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냥 둬선 안 되겠다.(1) >
용병 플레이어들은 종종 착각한다.
열심히 사냥해서 동화율이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르면 자신감이 생겨나는 법.
그래서 강해졌다고 생각해서 일반 NPC, 혹은 타 직업의 플레이어들에게 함부로 대하거나 깝죽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NPC들이 약할 것 같나?
천만에.
그들은 침식에 취약한 거지, 결코 약한 자들이 아니다.
가상현실이 서비스된 지 2년.
포스의 힘을 얻은 지 고작 2년밖에 되지 않는 플레이어를 시나리오상으로 수천 년을 이어온 마도 문명의 NPC에게 비교가 되나?
작은 도시의 경비한테도 걸리면 무조건 사망.
고도의 마공학 기술이 그대로 적용된 골렘 경비견을 절대 당해낼 수가 없다.
<분쟁 금지! 불응 시 즉결처분!>
도저히 골렘이라 생각할 수 없는 빠르기.
중앙 마공학 연구소 명예 연구원, 아바타 케이, 찬웅이 도끼를 휘두르자마자 이미 골렘 경비견들은 행동을 시작했다.
“크르릉!”
“컹컹컹컹”
콰직! 콰악! 콱!
“아악! 왜, 왜 나만···,”
“뭔데? 버그야?”
“저 새끼는 안 물어? ···끄억!”
가만히 서 있는 찬웅을 호위하듯 둘러싸면서 눈에 보이는 모든 용병 플레이어들을 학살하는 골렘 경비견.
도시 안에서 플레이어들이 분쟁을 일으키면, 이 경우 NPC들의 처분은 엄격하다.
그들은 말 그대로 이방인.
치외법권에 존재하는, 법 적용의 범위에서 벗어난 자들.
감옥에 가둬봐야 대기실로 귀환하면 그만이고.
수배를 때려도 다른 도시로 이동하면 잡지도 못하고.
그래서 분쟁에 휘말린 플레이어들은 무조건 즉결처분.
그리고 경비 NPC에게 당하면 사망 페널티, 동화율과 반영률 하락이 훨씬 더 심하도록 설정해 두었다.
조창대도 그걸 안다.
그걸 바탕으로 세운 애초 계획은 이랬다.
플랜 A, 도시 안에서 놈을 충동질해 먼저 공격하게 만들어 NPC에게 죽게 만든다.
플랜 B, 놈이 말려들지 않으면 죽음을 각오한 부대원 용병 플레이어들이 한꺼번에 공격해 죽인다.
플랜 A든, 플랜 B든, 아무거나 걸려도 놈은 죽는다.
근데 이건 뭔가?
왜 저놈은 공격받지 않지? 심지어 먼저 공격을 가했는데도.
조창대는 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지 궁금하기만 하다.
그러나 의문을 가질 여유가 없다.
‘일단 귀환을···.’
지금은 피해야 할 때.
나가서 알아보자.
숨겨진 골렘 경비견 공략 방법이라도 있는지.
조창대는 대기실 귀환 주문을 조용히 읊조리기 시작했다.
찬웅은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혹시라도 그의 길을 막을까, 다른 플레이어들을 공격하면서도 길을 피해 주는 골렘 경비견.
중앙 마공학 연구소 명예 연구원증.
목에만 걸고 다녀도 효력을 발휘한다는, 마키나 공화국에선 절대 반지와 다름없다.
이미 연구소 안에서 겪은 경험.
지나가는 골렘 경비견이 신기해서 한번 쓰다듬어 봤더니 복종한다는 듯이 배를 납작 깔고 앉아 지시를 기다렸다.
광장에서도 마찬가지.
분쟁을 방지하기 위해 수많은 골렘 경비견들이 몰려왔지만 자신에겐 그 어떤 적의도 보이지 않았다.
<분쟁 금지! 불응 시 즉결처분!>
콰직! 콰악!
이렇게 자신을 공격한 용병 플레이어만 골라서 처리하고 있었고.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솔직히 찬웅도 자신이 없다.
날카로운 금속 이빨과 발톱, 마치 로봇과 다름없는 경비견들.
열 마리 이하면 모를까.
그 이상 넘어가면 자신도 도망쳐야지.
그런 찬웅에게 몸 전체가 희미해지기 시작하는 조창대가 눈에 들어왔다.
‘대기실 귀환?’
에이, 인사도 없이 가려고?
‘비열한 습격!’
츠리릿!
퍽!
“어억!”
아바타 [애국의 깃발]의 어깨에 박혀버린 도끼, 비록 갑옷 위에 맞아 치명상은 입지 않았지만 대기실 귀환 주문을 저지하기엔 충분했다.
“이, 이놈!”
스팟!
찬웅은 조창대 바로 앞으로 이동해서 놈의 무릎을 다시 도끼로 찍었다.
콱!
“으아아아악!”
“별이 3개나 되는 사람이 엄살은, 통각을 줄여 별로 아프지도 않을 텐데.”
“어허, 허어어···.”
찬웅의 비아냥에도 조창대의 신음은 멈추지 않았다.
놀랍게도 아팠기 때문이다.
진짜 아팠다.
가상인데도 실제처럼 똑같이 아팠다.
“···이, 이건 부당해. 왜 넌 고, 공격받지 않지? 버그? 핵이라도 쓴 건가?”
“핵은 무슨! 정상적인 게임 진행일 뿐이야.”
“으흑, 거, 거짓말 마라!”
“뭐, 믿지 않겠다면 할 수 없고, 자! 선택받은 조창대씨. 이젠 어떻게 할 거지?”
찬웅은 어깨에 박힌 도끼를 다시 잡아 뽑았다.
쑥!
“큭!”
“나보고 군단 본부 찾아오라고 했지. 그래, 가 줄게.”
“무슨···?”
제3군단 소속 용병 플레이어들은 이미 전멸당한 상황,
찬웅의 뒤엔 임무를 마친 골렘 경비견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네 모가지 따러! 기다려. 곧 갈 테니까.”
“···아.”
“날 보기 싫으면 자수하든지, 아니면 반드시 날 만나게 될 거다.”
“자, 잠깐!”
그리고 찬웅은 뒤로 돌아서서 경비견들에게 한마디 했다.
“물어!”
<분쟁 금지! 불응 시 즉결처분!>
크르렁! 컹컹! 컹컹컹!
“아, 안돼!”
대충 세어도 300마리는 훨씬 넘어 보이는 골렘 경비견들이 조창대의 아바타 [애국의 깃발]의 몸을 사정없이 물어뜯기 시작했다.
※ ※ ※
강원도 인제.
육군 제3군단 전술 벙커 내부에 위치한 최고급 접속 캡슐.
지이잉,
캡슐의 뚜껑이 열리고 조창대가 비명과 함께 눈을 떴다.
“끄아아아악!”
식은땀을 뻘뻘 흘리는 힘겹게 몸을 일으키는 조창대.
“허억, 허억.”
손발이 부들부들 떨린다.
게임을 하면서 한 번도 죽어보지 않은 건 아니다.
초보 시절 멋모르고 다니다가, 고블린에게도 죽어봤고, 검은 늑대, 심지어 뿔토끼에게도 죽어봤다.
그러나 이번 죽음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정말 죽을 것 같았다.
골렘 경비견.
놈들의 이빨이 아바타의 몸에 박힐 때 얼마나 소름 끼쳤는지.
가장 끔찍한 것은 케이의 무자비한 도끼.
마치 진짜 도끼가 자신의 몸을 난자한 듯한 느낌.
“가, 각하!”
캡슐 옆에서 대기하던 부관이 달려와 그를 부축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놈은···,”
“큭! 시, 시끄럿! 입 닥치고 조용히 있어!”
절뚝절뚝 걸어가 푹신한 의자 위에 앉은 조창대.
대체 동화율이 얼마나 떨어졌을까, 반영률은?
‘이런···,’
포스량이 확 줄어든 걸 느낄 수 있었다.
그걸 체감할 정도라면 대체?
자신은 자그마치 159%의 랭커.
용병 플레이어 순위 1,000위권 안에 드는 강자.
한국에서 자신보다 동화율이 높은 플레이어는 없다고 생각했다.
각성이든 일반이든, 150% 이상의 용병 플레이어는 아마 50명도 안 될 터.
있다면 죽일 놈의 케이, 그놈!
“제기랄! 개자식! 죽여버리겠어. 머리통에 총알을 박아준다! 반드시!”
동화율이 얼마만큼 떨어진 건지 가늠도 되지 않았다.
그것도 그렇지만 어깨는 왜 이렇게 빠질 것처럼 아프고, 무릎은 왜 이렇게 뜯겨 나갈 것처럼 욱신거릴까?
두 군데 모두 게임 안에서 놈의 도끼를 맞은 부위.
트라우마 인가, 아니면 환상통?
“끄응,”
이럴 때가 아니다.
자신의 아바타를 죽일 때 놈이 했던 말, 곧 온다고 기다리라고 했다.
대비해야 한다.
아니면 꼼짝없이 당하고 만다.
“종대는 아직 오지 않았나?”
“서울에서 작전 중입니다.”
“무슨 작전···, 아! 승국이, 그래.”
하도 경황이 없어 변승국을 제거하라고 보낸 걸 잊고 있었다.
“내 전화기 가져와!”
“여기 있습니다.”
조창대는 스마트폰의 번호를 눌렀다.
“어, 곽소령, 나다. 승국이, 지금 바로 처리하고 복귀해. ···가족들과 함께 있다고? 그게 무슨 상관인데?”
현재 조창대가 거느리는 각성 플레이어는 모두 3명.
그중 곽종대 소령은 자신의 심복이면서 동화율 151%의 준수한 플레이어, 아쉽게도 랭커는 아니다. 요즘 랭커의 기준이 올라가 최소 동화율 154%는 되어야 상태창에 랭커 표시가 달린다.
나머지 2명은 사병이다.
한 명은 병장, 또 한 명은 이등병.
병장 출신의 각성 플레이어는 동화율 140%, 하지만 다루기가 쉽지 않다.
충성도가 약한 것이 흠, 그래서 가족들을 인질로 삼아 협박 중이고.
이등병은 이번에 갓 각성해서 겨우 135%, 나름 재능이 뛰어나다. 키워볼 만한 가치가 있어 공을 들여 회유와 세뇌를 동시에 하는 중.
여러모로 부족하지만 총동원한다.
놈이 언제 올지 모른다.
“전군 비상령···,”
“네?”
“아니, 각 부대에서 가장 뛰어난 저격수 지금 즉시 차출해. 또 바로 동원할 수 있는 정예인원도 군단 본부로 집결시켜.”
“알겠습니다.”
“그리고 자동 중화기, 대인지뢰, 대전차 로켓과 미사일···, 최첨단 장비도 준비하고.”
올 테면 와보라지.
놈이 아무리 뛰어난 각성 플레이어라 하더라도 군대를 어떻게 이길까?
그러나 조창대는 불안하다.
진짜 놈이 찾아온다면?
“아, 앞으로 모든 업무는 이 벙커 안에서 처리할 거야. 그렇게 알고 있어.”
“···네, 알겠습니다.”
살짝 떨리는 조창대의 목소리.
충만했던 조창대의 자신감은 한 줌도 남아있지 않았다.
※ ※ ※
깨끗하게 정리된 중앙 광장.
“끼잉, 낑!”
“멍멍!”
“헥! 헥헥헥!”
“어어, 그, 그래, 그래.”
제 임무를 완수하고도 골렘 경비견들은 찬웅의 주위에서 떠나지 않았다.
배를 보이고 누워 애교를 떠는 놈.
꼬리를 바람개비처럼 흔드는 놈.
펄쩍펄쩍 뛰어올라 안기려는 놈,
어디서 물어왔는지 막대기를 물고 와 던져달라는 놈,
‘으음.’
솔직히 귀엽지는 않다.
놈들의 공격으로 죽어 나간 용병 플레이어가 몇인데.
“자자, 이제 흩어져야지? 여기 모여있지 말고, 해산!”
그제야 뿔뿔이 흩어지는 골렘 경비견.
‘휴우, 이제 경매장에 가볼까?’
가서 부유석을 경매장에 등록하고 잠시 로그아웃하고 오자.
그동안 소문이 퍼지겠지.
찬웅은 조창대를 만나러 강원도까지 갈지 아직 확실하게 정하지 않았다.
‘겁은 줘놨지만···.’
멀기도 하고, 귀찮기도 하고.
군대는 군대가 상대해야지.
아니면 높으신 분들이 정치적으로 해결하거나.
사실 간다고 해도 혼자선 무리다.
각종 현대 무기들로 무장한 군인들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은신막은 완벽하지 않다.
시각 교란의 효과는 있지만 체온을 차단해주진 않는다.
‘야시경 장비, 혹은 열화상 탐지기도 보유하고 있을 건데.’
위치가 발각되면 로켓, 미사일이 날아올지도 모른다.
세트 효과로 쉴드가 발동될 테지만 총알도 아닌 강력한 현대 무기의 화력을 감당할 수 있을까?
‘뭐, 그렇다고 해도 못 할 것도 없지.’
어쨌든 안 들키면 되고, 안 맞으면 되는 거니까.
그럴 자신도 있고.
가장 중요한 건 사서 고생할 필요는 없다는 것.
APS의 의뢰는 증거 확보. 그것뿐이다.
갈지 안 갈지는 잠시 보류.
또 거하게 어루만져줬으니 당분간 허튼 짓거린 하지 않을 테고.
어느새 경매장 건물이 보인다.
찬웅은 문을 열고 들어갔다.
경매장에 물건을 등록하러 온 의뢰인들, 그들을 응대하는 직원들.
하지만 찬웅을 보는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어서 오세···, 뭐야? 이방인이잖아?
”쯧, 뭐 주워 먹을 게 있다고,”
“야, 적당히 받아주다 돌려보네.”
눈초리가 따갑다.
직원 한 명이 아니꼬운 표정으로 다가와.
“음, 이방인 케이, 용건은?”
“경매 물품 의뢰하러 왔습니다.”
“이봐요. 이방인씨, 좋은 말 할 때 그냥 가세요. 뉴팩토리 경매장이 녹록한 곳인 줄 아나 본데, 시답잖은 물건 가지고···”
“여기, 이거.”
찬웅은 축복받은 부유석을 꺼냈다.
“돌멩이? 참나! 난 또 상급 마정석이라도 등록하러 온 줄 알았네.”
“감정부터 하시죠? 보통 돌멩이 아니니까.”
“네네.”
경매장 직원이 돋보기안경으로 찬찬히 물건을 살폈다.
“흐음···, 음, 어, 응?”
잘 모르나?
하긴 처음 볼 때부터 알아봤다.
그러나.
“···보통 돌멩이는 아니네? 이거 부유석 같은데···, 에이, 설마.”
“축복받은 부유석.”
“···뭐?”
“축복받은 부유석이라고,”
할 말을 잃은 듯 경매장 직원은 멍하니 찬웅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그러나 사무실이 난리가 났다.
“정말?”
“부유석?”
“세상에! 그것도 축복받았다고?”
우르르 몰려오는 사람들.
“어디? 어디 봐!”
“오! 정말이네?”
“아이고, 귀인님 오셨네. 케이님, 서 계시지 말고 여, 여기 이쪽으로 편히 앉으시죠.”
“하하, 등록하셔야죠? 우리가 제대로 팔아드리겠습니다.”
뉴팩토리 경매장 역사상 가장 비싸고 귀한 물건이 등록되는 순간.
그러나,
“등록은 다음에 하죠.”
“···네?”
찬웅은 직원의 손에서 부유석을 낚아채 인벤토리 안에 넣었다.
“가, 갑자기 왜?”
“미안해서요. 시답잖은 물건이라 죄송합니다. 그럼 이만!”
“아, 아니, 기, 기다려주세요. 제가 잘못했습니다. 케이님, 케이님!”
찬웅은 그대로 몸을 돌려 경매장 밖으로 나섰다.
‘등록 안 해도 되겠네.’
곧 소문이 퍼질 터.
경매장 직원뿐만 아니라 의뢰하러 온 손님들도 목격했으니까.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