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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우스칩의 의뢰(2)
데우스칩은 그 자체로 골렘, 정확하게 설명하면 인간형 골렘에 자신의 에고를 이식했다.
중앙 마공학 연구소 최상층, 개인 연구실 안에서 마주 보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찬웅과 데우스칩의 머리, 주로 에루인과 로그드라실에 관한 썰이었다.
“오호! 그 미친 드래곤 새끼가 한 방 먹었군. 잘했어! 감히 우리 루인을···.”
“때리긴 했어도 솔직히 흠집도 못 냈어요.”
“공격을 했다는 게 중요하지, 침식당하기 전이라면야 몰라도 지금은 나도 못 해. 어쨌건 자네가 루인을 살렸군.”
대화는 화기애애했다.
“이방인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자네처럼 재능있는 이방인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그러면서 데우스칩의 머리가 연구실을 거미 다리로 부산하게 움직여 가며 뭔가를 찾았다.
타닥! 타다닥!
“어디에다 뒀더라? 버리진 않았는데.”
“뭘요?”
“아! 잠깐만 기다려보게.”
- 데우스칩과의 대화(완료)
[보상이 지급됩니다.]
“아! 찾았군. 이걸 받게.”
스윽,
다리 하나를 이용해 검정색 천 쪼가리 하나를 찬웅에게 건네주는 데우스칩, 자세히 보니 복면 같은데.
“원래 인비저블 수트, 야행복을 만들 때 함께 만든 거라네.”
“스승님 주려고요?”
“그렇지. 도망갈 때 가더라도 이것도 같이 가지고 가지. 쯧쯧.”
뭘까?
아이템 정보는.
[진(眞) 암살자 루인의 금욕적인 폴리모프 복면]
[등급 : 전설]
[장비 종류 : 투구]
[귀속 여부 : 습득 시 귀속]
[방어 기술 : 폴리모프 주문(6서클) 습득 / 정신계 마법 방어력 상승]
이 천 쪼가리가 투구라고?
게다가 진(眞)? 루인 세트?
애초에 한 쌍으로 만들어서 세트 판정을 받았나 보다.
괜찮다.
특히 저게 자신이 알고 있는 폴리모프 주문이 맞는다면 얼굴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는 말, 역시 전설은 전설. 정신계 마법 방어력도 더없이 좋고,
‘그럼 세트 효과는?’
[암살자 루인의 빛과 어둠.]
[세트 : 앙증맞은 머리 따개, 노골적인 야행복, 섬세한 살색 장갑, 금욕적인 폴리모프 복면]
[4세트 효과 : 포스량 증가 300 / 피격시 자동으로 쉴드(5서클) 발동(쿨타임 30분) / +1 스킬 레벨 상승.]
+1 스킬 레벨!
이 복면 하나로 얼마나 강해지는 건가.
“마음에 드는 모양이군,”
“네, 매우 마음에 듭니다. 이거 제가 가져도 괜찮을까요?”
“뭐 어때? 우리가 남도 아니고.”
“그, 그쵸?”
솔직히 말하면 남이지.
하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어쨌든 인연도 인연이고, 자네 실력도 알겠으니, 우리 일 하나 같이 하는 게 어떤가?”
퀘스트 냄새다.
“당연히 해야죠. 뭐든 시켜만 주십시오.”
“역시 시원시원하구나! 루인이 널 제자로 들일만 해.”
퀘스트 떴는데 거절하면 그게 멍청이지.
“제가 할 일은···?”
“올드팩토리는 들어봤겠지? 침식지 중앙에 있는 도시 말이야.”
“네. 예전의 수도였죠.”
“자네도 알다시피 우리 대륙인들은 침식지에 들어갈 수 없어. 그랬다간 끔찍한 몬스터로 변할 테니까.”
“그렇죠. 그것이 우리가 이곳에 온 이유이기도 하니까요.”
“올드팩토리 안에서 물건 하나를 빼내오는 것이 내 부탁이네.”
[마지막 연계 퀘스트가 시작됩니다.]
“무슨 물건을?”
“올드팩토리가 침식당하면서 잃어버린 마공학 술식들이 꽤 많아. 그중에서 가장 간절한 것이 있지.”
“뭐죠?”
“엑사급 코어의 견본, 신화 등급 골렘, 즉 마그누스 기간트를 움직일 수 있는 엔진.”
마그누스 기간트라면?
“어···, 현재 올드팩토리 침식지 보스가 마그누스 기간트 아닌가요?”
“맞아. 마그누스 중에서도 최고였지. 게다가 침식으로 스펙도 더 높아졌고, 놈을 상대하려면 우리도 같은 등급의 기간트가 있어야 해.”
다소 침울해진 데우스칩의 음성.
“로그드라실 웨이브를 보게. 여기도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란 법이 없지. 침식된 마그누스 기간트가 뉴팩토리를 침공해온다면···, 그 놈은 오직 마그누스 기간트로만 막을 수 있으니까.”
“그런데 그 엑사급 코어라는 거 다시 만들 수는 없는 겁니까?”
데우스칩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말했다.
“500년 전, 올드팩토리가 침식당할 때, 날 제외한 모든 수석 연구원들이 죽거나 침식당했네. 당시 난 코어 설계를 전공한 마공학자도 아니었어. 에고 각인 마공학자였지.”
“아! 그랬군요.”
“내 평생의 숙원이네. 500년이 지나도 끝내 달성하지 못한 꿈, 마그누스 기간트를 재현해 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가?”
“당연히 들어드려야죠.”
띠링!
- 마그누스 기간트 엔진 견본 입수.
- 완료 조건 : 올드팩토리 내부에 부서진 마그누스 기간트에서 엑사급 코어 획득(0/1).
- 보상 : 데우스칩의 마공학 발명품(선택)
드디어 마지막 퀘스트가 임박했다.
“올드팩토리 성벽을 넘어 들어가게. 들어갈 때 경고음이 울리니 시선을 끌어줄 동료들이 필요할 거야. 중앙 광장으로 가면 부서진 마그누스 기간트 2기가 보일 텐데, 둘 중 하나에서 엑사급 코어를 확보해줘. 침식지 보스가 가끔 돌아다니니 주의하고.”
웨이브를 막는 것도 아니다.
보스를 죽이라는 것도 아니다.
그저 물건만 가져오는 퀘스트.
“그럼 언제까지?”
“최대한 빨리.”
“알겠습니다. 그럼 전 이만, 준비할 것이 있어서.”
“당연히 준비해야지. 잘 가게.”
마지막 연계 퀘스트를 받았지만 당장 움직일 생각은 없다.
함께하는 것이 좋다.
딸기의 접속 제한은 내일 풀린다.
만나서 같이 하자고 하자.
그런데 이 퀘스트가 공유가 되긴 하나?
찬웅은 연구실을 나와 대기실로 귀환했다.
‘일단 오늘은 이만.’
로그아웃하기 전에, 상태창은?
[이름 : 케이]
[직업 : 용병(랭커)]
[포스 : 6,000]
[액티브 스킬 : 비열한 습격(4단계), 바람길 산책(5단계), 별빛 가르기(5단계) 강타(2단계)]
[패시브 스킬 : 방출(6단계), 듀얼 스트라이크(5단계)]
[동화율 : 155%]
[반영률 : 40%]
동화율 1% 돌파에, 세트 효과로 인한 스킬 레벨 상승.
‘좋네.’
게임은 게임이고 현실에서도 할 일이 있다.
푹 자고 이따 자정 넘어서 진(眞) 하급 치유 물약이나 배달해 주자.
찬웅은 캡슐에서 몸을 일으켰다.
어느덧 해가 중천에 떠 있다.
밤이 되려면 멀었으니까 집 안 청소도 하고, 캡슐 안도 청소하고.
순간!
딩동!
초인종이 울렸다.
문 앞에 놓인 작은 상자.
그 안에는 든 건 [진(眞) 암살자 루인의 금욕적인 폴리모프 복면].
‘한 쌍으로 만들었다더니 진짜 야행복하고 잘 어울리겠어.’
신축성이 있어 쭉쭉 늘어나는 비니 형태의 모자였다.
비니로 쓸 수도 있으며, 턱까지 내려쓰면 복면으로 변하고.
완전하게 얼굴을 감쌌는데도 답답하지 않았다. 게다가 외부도 훤하게 잘 보이고.
‘스파이더맨 같네.’
거미줄만 쓱쓱 그리면 똑같다.
게다가 야행복과 함께 입으면 완전 스파이더맨.
‘실험해볼까?’
찬웅은 복면을 쓴 채 거울 앞으로 다가갔다.
‘폴리모프!’
그러자,
우웅,
포스의 기운이 복면으로 몰렸다.
‘이렇게 하는 거구나.’
폴리모프 주문이 발동된 순간, 방법을 깨달은 찬웅.
이건 특수 분장, 혹은 특수 가면 같은 개념, 복면이 얼굴에 딱 달라붙어 밀착하더니 꿀렁꿀렁 움직인다.
‘두상을 조금 작게 만들고, 눈은 더 크게, 코는 뾰족하게, 턱선은 날카롭게, 입술은 얇게···, 으음.’
찬웅은 거울 속 남자가 누구인지 깨달았다.
‘빈이구나.’
W빈, H빈, 아무튼 빈.
언제 이런 얼굴을 가져보겠나.
보고만 있어도 뿌듯하다.
이것도 포스가 계속 주입해야 유지가 되는 식.
야행복과 비슷한 쓰임새.
하지만 둘 다 동시에 쓰면 포스 소모가 매우 심하다.
찬웅은 복면으로 가는 포스를 끊었다.
그러자 다시 돌아오는 본래 얼굴.
갑자기 기분이 나빠졌다.
“에이 씨!”
스슷,
폴리모프 복면은 인벤토리에 넣고,
이제 뭘 할까?
알람 맞춰놓고 잠이나 자자.
시간이 흐르고.
그렇게 꿀잠 때린 찬웅은 침대에서 일어나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었다. 야행복, 복면, 장갑을 차례로 착용하고 겉옷도 걸치고, 도끼는 인벤토리에.
‘가자.’
지금은 야심한 밤.
2시에서 3시라고 했으니 정확하게 3시에 맞춰서.
굳이 현관문으로 나갈 필요는 없다.
우우웅,
야행복에 포스를 주입해 은신막을 발현하고,
드르륵,
베란다 문을 열었다.
스팟!
처음엔 지하철 코인 라커나 사람들의 인적이 드문 곳에다 치유 물약을 두고 연락해주려고 했지만 그것보다는 직접 배달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오히려 그게 더 안전하고 뒤탈이 없다.
마포대교 남단, 새벽 3시, 겨울이라 날씨도 춥고, 사람의 발길도 뚝.
찬웅은 좀 더 속력을 높이기로 했다.
팟! 팟! 팟!
거의 다 와 간다.
그런데?
‘음?’
저편에서 느껴지는 낯익은 기운.
‘···포스?’
확실하다.
포스였다.
전에 지하 주차장에서도 APS 소속 각성 플레이어의 포스를 감지하긴 했지만 그때는 가까운 거리라서 그러려니 넘어갔었다.
그런데 이번엔 제법 먼 거리에서도 또렷하게 느껴진다.
‘인식의 영약 때문인가?’
감각기관을 영구적으로 향상해 주는 영약, 오감뿐인 줄 알았는데 포스도 인식의 영역 안에 들어온 것이 분명하다.
찬웅은 정신을 집중했다.
한번 느껴보자.
일단 하나, 그리고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모두 일곱.
‘각성 플레이어가 이렇게 많이 몰려있어?’
많은 건 둘째치고.
‘무슨 수작이지?’
물약이나 받아 갈 약속 장소에 각성 플레이어 일곱 명이 왔다는 건···,
‘설마 날 잡으려고···.’
순간!
멀리서 들리는 기이한 소리.
뿌득, 우드득!
‘···.’
뭔가 부러지는 소리다.
흡사 인간의 뼈가 부러지는 소리.
서서히 속력을 줄이는 찬웅.
그리고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아주 천천히 발길을 옮겼다.
※ ※ ※
분노로 머리가 새하얗게 타버린 최기병.
일본어를 사용하는 정체불명의 각성 플레이어 5명이 자신들을 기습했다.
APS 소속 각성 플레이어, 우현수와 고유섭은 용감하게 저항했지만 결국 제압당했다.
한 명당 두 명씩 달려드니 당해낼 재간이 없었고.
놈들은 우현수와 고유섭의 입을 막고 팔다리를 부러뜨려 버렸다.
뿌드득! 우득! 우드드득!
뼈 부러지는 소리가 소름 끼친다.
‘읍읍!’
최기병도 손발이 묶이고 입은 청테이프로 칭칭 감겼다.
어째서 이런 일이?
간단한 일이었다.
케이를 만나서 진 치유 물약을 들고 가면 끝나는 거.
정보가 새어나갈지 몰라 최소한의 인원만 왔다.
하지만 그 최소한이라는 인원이 바로 APS 소속 각성 플레이어 2명.
오히려 과하지.
하지만 어이없이 기습을 당했다.
‘분명 노리고 온 거야. 정보가 샜어.’
대체 누가?
오늘 케이와 만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자신과 비서실장 도동훈, 국정원장 양화갑, 군사안보지원사령부 사령관 변승국, 그리고 대통령, 이들 말고는 없다.
‘씨발, 씨발! 씨이발!’
분명 그들 중에 있다.
그리고 이들에게 정보를 넘겼을 터.
‘훈련받은 놈들이야.’
기습당할 때 저항도 못 할 정도로.
비록 갓 각성했지만 우현수와 고유섭도 각성 플레이어 아닌가.
하지만 중과부적.
어디서 온 놈들인지 짐작이 간다.
죽이고 싶다. 갈가리 찢어버리고 싶다.
이 쪽바리 새끼들도 그렇지만 배신자가 더 나쁜 새끼다.
두런두런 들리는 대화.
최기병은 일본어에 능통하다.
중국어와 영어도 잘한다.
그래서 놈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귀찮아. 셋 다 죽여버려.”
“아직 한 명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놈이 치유 물약을 가지고 있을 거고요. 얼굴 확인을 해줄 놈이 필요합니다.”
“그럼 일반인 하나는 살려두고, 나머진 죽여.”
“알겠습니다.”
“그래도 각성 플레이어니까 깔끔하게 목을 잘라. 난 그 케이란 놈이 오는지 계속 보고 있을 테니까.”
지시를 받은 일본인 각성 플레이어 두 명이 각각 우현수와 고유섭을 꿇어 앉혔다.
“새끼들, 왜 이렇게 흐늘흐늘거려?”
“뼈를 너무 심하게 부러뜨렸나?”
“아무튼 꽉 잡고 있어.”
다른 두 명은 긴 일본도를 들고 목을 칠 준비를 했고,
놈들은 무심했다.
그 어떤 동요도 없었다.
사람을 죽이는 것이 무슨 닭 모가지 자르는 것처럼.
‘아아아.’
최기병은 절망했다.
참수라니,
일본 쪽바리 새끼들이 한국 땅에서 정부 소속의 각성 플레이어의 목을 베려 한다니.
비참하다.
수치스럽다.
우현수와 고유섭은 이미 체념한 표정.
어두운 밤인데도 일본도의 시퍼런 칼날이 불빛에 번뜩인다.
“누가 더 빠르게 자르는지 내기할까?”
“좋아.”
“내가 심판을 볼게. 셋 하면 자르는 거야.”
“시작해.”
“하나, 둘, 세에···.”
그러나 놈은 숫자를 끝까지 세지 못했다.
“어?”
츠피리릿! 츠피릿!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들리고,
서걱! 서걱!
동시에 뭔가 잘리는 소리가 들렸으며,
툭! 툭!
또 뭔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도 들렸다.
최기병은 엎드린 채로 오열했다.
‘크윽, 큭! 으으으···,’
자신의 부주의함 때문에 아까운 사람들이 죽었다.
반드시 복수한다.
죽어서라도 한다.
억울하게 죽어간 동료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눈에 담아두자.
그런 마음으로 고개를 돌린 최기병의 눈에 들어오는 둥그런 물체.
데굴데굴, 데굴데굴.
머리통이 공처럼 굴러갔다.
그런데?
‘이건···?’
아니다.
우현수의 머리가 아니다.
고유섭의 것도 아니다.
그럼 설마?
“헉!”
“뭐, 뭐야?”
동시에 쓰러지는 일본인 각성 플레이어의 목 없는 시체 두 구.
털썩, 털썩,
최기병은 직감했다.
그가 왔다.
케이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