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아바타의 재능으로 동화율 돌파-36화 (36/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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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의는 호의로.

찬웅은 지하 주차장 밖으로 나왔다.

은신막을 계속 유지한 채로.

그건 그렇고.

‘은신막이 만능은 아니었어.’

대화를 나눴던 전담반 소속 [와치맨]은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옆에 있던 머리를 짧게 깎았던 사람은 눈치를 챘다.

‘각성 플레이어일까?’

그런 것 같다.

포스의 기운이 느껴졌으니까.

‘박달환 말고도 더 있었네.’

세상엔 얼마나 많은 각성 플레이어들이 존재할까?

그중에 자신보다 강한 자들이 과연 없을까?

분명 있을 것이다.

한국이 아닌 세계로 범위를 넓힌다면, 아니 한국 안에서도 존재할 수 있겠지.

더더욱 조심해야 한다.

그래서 찬웅은 와치맨에게 메시지를 던졌다.

철저하게 게임 안에서만 소통할 거라는 메시지였다.

더불어 이해관계로 얽히면 철저하게 이익을 따져 챙기고, 악의적으로 나오면 악의로 받고, 호의엔 호의로.

‘집에 가서 하급 치유 물약의 가치나 알아봐야겠네.’

만약 어처구니없는 대가를 들고 온다면?

바로 손절이다.

그나저나 딸기는 만나고 가야겠다.

자신을 숨겨주려고 애썼던 그녀.

호의는 호의로 답한다.

‘아바타 딸기라···,’

세계수가 연결해준, 그리고 엘프 장로 에루인이 인정한 재능있는 동료.

솔직히 친구 이상의 감정은 없다.

현실에서 만난 지 얼마나 됐다고.

그냥 동병상련, 같은 처지에서 빚어진 동정심?

또 꼭 딸기가 아니더라도···.

‘연애는 무슨!’

하반신 장애였던 적이 엊그제.

연애 세포가 예전에 사멸한 상태라 그건 치유 물약으로도 살리기 어렵다.

※ ※ ※

한편 신여은은 엄마와 함께 병실 안에 있었다.

만족도 조사라며 말도 안 되는 핑계로 자신을 떠보려 했던 두 사람.

마음이 불안하다.

그들은 확실히 의사는 아니었다.

경찰? 정보기관?

불치병이 기적적으로 호전된 것이 자신을 찾은 이유이지 싶다. 당연히 소문이 돌았을 것이고, 그 사실을 인지한 경찰, 혹은 정보기관에서 조사하러 나왔겠지.

케이가 현실에서 자신에게 먹인 물약.

‘확실히 치유 물약이었어.’

게임상에서 플레이어들의 편의를 위해 상처나 내상을 치유하는 값싼 아이템, 그러나 현실에선 가격을 따질 수 없는 보물, 자신도 효과를 직접 느끼지 않았나.

‘조심해야 해.’

프레드 윌슨의 라이브 방송으로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그녀도 이제 그 치유 물약의 가치를 안다. 그걸 먹은 자신이 얼마나 큰 행운을 맞이했는지도,

보호자 침대에서 잠을 자기 위해 이부자리를 정리하던 여은의 엄마가 말했다.

“여은아.”

“응.”

“너 게임 계속할 거지?”

“어. 근데 왜? 하지 말라고?”

“아, 아니 그게 아니라, 더 열심히 해.”

“···갑자기 왜 그래?”

슬며시 침상 가까이 다가와 말하는 여은의 엄마.

“여은아, 상자를 까면 그, 뭐냐. 로또처럼.”

“진(眞) 아이템?”

“맞아. 그거, 아이템 중에 불치병을 치료할 수 있는 물건도 있다며?”

“···아마도.”

“게임 해서 열심히 까. 부족한 돈은 엄마가 줄게.”

“어휴, 괜찮아. 내가 벌어서 할게, 엄마는 그냥 가만히 있어.”

“네가 돈을 어떻게 벌어?”

신여은의 엄마는 모른다.

용병 플레이어가 얼마나 많은 돈을 버는지.

당장 그녀의 계좌에도 100만 D코인이 고스란히 들어 있는데.

“전에도 말했지, 엄마, 아니 네 외갓집 돈 많다고, 거기 내 몫도 있어. 하나만 팔아도···,”

그때였다.

드르륵!

아무도 없는데 열리는 자동문.

“에구머니나! 기분 나쁘게 또 혼자 열려! 귀신인가? ···내일 퇴원하기에 망정이지.”

“엄마?”

“왜?”

“잠깐 나갔다 와. 가서 커피라도 마시고 오던지.”

“아니.”

“제발!”

“아, 알았어. 금방 갔다 올게.”

“천천히 와도 돼.”

엄마가 나간 걸 확인하고 슬며시 눈을 감은 신여은, 잠시 후 아무도 없는 병실에서 혼잣말을 시작했다.

“케이님?”

그가 왔을 것이다.

전에도 그랬다.

아무도 들어오는 사람이 없는데 문이 열렸고, 잠시 후 케이가 자신에게 기적을 선사했었다.

“케이님? 케이···,”

“왜 눈을 감고 계세요?”

“아!”

왔다.

케이가 왔다.

“음, 아, 안 보려고요.”

“누굴? 저를요?”

“네, 제가 케이님 얼굴을 알면 안 될 것 같아서요.”

찬웅은 신여은, 딸기가 왜 이러는지 이해가 간다.

‘이럴 필요는 없는데.’

그녀도 그 두 명이 의사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나 보다.

또 찾아올지도 모르고, 혹은 잡혀가서 심문이라도 당할지 모르니까, 차라리 케이의 얼굴을 모르는 게 낫다는 것이 딸기의 생각.

굳이 말릴 생각은 없다.

찬웅도 그녀의 생각에 동의했기 때문에.

나름 현명한 판단 같다.

“몸은 괜찮죠?”

“네, 많이 나아졌어요. 참! 제가 이번에 공적 순위 10위에 들어 100만 코인 받았거든요. 그거 드릴게요. 계좌번호를 불러 주시면 입금해 드릴게요.”

“그걸 왜 저한테···, 순위에 든 건 딸기씨 아닌가?”

“설마 제가 잘해서 그런 거라 생각하시는 건 아니겠죠?”

“아닌가요? 재능도 충분하신 분이.”

“그래도···,”

눈을 꼭 감고 이야기하는 딸기.

처음 봤을 땐 야윌 대로 야위고 표정도 이상하게 굳어 조금은 징그럽기까지 했지만, 예전보다 얼굴이 훨씬 좋아졌다.

솔직히 지금도 그리 좋은 얼굴은 아니다.

“전 딸기씨가 10위권 안에 들기에 충분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해요. 시스템이 바보도 아니고, 아무런 근거 없이 순위를 산정했을까요?”

“근데 왜 케이님은 1위가 아닌 거죠?”

“저도 잘 몰라요. 솔직히 받기도 싫고.”

“아! 그래도 너무 부담돼서, 사실 100만 코인도 헐값이잖아요. 꼭 받아주세요.”

“음···.”

그래, 무작정 부담을 지어주는 것보다 거래하는 것이 훨씬 더 좋다.

그러면 관계도 더 오래 지속될 테고.

“그럼 주세요. 단 지금 말고 접속 제한 풀리면,”

“아! 네!”

“이틀 후면 풀리죠? 그때 만나요. 마키나 공화국 수도 뉴팩토리에 갈 예정이거든요.”

“마키나 공화국, 뉴팩토리.”

“그럼 이만, 이틀 후에 봅시다.”

스슷!

휘릿!

얼굴로 확 불어오는 바람.

딸기는 깜짝 놀라 눈을 번쩍 떴다.

‘가셨구나.’

횅한 병실.

아무도 없다.

자신의 침상 위에 고이 올려진 붉은빛 약병 하나를 제외하고는.

“어머?”

이건 뭘까?

생긴 모습이 꼭···,

“···치, 치유 물약?”

정말 그거?

또 주신 건가?

“세상에!”

똑같다.

게임에서 본 모습 그대로, 치유 물약이 확실했다.

“아···.”

하급인지 중급인지 확실치 않지만,

“아니, 이 귀한 걸 왜 자꾸만···.”

딸기는 침상 위에 남겨진 치유 물약을 집었다.

병은 차갑지만 따뜻한 온기가 느껴진다.

이번이 두 번째지만 실체를 본 건 처음.

‘마시기 아까운데.’

하지만 먹어야지.

건강해져서 반드시 은혜를 갚아야지.

‘엄마한테 진짜 건물 하나 팔아달라고 할까?’

※ ※ ※

늦은 밤이지만 사안이 사안인지라 관련자들이 APS 본부에 모두 모였다.

최기병은 물론, 청와대 비서실장, 국정원장, 군사안보지원사령부 사령관까지.

좀 전에 벌어졌던 사안에 대해 자세히 브리핑하는 최기병.

신여은을 만나러 가서 지하 주차장에서 습격을 당했던 것부터, 박달환을 누가 죽였는지, 케이라는 의문의 남자가 얼마나 강한지, 그리고 게임 안에서 접촉하기로 한 약속까지.

최기병은 강하게 주장했다.

지금 당장 그를 국가의 품으로 끌어들이거나, 이익을 취하는 건 시기상조다. 친밀감을 줘서 신뢰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

그런데 회의장 안에 감도는 묘한 분위기, 서로 머리를 맞대며 수군대는 청와대 비서실장, 국정원장, 군사안보지원사령부 사령관.

브리핑은 잘 마쳤다.

자신이 전달하려 했던 내용도 다 이해한 것 같고, 하지만 어째 반응이 뜨뜻미지근하다.

최기병은 신경 쓰지 않고 계속 말을 이어갔다.

“하급 치유 물약을 구하려면 최소 500억 이상의 현금이 필요합니다. 빨리 예산을 배정해주십시오. 당장 거래소에서 코인을 사들여서···.”

“최기병 팀장!”

“네!”

“어떻게 생각하나? 500억 들이면 그자를 영입할 수 있나?”

“그, 그건···,”

청와대 비서실장 도동훈이 최기병을 가만히 쳐다보며 말했다.

“결국 아무런 성과도 없단 말이군. 그저 그 아바타가 한국인이라는 사실만 알아낸 정도고.”

“그것도 큰 성과입니다.”

“하!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성과라고? 실제 신분도 모르고, 데리고 간 우리 각성 플레이어를 웃음거리로 만들고, 게다가 협박까지 당하고.”

“겨, 겨우 시작일 뿐입니다. 조만간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거라 확신합니다.”

“어떻게? 자신을 숨기겠다면 무슨 수로 그를 찾지? 우리가 코인 계좌를 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점점 더 압박해오는 비서실장.

“왜 이 지경까지 왔는지, 그것부터 생각했어야지.”

“···네?”

“그 정도 힘을 가진 플레이어를 여태까지 감지조차 못했다? 대체 각성 플레이어 전담반의 존재 이유가 뭔가?”

“···.”

최기병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잘못한 건 틀림없으니까.

전담반의 일이야 명확하다.

혹시 있을지 모르는 각성 플레이어를 찾아 통제할 수 있도록 국가소속으로 끌어오는 것.

“박달환 사건도 그렇고, [케이]라는 놈을 대처하는 방식도 그렇고.”

“···.”

“이미 자네에게 충분한 기회를 준 것 같은데, 그러나 얻어낸 건 아무것도 없어.”

“면목 없습니다.”

“하긴, 어렵다는 건 나도 알지. 그러나 국가 기관이 이런 창피를 당했다는 부분은 책임져야 하고.”

모두 다 맞는 말, 그래서 변명의 여지가 없다.

“쯧, 그래도 이번 이벤트에서 두 명의 각성 플레이어를 만들어 낸 공로도 있고, 그동안 열심히 해온 노력도 인정하고 있으니, 마지막으로 기회를 한 번 더 주지.”

“미,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단! 이번엔 나와 국정원장이 함께 가겠네.”

“···네?”

깜짝 놀라는 최기병.

“저 혼자 나가기로 한 거라···.”

“자네 말대로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라면 이쪽도 성의를 보여야지. 안 그런가?”

“하, 하지만.”

“이미 결정한 사안일세. 너무 걱정하지 말게. 우리가 바보인가? 우리도 누구보다 성공하길 원하고 있어.”

맞다.

비서실장과 국정원장 자리에까지 올라온 사람들인데 당연히 바보는 아니겠지.

제발 일이 순조롭게 성사되길 빌 수밖에.

※ ※ ※

로그드라실 웨이브 방어전이 남긴 후폭풍은 진(眞), 리얼(real) 아이템의 공식화뿐만이 아니었다.

각성 플레이어, 한국에서만 2명이 출현했다.

그런데 과연 2명뿐이었을까?

팔성파는 부산에서 가장 큰 폭력 조직.

올해 20살의 백상억은 팔성파에 소속되어 있긴 하지만 온갖 뒤치다꺼리를 다 해야 하는 최하부 조직원이다.

백상억은 로그드라실 이벤트가 끝났음에도 집에서 두문불출 나오지 않았다.

‘끄응,’

손으로 자신의 온몸을 벅벅 긁어대는 백상억.

온몸이 미칠 듯이 가렵다.

‘제기랄,’

벌써 금단현상인가?

백상억은 주머니에서 동전 몇 개를 꺼내 손으로 잘그락, 잘그락, 만지작거렸다.

오백원짜리 동전.

손가락 두 개로 꾸깃꾸깃 접어버리고,

백 원짜리 동전,

돌돌 말아서 동그랗게 뭉치고,

그래도 가려움증은 해소되지 않는다.

그런 그의 눈에 운동을 위해 사놓은 5kg 덤벨이 들어왔다.

덤벨을 들고 양쪽에서 힘을 주니.

까드득! 원래 형체도 알 수 없을 정도로 으깨지는 덤벨.

하지만 아직 배가 고프다.

힘을 쓰고 싶다.

전신에서 꿈틀꿈틀 올라오는 강대한 힘을 마음껏 펼치고 싶다.

‘부족해.’

백상억은 자신이 왜 이런 힘을 가지게 되었는지 잘 알고 있다.

동화율 141%의 용병 플레이어로 참가한 로그드라실 웨이브 방어전 이벤트.

그 현장에서 자신은 선택받았다.

위대한 드래곤 레지키쓰론에 의해.

그분이 자신에게 쏴주신 브레쓰, 맞자마자 새로운 세상을 경험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관통해오는 기막힌 쾌감, 마약과 섹스는 비교도 못 할 정도로 극한의 희열, 그 대가로 당한 아바타의 죽음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한번 죽었지만 그 기분을 다시 한번 느끼고 싶었다. 그래서 두 번째는 스스로 가서 맞았다.

그리고 접속종료, 현실에서 백상억은 자신의 포스를 각성했다는 걸 깨달았다.

‘아아아,’

백상억은 그 당시를 떠올리기만 해도 온몸이 쩌릿쩌릿했다. 동시에 그분께서 주신 힘도 꿈틀댄다.

당장이라도 게임에 접속해 그분을 만나고 싶지만 3일 동안의 접속 제한이 안타깝기만 하고.

백상억은 본능적으로 느꼈다.

‘난 외롭지 않아.’

지고하신 용 레지키쓰론께서 힘을 부여한 사람이 설마 자신뿐일까?

느껴진다.

전 세계 곳곳에서.

자신 말고도 용에 의해 선택받은 사람들이.

‘참아야 해.’

아직은 때가 아니다.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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