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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방패가 필요하다.
찬웅은 딸기와 함께 뉴팩토리 성문을 나섰다.
길게 뻗은 도로, 중간중간 끊겨있었지만 길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저 멀리 보이는 올드팩토리.
시나리오상으로 보면, 마탑에 의해 이단(異端)으로 판정받은 마도 공학자들이, 역시 천대받았던 일부 연금술사들과 힘을 합쳐 세운 나라가 바로 마키나 공화국.
이곳의 침식지는 성곽으로 둘러싸인 도시였다.
기존의 수도 ‘팩토리’가 침식을 당해 사람들이 살 수 없게 되자, 새로운 수도를 세운 곳이 뉴팩토리, 그래서 자동으로 저긴 올드팩토리.
카쟌 침식지와 비슷한 스토리다.
원래 다 이런 식, 기존 원주민이 살던 터전에서 침식이 발생한다.
올드팩토리의 몬스터들도 다소 특이하다.
경험치 몹인 최하급 몬스터가 ‘망가진 태엽 생쥐’, 그 위로는 ‘외발 꼭두각시’, ‘폐기된 골렘 경비견’, ‘통제 불능의 금속 거미’. ‘수리가 필요한 강철 골렘’ 등등, 보스 몬스터는 ‘해방된 마그누스 에고 기간트’.
여기 몬스터들은 코인 대신 주로 아이템을 드랍한다.
그들이 드랍하는 아이템은 바로 마정석.
하지만 사냥이 가능한 곳은 올드팩토리 외곽 주변 지역, 보통 플레이어들도 그곳에서 사냥한다.
정작 성곽으로 둘러싸인 올드팩토리 내부로는 들어갈 수 없다. 보스도 올드팩토리 내부에 있었고.
“와! 높다.”
“뭐, 올라가는 건 문제가 아니죠.”
“그래요. 올라가면 경보가 울리고 경비 골렘들이 개떼같이 나온다던데.”
“오! 알고 있었어요?”
“당연히 공부하고 왔죠. 참! 100만 코인 언제 드릴까요?”
“천천히 주세요. 일단 퀘스트만 생각합시다.”
퀘스트는 무조건 완수되어야 한다.
- 마그누스 기간트 엔진 견본 입수.
- 완료 조건 : 올드팩토리 내부에 부서진 마그누스 기간트에서 엑사급 코어 획득(0/1).
- 보상 : 데우스칩의 마공학 발명품(선택)
지금까지 패턴으로 보아 전설급 NPC인 데우스칩의 보상은 진(眞) 아이템일 가능성이 높다.
“경비 골렘들이 얼마나 나오는지 제가 먼저 올라갔다 올게요.”
“넵!”
먼저 야행복 실험, 찬웅은 은신막을 발현해 조심조심 천천히 위로 올라갔다.
그러자 절반도 채 올라가기 전에 울리는 경고음.
<침입자 발생! 침입자 발생! 경고 발령! 경고 발령!>
‘음? 벌써?’
타닥타닥.
다시 밑으로 내려왔다.
야행복은 소용없다.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 같다.
“그냥 빠르게 뛰어 올라가야 하나?”
“저도 같이 갈까요?”
“그러죠.”
포스를 끌어올려 바람길 산책으로 빠르게!
타닥! 타다닥! 스팟! 팟팟팟!
딸기도 뒤를 따랐다.
<침입자 발생! 침입자 발생! 경고 발령! 경고 발령!>
순식간에 성벽 위까지 도달한 찬웅.
그리고 목격했다.
“···씨발.”
우르르르르르···.
두두두두두두···.
새까맣다.
대체 몇 마리인지 셀 수도 없다.
뒤따라 올라온 딸기도.
“세, 세상에! 저게 다 경비 골렘 몬스터?”
태엽 생쥐 골렘, 꼭두각시 골렘, 골렘 경비견, 금속 거미 골렘, 인간형 강철 골렘···, 올드팩토리 외곽에 출현하는 모든 몬스터가 찬웅이 서 있는 성벽으로 몰려오고 있었다.
“어떡하죠? 로그드라실 때처럼 띄워드려요?”
“소용없어요. 몬스터 늪에 다이빙하는 격이지.”
“하긴 저 숫자면···.”
개떼가 아닌 개미 떼, 초원의 메뚜기 떼, 바다의 멸치 떼.
몬스터들이 마치 파도처럼 밀려왔다.
‘이 정도면 순간 가속도 쓸모없겠어.’
저 파도를 어떻게 뚫고 들어가나?
이제야 기억이 났다.
시선을 끌어줄 동료가 필요할 거라는 데우스칩의 말이.
‘시선을 끌어줄 동료가 아니라, 사지로 밀어 넣을 고기 방패가 필요하겠는데.’
그러면서 딸기를 은근한 눈으로 쳐다보는 찬웅.
“왜 그런 눈으로 절···,”
안 된다.
딸기 혼자만으론 턱도 없다.
최소 백 단위 이상의 공격대가 필요하다.
“후우,”
“사부님, 제가 시선을 끌어볼까요? 반대쪽에서···.”
“끌어나 질까요? 경비 몬스터 숫자가 감당 불가능한 수준이라, 그리고 시선만 끄는 게 아니라 잠깐이나마 버텨줘야 하는데, 음, 어렵네요. 내려가죠.”
“넵!”
찬웅은 딸기와 함께 다시 성벽 밑으로 내려왔다.
그러자 조용해지는 성벽 안 분위기.
‘어떡하지?’
그냥 포기할까?
그나저나 데우스칩 이 양반 양심이 없네.
이 정도면 거의 웨이브급 퀘스트 아닌가!
로그드라실에선 세계수의 지원이라도 받았지.
바로 그때!
띠링!
친구에게서 온 메시지.
[와치맨] : 케이님?
‘음?’
와치맨이라면···,
[와치맨] : 혹시 바쁘십니까? 긴히 드릴 이야기가 있어서.
무슨 일이 있나?
자꾸 엮이는 건 싫은데···,
하지만 지금은 달리 할 일도 없으니.
[케이] : 전에 봤던 그곳 있죠?
[와치맨] : 아, 네네.
[케이] : 거기서 봅시다.
“딸기씨,”
“네!”
“도시에서 누굴 만나야 할 것 같습니다. 이만 들어가죠.”
와치맨에게 가서 무슨 일인지도 알아보고, 데우스칩 만나서 항의도 한번 해보고,
할 수 있는 퀘스트를 줘야지.
그러고 보면 에루인은 천사였다.
고작 오크 잡으라면서 스킬도 알려주고, 야행복도 선물로 주고.
※ ※ ※
중앙광장에서 와치맨과 만난 찬웅, 딸기는 저쪽에 우두커니 혼자 서 있었다.
예상은 했다.
와치맨이 와서 할 이야기라는 게 뻔하다. 진 치유 물약은 무사히 넘겼고, 죽은 사람도 없고, 국가 기관이니 뒤처리는 알아서 했을 테고,
남은 건 정보 유출의 경위, 혹은 그에 대한 사과 정도일 터, 그런데 들어보니 전혀 뜻밖의 이야기.
“···이렇게 된 상황입니다.”
군에서 비밀리에 각성 플레이어를 육성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니, 그 와중에 옆 나라 일본의 상황까지 알게 됐다.
“그럼 그놈들이 자위대 소속이었단 말이죠?”
“네.”
“군에서 일부러 정보를 유출해 저와 APS 소속 각성 플레이어를 제거하려 했고요.”
“네.”
“지금은 군에서 진짜 각성 플레이어를 육성하는지 증거가 필요하다?”
“네.”
“군에서 일어난 문제는 정부에서 알아서 해야 하지 않나요?”
“···현재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 케이님 말고 없어서.”
그럴 줄 알았다.
이래서 안 엮이려 했는데.
“물에 빠진 사람 구해줬더니 보따리도 내놓으라는 식이구나.”
“부, 부끄럽습니다만···, 물론 거절하셔도 됩니다. 이건 정부가 케이님께 드리는 비공식적인 의뢰니까요.”
“의뢰?”
의뢰라, 의뢰.
용병 플레이어 직업을 택했더니 게임 안에서도 의뢰를 받고, 현실에서도 의뢰를 받는다.
하지만 데우스칩은 쓸만한 보상이라도 주지, 정부에서 주는 건 결국 코인, 계좌엔 아직 쓰지도 않은 코인이 쌓여있는데 말이다.
“실패하셔도 착수금은 무조건 드리겠습니다. 물론 코인으로.”
“···.”
어떻게 거절할까.
데우스칩의 퀘스트만 해도 버거운 판에···, 가만!
‘퀘스트라, ···퀘스트?’
문득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
“저, 물어볼 것이 있어요.”
“네, 뭐든지 대답해드리겠습니다.”
“현재 APS에서 동원할 수 있는 용병 플레이어는 모두 몇 명이죠?”
“글쎄요. 어림잡아 150명 안팎으로 가능할 거로 생각됩니다.”
150명.
괜찮은데?
“좀 전에 코인을 보상으로 주신다고 했죠? 전 다른 걸로 받고 싶어서, 승낙하시면 의뢰 받아들일게요.”
“아! 감사합니다. 그런데 어떤 걸 보상으로?”
“제가 퀘스트를 해야 하는데 고기 방패, 아니 동료들이 필요하거든요. 뭐냐 하면···.”
찬웅은 자신의 계획을 최기병에게 설명했다.
“어, 그러니까 성벽을 넘어야 하는데 시선을 끌고 잠시 몸빵을 해줄 플레이어들이 필요하다는 말씀이잖아요.”
“그렇죠. 사망할 각오를 해야 합니다. 접속 제한 페널티와 동화율 하락도,”
“으음.”
접속 제한 페널티, 그리고 동화율 하락, 각성 플레이어를 육성해야 하는 최기병의 입장에서 조금 고민되긴 한다.
그러나 나라 망하는 것에 비할까?
게다가 이번 일로 케이와 신뢰를 쌓으면?
“알겠습니다. 혹시 각성 플레이어도 필요하십니까?”
“없어도 됩니다. 그분들 동화율 하락하면 큰일 나잖아요. 그렇지 않아도 약한 분들인데.”
“···네, 약하죠. 약하고 말고요. 그럼 동원해보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즉시 접속을 종료하는 최기병.
한 30분 정도 기다리니 플레이어들이 뉴팩토리 중앙광장에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최기병도.
숫자는?
“결원 제외하고 현재 인원 146명입니다.”
진짜 동원해왔네.
그럼 어쩔 수 없지.
“좋습니다. 받아들이죠. 하지만 먼저 퀘스트부터.”
“그러셔야죠.”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다녀올 데가 있어서.”
“어딜···,”
“중앙 마공학 연구소.”
“네?”
최기병은 듀플렉스 스페이스 가상현실 게임 전문가나 다름없다. 그래서 마키나 공화국의 중앙 마공학 연구소가 아무나 들어가지 못하는 데라는 걸 안다.
플레이어라고 아무 데나 막 들어나가?
‘정말일까?’
빈말할 사람은 아니고,
케이가 임무를 승낙해줬으니 자신의 할 일은 끝난 거나 마찬가지, 그저 기다리면 될 테고.
최기병도 천상 게이머.
“저도 함께 가면 안 될···.”
“뭐, 그러죠.”
찬웅은 데우스칩을 만날 생각이다.
그런 말도 안 되는 퀘스트를 줬으니 가서 따져야지.
그리고 아무리 고기 방패라지만 한 대 맞고 죽으면 곤란하다, 최소한 10초 이상은 버텨줘야 하고.
찬웅은 중앙 마공학 연구소로 걸음을 옮겼다.
로비 안내 데스크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케이님, 또 오셨네요. 환영합니다.”
“부탁이 있는데, 데우스칩 수석 연구원님 좀 불러주세요.”
최기병은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NPC가 저렇게 친절해?
그리고 누굴 불러달라고? 데우스칩이라, 어디서 많이 들었는데, 데우스칩, 데우스칩···,
“헉!”
화들짝 놀라는 최기병.
‘데우스칩?’
그도 그럴 것이, 듀플렉스 대륙의 각 나라마다 국가를 대표하는 전설급 NPC들이 있다.
마키나 공화국의 경우엔 수석 연구원 데우스칩, 실제 현실로 따지면 대통령 혹은 총리, 대기업 CEO나 마찬가지.
보통 사람이 백악관에 가서 미국 대통령 만나러 왔습니다, 애머전 본사에 제프 베조스씨 불러주세요, 라고 하는 것과 똑같다.
그런데 다짜고짜 걸어가서 데우스칩을 불러 달라니.
‘이거 망신당하겠는데.’
무조건이다.
들은 체도 안 할 것이다.
경비 골렘에게 쫓겨날 수도 있고.
말려야 하나?
최기병은 그러기로 했다.
괜히 분란 일으키다 무슨 일이라도 나면 골치가 아파진다.
“저어···,”
그런데?
“네, 이방인 케이님,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불러드릴게요.”
···뭐지?
잘못 들었나?
불러준다니.
안내 데스크 직원이 통신용 수정구를 작동시켰다.
“아아아, 수석연구원님!”
- 왜 그래?
“케이님 오셨어요. 전에 그러셨잖아요. 오면 연락해달라고. 그래서 내려오셔야 할 것 같아요.”
- 알았어. 금방 내려간다고 해.
‘···.’
최기병은 혼란스러웠다.
물론 케이가 대단한 사람이란 건 인정한다.
그러니 그건 현실에서나 그렇지, 게임 안에선 또 다른 문제 아닌가.
‘아닐 거야. 이름만 비슷한 NPC겠지.’
그러나.
지이잉,
쿵쿵쿵쿵,
저 복도 끝에서 탑승형 골렘을 타고 나타나는 데우스칩.
주변 NPC들도 그에게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
확실하다.
그 데우스칩이다.
게임 소개 영상에서나 볼 수 있는 마도 공학자의 정점, 전설의 데우스칩.
“머리는 잘 붙였네요.”
“그야 케이 자네가 워낙 깔끔하게 잘라준 덕분이지.”
“도끼가 좋아서 그런가?”
머리를 깔끔하게 잘랐다니,
케이가?
전설급 NPC의 머리를?
“무슨 일인가? ”
“저한테 사기를 치셔서 따지려고요.”
“흠흠, 사기라니, 우리 사이에 그런 섭섭한 말을.”
“아니, 애초에 가능한 퀘스트이긴 했습니까? 어후, 지금도 생각만 하면 가슴이 쿵덕거려서.”
찬웅의 추궁에 데우스칩이 눈을 돌리며 딴청을 피우며 말했다.
“처, 처음부터 시선을 끌어줄 동료가 필요하다고 하지 않았나?”
“몇 명인지 말 안 했잖아요.”
“드래곤 콧잔등을 찍은 자네라면 충분히 가능할 줄 알았지. ···아무튼 미안하네.”
머쓱한 표정으로 사과하는 데우스칩.
최기병은 그저 입만 딱 벌린 채 이 믿을 수 없는 광경을 그저 지켜만 보고 있었다.
드래곤을 어떻게 했다고?
그리고 미안?
전설급 NPC가···, 사과를?
“아무튼 동료들은 구했습니다. 하지만 너무 약해요. 한 대 맞으면 죽을 것 같아서.”
“하긴, 침식지 몬스터에 상성이 좋다는 걸 빼면 이방인들은 허약하긴 해. 아! 물론 자네는 예외고.”
“그래서 하는 말인데, 최소 3방 정도는 맞아도 괜찮을 뭔가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예를 들면 쉴드 아이템 같은 거.”
“음? 쉴드 아이템이라.”
“네, 될 수 있으면 영웅 등급 이상으로.”
“몇 개나?”
“146개.”
잠시 생각하는 데우스 칩, 그러더니 안내 데스크 직원에게 말했다.
“마리, 배리어 생성 아이템 재고가 몇 개나 있지?”
“글쎄요, 반지와 팔찌, 목걸이 대충 합치면 얼추 맞출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 그럼 모조리 긁어와.”
“네.”
최기병은 기절초풍할 노릇이었다.
데우스칩은 평범한 NPC가 아니다.
미국 대통령이 아바타로 접속해서 만나자고 해도, 콧방귀도 안 낄 그런 인물이 바로 데우스 칩인데.
그런데 케이에게 쩔쩔매고 있다.
이거 정말 실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