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아바타의 재능으로 동화율 돌파-47화 (47/204)

< 꿀잠 자는 동안. >

아직 군부독재 시절을 잊지 못하는 사람이 제법 많다.

강력한 리더쉽을 바탕으로 정책을 밀어붙이고, 경제를 부흥시켰던 시절에 대한 향수.

물론 그 과정에서 언론장악, 민간인 사찰, 인권 탄압 등의 부작용이 있었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회를 어지럽히는 불순분자들을 잠재울 수 없었다.

지금 대한민국의 상황을 보라!

얼마나 혼란스러운가.

하나의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려고 하면 이쪽저쪽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좋은 건 우리 앞마당에,’

‘나쁜 건 다른 지역으로,’

‘왜 우리만 희생해야 하지?’

‘보상이 겨우 이거야?’

이래서 민주주의란 빛 좋은 개살구일 뿐.

예전 같았으면 어디 반항이나 했을까?

인간의 욕망이라는 것이 늘 그런 식.

풀어놓으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날뛴다.

대한민국을 위해서 결단을 내려야 한다.

개인적 영달이 아닌 오로지 국가에 대한 충성심으로.

조창대는 강력한 지도력만이 국가를 부흥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자신을 찾아 강원도 인제까지 온 변승국을 만난 육군 제3군단 군단장 조창대.

변승국의 표정은 다급했다.

“혼죠, 그 미친놈이 직접 전화를 해왔네.”

“뭐라고 하던데?”

“자위대 소속의 각성 플레이어 5명을 한국으로 파견했는데 현재 실종 상태라고.”

“그래서 승국이, 자넨 뭐라고 했고?”

“그냥 알아보겠다고만···.”

“쯧쯧, 뭘 대꾸를 해? 누구냐고? 날 아느냐고 딱 잡아뗐어야지.”

조창대는 변승국의 일 처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저렇게 심약해서야,’

군사안보지원사령부 사령관이란 직책이 아깝다.

자신도 계획이 실패한 걸 알고 있다.

죽었어야 할 APS 소속 각성 플레이어들이 멀쩡하게 살아있었으니까.

‘쯧! 역시 어설퍼. 이놈이나 쪽바리나.’

APS 각성자들은 사실 문제도 아니었다.

고작 둘 뿐이고, 심복 하나만 보내도 해결됐을 테니까.

그런데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변수 하나.

APS와 국정원이 입 모아 이야기하는, 어쩌면 최강이라고 칭할 수 있는 수수께끼의 각성 플레이어 케이.

그렇지 않아도 쉽지 않은 계획인데 그런 변수까지 생긴다면?

불안 요소가 어느 수준인지 확인해야 했다.

그래야 대처 방법이 나오지.

일본에 정보를 흘렸다.

조금 과장을 섞어 한국에 진(眞) 아이템을 마음대로 뽑아내는 플레이어가 있다고,

그 과정에서 미국에도 정보가 흘러 들어갔지만 조창대는 걱정하지 않았다.

미국이 움직이기 전에 일본이 행동할 테니까, 뭐, 미국도 움직여주면 좋고.

욕심 많은 혼죠가 가만히 있을까?

케이의 운명은 정해져 있다고 생각했다.

일본으로 끌려가거나, 아니면 죽임을 당하거나.

그런데 그자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강했다.

이미 APS와 연결되어 있었고.

예정대로 계획을 실행했으면 분명 실패했을 것이다.

어쩌면 다행일지도.

“후우, 내가 정보를 흘린 걸 알아챌 수도 있어. 조심해야 해. 내, 내가 다치면 자네도···.”

“나도 알아. 자네가 의심받으면 나도 의심받겠지.”

“···오, 오해하지 말고.”

조창대는 변승국의 손을 잡아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말고 나만 믿게. 동기 좋다는 게 뭔가? 문제가 생기면 내가 처리해주지.”

“···그래, 언제나 그렇지만 자네만 보면 힘이 생겨. 그럼 난 이만 돌아가 봐야겠어. 오래 있는다고 좋을 건 없으니까.”

변승국은 다시 서울로 돌아갔다.

‘멍청한 놈.’

조창대가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 바로 정보와 보안, 그래서 변승국을 끌어들이긴 했지만 좀처럼 신뢰가 생기지 않았다.

놈이 이곳에 온 이유는 간단하다.

자신이 다치면 너도 무사하지 못할 거라는 경고.

조창대는 전화기로 내선 번호를 눌렀다.

“곽소령, 잠시 들어와.”

잠시 후,

“충성! 소령 곽종대, 부르심 받고 왔습니다.”

“변승국이 처리 좀 해줘야겠어.”

“방식은 어떻게 합니까?”

“자살로 처리해. 유서도 적당하게 작성하도록 하고.”

“네!”

어차피 자를 때가 됐다.

이니 드러났으니 쓸모도 없어졌고.

각성 플레이어.

각성은 성별과 나이를 가리지 않는다.

조창대가 야망을 품게 된 건 그가 각성하고 난 뒤.

벌써 10개월이나 지났다.

각성하지 않았다면 전역 이후의 삶을 고민했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조창대의 롤모델은 바로 일본 자위대 부대장 혼죠, 일본의 각성 플레이어를 장악하고 어둠 속 실세로 일본을 지배하는 막후 지배자.

하지만 조용하고 은밀한 쿠데타는 글렀다.

그래서 꼬리 자르기.

변승국이 모든 책임을 떠안고 사라질 것이다.

물론 자신도 의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나 막아줄 사람들이 있다.

그것도 아주 많이.

‘그나저나 케이는···.’

일본도 실패한 판에 지금 상태로선 놈을 제거하는 건 불가능하고.

‘차라리 한국을 떠나줬으면 좋겠는데,’

할 수 있으면 영입해서 품던가.

‘마키나 공화국 뉴팩토리라고 했지?’

군인 출신 APS 플레이어 중 하나에게서 알아낸 정보.

놈은 거기서 퀘스트를 수행하는 중이라고 했다.

가서 만나봐야겠다.

의중이 무엇인지 한번 떠보는 것도 필요하고.

‘아니면···, 거기서 죽이던가.’

그것도 괜찮다.

진(眞) 스킬도 가졌고 진(眞) 아이템도 가진 놈, 그래서 현실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각성 플레이어.

그러나 게임 안에선 상황이 다르다.

조창대의 아바타도 동화율 159%. 게다가 스킬 레벨도 각각 10레벨 이상, 뿐인가? 고가의 장비들도 덕지덕지 발랐고.

충분히 상대하고도 남지.

동화율 150% 이상의 랭커가 죽으면 그 후유증은 상당하다.

아마 5% 이상의 동화율이 하락할 것이고, 반영률 또한 떨어질 터.

그렇게 되면 놈은 약해진다.

게임 안에서도, 현실에서도.

솔직히 현실에서 만나도 자신 있다.

아무리 각성 플레이어라고 감히 군대에 덤벼?

‘흐음,’

경고도 되겠고.

게임 안에서 놈을 죽인다.

하면 할수록 기막힌 생각.

조창대에겐 군대가 있다.

용병 플레이어 군대.

게임 속 용병 플레이어는 100명이라도 동원할 수 있다.

1대 100.

도저히 질 수 없는 싸움이었다.

※ ※ ※

한국 APS 본부.

최기병과 비서실장, 그리고 국정원장이 모였다.

“원장님, 뭐라도 나왔습니까?”

“아직은, 하지만 곧 입을 열거야. 현장에 있던 볼펜형 녹음기는 수거했네.”

정말 큰 수확.

일본 자위대 각성자가 제 발로 걸어와 잡혀주다니,

물론 케이가 잡았지만.

국정원에서 일본인 각성 플레이어를 심문하고 있는 중, 얼마 후면 자위대 특수초인각성대의 전력을 낱낱이 밝혀낼 수 있을 것이다.

원래 죽은 자위대 각성 플레이어 5명은 극비 사안.

현장도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깨끗하게 치웠다.

일본 정부에 항의해도 별 소용이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들도 자위대를 통제 못 하는 판국에.

최기병은 잡힌 그놈을 절대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케이의 얼굴을 목격한 놈.

그래서 뽑아낼 대로 뽑아내고 제거할 예정.

“그건 그렇고, 변승국과 조창대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케이가 수집해올 증거를 기다려야 하지 않나?”

“증거는 확실하게 가져올 겁니다. 그가 실패할 리는 없으니까요. 문제는 대응 아닙니까? 어떻게 처리할 예정이신지···.”

“글쎄,”

비서실장은 난감한 표정.

쉬운 문제가 아니다.

조창대는 최전방 지휘관.

변승국도 군 정보망을 장악하고 있고.

게다가 군 내부에 각성 플레이어가 몇 명인지도 모르는 판에, 또한 정치적 인맥도 많은 놈들이라 아무리 증거가 넘쳐나도 섣불리 건드리지 못한다.

“언론에 흘려볼까요?”

“언론? 자넨 언론이 우리 편이라 생각하나?”

“어, 죄송합니다. 제가 잘 몰랐습니다.”

맞다.

오히려 역풍이 불 것이다.

‘요즘 세상에 쿠데타가 웬 말이냐? 정부가 말도 안 되는 누명을 씌워 군을 장악하려 한다.’

이렇게 뒤집어씌우면서.

“조창대나 변승국을 제거하려면 손발을 묶고, 한꺼번에 기습하는 식으로 이루어져야 해. 어설프게 달려들다간 반격을 당할 수 있어.”

“그렇죠.”

최기병도 동의하는 바다.

먼저 케이가 가져오는 증거들을 바탕으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참! 진(眞) 하급 치유 물약은 어떻게 하기로 했습니까?”

“국내 제약회사들과 협의했네. 이틀 후 백제 호텔 컨벤션홀에서 비공개 입찰 진행하기로.”

“아!”

국내 바이오산업의 전환점을 맞이할 순간이 왔다.

만약 현실에서 이 치유 물약을 절반만이라도 재현한다면 인간의 기대수명은 한층 더 연장될 터, 한국이 그 첫발을 내디딜 것이다.

‘이틀 후면 케이님과 만나기로 한 날이군.’

그럼 이참에 백제 호텔을 약속 장소로 정하는 것이 좋겠다.

비서실장에게 부탁해 스위트룸을 예약하자.

새벽, 다리 밑보다 호텔 방이 훨씬 낫지.

※ ※ ※

중국 상하이.

88층 고층빌딩 전체를 독점하는 회사가 있었다.

중국 굴지의 게임회사 원센트.

하지만 그중에 실제 원센트가 사용하는 층수는 극히 일부, 10층 이상부턴 층층마다 최고급 접속 캡슐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바로 중국 각성 플레이어 관리청 본부.

관리청 책임자는 아바타 명 [대국혼], 실제 이름은 진위앙, 한때 작전 실패로 궁지에 몰렸지만 자신의 연줄을 총동원해 가까스로 기사회생했다.

“알아냈습니다.”

“보고해.”

“이틀 후, 서울 백제 호텔 컨벤션홀에서 비공개로 입찰이 진행될 예정이랍니다. 입찰 완료 즉시 물건이 전달될 거고요.”

“좋아! 우리 측 플레이어들은? 미리 가 있지?”

“네.”

“당일까지 사고 치지 말고 조용히 있으라고 해.”

드디어 치유 물약을 입수할 기회가 도래했다.

정보를 알아내느라 힘들었다.

한국 정부 내 친중계 인사들에게 기름칠해둔 것이 신의 한 수.

로그드라실 이벤트에서 1위를 차지해 성황의 축복으로 무려 10개의 진 아이템을 뽑아낸 [애널서커]조차 얻지 못했다던 그 치유 물약.

활력 영약은 보약으로 대체하면 된다.

체력 영약도 알고 보면 부작용 없는 스테로이드 제제 아닌가.

하지만 치유 물약은 대체 불가능한 기적의 신약.

그것이 한국에 있다.

더군다나 그 아이템을 넘긴 놈이 케이?

역시 놈은 한국인이었다.

케이!

이 죽일 한국 놈 케이.

이벤트 보상 랜덤 상자를 까보지도 못하고 놈에게 죽은 기억이 아직 사무친다.

당시 아바타 대국혼의 머리가 놈의 도끼에 찍혔는데, 현실에서도 며칠 동안 머리가 욱신욱신할 정도.

‘놈이 입찰 현장에 나와준다면 좋겠는데.’

그럼 치유 물약도 확보하고, 겸사겸사 복수도 하고.

※ ※ ※

듀플렉스 대륙 로그드라실.

막 침식지에서 사냥을 하고 돌아온 [상큼한 딸기]는 엘프 장로 에루인을 만났다.

“왜 이렇게 늦었니? 고작 오크 100마리 잡는 일에 이렇게 시간을 허비하면 언제 성장하겠다는 거니?”

“···.”

“후우, 제자의 제자야.”

“네. 스승님의 스승님.”

“너 지금 눈 뜨고 못 볼 정도로 허접한 거 알지? 그럼 장비라도 좋은 걸 써야 하지 않겠어? 어디서 이런 쓰레기들을 입고 와서···, 돈 좀 쓰자?”

딸기도 알고 있다.

영웅급 이상 장비를 말하는 모양인데, 이 가상현실 게임에서 코인으로 살 수 있는 무기는 한정되어 있다.

상점에서 파는 물건은 레어까지, 가끔 상인 플레이어에게서 영웅 등급을 구할 수 있지만 수량도 적고 비싸다.

‘엄마한테 건물 하나 팔아달라고 할까?’

그런 딸기가 한심한 듯 혀를 쯧쯧 차는 에루인.

“아무래도 안 되겠다. 너 마키나 공화국 다녀와. 이방인이라서 금방 다녀올 수 있지?”

“네, 그런데 거길 왜?”

“중앙 마공학 연구소로 가서 데우스칩을 만나 아이템 좀 받아오라고.”

그러면서 에루인은 자신의 상의를 벗어 주섬주섬 딸기에게 건넸다.

“이건?”

“데우스칩에게 줘, 흐음, 훔쳐 왔다고 하고, 이걸로 아이템을 바꿔오면 돼. 뭐라고 하면 네 사부 이름을 팔아.”

“···이 옷으로 아이템을요? 새 옷도 아니고, 오래 입으신 옷인데, 내, 냄새도 나고.”

“괜찮아. 이게 효과가 더 좋으니까. 최소한 3개 이상은 받아와. 알았지?”

“아, 네네,”

정말 아이템을 바꿔줄까?

이 허름하고 냄새나는 옷으로?

‘아냐! 엘프 장로님이 입는 옷이잖아. 아이템 정보는 뜨지 않지만 뭔가 대단한 것이 숨어 있을 거야.’

틀림없다.

그러니까 바꿔준다고 하지.

일단 딸기는 대기실로 귀환했다.

아이템 바꾸러 가기 전에 조금 쉬었다가.

‘로그아웃!’

지이잉,

거실에 놓인 접속 캡슐에서 일어나는 신여은.

“어이구, 우리 딸 게임하느라 고생이 많지?”

여은의 엄마가 한달음에 달려와 그녀를 부축했다.

“엄마, 괜찮아. 혼자 걸을 수 있어.”

“알지, 아는데 조심하라고.”

비틀비틀, 넘어질 듯 위태롭게,

그러나 신여은은 스스로 걸어 식탁 의자 위에 앉았다.

하루하루가 즐겁다.

열심히 살아야지.

※ ※ ※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동안 케이, 찬웅은 자신의 집에서 푹 자고 있었다.

아주 달게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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