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아바타의 재능으로 동화율 돌파-55화 (55/204)

< 반영률이라는 스탯 아세요? >

때때로 스킬은 용병 플레이어에게 장비보다 중요하다.

당장 찬웅만 해도 그렇다.

에루인의 바람길 산책으로 얼마나 많은 꿀을 빨았나. 별빛 가르기와 비열한 습격도 마찬가지.

NPC 스킬 상점에서도 몇몇 기초 스킬을 제외하면 대부분 가격이 비싸다.

아바타 케이가 익힌 듀얼 스트라이크만 해도 상점가 50,000D코인, 현 코인 시세가 3.5에서 4.0달러 사이니까. 한화 약 3억.

그런 스킬 구슬을 맹세만 하면 다 주겠다는 브랜달, 평범한 잼민이 마법사가 아니다.

현실로 따지면 처음 보는 어린이가 사탕 홀짝홀짝 빨며 찬웅에게 와서,

- 제 부탁 들어주시면 자동차 드릴게요. 가출하면서 몇 대 끌고 나왔거든요. 여기 벤츠, 아우디도 있고요, BMW, 포르쉐, 아! 페라리도 있어요. -

이거와 뭐가 달라?

게다가 NPC들은 구별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진(眞) 스킬 구슬까지 소유하고 있다니.

브랜달 어린이의 부모가 뭐하는 NPC인지는 모르겠지만 평범한 이는 아닐 터.

가만!

‘테라퓨타의 전설급 NPC가 브랜데인이었지.’

그리고 현 마탑주도 브랜카인.

이 어린이 마법사는 브랜달.

‘브랜’이 성(姓)은 확실히 아니다.

그러나 칭호일 수는 있다.

위대한 전설을 기리는 마음에서 그의 이름 일부를 따와 자신에 이름에 붙이는 식으로.

슬쩍 찔러나 볼까?

“너 아버지 뭐하시니? 스킬 상점 주인?”

“아뇨.”

“그런데 왜 이 귀한 스킬 구슬이 이렇게 많아?”

“우리 아빠가 만들어요. 테라퓨타 마탑에서.”

“아하! 아버지가 마탑에 계시구나. 혹시 성함이 브랜카인?”

“그분은 제 할아버···, 누, 누구라고요? 전혀 모르는 이름인데요.”

찔끔한 표정의 브랜달.

확실하다.

금수저 NPC다.

말하자면 재벌집 손자.

“근데 이거 다 준다고?”

“꼭 오신다고 약속하면요.”

“안 줘도 돼.”

“네? 아, 아니, 제발요. 꼭···,”

“안 줘도 약속한다고,”

“···와! 두말하기 없기!”

오지 말래도 간다.

가출을 위한 여행비 목적으로 아무렇게나 스킬 구슬 몇 개 주머니에 집어넣고 왔다는 브렌달.

그런데 그중에 진(眞) 하나가 딸려왔다.

그럼 더 있을 수 있다는 의미.

‘진(眞) 스킬 구슬 보물 창고가 테라퓨타에 있었구나.’

무조건 가야 할 이유가 생겼다.

눈에 보이는 대로 모조리 털어와도 될 터.

왜냐하면 자신에겐 이 부유석이 있기 때문에.

테라퓨타는 부유석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

진(眞) 스킬 구슬을 몽땅 긁어올 수 있는 백지 수표나 마찬가지.

“어떻게 약속하면 돼?”

“이거···,”

브랜달은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뭔가를 꺼내 찬웅에게 넘겼다.

“약속의 맹약 스크롤인데요. 약속을 지키겠다고 맹세하시고 이걸 찢으면···.”

“맹세 어기면 어떻게 되는데?”

“저주가 발동해 중요한 거 몇 개 잃게 되는 거죠. 헤헤.”

“뭔데?”

“으음, 머리카락?”

요놈 봐라?

뭐, 퀘스트라 반드시 지키겠지만 어겨도 상관없다.

아바타가 탈모가 된들 무슨 상관···,

‘···아니지. 반영률이 적용되어서 현실에서도 빠질지 몰라.’

가능성 매우 높다.

더구나 43%.

‘현실 강찬웅의 머리가 43%가 빠진다고?’

세상에 그보다 더 참혹한 일이 또 있을까..

반영률이라는 게 이렇게나 무섭다.

“다른 저주는 없어? 머리카락 말고.”

“···고자 되기?”

“이런! 씨이···.”

순간 욕이 튀어나올 뻔.

되바라진 애새끼가.

‘후우,’

진정하고.

“잘 들어라. 꼬마야.”

“네?”

“사람 의심하는 거 좋은 거 아니야.”

“···.”

“내가 간다고 했지? 너도 여기 있지 말고 빨리 그라운드 테라로 가 있어. 늦어도 이번 주까진 갈게.”

“매, 맹세는···.”

슬슬 귀찮다.

“후우, 꼬마야. 내가 데우스칩하고 굉장히 친한 사이야. 그래서 이런 것도 있거든.”

명예 연구원증을 꺼내 보여주는 찬웅.

“어···.”

“나하고 데우스칩 만나러 같이 갈까?”

“하하하, 농담이죠? 이 증표도 가짜고, 이방인이 무슨···.”

삐이익!

찬웅은 길게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자,

크르릉, 컹컹컹!

중앙광장에서 찬웅 쪽으로 우르르 몰려오는 골렘 경비견들.

“한번 물려볼래?”

“히, 히익!”

깜짝 놀라는 브랜달.

땅바닥에 손을 짚더니.

“나타나!”

츠핏!

소환진이 그려지면서 그 위에 나타난 비행종 야수 그리핀.

브랜달은 냉큼 그리핀을 탔다.

“야! 맹약 스크롤은 가지고 가야지!”

“필요 없어요! 그건 가져요. 대신 꼭 와야 해요! 안 오면 할아버지에게 이를 거예요!”

“오냐!”

금수저는 금수저구나.

비행 탈것은 엄청나게 비싸다던데.

쐐애액!

저 하늘 저편으로 작은 점이 되어 사라지는 브랜달.

연계 퀘스트도 받았다.

다음 접속은 그라운드 테라, 혹은 공중도시 테라퓨타에서.

그럼 대기실로 귀환해서 문 하나 더 달아야지.

그런데,

띠링,

또 알림 메시지.

딸기였다.

[상큼한 딸기] : 싸부님!

[케이] : 음?

[상큼한 딸기] : 저 방금 하산했습니다.

[케이] : 하산?

[상큼한 딸기] : 네, 에루인 장로님이 이 정도면 쓸만하다며 보내주셨어요.

하산은 무슨, 강호 초출 은거 고수 흉내 내는 것도 아니고.

[케이] : 현재 동화율은요?

[상큼한 딸기] : 141%, 정말 밥 먹고 똥 싸는 시간 빼고 무조건 게임만 했어요.

[케이] : ···.

[상큼한 딸기] : 지금 어디세요?

[케이] : 뉴팩토리 중앙광장,

[상큼한 딸기] : 바로 가겠습니다.

딸기가 오랜만에 합류한다.

‘141% 가지고 간당간당한 데.’

괜찮을 것이다.

자신도 141% 때는 날아다녔으니까.

잠시 후, 저 멀리서 빠르게 뛰어오는 딸기.

“싸부님!!!”

“그냥 케이라고 불러요. 민망하게시리.”

“넵! 케이님.”

그런데 자세히 보니 뭔가 달라졌다.

먼저 갑옷이 바뀌었다.

그런데 갑옷이라 하기엔 많이 허술하다.

가린 부위보다 안 가린 부위가 더 많다.

군데군데 보이는 하얀 맨살, 가슴과 중요 부위만 얼추 가리고 나머진 헐벗은 몸.

아무리 아바타지만···.

“···그 갑옷 쓸만해요?”

“그럼요! 영웅 등급이라 방어력 짱짱하고. 무려 트롤에게 몽둥이로 맞아봤는데, 아무렇지도 않았어요.”

“아하.”

여캐의 법칙이 이 게임에서도 적용되나 보다.

맨살이 많이 보이면 보일수록 좋은 갑옷이라는 법칙.

“그리고 이것도.”

딸기는 자랑이라도 하려는 듯 인벤토리에서 무시무시한 톱날검과 황금색으로 빛나는 방패를 꺼내 들었다.

“이것들도 다 영웅 등급?”

“아뇨. 둘 다 전설 등급.”

“네? 전설?”

“멋지죠?”

아니, 전설 등급 아이템이 그렇게 흔한가? 그것도 두 개씩이나.

절대 흔하게 구할 수 있는 건 아닌데.

말 그대로 전설.

그냥 평범한 아이템이 아니라 전설급 NPC가 제작, 혹은 소유했다는 스토리텔링이 존재해서 돈 주고도 구하기 어렵다.

‘저 방패는 어디서 봤는데···,’

“전설 아이템 이름이?”

“톱날검은 [데우스칩의 초고속 진동검], 방패는 [데우스칩의 무지개 반사 방패]요.”

“···데우스칩?”

“네, 중앙 마공학 연구소 수석 연구원님.”

그러고 보니 기억이 난다.

엑사 등급 마그누스 기간트 코어 퀘스트를 완수하고 보상을 받으러 갔던 데우스칩의 보물창고에서 봤던 그 방패.

데누스칩이 좋은 사람이긴 해도 아무런 대가 없이 아이템을 막 퍼줄 리가!

“데우스칩이 그냥 줬어요?”

“당연히 아니죠. 교환했어요.”

교환이라니.

“뭘로?”

“으음, 그게 에루인 장로님의 상의, 그러니까 오래 입고 계셨던 옷인데···,”

“아하,”

이제야 알았다.

‘그때 그 연구실 액자에 넣으려고 했던 옷이구나.’

알만하다.

에루인이 입고 있던 옷, 그것도 오래 입어 채취가 배어있는 상의.

‘쯧쯧쯧,’

겨우 옷 하나에 전설급 아이템 2개를 넘기다니.

불쌍한 데우스칩.

게임이나 현실이나 공학도가 연애 못 하는 건 어떻게 이리도 똑같을까.

"이제 우리 어디 가죠? 저 이제 많이 컸어요."

동화율은 아쉽지만 전설 아이템이 두 개. 그럼 많이 큰 거 맞다.

“같이 사냥 가면 좋겠지만 도시를 옮길 예정이라.”

“네? 또 어디로요.”

“테라퓨타의 위성 지상 도시, 그라운드 테라로 갈 겁니다.”

“와! 그라운드 테라! 거기 플레이어들에게 꽤나 인기있는 도시잖아요.”

“그래요? 난 몰랐는데.”

“열심히 사냥해서 평판 올리다 보면 마법사 NPC들이 스킬 구슬을 보상으로 준 데요.”

“아하.”

확실히 용병 플레이어라면 혹할 만하다.

“딸기씨도 바쁘지 않다면···.”

“무, 무조건 갑니다.”

“그럼 대기실에서 그라운드 테라 게이트 하나 달아두세요.”

“넵!”

“저도 준비하고 메시지 보낼게요.”

“그럼 언제 재접속하시는지?”

“으흠, 내일?”

전설 등급 아이템도 가지고 있고, 동화율도 제법 올렸으니 데리고 갈 만해졌다.

거기에 쓸만한 스킬까지 배우면 금상첨화일 터.

“그런데···,”

살짝 주저하며 뭔가를 말하려는 상큼한 딸기.

“이야기하세요.”

“저어, 혹시 반영률이라는 스탯 아세요?”

“···네?”

찬웅은 정말 깜짝 놀랐다.

반영률? 그녀가 이걸 어떻게···,

“어디서 들었어요?”

“들은 건 아닌데···.”

그럼?

“로그드라실 떠나기 전에 에루인님과 세계수를 만나러 갔는데, 손을 대보라고 하셔서 그렇게 했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무슨 반영률이 올랐다면서 메시지가 연달아서 막···,”

“상태창에 반영률 항목이 떴어요? 얼마?”

“10%. 지금은 그렇게 나와 있어요.”

“어···.”

딸기, 아니 현실의 신여은이 각성 플레이어가 되었다는 말이다.

그것도 세계수와 만나서.

‘무슨 이런 일이···,’

각성 플레이어가 드물긴 하지만 당장 한국에만 4명.

지금도 어디선가에선 누군가가 각성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딸기, 신여은이라니.

“···안 좋은 건가요?”

뭐라고 말해야 할까.

솔직히 찬웅도 분간이 안 된다.

이게 좋은 일인지, 아니면 나쁜 일인지.

결국 판단은 그녀의 몫.

“아직 로그아웃 안 했죠?”

“네.”

“그럼 로그아웃하고 나서 알 수 있을 겁니다.”

“뭐가요?”

“직접 알아보세요. 놀라지 마시고, 그리고···, 흐음.”

찬웅은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절대 비밀로 하세요. 그 누구에게도!”

“무, 무슨 일인데요.”

“여하튼 로그아웃해서 캡슐에서 일어나시면 제 말의 의미를 깨닫게 될 겁니다.”

“으음, 넵! 알았습니다!”

생각해보면 좋은 일일 수도 있다.

포스를 사용할 수 있다면 그녀가 생활하는 데도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특히 근육과 관계된 질병이라면.

아무래도 안 되겠다.

밖에서도 틈틈이 확인해보자.

“저기 혹시 전화번호 있으세요?”

“네? 다, 당연히 있죠.”

“그럼 불러줘요. 외울 테니까.”

“잠깐만요. 제 번호가···.”

현실에서 만나본 그녀는 예의 바르고 심성이 착했다.

절대 빌런은 안될 테지만···, 거꾸로 이용당할 수도 있는 것이 걱정.

꼭 이야기해 줘야지.

함부로 힘쓰지 말라고.

※ ※ ※

상큼한 딸기, 신여은도 캡슐에서 몸을 일으켰다.

“엄마! 엄마!”

“왜?”

“내 스마트폰 어디 갔어?”

“몰라, 탁자 위에 있나?”

“빨리 가져다줘.”

확인부터 해봐야 한다.

“옜다. 여깄다. 엄마는 음식물 쓰레기 버리러 갔다 올게.”

“응, 갔다 와.”

사실 그녀도 폰을 어저께 개통했다.

병원에 있는 동안은 별 쓸모가 없어서 만들지 않았지만 지금은 필요해졌으니까.

‘만들길 잘했어.’

제대로 번호를 가르쳐준 것이 맞는지 긴가민가해서 혹시라도 틀린 번호를 가르쳐준 건 아닌가 걱정했는데.

“휴우,”

다행이다.

제대로 가르쳐준 것이 맞았다.

‘이제 전화 오기만 기다리면 되나?’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남자에게 번호 따인 적이.

그것도 케이에게.

“흐으응, 흐음.”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고.

신여은은 전화기를 꼭 쥐고 조심조심 걸음을 옮겼다.

손도 떨리고, 다리도 후들거리지만 걸을 수 있다는 게 축복.

그런데!

툭!

“아이고!”

손에 쥐는 힘이 온전치 못해 그만 놓치고 만 스마트폰.

급하게 주우려다 발로 잘못 건드려 캡슐 밑 좁은 틈새로 쏙 들어가고야 말았다.

“아, 씨!”

이걸 어쩌나.

틈새가 너무 좁아서 막대기도 안 들어가는데.

스마트폰은 누가 이렇게 얇게 만들어 논거야?

캡슐을 살짝 들면 될 것도 같다.

그러나 자신의 힘으로는 턱도 없고, 아빠가 오셔야 하고, 하지만 그전에 전화가 걸려오면···.

“안돼!”

전화는 무조건 받아야 한다.

신여은은 자신의 처지도 모른 채 허리를 굽혀 캡슐 접속 장치 좁은 틈으로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들리려나?’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번쩍!

쑤욱!

“···.”

신여은의 무릎까지 들어 올려진 캡슐,

“어머?”

뭐지?

아랫배 깊숙한 곳에서 올라오는 익숙한 힘,

“아!”

포스다.

게임 속 용병 플레이어 상큼한 딸기가 가진 포스.

이제야 기억이 났다.

반영률.

로그아웃하게 되면 알게 될 거라는 케이의 말.

놀라지 말라고, 절대 비밀로 하라고,

“···이, 이런 거였어?”

신여은은 캡슐 장치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콩!

그리고 다시 들었다.

쑤욱!

콩, 쑤욱, 콩, 쑤욱, 콩···,

꿀꺽,

그녀는 마른침을 삼켰다.

이걸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부스럭, 부스럭,

현관문에서 누군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엄마가 돌아왔나 보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랬지?’

부모님에게도 마찬가지겠고.

왜 그래야 하는지 알 것 같았다.

마침 거실 TV에서 뉴스가 흘러나왔다.

월스트리트 대학살 어쩌고저쩌고,

신여은의 시선이 TV로 향했다.

※ ※ ※

캡슐에서 일어난 찬웅도 뉴스를 봤다.

월스트리트 대학살.

뉴스에선 미치광이가 신종 마약을 빨고 저지른 사건이라 했지만, 아무래도 뭔가 이상하다.

‘혼자서 117명?’

그래서 인터넷 게시판을 찾아 들어가니.

‘···하아.’

미처 지우지 못한 동영상에서 생생하게 드러난 처참한 살육의 현장.

찬웅은 직감했다.

‘저건 시작일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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