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아바타의 재능으로 동화율 돌파-34화 (34/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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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냐 넌?

특전사 출신 각성 플레이어 우현수는 잔뜩 고무되어 있었다. 각성한 지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벌써 세상을 다 가진 기분.

처음엔 황당했다.

국가의 부름을 받아 차출 배속된 곳이, 이름도 생소한 APS, 각성 플레이어 전담반.

이름이야 그렇다 치자.

그런데 하는 일이라고는 고작 종일 캡슐 안에서 게임만 하는 것.

답답했다.

특전사 출신의 고급 인력을 겨우 이딴 데 써먹어?

우현수는 후회했다.

자신이 바란 건 이런 게 아니었다.

게임을 해야 하는 이유도 웃겼다.

‘각성’

게임을 하다 보면 아바타의 능력이 현실로 나타나?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물론 상부에서 명령한 터라 복종은 했지만.

하지만 로그드라실 이벤트를 끝내고 현실로 돌아왔을 때 그에게 찾아온 각성의 순간, 그리고

포스!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했던 미지의 힘.

‘각성이 이런 거였다니.’

빨리 힘을 써보고 싶다.

최기병 팀장은 힘에 취하지 말라고 충고했지만···, 어때? 조금 취해보는 것도 괜찮지.

‘유섭이하고도 한번은 붙어봐야 하는데···,’

자신과 함께 각성한 해군 UDT 출신의 고유섭, 그와 만나자마자 손을 맞대고 싶은 충동이 머리를 들었다.

싸우고 싶다.

끓어오르는 투쟁심과 향상심.

하지만 넘지 말아야 할 선은 넘지 않는다.

‘난 박달환 따위와는 달라.’

각성은 국가가 부여한 힘, 게다가 자신은 군인, 국가와 국민을 다해 충성을 다하는 마음은 기본적으로 탑재하고 있다.

힘을 얻고 난 후, 이젠 시키지 않아도 캡슐 안에 먼저 들어갔다.

동화율과 반영률은 현실의 자신을 발전시킬 수 있는 단 하나의 수단이니까.

“우현수씨. 준비됐죠?”

“명령만 내리십시오. 전 언제나 준비되어 있습니다.”

“하하하, 든든합니다. 제 옆에 있어만 주세요.”

“위험합니까?”

“별로 어렵지 않은 임무입니다. 현재 만나려는 사람이 각성 의심 대상자이긴 하지만···.”

“그럼 위험하군요.”

“괜찮아요. 긴장 풀어요.”

최기병은 혼자 가려고 했다.

20대 젊은 여자, 그것도 근위축성 측색경화증을 앓고 있는 장애인이지만, 정말 각성했다면 위험할 수 있으니까.

철커덕!

품에서 K5 권총을 꺼내 점검하는 우현수.

“총까지 가지고 가려고요?”

“비상용입니다. 또 준비는 지나칠수록 좋은 법이고요.”

“하하하, 맞습니다. 근데 설마 무슨 일이 일어나겠어요?”

맞다. 그냥 얼굴만 보러 가는 거다.

물론 최기병도 권총을 챙겼지만 말이다.

※ ※ ※

스르르륵,

찬웅은 이미 병원 안에 있었다.

이제 완벽하게 투명해진 은신막.

‘전보다 더 나아졌어.’

아무리 빛의 굴절 원리를 이용한다 하더라도 한계가 있을 텐데.

‘반영률도 올랐고, 마법도 작용했을 거야.’

하지만 격렬한 움직임은 절대 금물, 아지랑이 같은, 희끄무레한 형체로 눈에 확 띄니까, 살금살금, 조심조심, 스르륵.

사람들 많은 복도를 물 흐르듯이 지나가는 찬웅.

어느새 상큼한 딸기, 신여은이 입원하고 있는 VIP 병실 앞, 다 왔다.

게임상에서 처음 파티한 동료.

세계수가 살리라면서 친절하게 병명과 접속 장소까지 알려 준 그녀.

그리고 엘프 장로 에루인도 처음 보자마자 재능있다고 평한 플레이어.

‘기왕 살렸으니, 애프터서비스도 확실하게 해줘야지.’

찬웅은 주위에 사람이 없는지 확인하고, 문을 열고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 ※ ※

신선한 딸기, 딸기 아이스크림, 딸기잼, 딸기맛 우유.

신여은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 바로 딸기, 아바타 명을 괜히 상큼한 딸기라고 지었겠나! 딸기는 엄마가 먹여주는 딸기를 맛있게 먹으며 물었다.

“엄마, 퇴원 수속은 했지?”

“그래, 이것아! 괜찮을지 모르겠네. 조금 나아졌다고 바로 집으로 가는 거 좀···.”

“검사 다 했잖아. 의사도 집에서 요양해도 별문제 없다고 했고.”

“너 혹시 돈 때문에 그래? 걱정하지 마. 엄마도 부자야.”

“외갓집이 부자겠지.”

“그거나 이거나! 네 외할아버지에게 손녀가 필요하다고 건물 하나 팔라고 하면 당장 해줄걸?”

그때였다.

드르륵, 열리는 자동문,

누가 왔나 눈을 돌려 바라보는 여은의 엄마.

“아무도 없네? 고장이 났나? 저 문은 왜 지 마음대로 열리고 난리야. 사람 기분 나쁘게.”

다시 드르륵 닫힌다.

문에 시선을 고정하고 꼴깍, 마른침을 삼키는 신여은.

왔다!

“···어, 엄마?”

“왜?”

“나 혼자 있고 싶어.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해.”

“웬 때아닌 청승? 보호자가 환자를 두고 어디가?”

“그럼 1층 카페에서 딸기 라떼 하나만 사다 줘.”

“아빠 오실 때 사 오라고 할게.”

“아이 참!”

속 시원히 말할 수도 없고.

순간!

드르륵, 또 다시 열리는 문.

아쉽게도 진짜 누가 왔다.

흰색 가운을 입고 자동문을 통해 들어온 두 사람, 의사인가?

“누구···,”

궁금한 듯 물어오는 여은의 엄마.

의사 같은데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안녕하세요. 내일 퇴원하신다길래, 가시기 전에 몇 가지 여쭈어보려고···,”

“아! 그러세요? 그럼 이쪽으로 오세요.”

최기병과 우현수는 병원 원장의 협조를 받아 의사 가운을 입고 신여은이 입원하고 있는 병실로 왔다.

들어서자마자 방 안 분위기부터 살피는 최기병.

침상 옆 작은 탁자 위에 놓인 각종 딸기 식품들.

‘딸기라···.’

매우 공교롭다.

최기병은 환하게 웃으며 그녀에게 질문했다.

“퇴원하셔도 게임은 계속하실 거죠?”

“···그러면 안 되나요?”

“아뇨, 특별한 문제는 없습니다. 만족도 조사가 필요해서요.”

“네?”

“게임 접속 치료 만족도 조사입니다. 입원하신 동안 쭉 받아오셨는데, 괜찮으셨는지, 혹시 신체에 변화가 생겼다거나, 몸에서 후끈후끈한 열기가 막 나온다거나, 밤에 잠을 안 자도 피곤하지 않다거나···,”

“아뇨, 그런 증상은 없었어요.”

신여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최기병.

“그럼 이상한 물약이나 액체를 드신 적 있습니까?”

“···왜죠? 그리고 그게 만족도 조사와 관계가 있나요?”

신여은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 사람들 의사 맞아?

“하하하, 그럴 리가요. 다만 민간요법이다 뭐다 하면서 위험한 물질을 섭취하는 환자분들이 많아서···,”

“그런 적 없어요.”

“그러시구나, 참! 가상현실 안에서 직업이 뭔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알려 줄 의무라도 있나요?”

신여은은 싸늘하게 대답했다.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프래드 윌슨이라는 플레이어가 올린 동영상을 보지 못했다면 멍청이처럼 넙죽 대답했겠지만, 그걸 본 이상 그냥 흘려버릴 일이 아니다.

혹시 뭐라도 알고 왔나?

그런데,

“딸기를 좋아하시나 봐요? 저도 ‘상큼’해서 좋아하는데.”

“···.”

의심은 확신으로 굳어졌다.

최기병의 의심도 그랬고, 신여은의 의심도 그랬다.

“제가 피곤해서, 이만 나가주실래요?”

“네, 제가 귀찮게 해드렸네요. 그럼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잠시 숨을 고른 최기병은 신여은의 눈동자를 똑바로 보며 물었다.

“혹시 ‘케이’라는 플레이어를 아십니까?”

“몰라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어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망설이지 않고 단호하게 대답하는 신여은.

“잘 알겠습니다. 몸조리 잘하시고, 퇴원하셔도 게임 열심히 하세요. 전 이만.”

최기병과 우현수는 서로 마주 보며 고개를 끄덕인 후 밖으로 나갔다.

그들이 나가자 오만상 인상을 찡그리며 막말을 내뱉는 신여은.

“씨발!”

“어머? 여은아!”

“씨발, 씨발···, 엄마, 나 어땠어?”

“뭐가?”

“목소리 떨리거나 그러지 않았지?”

“아니, 난 못 느꼈는데, 근데 왜 그래? 갑자기 안 하던 욕도 하고.”

“저 새끼들 의사 아니야.”

“응? 의사가 아니라고? 그럼 누군데?”

누군지는 모르지만 확실하다.

의사는 분명 아니다.

※ ※ ※

최기병은 문을 나서자마자 우현수에게 물었다.

“어떻게 생각합니까?”

“글쎄요, 각성 플레이어는 확실히 아닌 것 같습니다. 보통 각성 플레이어와 마주하면 묘한 투쟁심 같은 것이 발동합니다만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요? 흐음,”

“우리가 잘못 알고 찾아온 것이···,”

“아닙니다. 잘 찾아온 거 맞습니다.”

최기병은 확신했다.

비록 각성 플레이어 여부는 판단할 수 없지만 신여은은 상큼한 딸기가 확실하다.

또한 케이의 존재도 안다.

그것도 매우 친한 사이, 케이를 아냐고 물었을 때 거의 반사적으로 나왔던 경계심.

‘너무 서툴러.’

아마 신여은의 병을 고쳐준 사람도 케이일 터.

자, 그럼 근본적인 질문 하나.

대체 케이가 누구지? 누구길래 남들은 구경도 하지 못한 진 아이템으로 사람들을 치료하고 다니는 걸까?

“신여은씨에게 사람을 붙여야겠어요.”

“제가 하겠습니다.”

“아뇨, 이런 일엔 전문가가 따로 있으니까, 먼지까지 탈탈 털어봐야죠. 신여은 주변 인물도 포함해서.”

맞다.

남과 싸우는 건 자신 있지만 정보 캐는 일엔 소질이 없기도 하고,

그런데 우현수도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최팀장님.”

“네.”

“혹시 병실 안에서 이상한 기분이 들지 않았습니까?”

우현수의 말에 잠시 멈춰서서 반문하는 최기병.

“이상하다면···, 어떤 부분이? 혹시 신여은씨가?”

“아뇨, 그 방 자체에서요. ···위화감 같은 거? 마치 절 누군가가 관찰하는 듯한 느낌? 어쨌든 뒤통수가 근질근질했습니다. 어···, 솔직히 지금도 그렇구요.”

“지금도요? 흐음, 각성해서 감각이 예민해진 건 아닐까요?”

“그럴지도 모르죠.”

뒤통수가 근질한 건 정확했다.

찬웅이 은신막을 유지한 채 그들 둘을 따라가고 있었으니까.

처음엔 하급 치유 물약이나 건네줄까 해서 신여은의 병실에 왔다.

기다렸다 둘만 남으면 슬쩍 찔러주고 나오려 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났다.

‘국정원? 아니면 각성 플레이어 전담반? 둘 중 하나겠지.’

여하튼 기가 막힌 놈들이다.

신여은에게 상큼한 딸기가 아닌지 간접적으로 물었고, 케이를 본 적 있냐고 직접적으로 물었다.

대체 어떻게?

플레이어의 개인 정보가 털렸나?

아닐 것이다.

그랬으면 자신의 집으로 직접 쳐들어왔겠지.

‘어쨌든, 귀찮아지겠네.’

사람을 붙이겠단다.

딸기의 가족까지 털 기세.

물론 자신의 존재는 절대 알 리 없겠지만, 딸기가 마음에 걸린다. 자신을 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험한 꼴을 당할 가능성이 있다.

찬웅은 계속 그들 뒤를 쫓았다.

어떡해야 하나.

저들은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

‘···원하는 걸 들어줄까?’

맞다.

자신이 누군지 궁금하다면 보여주면 된다.

어느새, 지하 주차장으로 이동하는 두 사람.

그들을 몰래 따라온 찬웅.

현재는 은신막 발현 상태, 은신이 풀린다 해도 후드티와 마스크를 쓰고 있어 얼굴이 밝혀질 위험은 없고.

좋다.

만나자.

※ ※ ※

우현수는 아무래도 기분이 이상했다.

최기병 팀장과 함께 지하 주차장을 내려오면서도 그 찜찜함은 가시지 않았다.

왜지?

왜 기분이 아직 불안하지?

심상치 않다.

정수리가 시릴 정도로 쎄하다.

뭔가 있다.

바로 여기!

우뚝,

그 자리에서 멈춰서는 우현수,

그리고 품에서 K5 권총을 꺼내 들었다.

“현수씨? 왜 총을···,”

“쉿!”

검지를 세워 입술에 붙이는 우현수.

여기에, 무언가 가까이 있는 건 확실한데 대체 어디에?

치칫, 치지칫.

지하 주차장 형광등이 나갔는지 소리를 내며 깜빡거린다.

주차장엔 들어오는 차도, 나가는 차도 없었다.

치칫, 치지칫.

그저 형광등 점멸하는 소리만.

우현수는 권총을 앞으로 겨누고 몸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기척을 탐색했다.

포스를 각성한 후 감각은 조금 예민해졌고 반사신경 또한 날카로워졌다.

하지만 총은 보조 무기, 진짜는 바로 자신의 힘, 포스!

우현수의 전신에 각성으로 얻은 포스의 힘이 꿈틀거렸다.

자신감이 생긴다.

누구든 나타나기만 하면···,

바로 그때!

스팟!

“헉!”

어두운 지하 주차장에 번뜩이는 빛.

팟! 팟!

서걱!

우현수가 들고 있던 권총의 총신이 반으로 싹둑 잘려져 바닥으로 떨어졌다.

탱그랑!

“···이, 이런.”

퍼억!

“큭!”

우현수의 턱에 명중한 주먹.

검정옷에, 후드를 뒤집어쓰고, 마스크까지 착용한 의문의 남자, 어디서 나타났는지도 모르게, 마치 귀신처럼 나타났다.

털썩.

앞으로 고꾸라지듯 쓰러지는 우현수.

순식간에 벌어진 광경에 그저 우뚝 선 채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최기병.

‘어, 어떻게···,’

무슨 일이 벌어진 건가?

갑자기 어둠 속에서 한 남자가 나타났다.

동시에 우현수가 들고 있던 권총이 싹둑 잘렸다.

다시 번쩍하더니 어느새 우현수의 정면, 가벼운 주먹질로 그의 턱을 퍽하고 가격, 그리고 기절.

거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1초.

‘···각성 플레이어?’

소름이 돋는다.

조용한 지하 주차장,

치짓, 치짓,

꺼졌다 켜졌다, 반복하는 형광등 아래,

그 남자가 자그마한 도끼를 손에 쥔 채 자신을 가만히 노려보고 있었다.

꿀꺽,

최기병은 손을 품속으로 슬금슬금 넣었다.

별 소용도 없을 테지만 최소한 몸부림은 쳐봐야지.

천천히 뒷걸음질 치면서 권총 손잡이를 잡고, 방아쇠에 손가락을 건 후,

순간!

츠리리릿!

콰악!

‘···?’

눈 깜짝할 새 최기병의 귓가를 스치고 날아가는 섬뜩한 무언가, 지나가고 난 뒤 느껴지는 후폭풍, 그 여파에 머리카락이 하늘로 올라갔다 내려왔다.

최기병은 천천히 곁눈질로 돌아보았다.

‘마, 맙소사!’

주차장 기둥에 깊숙하게 박혀버린 도끼.

너무 놀라 주저앉아 버릴 뻔했지만···, 후들거리는 다리를 꾹 참고, 떨리는 입술을 간신히 뗐다.

“···누, 누구냐?”

“걱정 마. 죽이진 않을 테니까.”

“그, 그러니까 누구냐고?”

“케이, 당신들이 찾던 케이.”

“뭐?”

그리고 곧바로 최기병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아아···.”

그의 표정엔 의문과 경악, 당황, 공포···, 매우 복합적인 감정이 담겨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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