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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계 퀘스트 시작.
찬웅은 집 근처 CCTV가 달리지 않은 으슥한 장소에서 인벤토리에 넣어둔 전동 휠체어를 꺼내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외부적으로 자신은 장애인, 갑자기 나았다는 걸 들키면 안 되니까, 번거롭지만 당분간 이 짓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
찬웅은 간단한 식사와 샤워를 마치고, 노트북 앞에 앉아 커뮤니티로 들어가 필요한 정보들을 탐색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아침 8시.
이제 캡슐 안으로.
찌릿!
“큭!”
여전히 남아있는 고통.
게임이나 일상생활 통틀어 제일 힘들 때가 바로 접속의 순간.
찬웅은 먼저 로그드라실로 왔다.
거대한 세계수는 도시 어느 곳에서 훤히 보였다.
웨이브도 끝났고, 로그드라실 침식지 몬스터들도 크게 줄었다. 엘프들은 파괴된 도시를 재건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고.
활동 지역을 옮길 예정.
랜덤 D박스에서 나온 퀘스트 아이템이 다음 행로를 지정해주었다.
찬웅은 인벤토리에서 아이템 하나를 꺼냈다.
[문양이 새겨진 미스릴 너트]
[종류 : 퀘스트 아이템]
[귀속 여부 : 습득 시 귀속]
너트치고는 크기가 큰 편, 재질은 무려 미스릴, 듀플렉스 스페이스 가상현실 게임에서 비싸기로 소문난 마법 금속이 바로 미스릴이다.
퀘스트 수락하고.
띠링!
- 분실한 미스릴 너트(1)
- 완료 조건 : 마키나 공화국 뉴팩토리에 있을지도 모를 너트 주인 찾아주기(0/1).
- 보상 : 1,000 D코인.
역시 마키나 공화국과 연관된 연계 퀘스트, 수행지역은 오늘 정부 기관 요원과 약속이 잡힌 뉴팩토리.
‘두 번 움직일 필요는 없겠네.’
타직업군은 이런 아기자기한 퀘스트가 많은 반면, 유독 용병 플레이어에겐 이러한 연계 퀘스트가 그리 많이 주어지지 않는다. 무식하게 몬스터만 때려잡으라는 거 말고는.
이제 퀘스트를 따라가자.
그전에 작별 인사를 하고.
에루인에게 받은 은혜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 그녀에게 배운 스킬의 가치만 해도 그렇다.
현존하는 전설급 NPC가 가르쳐준 전설급 스킬, 커뮤니티를 찾아보니 다른 플레이어들은 보지도 못한 스킬들이다.
덕분에 동화율 154%의 랭커라고 해도 비정상적으로 강한 힘을 가지게 됐다.
오크는 밥으로 만들고, 미노타우루스와 트롤을 한 방에 죽이고, 오거와 맞상대하며, 끝내는 드래곤의 콧잔등을 도끼로 찍어버린 힘, 이게 다 에루인의 스킬 덕분이지.
그래서 찬웅은 에루인을 먼저 만났다.
“떠난다고? 흐음, 그래, 너도 이방인이었지.”
“영영 떠난다는 게 아니라 할 일이 있어서 그래요. 언제든 다시 올 수도 있고.”
“응, 떠돌이.”
“···.”
“농담이야. 주신께서 안배하신 임무를 받았어?”
“네.”
원래 시나리오상 플레이어는 신의 부름을 받아 이세계로 온 이방인.
“그럼 당연히 가야지. 근데 어디로?”
“마키나 공화국요.”
“···어디라고? 가는 귀가 먹어서 잘,”
“마키나 공화국 수도 뉴팩토리요.”
“으으음.”
에루인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흔들렸다.
“왜요? 무슨 문제 있어요?”
“그, 그게···, 너 야행복 입고 있지?”
“입고 있죠. 참! 이것도 받았어요. 섬세한 살색 장갑.”
“어휴, 이거 곤란하네.”
뭐지?
“살색 장갑이야 그렇다 쳐도, 야행복이 문제인데.”
“이게 왜 문제가 돼요? 스승님이 주신 거잖아요.”
“흠, 어, 사실 내 거 아니야. 내가 어디서 이런 걸 만들겠어?”
“스승님 물건이 아니라고요?”
에루인의 태도가 심상치 않다.
본래 자신의 소유물이 아니다. 그리고 그게 문제 되는 경우라면···, 더불어 에루인의 과거 행적으로 보아···,
“혹시 장물?”
“어떻게 알았어?”
어떻게 알았긴, 넘겨짚은 거지.
“야행복 원주인이 마키나 공화국 뉴팩토리에 살고요?”
“역시! 내 이방인 제자는 천재야.”
“···장물을 내게 넘긴 거네요.”
“뭐, 어때? 필요한 사람이 쓰는 거지.”
아아, 엘프 장로라는 분이 저렇게 뻔뻔할 수가.
“아무튼 뉴팩토리시에 중앙 마공학 연구소에 수석 연구원 데우스칩이란 괴물이 있거든, 걔만 안 만나면 돼.”
“데우스칩?”
“그 이름 꼭 기억해. 명심해! 어후, 생각만 해도 징글징글하다.”
“···무서운 사람인가요?”
“어, 무서워. 정말 무서워.”
데우스칩이란 사람이 이 야행복의 주인인가 보다.
전설급 NPC 에루인이 무섭다고 말했으니 최소한 비등하거나 그녀보다 더 강하다는 의미.
‘조심해야지.’
퀘스트만 처리하고 마키나 공화국을 떠나야겠다.
“조금 섭섭하네. 너 이참에 엘프 해라.”
“네?”
“거의 엘프나 마찬가지잖아. 세계수님과 소통도 하고, 이참에 마음에 드는 엘프 한 명, 다리 걸어서 넘어뜨려.”
“···.”
“결혼하라고, 네가 하겠다고만 하면 달려들 엘프들 많을걸?”
“전 이방인이라.”
“그럼 어때서, 이방인은 그거 안 달려있냐? ···아참, 안 달려있구나.”
아바타가 외적인 남녀 구분은 있어도 생식기는 없다.
있으면 큰일 나고.
“전 이만 가볼게요.”
“잘 가. 종종 놀러 오고. 여기 와서 살아도 되고.”
찬웅은 에루인과 석별의 정을 나눈 후, 대기실로 귀환했다.
대기실은 창고의 역할도 겸하고 있다.
바닥에 무수하게 깔린 각종 아이템, 이게 다 상자에서 나온 잡템.
먼저 마정석부터 골라 인벤토리에 넣었다.
현재 마정석 거래가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곳이 바로 마법 왕국과 마키나 공화국, 처분해서 코인도 벌고.
찬웅은 대기실 벽면으로 이동했다.
설치된 두 개의 게이트, 하나는 카쟌, 하나는 로그드라실.
이제 세 번째 게이트를 달 차례.
[게이트 설치에 드는 비용은 2,000D코인입니다. 추가하시겠습니까?]
게이트 설치 비용.
처음은 무료, 두 번째는 1,000D코인, 세 번째는 2,000D코인, 네 번째는 4,000D코인이다.
달 때마다 2배씩 늘어난다.
그래서 5개까진 그럭저럭 달수 있지만 6개부턴 비용이 꽤 많이 든다.
어쨌든 대기실에서 세 번째 게이트를 설치하고,
[게이트와 연결된 장소가 없습니다.]
[도시를 설정해 주세요.]
“마키나 공화국 뉴팩토리.”
[한번 설정하면 한 달간 변경이 불가능합니다. 괜찮으십니까?]
“설정!”
[게이트 통로가 마키나 공화국 뉴팩토리로 설정되었습니다.]
이미 약속 시간이 지났다.
빨리 가야지.
찬웅은 강철문 손잡이를 잡고 힘차게 열었다.
화아악!
※ ※ ※
듀플렉스 스페이스 게임 본사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다.
리얼(real) 아이템과 각성 플레이어의 존재에 대해 처음 인지한 국가도 바로 미국, 그래서 관련된 사안에 대응도 무척 빠른 편이다.
마이클 피트 국무 차관보 주재로 열린 실무회의.
“텍사스주에서 2명의 각성 플레이어가 포착되었습니다.”
“성향은요?”
“온순한 편입니다. 현재 혼란스러워하고 있고요. 현재 접근 중입니다.”
“다른 곳은?”
“미네소타 1명, 캔자스 1명, 와이오밍 2명, 뉴욕에선 3명입니다. 모두 성향 괜찮습니다. 바로 계약을 끝냈고요. 그런데···,”
“무슨 일 있습니까?”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에서 각성 플레이어가 난동을 부려서···,”
“후우, 대처는 어떻게?”
“각성팀 보내 사살했습니다.”
또 골치아픈 일이 생겼다.
빌런화된 각성 플레이어만 죽인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목격자 입막음, 언론 통제, 혹시라도 영상이 찍혔는지 조사해야 하고, 찍혔다면 모조리 삭제해야 하고.
리얼(real) 아이템의 존재야 밝혀졌지만 각성 플레이어의 존재는 최대한 숨겨야 한다. 국가가 충분한 대응 능력을 갖출 때까지.
이런 빌런들이 한두 명씩 나타나기에 망정이지, 한꺼번에 출현한다면? 또한 생각하기도 싫지만 그들이 조직화 된다면?
“이번 각성 플레이어의 평균 동화율은 어떻습니까?”
“그게 매우 다양해서, 최소 127%에서 최고 152%까지 분포합니다.”
“전엔 보통 동화율 150% 이상에서 주로 각성하지 않았나요?”
“이번 로그드라실 웨이브 이벤트로 각성의 메타가 변한 걸로 판단됩니다. 이제 동화율 상관없이 각성한다고 보는 게 맞고요.”
“찾기 더 어려워졌군요.”
“네, 매우!”
망할 놈의 이벤트, 그 때문에 리얼(real) 아이템의 존재도 까발려졌고, 그동안 숨겨왔던 각성 플레이어도 탄로 나게 생겼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이 있다면···.
“마정석 수급은 괜찮습니까?”
“오늘 2개나 확보했습니다. 지금도 팔겠다고 연락이 오고 있고요.”
“2개라, 그럼 국립과학재단 리얼 프로젝트팀에 하나 넘겨주세요. 그쪽도 갑갑할 건데.”
“네, 전해주겠습니다.”
정부가 몰래 세운 회사, 퓨처월드를 통해 매입하는 아이템 중 제일 많은 것이 리얼(real) 마정석, 그도 그럴 것이, 그걸 입수한 플레이어들에겐 계륵 같은 물건이었다.
아이템도 아니고, 물약도 아니고, 그저 돌인데 이걸 어디다 쓰나? 그 덕에 정부는 매우 싼값에 리얼(real) 마정석을 사들였다.
“다른 건 없죠? 그럼 이만 마칩시다.”
“아! 특이한 사항이 있긴 한데···, 확인되지 않는 정보라서, 조금 황당하기도 하고.”
“그래요? 뭔데요?”
“여기···.”
미 국가 안전 보장국에서 파견된 실무진이 내민 서류 몇 장, 마이클 피트 국무 차관보가 천천히 서류를 읽어내려갔다.
“흐음, 케이? 한국인 플레이어?”
“네, 그렇습니다. 중국과도 마찰을 빚고 있다는 소문도 있고요.”
“근데 왜 우리가 그쪽 상황을···, 처리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계속 읽어보시죠.”
마이클 피트는 영문을 몰랐지만 일단 끝까지 읽어보기로 했다.
그러자 점점 황당하게 변하는 그의 표정.
“어쩌면 세계 최강의 각성 플레이어라, 게다가 리얼(real) 아이템을 마음대로 뽑을 수 있다? 하하하, 이걸 믿으라고요? 아니, 이 말도 안 되는 정보는 어디서 얻은 겁니까?”
“한국 군사안보지원사령부 쪽에서 입수했습니다.”
“군? 군이라···.”
군 정보기관이라면 허튼 찌라시를 생산할 급은 아닌데.
“아직 정보선은 유지하고 있죠?”
“네.”
“그럼 더 캐보세요.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그때 가서 논의해봅시다.”
그러나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다.
세계 최강이라니, 그게 그리 쉽게 붙일 수 있는 호칭인가?
※ ※ ※
마키나 공화국 뉴팩토리 중앙 광장을 서성이는 세 명의 아바타가 있었다.
아바타 [블루다이아222] 비서실장 도동훈, 아바타 [양지해장국111] 국정원장 양화갑, 아바타 [와치맨] APS 전담반 팀장 최기병.
“그래, 오전 10시에 만나기로 했다고?”
“···그렇습니다.”
“그런데 지금 몇 시지?”
“어···, 10시는 지난 것 같습니다.”
“허허.”
미간을 있는 대로 찡그리는 비서실장 도동훈, 표정이 안 좋기는 국정원장 양화갑도 마찬가지.
“불쾌하군.”
“주도권을 잡으려는 의도 같습니다.”
“쯧쯧, 첫인상이 중요한 법인데.”
“어쩌겠습니까. 우리가 을이라는 거죠.”
두 사람은 서로 불평을 주고받았다.
반면 그걸 지켜보는 최기병은 속이 까맣게 타들어갔다.
이럴 줄 알았다.
바보는 아니더라도 이들은 꼰대, 그것도 진성 꼰대.
권력자들에겐 권력자들만의 문법이 있다.
그것이 꼰대력과 합쳐지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뻔하다.
‘망했군.’
케이가 어떻게 받아들일까?
현실에서 도끼나 안 맞으면 다행.
‘지금 당장 그만두고 자리를 뜨고 싶네.’
하지만 이미 늦은 것 같다.
저기 저편에서 이쪽을 향해 걸어오는 아바타 [케이].
차라리 오질 말지.
“최팀장, 저기 오는 케이가 그자 맞지?”
“···네.”
“드디어 나타나셨군.”
“하! 걸어오네요. 귀한 분이 늦었다고 뛰어올 리 없죠.”
충돌 일보 직전, 일촉즉발.
당장 이 자리를 피하고 싶다.
하지만,
“와치맨?”
“으음, 케이씨,”
“이 사람들은? 단둘이 만나기로 하지 않았나?”
“그, 그게···.”
그러자 비서실장 도동훈이 기다렸다는 듯 나섰다.
최기병은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런데?
“처음 뵙겠습니다. 케이님, 이번 거래의 중요성을 감안해 결정 권한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 직접 나와야 한다고 판단해서 제가 이렇게 나왔습니다. 대통령님께 전권을 위임받고 왔습니다. 우리 정부는 케이님이 제시하는 어떤 조건이라도 수용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국정원장 양화갑도,
“안녕하십니까? 어려운 걸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병원에서 있었던 불미스러운 일은 잊어주십시오. 앞으로 케이님과 우리 정부가 함께 미래지향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길 바랄 뿐입니다. 저희 국정원도 양지, 혹은 음지에서 목숨을 바칠 각오로 지원해드리겠습니다.”
지극히 공손한 태도로 고개를 숙이는 두 사람.
정작 최기병은 나서지도 못했다.
‘뭐지? 이 사람들···.’
불평은 그저 불평뿐이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몰래 직장 상사 욕하는 그런 느낌?
‘하긴, 그 위치까지 왔으니 눈치도 빠르겠지.’
어쩌면 세계 최강의 각성 플레이어, 박달환을 죽이고 APS 소속 각성 플레이어를 한 방에 기절시킨, 게다가 진(眞) 아이템을 마음대로 뽑는 능력자,
누가 더 권력자인가?
이들도 매우 잘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