸기.
“다 덤벼! 모조리 썰어줄게.”
중년의 마법사는 피식 웃으며 같잖다는 듯 말했다.
“풋! 이제 봤더니 네놈은 미친 엘프 살인마 년 부하고, 네년은 더러운 기름쟁이 골렘 새끼 수하로구나. 둘이서 드디어 붙어먹었나?”
도끼와 톱날검, 방패를 알아본 모양.
슛!
슈슈슛!
마법사들이 점점 늘어났다.
그라운드 테라에서 일하는 마법사, 저 멀리 공중 도시에서 출동한 마법사.
“여기가 만만해 보였군. 좋다.”
중년의 마법사가 가볍게 한 손을 들었다.
우우웅!
주위로 몰려드는 엄청난 기운.
딸기는 당장이라도 뛰쳐나가려는 듯 자세를 바짝 낮췄다.
“이제 그만 죽어···,”
“잠깐!”
찬웅은 인벤토리에서 출입증을 꺼내며,
“그래, 돌려줄게. 그거 알아? 이까짓 출입증 따윈 줘도 안 가져.”
툭!
바닥에 출입증을 던졌다.
“이미 늦었다. 네놈들이 3일 뒤에 다시 모습을 살아난다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물론 그때도 또 죽여줄 테지만.”
“그거야 마음대로 하시고, 하지만···,”
찬웅은 축복받은 부유석을 꺼냈다.
“이 물건은 뉴팩토리에 가서 팔아야겠구나.”
반짝반짝, 큼지막한 덩어리의 축복받은 부유석.
그 특유의 광채를 뿜으며 찬웅의 손 위에서 놀고 있었다.
마법사들의 시선이 그 물건으로 집중됐다.
절대 낯설지 않은 영롱한 빛깔의 돌.
그리고 물건의 정체를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
“저, 저거?”
“진짜라고? 사기가 아니었어?”
“세, 세상에 이럴 수가···,”
“신이시여!”
부유석은 테라퓨타 마법사들의 숙원이자 어떤 물건과도 바꿀 수 없는 최고의 보물.
저걸 어떻게 모를까? 얼마나 소망했던 물건인데.
“이게 가짜로 보여?”
“아, 어음, 그, 그게···,”
브랜달의 말은 진실이었다.
부유석, 그것도 축복받은 부유석.
이방인이 저걸 가지고 있다고?
찬웅은 인벤토리에 다시 부유석을 넣었다.
“너희들은 내 선의를 무시했어. 곧 저 부유도시가 추락할 수도 있다는 걸 듣고 안타까운 마음에 왔는데,”
“자, 잠깐!”
“날 죽이고 싶으면 마음대로 해. 딸기씨 갑시다. 뉴팩토리로.”
“네!”
인벤토리에 들어간 이상 9서클 마법사가 온다 해도 어찌하지 못한다.
소유자가 다시 꺼내 넘겨주지 않는 한,
미련 없이 뒤를 돌아 떠나는 찬웅과 딸기.
“···이, 이방인! 이방인! 기다려주시오. 우리 대, 대화를!”
덥석!
고고하고 오만했던 중년의 마법사가 체면도 없이 달려와 찬웅의 옷자락을 잡고 매달렸다,
“이미 늦었어.”
응, 안 돼! 돌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