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아바타의 재능으로 동화율 돌파-42화 (4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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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역자

경찰들이 왔다.

최기병은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몇 가지 지시를 한 후, 부상당한 각성 플레이어들을 일단 119에 태워 병원으로 보냈다.

곧 있으면 국정원도 이곳에 출동할 터.

두려움과 안도, 아직 남아있는 분노.

최기병은 한강변 벤치에 앉아 담배 하나를 꺼내 물었다.

끊어야 하는데 금연은 글렀다.

“후우···, 씨발!”

아무리 생각해도 부끄러워 미치겠다.

국가의 기밀이 이렇게 쉽게 유출돼?

케이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어쩔 뻔했나?

반드시 찾는다.

그래서 대가를 치르게 해준다.

순간!

“어이쿠, 어이쿠, 우리 최팀장님, 이게 무슨 일이래?”

연락을 받고 한달음에 달려온 국정원 이필동 과장.

“일찍 오셨네요.”

“아니, 자다가 바로 뛰쳐나왔죠. 오면서 얘기는 들었지만 정말 일본 애들 맞습니까?”

“네, 5명 모두 각성 플레이어입니다.”

“미친! 그럼 자위대 소속이잖아요. 감히 한국 땅에···.”

이필동의 표정에도 숨길 수 없는 분노가 어렸다.

“다 뒈져버렸으니 심문할 수도 없고, 그런데, 그···, 케이라는 사람이 그런 겁니까?”

“죄송하지만 그 부분은 노코멘트 하겠습니다.”

“에이, 그냥 다 털어놓으세요. 팀장님 표정 보니 난감한 눈치인데, 누굴 믿어야 할지도 모르겠죠? 전 믿어도 됩니다.”

“···.”

국정원 이필동 과장과는 꽤 오래 손발을 자주 맞춰온 사람, 실무에 능하고, 정보도 많이 알고 있고, 비교적 바른 사람이다.

그가 스파이라면?

국정원 전체를 의심해야 한다.

“정 내키지 않으시면 지금 말씀 안 하셔도 되고요.”

“휴, 알았습니다. 이야기해드릴게요.”

최기병은 이필동에게 지금까지 일어났던 일을 세세하게 설명했다.

대현 병원 지하 주차장에서 있었던 일부터, 마포대교 다리 밑에서 그를 기다리다 습격당한 일까지.

“확실히 정보가 샜군요.”

“네.”

“최팀장님의 생각은?”

“이과장님부터 먼저 말씀해보시죠. 양화갑 원장은 어떻습니까?”

“하하, 그 양반은 그럴 깜냥이 안 되는 분이죠. 애초에 국정원 출신도 아니고, 역대 국정원장과 마찬가지로 대통령이 꽂아 넣은 사람 아닙니까? 대통령이 스파이라면 또 모를까.”

맞다.

정보를 넘겨봐야 그 사람에게 무슨 실익이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비서실장도 제외고.”

“맞습니다. 꼰대 정치인이긴 하지만 일본하고 손은 잡을 이유가 없는 분이니까요.”

“흐음, 그럼 한 사람 말고는 없는데···.”

“그렇죠, 비서실장과 국정원장을 제외하면 남은 사람은 하나.”

골똘히 생각하는 이필동.

“그렇지 않아도 특정 군(軍) 집단에서 이상한 동향이 포착되긴 했어요.”

최기병이 눈빛을 반짝이며 물었다.

“뭐가 이상한 겁니까?”

“일단 저도 담배 한 대만···,”

철컥,

라이터로 담뱃불을 붙이고 깊숙이 빨아들인 후, 이필동이 말을 이었다.

“아직 조사도 하지 않은 건입니다. 사실 여부도 불확실하고요.”

“하지만 과장님은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 것 같네요.”

“흐흐흐, 눈치도 빨라. 아무튼 알게 모르게 군부 내에 사조직이 있다는 건 아시죠?”

“네, 알고 있습니다.”

군 사조직 결성은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었다.

과거 쿠데타를 일으켰던 핵심 인물들이 모두 하나의 사조직에 가입되어 있었던 사람들 아닌가!

하지만 세월이 지난 지금도 완벽한 척결은 불가능했다.

유럽에 유학 갔던 사람들이 만든 ‘유사파’도 있었고, 서로 알고 지내자라는 의미에서 결성된 ‘서알회’라는 사조직도 있었다.

“우린 육군 내부에 특이한 사모임 하나가 있다는 첩보를 인지하고 있습니다. 뭐,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끼리 모이는 친목회 수준이긴 하지만.”

“친목회라면 특별할 게 없지 않나요?”

“그 사모임 이름이 ‘가즐사’입니다.”

“가즐사?”

“가상현실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

가상현실 게임은 군대 내에서도 인기.

부사관이나 귀관급, 영관급 장교, 심지어 장성급 중에서도 이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이유로 친목 모임이 생기는 거야 이상하지 않지만.

“드러난 것으로만 봐도 꽤 규모가 큽니다. 개중엔 군단장이나 사단장도 있고요.”

“그런데 그게 지금 상황과 무슨 관련이 있습니까?”

“군사안보지원사령부 사령관 변승국 중장이 바로 가즐사 중심인물입니다.”

“아!”

변승국, 최기병이 가장 의심하고 있는 인물,

“또 가즐사 회원 중에 육군 제 3군단 군단장 조창대 중장도 있는데, 변승국의 육사 동기죠. 강원도 인제에 있는 3군단 본부 안에 가상현실 게임 시설도 운영하고 있고.”

“···군부대 안에 게임 시설이야, 복지 차원에서 많이 보급되어 있잖아요. 병사들에게도 인기도 많고, 군 특혜 할인으로 의자형 접속기도 싸게 들어왔고, 계정비도 매우 저렴한 종량제니까.”

가상현실 게임의 열풍으로 군부대까지 접속기가 설치된 건 벌써 1년 전 일.

“근데 그 강원도 3군단 본부 내부 시설에서 상당히 많은 숫자의 접속용 최고급 캡슐을 목격했다는 전역자의 증언이 있었습니다.”

최기병은 깜짝 놀랐다.

군에서 가상현실 접속기를 구비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실제로 각 대대급 부대 싸지방 내에 최소 10개 이상의 의자형 접속기가 있다.

하지만 의자형도 아니고 최고급 캡슐 접속기라니, 한 대에 3억이나 하는 건데.

“캡슐이 몇 개나?”

“최소 100개, 정상적인 부대 예산으론 불가능하죠.”

“증언이 있다면 그걸 근거로 조사에 착수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 그게···.”

“혹시?”

“네, 증인이 두 달 전 교통사고로 사망했습니다. 또한 조사한다 해도 그 주체가 과거 기무사령부였던 군사안보지원사령부고요.”

최기병은 이필동 과장이 무슨 의도로 이야기를 시작했는지 알겠다.

“캡슐형이 아니더라도 군이 보유하는 일반형 접속기가 몇 대인지 셀 수도 없습니다. 장교와 부사관, 병사의 복지를 위한 거라 말하곤 있지만···.”

강원도와 경기도 일대에 군부대가 얼마나 많나? 각 부대 내에 접속기 숫자만 합쳐도 수천여 개는 훌쩍 넘어간다.

또한 중요한 사실, 플레이어 각성은 일반형, 캡슐형 가리지 않는다.

“캡슐형 접속기는 플레이어가 고등급 사냥터에서 빠르게 동화율을 돌파하려는 용도입니다. 그런데 왜 굳이 군에서?”

“설마 군이 독자적으로 각성 플레이어를 육성하려고 한다?”

“매우 의심이 됩니다.”

사실이라면 정말 큰일.

핵무기를 숨기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명백한 반역행위.

“저는 변승국 중장이 왜 APS 회의에 꼬박꼬박 참석하려 했는지도 의문이었습니다.”

“그거야, 혹시라도 군인 중에서 각성 플레이어가 탄생하면 우리와 공유하려···, 어!”

그렇다.

만약 군인 중에 각성 플레이어가 나왔다고 가정해보자.

당연히 숨겼을 테고···.

“이런, 제기랄!”

“네, 정보 공유가 아니라 자신들이 잘 은폐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의도였을 겁니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저는 군에서 각성한 플레이어들이 있었다고 거의 확신합니다. 그리고 군을 그것을 숨겨왔고요.”

“···.”

불행하게도 이필동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었다.

“사실 군부가 각성 플레이어를 이용해서 권력을 잡은 나라가 있지 않습니까. 그것도 바로 옆에.”

“···일본이죠.”

“네, 일본 내각 정부에선 절대 그렇지 않다고 부인하고 있지만 이미 권력이 넘어갔다고 봐야 합니다.”

국가 권력이라는 게 알고 보면 참 단순하다.

특정 사람에게서 나온다.

일본의 경우 총리를 비롯해 국무대신, 고위 관료, 몇 명만 손에 넣으면? 예를 들어 가족을 인질로 삼는다거나, 직접 협박을 하는 식으로, 그게 국가 권력을 장악하는 거지.

“일본 자위대가 그들의 롤모델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보면 APS 소속 각성 플레이어는 눈엣가시가 되겠죠. 물론 케이라는 각성 플레이어도.”

“···일본을 이용해 우리 각성 플레이어를 제거하려 했을 수도 있다는 말이군요.”

“하하하, 아직은 소설일 뿐입니다. 소설.”

하지만 이 가설에도 허점이 있다.

“플레이어 각성이 그리 쉽게 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도 겨우 2명 만들어 냈습니다.”

은밀한 쿠데타.

즉 대한민국 국가 권력의 핵심에 있는 자들을 겁박하려면 각성 플레이어 한두 명으론 턱없이 부족하다.

해야 할 것이 얼마나 많은데? 청와대, 국회, 사법부···, 그러나 성공하기만 하면 국가 권력은 그들에게 넘어간다.

“APS에서 보유하고 있는 캡슐 개수가 몇 개죠? 일반형, 캡슐형 다 합쳐서,”

“약 200여 개 정도.”

“그럼 3군단 예하 3개 사단, 여단, 직속 부대, 등등 다 합치면?”

“어···.”

“셀 수 없으시죠? 저도 그렇습니다. 확률로 보면 어디가 더 많을까요? 게다가 군의 가진 무력까지 더해지면?”

두렵다.

너무 두렵다.

과거 마피아들이 어떻게 정치 권력을 장악했나?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제안, 말을 들으면 살고, 듣지 않으면 죽는다.

과거 용감하게 일제에 저항했던 독립운동가라면 모를까? 지금 정치인 중에 그런 사람이 있긴 한가? 뭐 몇 사람 정도는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들도 그냥 죽여버리면 그만이고.

다만 변수가 있다면,

“미국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미국이요? 만일 쿠데타가 성공한다고 치고, 그럼 미국이 새로운 권력과 전쟁을 벌일까요? 아니면 협상부터 먼저 하려고 할까요?”

“···.”

최악이다.

대한민국은 또 한 번의 군사정권을 경험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

“더구나 조창대가 사석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라고 떠드는 이가 누군지 아십니까?”

“누구···?”

“정대훈 전 대통령, 아! 대통령 자격이 박탈되었으니까 그냥 정대훈씨라고 합시다. 엄청난 추징금을 내야 함에도 통장엔 260만 원밖에 없다고 하는 그분.”

정대훈, 40년 전 쿠데타의 주역이자 수많은 시민을 학살하고도 사과 한번 안 하고, 뻔뻔하게 측근들과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독재자.

“그 양반, 숨겨둔 비자금이 어마어마하다죠. 그 돈으로 캡슐 100개 사는 거야 일도 아니고.”

“그 비자금이 군부 쪽으로 흘러 들어갔다?”

“증거는 하나도 없습니다. 있었다면 당장 행동했겠죠. 게임회사의 접속기기 구매 기록을 열람할 수 있다면 확실해질 텐데 말입니다. 하지만 그건 보여주지 않으니.”

“중고 거래도 생각해봐야 합니다. 웃돈을 주고 산다면 누구나 팔겠죠.”

“네, 설치야 비교적 쉬우니까. 전원만 연결하고 통신만 되면 어디서든···.”

점점 일이 커진다.

가즐회 회원 군사안보지원사령부 사령관 변승국 중장, 역시 가즐회 회원에다 독자적으로 각성 플레이어를 육성하려는 의도가 엿보이는 육군 제3군단 군단장 조창대, 그리고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는 독재자 정대훈.

만약 가설이 진짜라면 과연 그들은 각성 플레이어를 몇 명이나 보유하고 있을까.

“여전히 군은 폐쇄적인 조직입니다. 군사안보지원사령부에, 헌병, 군 사법부, 모조리 한통속일 지도 모르고, 그리고 어디까지 선이 닿았는지 가늠도 되지 않고···.”

“조사가 쉽지 않겠군요.”

“네, 그들도 정보 조직을 보유하고 있으니까요. 섣불리 달려들다간 조사 초기에 탄로날 수 있어요. 그럼 증거를 인멸할 테고. 전에 그랬던 것처럼.”

증거만 찾으면 된다.

그들이 숨기기 전에.

“하지만 어떻게 증거를 확보하죠?”

“현 상황에서 생각나는 사람은 딱 한 명입니다.”

“누구···, 아!”

“케이, 각성 플레이어 케이님.”

맞는 말이다.

그 사람이라면 가능하다.

자유자재로 모습을 숨기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케이.

하지만 또 다시 국가의 치부를 보여줘야 한다니,

갈팡질팡 고민하는 최기병을 보며 이필동이 슬쩍 말했다.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알겠는데, 솔직히 체면이 문젭니까? 나라가 망할 판인데.”

“후우,”

“일단 들어가서 보고서 작성해 원장님께 올리겠습니다. 팀장님은?”

“···네, 청와대 들어가야겠네요. 보고가 먼저니까.”

국가가 개인에게 의지하는 상황까지 왔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세상이 변했으니까.

※ ※ ※

찬웅은 베란다를 통해 집으로 들어왔다.

피가 튄 옷을 세탁기로 돌리고, 샤워도 하고, 간편한 차림으로 소파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 찬웅.

가만히 눈을 감았다.

아무리 급박한 상황이었다고 해도 사람을 죽인 건 보통 일이 아니다.

이렇게 된 이상 원칙이라도 세우자.

무슨 원칙?

간단하다.

손을 써야만 할 때 쓴다.

기준은?

보편적인 상식에 맞게.

그게 참 어렵긴 하지만.

법과 사회적 시스템으로는 제어 불가능한 각성 플레이어들, 앞으로 더 많이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간 무시무시한 악몽이 되어 펑! 터질 테고.

바로 그와 같은 자들을 막으라고 자신에게 이런 힘이 주어진 게 아닐까?

‘준비해야 해.’

앞으로 이런 일들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동화율과 반영률을 높여야 한다.

아울러 진(眞) 아이템도.

그렇게 소파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 하다 보니 깜빡 잠이 들었다.

눈을 떠보니.

‘어후, 벌써 시간이···.’

오늘은 로그드라실 웨이브 방어전 때 사망해서 접속 제한 페널티를 받았던 플레이어들이 복귀하는 날, 아마 딸기도 접속해 있을 것이다.

만나서 마키나 공화국 데우스칩의 퀘스트나 해결해야지.

찬웅은 캡슐 안으로 들어갔다.

변함없는 고통을 거치면서 접속 완료.

그러자 바로 알림음이 울린다.

[상큼한 딸기] : 사부님!!! 기다렸습니다. 저 마키나 공화국!

[케이] : 중앙광장으로 와요.

[상큼한 딸기] : 넵! 바로 달려가겠습니다.

시원시원하게 대답하는 딸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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