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아바타의 재능으로 동화율 돌파-54화 (54/204)

< 마법사 브랜달 >

월스트리트에서 일어난 비극은 미국 시민들에게 크나큰 충격을 줬다.

사건이 일어난 클럽에서 찍은 학살 영상을 안 본 사람이 없을 정도.

인간 같지 않은 힘을 가진 한 남자.

주먹 한 방으로 사람의 머리를 날리고, 손날을 세워 복부를 꿰뚫어버리고, 어깨를 잡아 뜯어버리고···,

심지어 경찰들이 출동해 학살자의 몸통에 총알을 백발이상 박아 넣었는데도 끝까지 달려드는 모습은 사람들에게 섬뜩한 공포를 주기에 충분했다.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처음엔 영화 촬영 현장 영상 정도로 생각했지만 실제 사건이었다.

각성 플레이어.

보통 사람이 자신에게 큰 힘이 생겼을 때 먼저 고민부터 한다.

이 힘은 왜 생긴 거야?

이걸 가지고 뭘 하지?

정부나 비밀 연구소에 끌려가 인체 실험이라도 당하는 거 아니야?

가끔 약간 멍청한 놈들은 밖으로 나간다.

그러나 하는 짓이라고는 자기 과시, 사소한 복수, 시설물 파괴, 폭력과 절도.

가끔 통 크게 은행 강도 짓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모두 제 몸 소중한 건 안다.

해도 될 행동과 하지 말아야 할 행동 정도는 구분한다.

그래서 수습하기 어렵지 않았다.

신고가 들어오면 즉시 출동해서 정리하면 되니까.

그런데 일이 너무 크게 벌어졌다.

지금까지 이런 적은 처음.

빌 크리스토퍼 FBI 국장은 부하직원이 가지고 온 보고서는 읽어보지도 않았다.

볼 필요도 없고, 보고 싶지도 않고.

“몇 명이나 죽었다고?”

“부상 23명에 사망자 117명입니다.”

부상자들은 도망치다가 다쳤겠지.

고작 한 명, 빌어먹을 각성 플레이어 한 명이 무고한 시민 117명을 죽였다.

그것도 너무 잔인하게 죽였다.

그 생생한 살육의 현장이 영상으로 고스란히 찍혀 널리 퍼지고 있었고,

한두 명이라면 모를까? 그걸 어떻게 통제하나?

빌 크리스토퍼 FBI 국장은 다시 한번 영상을 재생했다.

가장 조회수가 많은 영상.

화면 안에서 무자비하게 사람들을 도륙하는 한 남자, 놈의 이름은 폴 로이드, 직업은 투자회사 펀드 매니저.

- 난 아바타 허큘로이드다. 인간 폴 로이드가 아닌 아바타 허큘로이드! 듀플렉스 스페이스가 내게 힘을 줬지. 흐흐흐, 윌가의 돼지들을 처단하라고! ···어때 잘 찍었어? 좋아, 약속대로 넌 살려주지. 끝까지 찍어서 널리 널리 퍼뜨려. -

“개 같은 새끼.”

“우울증으로 정신병원에 다녔다는 기록이 있었습니다. 파생 상품에 투자하다 빈털터리가 된 후 그 증상이 더더욱 심해졌고.”

“돈이 아쉬우면 조용히 은행이나 털 것이지.”

우울증 걸린 각성 플레이어.

그래서인지 참으로 참혹한 자살 방식이었다.

영상엔 코멘트도 줄줄이 달렸다.

└ 세상에! 저게 인간이야?

└ 아바타? 아바타, 설마, 듀플렉스 스페이스를 말하는 건 아니겠지.

└ 맞아. 허큘로이드라면 내가 아는 플레이어인데···, 어쩐지 게임 안에서도 심상치 않았어.

└ 근데 가상현실이 힘을 줬다는 게 무슨 말이야?

└ 그런 게 있어. 동화율과 반영률 스탯에 따라 아바타의 포스가 현실에서도 생겨나는 거.

└ 응? 반영률? 그런 스탯도 있었나?

└ 그런데···, 넌 그걸 어떻게 알아?

└ ···.

“이 코멘트 쓴 사람은 추적했어?”

“네, 이미 하고 있습니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사람들은 이제 알아버렸다.

각성 플레이어의 존재를.

“사람들이 모두 알게 되었으니 정부 차원에서 대국민 담화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공개해야죠.”

“공개? 그래서 게임을 하면 희박한 확률로 각성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인정하자는 건가?”

“···이미 공개된 거나 마찬가지인데, 나중에 정부에서 알고도 감췄다는 걸 알면 문제가 생기지 않겠습니까?”

“하하, 네가 이래서 아직 승진을 못 하지.”

빌 크리스토퍼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잘 들어! 우린 무조건 부정할 거야! 누구나 다 알아도 절대 아니라고 필사적으로 부인한다는 말이야.”

“···네?”

“설사 각성 플레이어 새끼들이 뉴욕 한복판에서 지랄을 떨어도 저건 영화 촬영이라고 거짓말을 할 거라고. 이해됐어?”

“왜 그렇게까지···.”

아마 백악관에서도 그렇게 할 것이다.

이건 진(眞) 아이템과는 또 다른 문제.

“정부가 사실이라고 인정해버리면 바로 각성 플레이어의 존재는 진실이 되어버려.”

그냥 그럴지도 모른다는 사실과 정부가 인정하는 사실.

이 두 가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정부가 인정해버리면 그 순간 공신력을 얻게 된다.

아직은 그럴지도 모른다에서 그쳐야 한다.

“저 할렘가 마약쟁이 새끼들도 게임을 하겠다고 설치겠지. 마피아 놈들은 조직원을 각성 플레이어로 육성하려 할 거고, 멕시코 카르텔 새끼들도, 놀이터에서 아이들을 더러운 눈으로 훔쳐보는 아동 성범죄자 새끼들도, 온갖 개새끼들이 빚을 내서라도 집에다 최고급 캡슐형 접속기를 설치할 거다. 이런 걸 바라나?”

이미 하고 있을 수도 있고.

아무튼 대 빌런의 시대가 찾아온다.

처음부터 나쁜 새끼들이 각성하는 시대.

“그러니까 모른다고 잡아떼야 해. 언론 브리핑은 신종 마약을 하도 빨아대서 그랬다고 둘러대. 각성의 각자도 꺼내지 마.”

“···네, 알겠습니다.”

생각 같아선 게임을 중단시켜버리고 싶지만 불가능하다는 건 빌 크리스토퍼도 안다.

대체 그 게임의 정체는 뭘까?

솔직히 자신도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이 FBI 국장 자리가 그렇게 한가한 것도 아니고,

제발 나쁜 새끼들은 각성 못 했으면 좋겠다.

그런 바람뿐이다.

※ ※ ※

찬웅은 거의 한 시간 째 마키나 공화국 뉴팩토리 시내를 할 일 없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퀘스트를 해결해야 하는데.

- 축복받은 부유석(1)

- 완료 조건 : 뉴팩토리에서 마법사 브랜달을 찾으세요.

- 보상 : 부유왕국 테라퓨타의 출입증.

‘브랜달을 어디서 찾으라고?’

보상이 부유왕국 테라퓨타 출입증.

그냥 출입증일 뿐이지만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다.

부유왕국 테라퓨타, 세계수가 엘프의 수호신이듯, 마법사들의 정신적 버팀목인 마탑과 함께 하늘에 떠 있는 공중 도시.

그러나 게임이 서비스된 지 2년이 지났어도 그곳에 가본 플레이어는 한 명도 없다.

플레이어 출입 금지 지역.

'그럴 만하지.'

현재 공중 도시에 박힌 부유석의 부양력이 한계에 다다랐는데 플레이어들의 출입까지 허용해버리면 멀지 않아 땅으로 추락할 터.

물론 아예 교류를 막아놓은 건 아니다.

아무리 공중에 떠 있다 해도 침식지 문제는 해결해야 하니까, 그리고 마정석 공급도 받아야 하고.

그런 이유로 마법사들이 지상에 임시로 건설한 도시가 하나 있다.

지상 도시의 이름은 그라운드 테라.

플레이어들은 그라운드 테라에서 마법사 NPC들과 교류하면서 침식지를 해결하고 퀘스트도 받는다.

출입증을 받게 되면 플레이어가 부유왕국 테라퓨타에 최초로 발을 내딛게 되는 셈, 뭐, 마키나 공화국과는 사이가 좋지 않다고 하지만 그건 그 사람들 문제고.

‘이제 브랜달을 찾기만 하면 되는데···,’

순간!

자신이 접속하는 걸 기다렸다는 울리는 메시지 알림음.

[와치맨] : 케이님.

[케이] : ···왜요?

[와치맨] : 이번에 너무 고생하셔서 송구스럽습니다.

송구는 무슨, 손도 안 대고 코를 풀었으니 자기들 기분만 좋겠지.

[와치맨] : 조만간 만나길 부탁드립니다. 전해드릴 것도 있고.

[케이] : 뭘···,

[와치맨] : 큰일 하셨는데 그냥 넘어갈 수 없지요. 그래서 소정의 코인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케이] : 얼마나···, 요?

[와치맨] : 일단 오백만 코인밖에.

오!

또 오백만.

지금 계좌에 있는 코인은 오백만.

저거까지 받으면 천만.

그나저나 신분을 숨기고 다녀야 하니 돈을 펑펑 쓰지 못하는 게 아쉬울 따름.

‘뭐, 게임에서나 펑펑 써보면 되지.’

심심하면 그 돈 가지고 상자나 까고.

진(眞) 아이템이 안 나오면 또 어때?

‘땅을 사는 것도 좋은 방법이고···.’

물론 게임 속에서.

천만 코인이면 카시우스 제국에서 작은 영지 하나 정도는 살 수 있다고 들었다.

‘아니면 탈것을 하나 살까?’

어디 진(眞) 탈것 없나?

천만 코인으론 무리겠지만.

받자.

돈이야 많으면 많을수록 좋으니까.

[케이] : 감사히 받을게요. 참! 부탁이 하나 더 있는데.

[와치맨] : 뭐든 말씀해주십시오,

[케이] : 통화 가능한 스마트폰 하나, 구할 수 있습니까? 으음, 대포폰 같은 거.

[와치맨] : 가능합니다. 바로 준비해드리겠습니다.

이왕 연을 맺은 거, 현실에서도 연락할 수단도 있어야지.

통화 추적 같은 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에고 시스템이 이런 거 잘한다.

현재 찬웅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다시 중앙광장으로 왔다.

‘접근하는 NPC가 한 사람도 없네.’

아직 정보가 풀리지 않았나 보다.

머리에 이름표를 달고 있어 자신이 누군질 알 텐데.

‘사냥이나 하자.’

올드팩토리 주변에서 메탈몹을 잡다 보면 언젠간 찾아올 것이다.

그래서 성문 밖을 나가려고 골목길을 빠져나가는데,

바로 그 순간!

“이방인 케이?”

누군가 뒤에서 부르는 소리.

‘혹시 브랜달?’

찬웅은 고개를 뒤로 돌렸다.

‘아무도 없는데.’

그러다 밑으로 내려보니.

낼름낼름.

지 얼굴 크기만큼이나 큰 막대사탕을 혀로 핥고 있는 천진난만한 NPC 어린애 하나.

“···.”

“당신이 이방인 케이?”

“하아, 사탕 맛있냐?”

“네!”

뭐, 어린이 NPC가 돌아다니는 게 이상한 건 아니지만···.

그때였다.

- 뉴팩토리에서 마법사 브랜달을 찾으세요.(완료)

‘뭐?’

잘못 봤나?

‘완료되었다면···’

이 애새끼가 마법사 브랜달?

하지만 주위에 다른 사람은 없고, 분명 퀘스트 완료가 떴다.

“너 혹시 이름이 브랜달이니?”

“어? 어떻게 알았어요?”

“마법사이고?”

“···헉!”

화르륵!

어린 브랜달의 손위에 떠오르는 시뻘건 불덩어리.

“어떻게 알았지? 날 추적이라도 하고 있었나?”

“···네가 날 찾아온 거야.”

“아! 그렇구나.”

피시식,

불덩어리가 꺼졌다.

마법사는 확실하다.

“근데 이방인 아저씨는 제가 누군질 어떻게 알았어요?”

“음,”

뭐라고 말할까?

“퀘스트로.”

“와! 정말요? 주신의 인도? 거기 내 이름이 나왔어요?”

브랜달은 활짝 웃었다.

퀘스트는 NPC들에게 ‘주신의 인도’로 해석된다.

“역시 그럴 줄 알았어. 난 보통 마법사가 아니었던 거야. 가출하길 잘했어.”

“가출했냐?”

“넵! 제가 3서클인데, 아빠가 인정해주지 않아요. 진정한 마법사가 되려면 시련을 거쳐야 하거든요. 그런데 아직 어리다고 시련 여행도 보내주지 않아서···.”

이 퀘스트는 알고 보면 미아 찾기 퀘스트인가?

이래서 결혼은 신중해야 한다.

“여긴 왜 왔어?”

“스스로 시련을 창조하고 해결하려고요. 이 기름쟁이 공화국의 흑막, 잔인하고 악랄한 데우스칩의 발명품 하나를 훔쳐 가면 아빠도 인정해주지 않을까 해서, 헤헤.”

“···.”

데우스칩에 대해 잘 모르나 보다.

“근데요. 기름쟁이들이 하는 얘기로는 아저씨가 축복받은 부유석을 가지고 계신다던데, 저 한 번만 보여주심 안 돼요?”

어떡할까?

어쩔 수 없다.

이마에 피도 안 마른 놈이지만 퀘스트에 이름이 명시되어 있으니까.

“여기,”

“오! 오오오오오! 진짜다. 진짜!”

브랜달 어린이가 팔짝팔짝 뛰면서 호들갑을 떨었다.

“이, 이거 저 주면 안 되죠?”

“당연히 안 되지.”

“헤헤, 그럴 줄 알았어요. ···그럼 저랑 테라퓨타에 가시는 건?”

“···.”

혼란하다. 혼란해.

그러나.

띠링!

- 축복받은 부유석(2)

- 완료 조건 : 지상 도시 그라운드 테라에서 마법사 브랜달을 만나세요.

- 보상 : 호감도 상승.

퀘스트 떴다.

“생각해보고,”

“아아, 제발요. 이거 드릴게요.”

“뭘?”

[NPC 마법사 브랜달이 개인 거래를 요청해왔습니다.]

철컥,

거래창에 브랜달이 올린 물건은,

[부유왕국 테라퓨타의 출입증]

황금색의 타로카드 비슷한 출입증 한 장.

퀘스트 보상이다.

자신에게 올 수밖에 없는 것,

“이건 테라퓨타로 갈 수 있는 출입증인데···,”

“나도 알아. 일단 받아 둘게. 하지만 언제 갈지는 모르겠다. 안 갈 수도 있고.”

살쩍 애타게 만들어 줘야지.

아무리 NPC라도 가출까지 한 놈인데, 벌주는 셈 치고.

“오, 오늘 안으로 와주시면,”

“글쎄.”

“오신다고 약속하면 이것도 드릴게요.”

“뭔데?”

[NPC 마법사 브랜달이 개인 거래를 요청해왔습니다.]

철컥!

[스킬 구슬 : 쇼크웨이브]

“스킬 구슬?”

“여행 경비에 사용하려고 집에서 몇 개 들고 왔는데 이젠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 또 있어요.”

스킬 구슬은 비싸다.

NPC들에게도 그렇다.

“맹세만 해주세요. 다 드릴게요.”

아마 환심을 사려는 것 같다.

하긴 미적대고 있으니 불안해서 그러겠지.

조금만 더 놀려먹고 수락해주자.

“이것도.”

철컥,

[스킬 구슬 : 기민한 손놀림]

“많아요.”

철컥,

[스킬 구슬 : 순간 회피]

진짜 많이도 들고 왔네.

사고 확실하게 치고 가출한 놈이다.

철컥, 철컥, 철컥···,

바로 그 순간!

‘···어?’

이게 왜 여기에,

브랜달이 올린 스킬 구슬, 그중에 하나.

[진(眞) 스킬 구슬 : 슬립]

‘진(眞)?’

이게 여기서 나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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