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 마공학 연구소 명예 연구원 케이. >
찬웅은 오후 늦게서야 일어났다.
TV 뉴스 전문 프로그램을 틀어 놓고.
요즘들어 언론이 잠잠하다.
가상현실 게임에 대한 뉴스도 빈도가 줄어들었고, 한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진(眞) 아이템에 대한 이슈도 이젠 거의 사라진 상태.
물론 커뮤니티는 진(眞) 아이템 얘기로 여전히 북적대지만.
‘통제하고 있을까?’
그렇겠지.
사실 언론에도, 인터넷 커뮤니티에도, SNS에도···, 그 어디에도 나오지 않은 것이 있다.
바로 각성 플레이어의 존재.
‘생각보다 많이 있었어.’
가까운 일본에서 무려 6명이 한국으로 넘어왔다.
심지어 한국도 숨겨진 자들이 있었다.
분명 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이다.
빠른 시일 안에 펑! 하고 터져 나올 터.
그리고 그 후폭풍은 진(眞) 아이템이 밝혀졌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될 것이고.
진(眞) 아이템은 그저 물건이지만 통제 안 되는 각성 플레이어는 살아 움직이는 위협이기 때문이다.
‘정부에서 각성 플레이어를 육성하고 있는 게 이해가 돼.’
자신에게 매달리는 것도.
아마 정부로선 최악의 고민이겠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들이 분명 존재하는데, 위치도 모르고, 개수도 모르고,
‘일단 아직까진 나온 것이 없으니,’
퀘스트나 하러 가자.
오랜만에 푹 자고 게임에 접속하니, 고통도 조금 줄어든 느낌.
찬웅은 대기실에서 뉴팩토리로 가는 게이트를 열었다.
우선 탐문부터.
광장 북쪽에 보이는 중앙 마공학 연구소.
가기 전에 뉴팩토리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카페에 들러 시원한 허브티 100잔을 주문했다.
한 잔에 20코인, 그래서 2,000 D코인을 지불하고 한꺼번에 인벤토리에 넣었다.
인벤토리 공간이 늘어나니 확실히 편리하긴 하다.
“어서 오세요. 케이님.”
“안녕하세요. 마리.”
“데우스칩님 보러 오셨어요?”
“네, 참, 이거···.”
찬웅은 인벤토리에서 허브티 100잔을 꺼냈다.
“여기 연구원분들 오시면 드리세요.”
“어머, 이런 걸다···, 데우스칩님 불러드릴게요.”
“제가 직접 올라갈게요. 어디로 가면 되죠?”
“잠시만요. 안내 골렘이···, 음?”
갑자기 찬웅을 훑어보며 고개를 갸웃하는 안내원 마리.
“저, 케이님, 중앙 마공학 명예 연구원님이시잖아요.”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그럼 명예 연구원증은 어디···,”
“아! 여기 있습니다.”
“이리 주세요.”
마리는 찬웅이 인벤토리에서 꺼내 건넨 은빛 명패에 끈을 달아주며 말했다.
“이거 혜택이 많아요. 최소한 뉴팩토리 안에선 꼭 목에다 걸고 다니세요. 이 허브티도 그냥 샀죠? 그냥 연구원증도 50% 할인인데, 게다가 명예 연구원증이니, 거의 공짜로 받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래요?”
“이걸 목에 거시고, 지나가는 안내 골렘에게 최상층 워프 게이트 안내해달라고 하세요.”
“아하!”
“뉴팩토리에 존재하는 어떤 골렘이든 무조건 케이님 지시를 따를 거예요.”
“···이게 그렇게 대단한 거였구나.”
“지금까지 명예 연구원증이 발행된 적이 별로 없어요. 손에 꼽을 정도랍니다.”
진작 이야기해 주지.
명패만 던져주고 혜택 많다고 하면 어떤 건지 어떻게 알고.
지나가는 골렘을 잡아 안내를 부탁하니 즉시 앞장서서 길을 가르쳐준다.
연구실로 올라가니.
“뭐 하세요?”
“어이쿠! 어, 언제 왔나? 연락이라도 좀 하고 올라오지.”
작업 중이었나?
낡고 허름한 옷을 고급 액자 같은데 넣어서 벽에다 걸려고 하는 데우스칩.
“그건 뭐죠? 어디서 많이 본 옷인데.”
“과, 관심 가지지 말게. 몰라도 돼. ···아무튼 어떻게 왔어?”
“물어볼 것이 있어서.”
퀘스트와 관련된 사항에 대한 것.
- 축복받은 부유석(1)
- 완료 조건 : 뉴팩토리에서 마법사 브랜달을 찾으세요.
- 보상 : 부유왕국 테라퓨타의 출입증.
부유석과 브랜달 찾기.
“빨리 물어보게, 내가 요즘 바빠서.”
할 일이 많나 보다.
하긴 엑사 등급 코어 연구만으로도 힘들 건데.
“저, 마키나 공화국과 부유왕국은 서로 교류를 하고 있습니까?”
그러자 바로 정색하는 데우스칩.
“하! 테라퓨타, 그 오만하고 건방진 마법사 새끼들과 말인가?”
“네.”
“선민의식에 찌든 쓰레기 새끼들과는 상종할 가치도 없네.”
확실히 냉전 중인 건 맞다.
“혹시 뉴팩토리에 마법사들이 있을 가능성은요?”
“수두룩하겠지.”
“···네?”
“겉으로는 우릴 무시하면서 속으로는 마공학의 비전을 훔치려고 호시탐탐 노리는 새끼들이야. 스파이? 한두 놈일까?”
“아아, 그렇군요.”
“물론 우리도 테라퓨타에 몇 명 집어넣었지만.”
아무튼 퀘스트에 등장하는 마법사 브랜달은 스파이가 확실해 보인다.
어디서 찾지?
‘퀘템에 대해서도 물어볼까?’
찬웅은 축복받은 부유석을 꺼내 데우스칩에게 보여줬다,
“이걸 한번 보세요.”
“응? 이건 뭔가? ···헉!”
화들짝 놀라는 데우스칩.
“호, 혹시, 이거?”
“축복받은 부유석이라는데 이걸 어디다 쓰는지···,”
“뭐? 부, 부유석에, 그것도 축복을 받았단 말이야?”
“좋은 건가요?”
“허허, 자넨 이게 얼마나 귀한 물건인지 모르고 있군.”
“제가 그걸 어떻게 압니까?”
“간단히 설명해주지. 큼큼.”
데우스칩은 잠시 헛기침을 하다 말을 이었다.
“마법사의 도시왕국 테라퓨타는 지상 도시가 아니야. 하늘에 떠 있지. 그런데 왜 굳이 하늘에 띄웠을까?”
그러고 보니 이상하다.
왜 띄웠지?
시나리오 읽어보고 올 걸 그랬나.
“으음, 뭘까요? 뽐내기 위해서? 우리가 이렇게 대단하다는 식으로···.”
“마법사 새끼들이라면 충분히 그럴 만하지만, 사실 침식을 피하기 위해서야.”
침식이라,
“자네도 알다시피 침식은 순식간에 찾아오지. 피할 수 없어. 당시 고대 마법 왕국도 침식지 한복판에서 포위당한 형국이었고,”
캬잔 오아시스나 올드팩토리를 봐도 알 수 있듯이 침식이 일어나면 미처 대비할 틈도 없이 먹혀버린다.
로그드라실도 그랬다.
하지만 세계수가 침식을 막아냈고.
“그때 9서클 대마도사 브랜데인과 마법사들이 어스퀘이크 마법을 일으켜 마탑을 중심으로, 지름 10km나 되는 땅을 허공으로 들어 올렸네. 그리고 부유석을 박아 공중 도시를 만든 거야.”
그게 가능한가?
전설의 NPC 브랜데인이라, 어째 브랜달하고 이름이 비슷한데.
“그 후로 테라퓨타 마탑의 존재 목적은 부유왕국을 땅으로 추락하지 않게 지탱하는 것이야. 현재 마탑주인 브랜카인도 그렇게 하고 있고.”
“땅으로 추락할 위험이 있나 보죠?”
“한정된 땅에 인구는 점점 늘어나고, 건물 또한 계속 세워지고, 그래서 부유석 무게 부양력이 한계에 다다랐으니까. 부유석을 보충하고 있다지만, 그게 흔한 물건도 아니고.”
고작 퀘템인데 그렇게 대단하다니.
“하지만 이 ‘축복받은 부유석’이라면 테라퓨타의 고민을 한순간에 날려버릴 수 있을걸.”
그런 것 같다.
데우스칩의 표정에서도 이 부유석에 대한 숨길 수 없는 욕심이 드러나 보였으니까.
“이거 나한테 팔게. 달라는 건 뭐든 주겠네. 어떤가?”
“싫은데요?”
“···아, 아니, 그렇게 단호하게 거절 말고,”
“넵! 안 팝니다.”
“그럼 내가 가공해줄까? 가공하다가 떨어지는 부스러기라도···.”
퀘템을 어떻게 팔아?
턱도 없다.
가만!
이게 그렇게 귀한 물건이라면?
“뉴팩토리에 경매장은 있어요?”
“한군데 있긴 한데···, 흐음, 왜 굳이 경매장에, 내가 산다니까?”
“됐습니다.”
팔 목적은 아니다.
자신이 이걸 갖고 있다는 소문을 내려는 거지.
그럼 브랜달이라는 마법사가 반드시 찾아올 것이다.
※ ※ ※
뉴팩토리 중앙 광장 벤치에 앉아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는 플레이어가 있었다.
아바타 명 [애국의 깃발], 현실에선 제3군단 군단장 조창대.
급할 것 없다.
미리 도시에 배치해둔 병사들에게서 [케이]라는 이름을 가진 아바타가 중앙 마공학 연구소로 들어갔다는 정보를 받았고, 지금은 놈이 나오기만을 기다리는 중.
광장 주위에 흩어진 120명의 용병 플레이어들.
모두 자신의 명령만 기다리고 있었다.
‘도시 안에서 죽여야겠군.’
그래야 놈을 엮을 수 있으니까.
120명 전부가 죽어도 상관없다.
저들 중엔 각성 플레이어가 한 명도 없다.
자신도 전투에 참여하지 않을 생각.
대화만 나눠보고 빠진다.
순간!
[전술참모1] : 놈이 연구소 밖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음?’
휘적휘적, 아무것도 모르고 연구실 정문을 나서는 케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저놈인가?’
겉모습은 솔직히 실망.
장비도 없나?
후줄근하다.
번쩍이는 미스릴 코팅 영웅 등급 장비를 온몸에 걸친 자신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너무 지레 겁을 먹은 건 아닌지 모르겠군.’
소문이란 게 으레 그렇듯 심하게 부풀려진 게 대부분.
어쨌든 대화나 나눠보자.
[애국의 깃발] 조창대는 [케이]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찬웅은 경매장에 가는 중.
몬스터 몇 마리 잡아 오라는 퀘스트는 쉽지만 지루하다.
하지만 이런 연계 퀘스트는 복잡해도 매우 흥미진진했다.
사람들 만나서 탐문도 하고, 나름 돌아가지 않는 머리도 짜내고, 그리고 그것이 성공했을 때의 쾌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먼저 경매장에 물건을 등록하고, 소문이 어느 정도 퍼지면 다시 취소하면 돼.’
아마 많은 이들이 자신을 찾아올 터, 누가 브랜달인지는 모르겠지만 만나게 되면 퀘스트 완료 메시지가 뜰 것이다.
그런데 그때!
“케이?”
뒤에서 자신의 아바타를 부르는 소리.
“자네가 케이였군. 자위대 놈들은 자네가 직접 처리했나?”
그제야 찬웅은 천천히 몸을 돌려 상대방을 바라봤다.
‘···[애국의 깃발]이라.’
처음 보는 아바타.
그러나 자신에 대해 알고 있다.
“누구···?”
“첫 대면이 게임 속이라 아쉽지만···, 반갑네. 난 조창대라고 하네.”
누군지 알겠다.
조창대.
독자적으로 각성 플레이어를 육성해 반역의 혐의를 받고 있는 육군 군단장.
찬웅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필요도 없고.
“오호, 누구냐고 묻지 않은 걸 보니 날 알고 있는 눈치군. 흐음, 그래, 이제 알겠어. 최기병이 말해주던가? 아닌 국정원?”
느물거리며 말하는 조창대.
‘난 다 알고 있다.’
이런 인상을 주려는 모양인데.
그런데 그건 알고 있을까?
자기 스마트폰이 탈탈 털린 거.
“어쨌든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가 없어 좋아. 거두절미하고 이야기하지. 나하고 손을 잡는 게 어떤가?”
“···.”
“정부가 자네에게 뭘 약속했는지 모르지만, 장담할 수 있어. 난 차원이 다를 거야. 자네가 상상도 하지 못하는 것들을 줄 수 있네.”
웃기네.
얘기는 들어보자.
“뭘 줄 수 있는데?”
“선택받은 자들만이 누리는 합당한 권리, 간단히 말해 왕(王)이 되는 거야.”
“왕은 무슨, 범죄자겠지. 넌 그 우두머리일 뿐이고.”
“껄껄껄, 맞아. 지금은 범죄자가 맞네. 하지만 역사를 봐. 왕이란 자들은 처음엔 다 거지나 도둑이었어. 그래서 명분을 세우기 위해 신에게 선택받았다느니, 하는 거짓말로 건국 설화 같은 걸 꾸며댔던 거고, 하지만!”
번들번들, 광기 어린 조창대의 눈빛,
“난 진짜로 선택받았지. 너도! 우린 진짜야! 껍데기가 아닌 진짜 선택받은 사람이라고!”
“선택?”
“알잖아, 그 힘이 아무 이유 없이 주어졌을까? 이건 권리가 아니라 의무야! 나라를 바른길로 이끌어 세상을 더 좋게 변화시키라는 우리의 의무, 그러니 현실에서 만나 함께 힘을 합치자고. 군단 본부로 날 찾아오게.”
그냥 미친 것이 아니라 제대로 미친놈이다.
예로부터 저런 생각을 가진 놈 중엔 제정신 박힌 놈이 없다.
“네 추잡한 선민사상은 잘 알았으니 그만 꺼져!”
“···뭐?”
“꺼지라고! 네가 한 짓 국가에선 모를 것 같아? 헛짓거리하지 말고 알아서 자수해. 혹시 알아? 자수가 참작되어서 죽기 전엔 감옥에서 나올 수 있을지도,”
“허허.”
조창대의 안색이 차갑게 변했다.
“말이 안 통하는군. 그럼 우린 서로 적이라는 건가?”
“이제 알았어?”
결심을 굳힌 듯, 조창대는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천천히 뒤로 물러나면서 오른손을 들었다.
그러자 저 뒤편에서 걸어오는 플레이어들,
앞에서도, 오른쪽에서도, 왼쪽에서도···.
찬웅을 가운데 두고 무려 100여 명 이상의 플레이어들이 그를 둘러쌌다.
그중 한 명의 플레이어, 찬웅에게 다가오는 [전술참모1].
비릿하게 웃으며 찬웅에게 말했다.
“넌 여기서 죽는다. 피할 수 없을 거다. 우리한테 죽지 않으려면 너도 맞서야 할 것이고, 그러다 보면 넌···.”
바로 그 순간!
두두두두두두,
크르렁, 컹컹!
광장 안으로 까마득하게 몰려오는 골렘 경비견 무리.
<이방인들에게 경고합니다.>
<도시 안에서의 분쟁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경고합니다. 즉시 해산하십시오.>
[전술참모1]이 활짝 웃으며 말을 이었다.
“골렘 경비견에게 죽겠지.”
“너도 죽을 텐데, 넌 괜찮아?”
“대의를 위해서라면!”
“그런데 어쩌나? 넌 죽어도 난 안 죽을 건데.”
“낄낄, 곧 죽을 놈이 허세는!”
“그래? 해볼까?”
찬웅은 인벤토리에서 도끼를 꺼냈다.
“어?”
그리고,
츠릿!
그대로 [전술참모1]의 머리를 도끼로 찍어버리는 찬웅.
콱!
“컥! 이, 이놈···.”
“됐냐?”
도끼에 머리를 맞고 천천히 가루가 되어 흩어지는 [전술참모1]
하지만 주위 용병 플레이어들이 쾌재를 불렀다,
“좋아, 걸려들었어!”
“저놈 하는 거 골렘 경비견이 봤겠지?”
“우리도 쳐!”
사방에서 난무하는 각종 무기들.
<분쟁 금지! 불응 시 즉결처분!>
우르르 몰려드는 골렘 경비견.
뒤쪽에 있던 조창대도 씨익 웃었다.
너무 쉬운 놈 아닌가.
이 정도 격장지계에 넘어가는 꼴이라니.
자신은 가담하지 않았으니 죽을 일은 없다.
그런데···,
“음?”
뭔가 이상하다.
<분쟁 금지! 불응 시 즉결처분!>
골렘 경비견들이 날카로운 이빨을 번뜩이며 달려드는 것까진 예상했던 일인데.
콰직! 콰아악!
“아악!”
“허억!”
“씨, 씨이발.”
경비견들에게 물려 그 자리에서 사망하는 건 자신의 부대원들뿐.
“왜 저놈은···?”
조창대는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충직한 부대원들이 속절없이 죽어 나갔다.
“어떻게···?”
<분쟁 금지! 불응 시 즉결처분!>
광장을 가득 메운 수많은 골렘 경비견들의 파도 속에서,
단 한 명의 플레이어.
아바타 케이.
오직 케이만이 태연하게 서서 자신을 보며 웃고 있었다.
<분쟁 금지! 불응 시 즉결처분!>
케이에겐 단 한 마리의 골렘 경비견도 접근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