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냥 둬선 안 되겠다.(3) >
강원도 인제 제3군단 본부 지하 전술 벙커.
‘만나러 오겠다고? 좋아. 기다려주지.’
조창대는 자신이 있었다.
감히 군대를 우습게 보고.
각성 플레이어라도 총을 맞으면 죽는다.
쉴드 스킬이라든가, 아이템이 있다 해도 서너 발 정도지, 초당 수십 발이 날아오는데, 쉴드 같은 거야 바로 뚫린다.
그리고 이 지하 벙커엔 어떻게 들어오려고,
조창대는 모든 병력을 벙커 방어에 집중시켰다.
벙커 입구 주변에 지뢰와 크레모아를 매설하고, 열화상 카메라, 장갑차, 기관총 등의 중화기, 그야말로 물 샐 틈이 없었다.
침입 시도가 발각되면 그 자리에서 모조리 쏟아붓는다. 놈은 벙커에 발을 들이기는커녕 입구에서 폭사 당할 것이 분명하다.
이제야 조금 안심이 됐다.
애초에 놈을 두려워했던 것이 후회될 정도로.
‘이제 시간을 벌어야 하는데···.’
조창대는 대마불사라는 말을 믿었다.
크게 저질러야 살아남는다.
이번에 변승국을 제거한 이유도 그와 같은 맥락.
‘잘 알아들었겠지.’
여태까지 자신의 뒤를 봐줬던 기득권 세력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
남은 건 케이, 그놈이 오면 죽여버리고, 만약 놈이 오지 않으면 여기서 버티다 정치적으로 비화시켜 활로를 만든다.
최악의 순간이 온다 해도 방법은 있다.
정부와의 협상.
자신도 각성 플레이어 아닌가?
백기 투항하고 밑으로 들어가겠다고 하면 정부도 받아줄 터, 물론 옛날만큼의 위세는 누리지 못하겠지만.
어떤 경우라도 죽지는 않는다.
단 하나, 케이라는 불안 요소만 없다면 말이다.
“충성! 소령 곽종대, 임무 완수하고 복귀했습니다.”
“그래, 수고했어. 고생 많았지?”
“아닙니다.”
복귀하자마자 완전 무장하고 나타난 믿음직한 곽종대도 왔고,
“곽소령, 가서 봉춘섭이하고 마태길이 불러와.”
“여기로 말입니까?”
“어. 둘 다, 지금 바로,”
병사 출신의 각성 플레이어 2명.
봉춘섭의 계급은 병장, 마태길은 이등병.
모두 군 싸지방에서 의자형 접속기로 게임을 하다 각성했다.
‘쯧, 둘 다 병사인 것이 아쉽군.’
장교나, 하다못해 부사관이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징집으로 들어온 놈들이다.
병사들의 군 생활 최대 목표는 제대, 그래서 회유가 쉽지 않다.
그러나 품어야 한다.
동화율과 반영률이 하락해서 힘이 약해진 지금으로선 한 명이라도 아쉽다.
※ ※ ※
나쁜 새끼 잡으러 가는 중.
쿠데타를 계획하고, 어제까지만 해도 한편이었던 동료를 자살로 위장하고, 죄 없는 가족들도 같이 죽이는 흉악범을 잡으러 간다.
···택시를 잡아타고,
택시비만 30만원.
내돈내잡.
내 돈 써서 내가 직접 잡는다.
강원도 인제에 내리니 새벽 2시경.
총알처럼 달려왔다.
3군단 본부까진 걸어서, 눈으로 보일 만큼 가깝다.
자, 이제 전투태세.
지금부터는 잠입 액션 모드.
‘조창대의 위치는?’
[답변해드리겠습니다. 현재 조창대의 스마트폰 GPS 정보가 마지막으로 확인된 지점은···,]
말만 하면 어딘 줄 알고?
‘안내해줄 수 있어?’
[···답변해드리겠습니다. 가능합니다. 200m 전방으로 이동하십시오.]
그래야 쉽지.
순간 가속은 포스가 많이 든다. 진(眞) 자원 재생 물약은 아끼자.
은신막 발현.
찬웅은 천천히 부대 안쪽으로 들어갔다.
부대 안엔 완전 무장에 위장크림까지 바른 군인들이 빽빽하게 모여있다.
‘뭐, 상관있나?’
사람이 많을수록 좋다.
열화상 감지 카메라가 있으면 뭘 하나?
사람들 틈에 숨으면 누가 누군지 구별도 못 할 텐데.
[현재 지점에서 우측으로 30m 이동.]
군인들은 절대 건들지 않는다.
이 사람들이 무슨 죄가 있을까.
있다면 대한민국 남자로 태어난 것이 죄.
[현재 지점에서 좌측으로 10m 이동.]
내비게이션, 아니 에고 시스템이 이끄는 대로.
그러다 보니.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안내를 종료합니다.]
‘여기네.’
거대한 벙커의 출입문.
개인화기를 든 군인들이 문을 지키고 있었다.
어떡하지?
들어가야 하는데.
때려눕히고 들어갈까?
순간!
“충성! 경계 중 이상 무!”
“어, 그래! 별일 없지? 문 열어!”
“네, 알겠습니다.”
마침 안으로 들어가는 장교 한 명.
손엔 치킨과 피자가 들려있었다.
그래,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찬웅은 그의 뒤에 바짝 붙어서 안으로 들어갔다.
벙커 안, 길다란 복도.
조창대가 있는 장소를 찾으면 된다.
게임 속 대화에서 놈은 자신이 선택받았다고 했다.
그렇다는 말은 조창대도 각성 플레이어라는 의미.
포스를 감지해서 찾아내면 되고,
하지만 그 전에.
‘벙커 내부 시설물 파악 가능해?’
[답변해드리겠습니다. 3군단 내부 데이터베이스에서 전술 벙커 설계도를 다운로드합니다.]
어우, 진짜 좋다.
이 허리띠를 택하지 않았다면 어쩔 뻔했나?
‘배전실 위치는? 어디를 조져야 정전이 되지?’
[답변해드리겠습니다. 배전실 위치를 안내합니다.]
다시 내비게이션 가동,
복도 안쪽으로 들어가니, 문이 하나 있다.
‘여기가 배전실.’
잠긴 문.
하지만,
[진(眞) 암살자 루인의 섬세한 살색 장갑]
[등급 : 전설]
[장비 종류 : 장갑]
[귀속 여부 : 습득 시 귀속]
[장비 기술 : 만능열쇠 / 공격 속도 20% 상승.]
손잡이를 잡고 장갑에 포스를 주입하자,
철커덕!
허무할 정도로 쉽게 열리는 문.
전에도 느꼈다.
자신의 직업은 용병이 아니다.
암살자.
아무도 자신을 찾지 못하게 몸을 숨기면서, 대상이 어디 있든 무조건 찾아내고, 잠긴 문을 쉽게 열어 방어를 무력화시키며, 결국은 목적을 이뤄낸다.
배전실 안은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작전은 여길 파괴하는 것부터 시작.
깜깜한 어둠 속에서 완벽한 암살자가 활동할 시간이다.
※ ※ ※
전술 지하 벙커 조창대의 집무실.
중앙에 소파가 놓여있었고, 탁자 위엔 맥주와 소주, 족발, 보쌈, 치킨, 피자등 배달 음식이 먹기 좋게 차려져 있었다.
조창대 중장, 곽종대 소령, 봉춘섭 병장, 마태길 이병.
계급도, 나이도 다른 이들이 모여있었지만 이들의 공통점은 있다.
바로 각성 플레이어.
“자자, 어서 한잔들 해.”
소맥을 직접 말아주는 조창대.
“어서 잔을 들어! 군단장님이 주시는 거다.”
옆에서 거드는 곽종대.
봉춘섭과 마태길은 입에도 대기 싫었지만 어쩔 수 있나?
들라면 들어야지.
“국가의 영광을 위하여!”
“위하여!”
“위, 위하여.”
“위하···, 여어.”
봉춘섭 병장은 극도로 불안한 심정,
그는 알고 있었다.
조창대와 곽종대가 무엇을 하려는지.
‘씨발!’
쿠데타? 정신 나갔나?
‘차라리 평범하게 있었다면 지금쯤 제대했을 텐데.’
그랬다.
이미 전역 날짜가 지났다.
하지만 집에 갈 수 없었다.
군대에 말뚝 박지 않을 거면 곽종대 소령이 가족들을 죽이겠다고 협박하는 판에,
‘후우,’
이들은 그렇게 할 것이다.
봉춘섭도 TV에서 봤다.
조창대 군단장의 친구, 변승국 중장이 가족과 함께 시신으로 발견된 뉴스를.
그래서 지금은 협조할 수밖에 없었다.
마태길 이병도 마찬가지.
처음엔 자신에게 생겨난 힘이 신기하기만 했다.
최전방 철책에서 군단 본부로 전입했을 땐 군 생활 편하게 할 줄 알았다.
그러나 봉춘섭 병장에게 속사정을 들은 후, 불안한 마음뿐.
무서운 사람들이다.
특히 곽종대는 더더욱 그렇다.
“춘섭아, 태길아.”
“병장 봉춘섭!”
“이병 마태길!”
“나만 믿고 따라오면 돼. 너희들은 로또보다 더한 행운을 잡은 거야. 우리의 계획이 성공하는 날엔 너희들이 상상도 못 했던 부와 명예를 거머쥘 수 있어. 이 군단장이 약속한다.”
“···아, 알겠습니다.”
“네, 넵!”
조창대는 환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아직은 마음이 넘어오지 않았다는 걸 안다.
하지만 가랑비에 옷 젖듯 계속 심리적으로 채찍과 당근을 주다 보면 결국 자신에게 충성을 맹세할 터.
“오늘 이런 거 말고 조금 화끈하게 놀아볼까? 종대야!”
“소령 곽종대.”
“읍내 다방이나 술집에서 도우미 몇 명 불러와라.”
“몇 명이나 말입니까?”
“사람 수대로 놀아야지. 노래방 기계는 있지?”
“연회장에 있습니다. 가서 가지고 오겠습니다.”
“그래, 그럼···,”
바로 그때였다.
팟! 파바바바밧!
정전인가?
줄줄이 꺼지는 천정의 전등.
지하 벙커가 암흑에 빠졌다.
“헉!”
“뭐, 뭐야?”
“정전인가?”
왜 갑자기?
순식간에 쥐 죽은 듯 조용해지는 벙커 안.
쿵쿵쿵쿵,
조창대의 심장이 사정없이 뛰었다.
‘설마···.’
놈이다.
놈이 왔다.
갑자기 어깨와 무릎이 심하게 아파지기 시작했다.
공포가 영혼에 각인되어 버린 건가?
조창대는 주먹을 꽉 쥐었다.
정전이라서 다행, 최소한 꼴사나운 모습을 들키지 않았으니까.
곽종대가 술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제가 나가보겠습니다.”
“···.”
조창대는 굳이 만류하지 않았다.
샤악!
완전 무장 상태로 권총과 날카로운 대검을 동시에 뽑은 곽종대.
오른손엔 플래시가 달린 권총, 왼손엔 역수로 쥔 대검, 그리고 얼굴엔 열화상 감지 고글까지.
그리고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 ※ ※
어두운 벙커, 이리저리 비치는 플래시 불빛.
“귀, 귀신, 귀신이다!!!”
“무슨 귀신?”
“내가 봤어! 똑똑히 봤다고! 으아아아!”
“플래시, 플래시 어디 있어?”
“저, 저기···, 으히힉!”
“씨, 씨이발, 진짜야? 가, 같이 가!”“
우르르르.
뭔가를 보고 혼비백산한 듯 벙커 내부에서 경비를 서던 병사들이 출입구를 향해 몰려갔다.
처음엔 한두 명이었지만 점점 많아졌다.
‘하아, 병신들,’
귀신은 무슨,
곽종대는 쓴웃음을 지었다.
어차피 기대도 안 했다.
한국은 분단국가다.
그래서 징병제를 유지하고 있고,
하지만 전쟁 국가는 아니다.
이 땅에서 전쟁이 벌어진 지 벌써 70년이 지났다.
다시 말해 3군단 소속 병사 중 적과의 교전 경험이 있는 자들은 하나도 없다는 의미, 갓 20대 초반, 강제로 끌려온 핏덩이들에게 뭔가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애초부터 무리였고.
하지만 이편이 훨씬 낫다.
열화상 감지 고글의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사람이 적으면 적을수록 좋으니까.
꺾어지는 복도 모퉁이 벽에 바짝 붙어 기척을 감지하는 곽종대.
케이, 그놈이 정말 그렇게 강해?
마지막으로 봤던 조창대의 얼굴엔 두려움이 가득했었다.
‘겁쟁이 새끼.’
고작 민간인에게 쩔쩔매다니.
놈이 아무리 각성 플레이어라고 해도.
그러나 조창대가 망하면 자신도 망한다.
물론 그때를 대비해서 보험을 들어두긴 했지만.
조창대와 나눈 모든 통화내용을 녹음했다.
이것은 자신이 군인으로서 상관의 명령에 복종할 수밖에 없었다는 구명의 근거가 될 터.
‘배전실 쪽 같은데···’
병사들이 귀신을 봤다고 하는 장소도 저쪽, 배전실이 있는 곳도 저쪽,
반면 벙커 내부 사령관 집무실은 이쪽 복도 끝, 여기로 오려면 저쪽 통로를 지나야 한다.
벙커 안은 조용했다.
적막한 어둠.
갑자기 저쪽 통로에서 가벼운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저벅, 저벅.
누군가 걸어온다.
필수로 가지고 다녀야 할 플래시도 없이.
병사라면 도망쳤을 텐데,
점점 가까워지는 발자국.
저벅, 저벅.
어디선가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모퉁이를 돌면 바로 보일 것이다.
‘죽여주지. 산산조각으로.’
곽종대는 가슴에 달린 수류탄 하나를 뽑아 들었다.
안전핀 제거, 딸깍,
안전 손잡이까지 벗겨내고,
팅!
‘하나, 둘, 셋!’
휙!
또르르르···,
콰쾅! 콰아아아앙!
드드드드드,
사정없이 진동하는 벙커 내부,
하나 더!
이번엔 더 안쪽으로.
휙!
또르르르···,
콰쾅! 콰콰쾅!
더 멀리.
휙!
또르르르···,
콰콰콰콰쾅!
.
.
복도 전체에 총 5개의 수류탄을 터뜨렸다.
척!
곽종대는 권총을 전방으로 겨누며 천천히 나아갔다.
‘···해치웠나?’
아니면 심각한 치명상을 입었던가.
밀폐된 벙커 안, 수류탄이 터지면서 나오는 수백 개의 파편을 어떻게 피해?
결국 각성 플레이어의 한계는 여기까지.
진(眞) 아이템이 총알도 막아낸다며 한때 떠들썩했지만 군이 보유하는 무기가 총기만 있나?
꿀꺽,
그래도 곽종대는 방심하지 않았다.
천천히, 권총을 겨누고 통로 쪽으로.
그런데 그때였다.
“곽종대?”
뒤쪽,
휫!
타탕!
···어디 갔지?
“네가 변승국과 가족들을 죽였지?”
오른쪽,
탕!
‘이런···,’
또 없다.
“지금까지 몇 사람이나 죽였어?”
왼쪽!
탕!
곽종대에 이마에서 한줄기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제기랄!’
정말 귀신인가?
귀신이 아니라면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움직여?
아무리 각성 플레이어라도.
“하긴, 알량한 힘을 얻었다고 세상이 우습게 보였겠지.”
곽종대는 위기감을 느꼈다.
놈이 살아있다.
그것도 모자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을 조롱하고 있다.
“어, 어디야! 다, 당장 나와!”
스팟!
정면에 나타난 희끄무레한 물체.
“자, 나타났다. 어쩔래?”
타타탕! 탕! 탕! 탕!
곽종대는 내심 환호하며 권총을 쏘아댔다.
멍청한 놈이 나타나란다고 나타나?
철컥!
탄창이 텅 비어버릴 때까지.
그러나,
“어?”
투둑, 투두두둑!
“쉬, 쉴드?”
“자, 다음, 이제 뭘 할거지?”
“이, 이익!”
곽종대는 있는 힘껏 포스를 불어넣으며 대검을 찔러넣었다.
“죽어!!!”
턱!
“헉!”
단단한 벽에 박힌 듯 꿈쩍도 하지 않는 대검.
‘무, 무슨 힘이?’
찬웅은 대검을 든 곽종대의 손을 꽉 움켜쥐고, 다른 손으론 놈의 모가지를 틀어쥐었다.
콰악!
“끅!”
숨을 쉴 수 없다.
몸부림을 쳤지만 도저히 벗어날 수 없었다.
“정작 자신에게 이런 일이 생길 줄 몰랐지?”
“커억, 구, 군인으로서 사, 상관의 명령에···,”
“그걸 지금 변명이라고 해? 넌 조창대보다 더 나쁜 놈이야.”
“···모, 모든 증거자료를 가, 가지고 이, 있어···, 나, 나를 살려주면 ···자료를 넘기겠···.”
“필요 없어! 넌 재활용도 안 돼!”
우드드득!
찬웅은 곽종대의 목을 그대로 꺾어버렸다.
털썩.
‘세트 효과가 좋긴 좋네.’
자동 발동 쉴드로 총알도 막아주고.
사실 이거 시험해보려고 맞아줬다.
이제 하나 남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