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아바타의 재능으로 동화율 돌파-53화 (53/204)

< 월스트리트 대학살. >

일본 후쿠시마.

특수초인각성대.

혼죠 부대장은 이제 체념한 표정.

말렸다는 말이 이런 상황일까?

처음 자위대 소속 각성 플레이어 5명을 보냈을 땐 그들이 가지고 올 진(眞) 치유 물약 생각에 가슴이 뿌듯했다.

거기서 벌어들일 돈이 얼마인지 생각하느라 밤에 잠이 안 올 정도.

하지만 개같이 멸망.

연락도 되지 않았다.

진상 조사를 위해 보낸 스킬 각성 플레이어도 마찬가지.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정말 미치고 환장할 노릇 아닌가!

이쯤 되면 마포대교엔 블랙홀이 있는 것이 틀림없다.

일본 각성 플레이어를 쭉 빨아들이는 블랙홀 말이다.

“그럼 결국 쿠데타는 실패한 건가?”

“네, 주모자 조창대 중장이 사망한 걸로 압니다.”

“쯧, 멍청한 주제에 욕심만 많아서···, 아깝군.”

쿠데타가 성공했다면 일본으로선 매우 좋은 일이다.

한국 상황이 혼란에 빠졌을 테고, 저 북쪽에서도 강성 군부 세력이 권력을 잡은 것을 달가워하지 않을 게 분명하니 긴장은 더더욱 고조되었겠고.

한국의 혼란은 일본의 행운 아닌가.

아쉽게도 물 건너갔지만.

부관 시마모토가 비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제 곧 한국 정부에서 진(眞) 치유 물약 비공개 입찰을 열 예정이라는 정보가 들어왔습니다.”

“···그래?”

“명령만 내려주십시오. 제가 직접 대원들을 이끌고 한국으로···.”

“안 돼! 병력을 그쪽으로 돌릴 여유가 없어.”

벌써 6명이나 사라졌다.

그로 인한 공백.

특히 케이라는 놈이 걸린다.

진(眞) 아이템을 마음대로 뽑아낸다는 그놈.

그 또한 각성 플레이어라는 정보도 있고.

‘애초에 그놈에게 집중했어야 했어.’

정보가 부족하다.

한국에서 건너온 정보만 믿어선 안 됐다.

‘후우, 그놈의 치유 물약 때문에,’

발을 잘못 들였나?

늪에 빠진 기분이 든다.

더 깊게 가라앉기 전에 발을 빼야 한다.

“당분간 한국 쪽은 쳐다보지도 마. 치유 물약은 포기한다.”

“···네. 알겠습니다.”

“대신 정보선은 계속 유지하도록. 특히 케이가 누군지 알아봐.”

본토 상황만 튼튼하다면야 한국으로 각성 플레이어를 보내 일을 도모해볼 수도 있지만 지금은 시기가 좋지 않다.

나중에 기회가 있을 터.

일단 각성 플레이어를 더 많이 만들어놓고 볼 일이다.

※ ※ ※

최기병과 비서실장, 둘 다 표정이 심각했다.

“어떤가? 이 제안은···,”

“어쩔 수 없죠. 우리가 케이에게 줄 수 있는 건 코인밖에 없으니까요.”

“그렇지? 그래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거라고 반드시 알려주게.”

“네, 꼭 전하겠습니다.”

쿠데타 음모 저지, 최고급 캡슐 124개 압수 및 국가 귀속, 각성 플레이어 2명 확보, 아무튼 결과적으로 APS의 전력이 크게 강화되었다.

케이 덕분에.

“덧붙여 게임 안에서 케이가 하는 일을 물심양면으로 도울 필요가 있습니다.”

“그거야 적극적으로 지원하지. 전담반에서 별도 팀을 만들게.”

“인원 충원과 예산은···.”

“어떻게든 마련해야지.”

이제 남은 건 후속 처리인데···,

솔직히 최기병은 피바람이 몰아칠 줄 알았다.

여야 정치인, 육본과 합참 등등, 조창대와 엮인 자들이 꽤 많았기 때문에.

조창대의 스마트폰, 그리고 3군단 내부에 있는 증거 자료, 그 안에 모든 것이 들어 있었다.

따로 수사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그러나 비서실장의 생각은 달랐다.

정확하게 말하면 대통령의 생각이지만.

“조창대 사건은 놈이 죽은 걸로 매듭지을 생각이야. 더 이상의 수사는 없어.”

“아···.”

“현시점에서 정치적 대립 구도를 만들지 않겠다는 게 VIP의 의중이라네.”

예상했던 바다.

거의 평생을 정치판에서 살아온 대통령.

노회한 인물이었다.

당적을 이리저리 옮겨 다니면서 진보도, 보수도 아닌 애매한 위치에 선 사람, 그것이 그가 대통령에 당선된 이유.

“협상하실 생각이시군요.”

“국익이 중요하잖아. 특히 요즘 같을 때는 더.”

하긴, 대통령 생각도 이해한다.

요즘 같을 때가 무얼 의미할까?

조창대도 각성하지만 않았다면 쿠데타 같은 건 꿈도 꾸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강력한 힘을 가지게 되면 당연히 그 힘을 사용하고 싶은 욕망이 샘솟는다.

누구나 다 그렇다.

특히 용병 플레이어들은 더 하다.

현실과 다름없는 게임 안에서 몬스터 사냥과 PK를 밥 먹듯이 하는 자들.

그들이 현실에서 각성하고, 현실에서 힘을 가지게 되면서, 게임 속 몬스터와 실제 인간의 구분이 사라지는 순간, 바로 빌런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조창대나 박달환 같은 놈들이 동시에 수십 명씩 나타난다면 얼마나 끔찍하겠나? 그럼 경찰의 힘만으로 그들을 제압할 수 있을까?”

“···상대조차 하지 못할 겁니다. 공권력 정도는 너무나 쉽게 무너뜨릴 수 있는 자들이 바로 그들이죠.”

“그들을 막을 수 있는 자들은 바로 우리 측 각성 플레이어와 군(軍) 말고는 없네.”

2명이 늘었다 해도 통제 가능한 각성 플레이어의 숫자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럼 일차 저지선이 군대.

“유사시엔 VIP가 계엄령을 발동할 수 있어. 빌런 각성 플레이어를 상대하기 위해.”

“맞습니다. 그런 상황이 오게 되면 반드시 필요할 겁니다. 언제까지나 케이 하나만 믿고 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요.”

“군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네. 끌어안고 가야지. 그리고 그들이 조창대에게 협박을 받은 것도 사실이고.”

이건 대통령의 사면령이나 마찬가지.

물론 그 과정에서 최대한의 협조를 받아낼 테지만.

“사실 난 정치적 문제 같은 건 안중에도 없어. 진보든, 보수든, 중도든, 이념 갈등이야 평화로울 때나 통하지. 세상이 혼란해지면 그딴 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으니까.”

최기병도 동의했다.

요즘 한창 유행하는 한국의 K-좀비 영화처럼 현실에서도 그런 상황이 일어날 여지가 매우 높다.

좀비가 바로 빌런 각성 플레이어라고 가정한다면 말이다.

아포칼립스와 같은 대 혼돈의 시대가 열릴지도 모를 일.

“그럼 언론에도···.”

“그래, 공개하지 않을 예정이야.”

최기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최선인 것 같다.

미국도 그렇고, 한국도 그렇고, 이번 쿠데타 모의 사건을 봐도 알 수 있듯이 이 한국 땅만 해도 자신을 숨기고 있는 각성 플레이어들이 매우 많을 터.

그런데 최기병이 가장 궁금한 것은 바로 이 지점.

이 문제 많은 게임을 왜 중단시키지 않는 걸까?

“대체 미국은 왜 가만히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진(眞) 아이템만 빼면 부작용이 더 많은 게임이지 않습니까? 제가 미국 대통령이라면 당장 서버를 중단시켰을 겁니다.”

“불가능해서 그렇지.”

“네? 그게 무슨···,”

비서실장 도동훈은 최기병 팀장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사실 이건 알려줄 필요도 없는 일, 풍문에 불과한 이야기니까.

그러나.

“헛소문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알아 두는 게 좋겠지.”

“뭘요?”

“아는 사람만 아는 이야기, 일단 들어봐.”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지?

최기병은 집중해서 도동훈의 이야기를 들었다.

“자네 이 듀플렉스 스페이스 가상현실 게임이 딱 한 번 중단된 적이 있다는 건 알고 있지?”

“알고 있습니다.”

미국이 처음 진 아이템과 각성 플레이어의 존재를 인지했을 때.

전력을 차단하고, 인터넷망까지 끊어 가상현실 게임을 중단시키고 듀플렉스 스페이스 본사에 대한 조사를 벌였지만 국민들 반대에 못 이겨 물러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 그 한 번.

“첫 번째는 물러날 수밖에 없었지만 과연 미국이 순순히 포기했을까?”

“···두 번째 시도도 했다는 말입니까?”

“그래, 얼마 후 그 전과 똑같이 전력 차단과 인터넷망을 끊었어. 어땠을까?”

“호, 혹시 아무 일 없이 게임이···,”

“맞아. 허허, 전기가 없어도, 인터넷망을 끊어도 서비스되는 게임이라니.”

그게 가능하다고?

“자, 두 번째도 실패했다네. 그럼?”

“설마 세 번째도?”

“맞아. 세 번째 시도 또한 있었어. 이번엔 아예 본사 운영 시스템실과 중앙 서버 센터를 부숴버렸지. 그게 1년 전 일이네. 그래도 게임은 계속되고 있어. 끊기는 거 없이 쭉!”

“···어.”

“아무튼 듀플렉스 스페이스 대표 게리 스탁턴 또한 모습을 감췄어. 아마 본사 건물엔 아무도 없을걸?”

전기도, 서버도, 본체도, 대표도, 직원도 없이 홀로 돌아가는 게임이라.

“전 세계 게임 접속용 캡슐을 부수면요? 만드는 공장이 있을 건데···, 그것부터 금지하면? 이것도 어차피 기계 아닙니까?”

“그럼 진(眞) 아이템은 만드는 공장이 있어서 집 앞까지 배달되나?”

“아!”

“이건 멈출 수 없는 게임이야. 우리도 올라탄 이상 절대 내리지 못해. 그러니 다가올 위협에 대비해야 하네. 그러기에 케이의 존재는 정말 소중하고,”

처음 듣는 이야기지만 당연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애초에 존재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게임이니까.

※ ※ ※

언젠간 터질 일이었다.

시간과 장소가 문제였지.

미국 뉴욕시 맨해튼에 위치한 금융 거리, 월스트리트.

뉴욕증권거래소, 나스닥, 대형 은행, 투자금융기관, 그리고 코인 거래소를 운영하는 디멕스 코인 거래소도 월스트리트에 있다.

맨해튼답게 월스트리트의 밤은 화려하다.

금융으로 유명하지만 어두워지면 화려한 클럽들이 네온사인으로 하루 업무에 지친 펀드 매니저, 은행, 투자회사, 증권회사 직원들을 유혹한다.

부자들 많은 이 거리의 대형 클럽들은 그 입장 조건도 까다로울 수밖에 없었다.

어중이떠중이 다 들여보내면 물이 썩을 테고, 이렇게 한번 소문이 나면 그 클럽은 장사 접어야 한다.

클럽 가드의 임무는 입장하기 위해 줄을 선 손님들을 관찰하고 들어가지 말아야 할 사람을 걸러내는 것이다.

“헤이! 이봐!”

“···나?”

“그래, 당신, 여기 줄 설 필요 없어.”

“왜?”

“왜긴, 절대 못 들어갈 테니까.”

클럽 가드는 추레한 행색으로 줄을 선 남자를 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조금 떨어져서 보면 괜찮았다.

입고 있는 옷이 죄다 명품이었으니까.

하지만 군데군데 찢어지고 더럽혀져 몰골이 말이 아니다.

퀭한 눈두덩이에 짙은 기미는 덤.

사실 이 월가에 이런 사람들은 흔하디흔하다.

바로 며칠 전까지 여자들과 함께 마약을 빨며 파티를 즐기다 하루아침에 파산하는 놈들이 한둘인가?

“집에 가서 따뜻한 물에 샤워나 하고 생각이나 정리하라고. 지금의 당신은 이 클럽에 어울리지 않아.”

“그럼 누가 어울린다고?”

“월가의 신사분들이지.”

“흐흐흐, 신사, 신사, 월가의 돼지들은 아니고?”

“뭐?”

“만만한 회사 표적 삼아 개인 투자자들 공매도로 망하게 하고, 대출 상환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주택담보대출을 강요해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불러 일으키고, 지구 반대편에서 전쟁이 나면 그걸 호재라고 판단해 돈이나 벌 생각을 하고, 폰지 사기는 기본이고···, 사람이야 죽든 말든 제 배 속이나 채우는 놈들이 신사? 월가의 돼지들이지.”

속사포처럼 쏘아대는 말에 그저 멍하니 바라보는 클럽 가드.

“···뭐래? 알았으니까 당장 꺼져!”

“싫은데? 난 들어갈 거야.”

“하아, 이거 말로 해선 안 되겠군. 너 이리 와! 말 잘 들으면 불쌍해서 차비나 쥐여 주려고 했···,”

덥썩!

“어?”

갑자기 추레한 남자가 가드의 손목을 잡고 관절 반대 방향으로 꺾어버렸다.

빠드득!

“아악!”

그리고,

푸욱!

가드의 가슴을 뚫고 등 뒤로 삐져나온 남자의 손, 그 손엔 아직 펄떡펄떡 뛰는 심장이 들려있었다.

“돼지의 하수인이 된 죄라고 생각해.”

파삭!

부서지는 심장.

사람들의 비명은 뒤늦게 터져 나왔다,

“꺄아아악!”

“으아아아···,”

“사, 사람이 죽었어!”

“911부, 불러!”

“경찰도!”

남자는 피로 흥건한 손을 혀로 살짝 핥으며 미소지었다.

어차피 돼지들은 안에 가득하다.

귀를 찢을 듯한 음악이 울려 퍼지는 클럽 안으로 천천히 들어가는 남자.

그리고 그날 밤.

한 명의 각성 플레이어에 의해 무려 117명의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나중에 출동한 경찰 특공대와 정부 소속의 각성 플레이어에 의해 사살당했지만.

월스트리트의 대학살.

살아남은 사람들은 그 끔찍한 모습을 생생하게 스마트폰으로 찍어 SNS에 올렸다.

※ ※ ※

그 시각 찬웅은 아바타 케이로 마키나 공화국 뉴팩토리에 나타났다.

해야 할 숙제는 끝냈다.

당분간 현실에서 도끼 들고 설칠 일은 없을 듯하다.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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