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냥 둬선 안 되겠다.(2) >
그 시각 APS 본부에선 회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안건은 내일 있을 치유 물약 비공개 입찰.
“새로 요청해온 업체가 어디라고?”
“화정 바이오입니다.”
“화정이라면 그 정규광 회장?”
“네.”
“화정 바이오가 기술력은 되나? 화정이라는 이름을 빼면 별 볼 일 없다고 들었는데.”
“중견업체 3곳과 컨소시엄을 구성했다고,”
“에잉, 욕심도 많은 영감이야. 활력 영약 처먹고 힘이 남아도는군.”
되도록 조용하게 진행할 예정이다.
오래 끌면 정보가 어떻게든 새 나갈 수밖에 없다.
누구나 욕심내는 치유 물약.
일본을 봐도 안다.
어떻게 알았는지 감히 한국 땅으로 쳐들어와 거래 현장을 급습해왔다.
일본이 알 정도면 미국이나 중국도 인지하고 있겠지.
그래서 하루빨리 처리해야 한다.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기 전에.
“그냥 눈 딱 감고 기술력 탄탄한 업체에 넘기면 단독으로 편한데 말이야.”
“분명 말이 나올 겁니다. 특혜다 뭐다 하면서.”
“어렵군, 어려워.”
“화정 바이오 말고도 입찰에 참여하는 회사들이 이미 5개 그룹으로 나누어 연합한 걸로 압니다.”
“쩝, 그래, 힘을 합치면 좋지. 백지장도 맞들면 나으니까.”
도동훈 비서실장이 국정원 양화갑 원장에게 말했다.
“양원장, 준비는 차곡차곡 진행되고 있지요? 경비와 보안이 중요합니다.”
“국정원 요원과 경찰들을 총동원해 백제 호텔 곳곳에 배치할 예정입니다. 안심하십시오.”
“하하하, 그래야죠. 빨리 끝내고 조창대 그놈 문제에 집중합시다.”
치유 물약 다음으로 시급한 문제가 바로 제3군단의 동향.
증거만 가지고 오면 육본과 협력해서 조창대를 끌어내릴 계획이다.
“최팀장, 자넨 어떻게 생각하나?”
“네?”
“조창대가 각성 플레이어를 확보하고 있을까?”
“흐음, 솔직히 가능성은 극히 희박합니다. 각성이 쉽게 되는 게 아니라서,”
“그렇지. 그렇게 쉽게 될 것 같았으면 벌써 나라가 망했겠지.”
최기병은 다소 부정적 입장.
각성 플레이어가 누구 집 개 이름도 아니고.
“참! 변승국이는?”
“집에서 칩거 중입니다.”
“회의에 나타나지 않는 걸 보니, 눈치챈 거 같군.”
“모를 리 없겠죠. 명색이 군 정보기관 수장인데.”
“뻔뻔한 놈, 지금까지 그놈과 함께 정보를 공유했다는 것 자체가 수치스러워,”
“증거만 확보하면 그놈부터 칠 겁니다.”
“그래야지.”
그때였다.
똑똑,
회의실 문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
국정원 요원 한 명이 황급하게 들어오더니 양화갑에게 귓속말로 무슨 말을 전했다.
“···정말이야?”
“네.”
안색이 굳어지는 양화갑,
“무슨 일인가?”
“그게···.”
“말해보게, 빨리!”
“변승국과 그 일가족 3명이 자택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었습니다.”
“뭐?”
“시집간 딸이 전화했는데 받지 않아서 집에 가봤더니···, 동반자살 같답니다. 유서도 발견되었다고,”
이게 무슨 소린가?
갑자기?
그것도 가족들과 함께 자살?
수사가 진행되는 상황이었다면 모를까, 변승국 털끝도 건드리지 않았다.
동반자살에, 유서까지?
그렇다면,
“조창대인가?”
“아마도···, 자살은 터무니없습니다. 꼬리 자르기가 분명합니다.”
변승국은 소심해서 자기 보신에만 힘쓰는 인물,
반면 조창대는 천상 군지휘관 과감성과 결단력이 이미 정평이 나 있고.
누구나 다 안다.
변승국은 조창대의 똘마니나 다름없다고.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까지 저지를 조창대가 아닌데, 가족들까지 죽여?”
“그렇습니다. 혼자 조용히 죽였다면 모를까, 크게 터질 줄 알면서도,”
“아마 그놈 주변에 무슨 일이 생겼거나 압박을 받고 있는 게 틀림없습니다.”
“압박? 그놈을 누가 압박한다고,”
“일단 조사를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일이 터졌다.
군 정보기관 수장이 가족들과 동반자살을 했다.
“언론은?”
비서실장의 말에 대답하는 국정원 직원.
“막지 못했습니다. 곧 뉴스에서 속보로 나올 겁니다.”
“제기랄! 회의는 여기까지 하세. 난 청와대 들어가 봐야겠어.”
“내일 치유 물약 입찰은?”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야. 연기해! 며칠 늦춰져도 상관없네. 내가 참여 업체들에게 통보하도록 하지.”
이들은 모르고 있었다.
가상현실 게임 속에서 케이와 조창대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 ※ ※
찬웅은 캡슐에서 일어났다.
‘일단 소문은 퍼뜨려뒀으니까,’
얼마 후면 이방인 케이가 축복받은 부유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전 뉴팩토리에 쫙 퍼지겠지.
테라퓨타 마법사들이 가장 소망하는 아이템.
당연히 퀘스트 완료 조건인 브랜달이 자신을 찾을 것이고.
해둘 건 다 해뒀다.
뉴팩토리 안에서 할 일 없이 시간 때우는 것보다 현실에서 기다리는 것이 낫다.
‘이제 좀 쉴까?’
샤워도 하고, 옷도 갈아입고, TV도 틀어놓고, 식사도 하고, 조금 쉬다가 접속하자.
그나저나 조창대 이 새끼는 어떻게 한다?
현실에서 그놈과 맞닥뜨릴 가능성은 아예 없다.
자신이 찾아가지 않는 이상 말이다.
그러나 그대로 두는 것도 문제.
몇 마디만 나눠봐도 알 수 있었다.
놈은 미치광이다.
그것도 힘을 가진 또라이.
히틀러나, 스탈린 같은.
조만간에 보기는 해야 할 것 같다.
퀘스트 끝내고···,
그런데 바로 그 순간!
- 속보입니다. 군사안보지원사령관 변승국 중장이 오늘 밤 10시 자신의 자택에서 가족들과 함께 시신으로 발견돼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
“뭐?”
- 현장에서 발견된 시신은 변중장을 포함해 모두 3명으로 변중장의 아내와 장성한 아들로 밝혀졌으며···. -
“···.”
- 변 중장은 ‘모든 책임을 안고 가겠다’ ‘다시는 자신과 같은 불행한 군인이 없기를 바란다’ 라는 내용의 유서를 남긴 걸로 알려져···, 이에 경찰은 동반자살에 무게를 두고 수사를 벌이고 있습니다. -
변승국이···, 자살?
찬웅은 확신했다.
“조창대.”
확인해보자.
찬웅은 루인의 세트 아이템과 허리띠를 착용했다.
그리고 포스를 불어넣으니.
[메인 서버에 접속을 시작합니다.]
[접속을 완료했습니다.]
‘변승국이 죽었어. 누가 그랬지?’
[답변해드리겠습니다.]
다행히 답을 들을 수 있는 질문.
잠시 기다리니.
[육군 제3군단 본부장교 곽종대 소령의 스마트폰에서 음성 녹음 파일을 다운로드합니다.]
‘곽종대 소령?’
3군단 본부 장교.
이놈이다.
음성 녹음 파일이라.
‘녹음 파일 내용은? 변승국과 관련된 걸로.’
[최근 음성 녹음 파일을 재생합니다.]
그러자 두 사람의 전화 통화내용이 의식 속에서 들려왔다.
- 어, 곽소령, 나다. -
- 네. 각하. -
- 승국이, 지금 바로 처리하고 복귀해. -
- 조금 기다려야 할 것 같습니다. 변승국 중장이 지금 자택이라 가족들하고 같이 있어서, -
- 가족들과 함께 있다고? 그게 무슨 상관인데? -
- 알겠습니다. 처리하고 들어가겠습니다. -
개새끼들.
변승국은 그렇다 치고 가족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대화 내용으로 보아 곽종대라는 놈은 각성 플레이어가 틀림없어 보인다.
조창대의 오른팔쯤 될 터.
그 두목에 그 부하.
자신의 상관과 통화한 내용을 쭉 녹음하고 있었나 보다.
찬웅은 이 순간 결심했다.
흉악한 새끼, 미친 새끼, 선민의식에 찌든 것도 그렇고, 쿠데타 모의를 한 것도 그렇고,
도저히 그냥 놔둬선 안 될 놈이다.
또한 놈과는 게임에서나 현실에서나 이미 적.
빨리 끝내자.
또 무슨 일이 생기기 전에.
그나저나 강원도까진 어떻게 간다?
‘택시 타지 뭐.’
베란다 창문을 열고.
타닥, 타닥, 타다닥!
팟! 팟! 팟!
건물과 건물을 뛰어넘어.
‘참! 가기 전에···,’
찬웅은 인벤토리에서 와치맨에게 받은 증거 수집용 스마트폰을 꺼냈다.
‘곽종대의 모든 음성 녹음 파일 여기로 전송해줘.’
[전송을 시작합니다.]
[전송을 완료했습니다.]
※ ※ ※
서울 송파구 변승국의 자택.
최기병이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손을 흔들어 인사하는 국정원 이필동 과장.
“이과장님.”
“어휴, 우린 만나도 꼭 이런 데서만 만나네요.”
“별수 없죠. 사건이 터졌으니까, 근데 자살 맞습니까?”
“정확하게 말하면 존속 살해 및 자살입니다. 겉으로만 보면.”
“겉으로?”
“이리 와보시죠.”
이필동 과장은 거실 안에 나란히 누워있는 시신 3구로 다가가 말했다.
"이런 상황, 전에도 보셨죠?"
"귀신작두."
“맞습니다. 유사한 점이 있죠. 이쪽은 변승국의 부인과 아들 시신입니다. 목에 난 손자국을 잘 보십시오.”
“목이 졸려 죽었군요. 그럼 변승국이?”
“네. 여기 변승국의 손을 자국과 맞춰보면 딱 들어맞습니다.”
정황상 변승국이 자신의 아내와 아들을 목 졸라 죽이고 자신도 자살했다는 것.
“물론 의문점이 있습니다.”
“뭡니까?”
“근데 변승국의 손등을 보세요.”
“···멍 같은데,”
“네.”
변승국의 손등에 난 푸르스름한 멍 자국.
“이게 왜···?”
“누군가 강한 힘으로 변승국의 손을 잡은 거죠. 자, 보십시오.”
최기병을 뒤에서 끌어안은 이필동, 그러면서 동시에 두 손을 잡아왔다.
“용의자는 변승국의 뒤에서 손을 이렇게 잡고, 강제로 가족들의 목을 조르게 했을 겁니다.”
“아!”
“살았을 때 했을 수도 있고, 죽이고 나서 그랬을 수도 있고.”
“이런 개새끼!”
“네! 악독한 놈이죠. 가족들을 제 손으로 죽이고 자신도 자살하는, 그런 시나리오를 만들려는 목적으로.”
최기병의 표정에 어리는 분노.
이필동도 마찬가지였다.
“변승국은 저항도 못 했을 걸로 판단됩니다. 가족들도.”
“으음.”
“변승국의 아들 시신을 보세요. 키 191cm에 몸무게 100kg이 넘는 거구죠. 완전하게 제압당했습니다. 그렇다는 말은···,”
“각성 플레이어.”
“네, 추측이긴 하지만, 박달환이나 이 용의자나, 사람 죽이는 건 거리낌이 없어 보입니다.”
그야 그렇게 하는 것이 간편하니까.
목격자도 남지 않고.
아무튼 조창대다.
놈이 각성 플레이어를 시켜 변승국을 죽였다.
자신에게 의심이 향했다는 걸 알고 나서 제일 처음 변승국부터 제거했다.
이필동 과장이 말했다.
“서둘러야 합니다. 조창대 그놈, 꼬리 자르기와 증거를 인멸하고 있습니다.”
“으음, 섣불리 움직일 수 없어요. 육군본부를 설득하려면 확실한 증거가 필요해서.”
“결국 기다려야 한다는 말이네요. 케이가 가져오는 증거를.”
“약속 시간이 내일이니까, 좋은 결과가 나올 겁니다.”
“후우,”
답답하다.
일은 계속 터지는데, 속 시원히 해결되는 건 하나도 없으니.
그런데 바로 그때!
지이잉, 지잉,
최기병의 품에서 울리는 진동음.
“잠깐만요, 전화가···.”
번호를 확인한 최기병은 흠칫, 표정이 굳었다.
화면에 ‘증거 수집용 1번’이라고 적혀있었다.
케이에게 건네준 스마트폰 2대 중 하나.
“왜요? 무슨 전화인데요?”
이필동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황급하게 전화를 받는 최기병.
“여, 여보세요.”
- 지금 만나죠. 시간 됩니까?
케이다.
“당연합니다. 어디로 갈까요?”
- 지금 계신 곳은?
“어, 사건 현장이라.”
- 변승국?
“네, 맞습니다.”
- 주소 불러주세요.
“아, 여기 주소가···.”
최기병이 통화를 끝내자 옆에서 이필동이 넌지시 물었다.
“누굽니까?”
“···.”
“에이, 또 이러신다. 누구길래 주소까지 불러줘요?”
최기병은 침묵했다.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케이죠? 그 사람 맞죠?”
“···맞습니다.”
“여기 온다고요?”
“이과장님, 이번 건은···.”
“어우, 최팀장님, 저 한두 번 보시나. 걱정 마세요.”
그러더니 현장에 나온 사람들에게.
“자자, 여러분, 지금 다 나가 주세요.”
“네? 아직 시신도 수습을 못 했습니다만.”
“철수하시란 말은 아닙니다. 비밀리에 할 이야기가 있으니 한 사람도 빠짐없이 바깥에서 대기해주세요.”
어쩔 수 있나?
현장 책임자가 나가라는데,
하나둘씩 밖으로 나가는 사람들.
마지박으로 나가는 사람을 확인하고 이필동이 최기병에게 물었다.
“최팀장님, 저도 나갈까요?”
“아닙니다. 과장님은 계셔도 돼요.”
“어이쿠! 감사합니다.”
“문은 열어두시고.”
“네.”
그리고 시간이 흐른 후.
스르륵,
케이가 사건 현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에도 얼굴을 드러낸 채.
“케이님!”
“먼저 이것부터 받아요.”
“이, 이건?”
찬웅은 최기병에게 스마트폰 2개를 넘겨줬다.
“웬만한 거 이 안에 다 들어가 있을 겁니다.”
“서, 설마 벌써 증거를?”
“그리고 저 지금 강원도로 갑니다.”
“네? 거기서 오신 거 아닙니까?”
“···이거 주려고 강원도에서 서울로 왔습니다. 근데 지금 다시 가려고요.”
“왜요?”
“조창대 잡으러.”
“어, 네, 잡아야죠. ···네? 지금요? 자, 잠깐!”
스르륵,
다시 사라지는 케이.
최기병은 당황했다.
지금 잡으러 간다니! 조창대를?
옆에서 한마디도 하지 않던 이필동 과장이,
“와! 빠꾸없는 분이네. 생긴 건 기생 오래비처럼 생겨서···,”
스르륵.
“헉!”
다시 나타난 케이의 모습에 소스라치게 놀라는 이필동.
“어아, 으으···, 아, 아니 최팀장 보고 하는 이야깁니다. ···기, 기생 오래비.”
그러나 찬웅은 그런 이필동을 아랑곳하지 않고 최기병에게 말했다.
“명함.”
“네?”
“연락처 하나 달라고요.”
“아! 네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재빠르게 명함을 내미는 최기병과 이필동.
찬웅은 한꺼번에 두 개를 받아 인벤토리에 넣고 다시 은신막을 발현했다.
스르륵, 잠시 후.
“갔나?”
“갔네요.”
“얼굴을 까고 다니는구나. 신분을 숨기고 다닌다더니.”
“그래도 되니까요.”
최기병은 알 수 있었다.
전에 본 얼굴과 지금 얼굴이 미묘하게 다르다는 걸,
그는 얼굴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사람이었다.
조창대는 무조건 잡힌다.
자신이 해야 할 건 사후 처리.
일단 보고부터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