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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폭풍(3)
게임 속에서 랜덤박스를 까고, 특정 접두사가 붙은 아이템을 획득하면 현실에서 상자로 받는다.
거기서 아이템을 꺼내, 효과까지 확인하는 일련의 과정, 모조리 실시간 생방으로 나왔다.
그러나 진(眞) 아이템의 존재에 대한 미국 정부의 공식적인 논평이나 움직임은 전무한 상황, 심지어 기성 언론도 언급을 자제했다.
SNS나 너튜브, 인터넷, 코인 거래소나 떠들썩하지.
당연하다.
만화, 영화, 소설에서나 나올법한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갑자기 현실에서 나타났는데, 이걸 어떻게 바로 인정을 하나?
하지만 시간문제.
멀지 않은 시기에 사람들이 일상처럼 받아들일 날이 온다.
대한민국, 서울.
APS 최기병 팀장이 모처에서 청와대 비서실장과 독대했다.
“우리 대응은? 말해보게. 어떻게 해야 하나?”
“이제 숨기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모두 사실입니다라고 할 수는 없고요.”
“후우, 각하께서 고민이 크시네. 뭐라도 말해주게.”
“이익을 위해 움직여야죠.”
“이익? 좀 더 자세히.”
최기병이 앞에 놓인 물잔으로 목을 축이며 이어 말했다.
“로렉탈 제약회사의 발모제 아시죠?”
“당연히 알지.”
“그 발모제의 레시피가 어디서 나왔을까요? 최고 경영자 마크 베일리도 소문난 헤비 플레이어입니다. 물론 완강하게 부인하겠지만 우린 그 발모제가 듀플렉스 스페이스 가상현실 게임에서 나온 걸로 확신하고 있습니다.”
아마 맞을 것이다.
뜬금없이 튀어나온 약이었으니까.
그전에 로렉탈에선 발모제를 개발 계획도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약을 떡 내놓더니 빠르게 임상실험을 거쳐 제품으로 만들어 냈다.
“발모제를 현실에서 개발 성공했다면 다른 아이템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그야···, 뭐, 그렇겠지.”
“네, 물론 확신하진 못하지만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허허, 기가 막히는군.”
“진(眞) 아이템의 종류는 다양합니다. 가상현실 안에 존재하는 모든 아이템이 현실로 나타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앞으로 기업이나 국가는 경쟁적으로 그것들을 확보하기 위해 움직일 거고요.”
누구라도 손에 넣고 싶을 터.
설령 재현 불가능하다 할지라도 존재 자체가 보물인데.
“또한 로그드라실 이벤트 보상, 획득확률 상승 때문에 랜덤 D박스에서 나온 진(眞) 아이템이 얼마나 많이 풀렸을지 상상도 못 하는 상황입니다.”
“우리도 하나 뽑긴 했지. 자원 재생이었나? 쯧, 치유나 활력, 체력 같은 거였다면 좋았을 텐데.”
살짝 질책하는 듯한 청와대 비서실장의 말.
‘씨발, 뽑기가 마음대로 되나?’
치유 물약은 가상현실 게임 안에서 매우 싸고 흔하며 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이지만 현실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어쩌면 가장 가치 있는 물건.
최기병은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씹어 삼키며 말했다.
“진(眞) 아이템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전략이 중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이템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보낼 필요가 있죠.”
“메시지?”
“가지고 있다고 겁내지 마라. 뺏지 않는다. 대신 국가가 좋은 조건에 아이템을 매입해 주겠다. 신분 보장까지 해주겠다.”
“흐음.”
비서실장이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정부가 나서서 확보해야 한다는 말이군. 국익을 위해 당연히 그렇게 해야지.”
“선제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미국은 이미 하고 있습니다.”
“응? 미국이? 근거는?”
“여길 보십시오.”
최기병은 태블릿을 꺼내 하나의 영상을 재생했다.
“···이놈, 그놈이지 않나? 프래드 윌슨.”
“맞습니다. 그리고 이 영상은 바로 1시간 전에 올라왔고요.”
영상은 별거 없었다.
새로 산 슈퍼카 소개, 고급 시계 언박싱, 늘씬한 2명의 여자와 수영장에서 샴페인을 마시고, 머니건으로 100달러짜리 지폐를 날려대고,
“놈이 방송에서 한 말이 있습니다. 특정 회사에 반지를 팔았다고요.”
“그걸 팔았어? 어디에?”
“네, 회사 이름은 퓨처월드, 페이퍼 컴퍼니로 급조된 회사이고, 국정원에서 추측하기론 배후에 미국 정부가 있다고 합니다.”
“이것이 미국의 메시지군.”
“그렇습니다.”
숨기지 말고 진(眞) 아이템을 좋은 가격에 팔라는 메시지.
“우리도 이런 식으로 진 아이템을 확보해야 한단 말이지?”
“먼저 미국처럼 적당한 회사를 골라서 민간 차원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진 아이템은 종류를 불문하고 무조건 사겠다고 하면서.”
“흐음, 그래, 국가는 개입하는 걸 숨기는 게 좋겠지. 그렇다면 조건은?”
“글쎄요. 하지만 미국이 먼저 했으니, 프래드 윌슨이 모범 사례가 될 겁니다. 아이템 가치의 기준이 생겨나는 거죠.”
얼굴을 찌푸리는 비서실장.
속내가 짐작이 간다.
최대한 싸게 후려치고 싶겠지.
“우리도 미국의 기준을 따라야 한다는 말인가? 그럴 필요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이템이 외부로 유출될지도 모릅니다. 조건이 더 좋은 쪽으로 움직일 게 뻔합니다.”
“그런 건 따로 법안을 만들어 규제하면 되지 않나? 진(眞) 아이템 국외 유출 금지 같은 거.”
“···글쎄요.”
“아무튼 한국에서 나온 진(眞) 아이템은 한국에서 쓰여야 하네. 그렇게 생각하면 법안 발의도 생각해봐야 하고.”
“···.”
답답한 생각이다.
법안을 만들어 규제한다고?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또 그게 가능할 거라 믿는 건 아니겠지?
결국 각하의 고민이라는 게 그거였나?
진(眞) 아이템을 가지고 싶은 욕망.
청와대 비서실장은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자네 뜻은 잘 알았네. 각하께 건의해보지.”
비서실장과의 독대가 끝났다.
오늘 나눈 대화는 청와대로 모조리 보고될 것이고.
예감이 별로 좋지 않다.
욕망에 눈이 먼 정치인들이 어떤 식으로 나라를 망치는지 역사책 몇 권만 봐도 금방 알 수 있으니까.
※ ※ ※
사실 진(眞) 아이템에 집착하는 권력자들과는 달리 최기병은 다른 부분에 더 신경이 쓰였다.
APS 본부 건물로 돌아온 최기병.
그의 걱정은 진(眞) 아이템이 아니다.
나오면 좋은 거고, 없으면 아쉬운 것뿐.
하지만 각성 플레이어는?
이번 로그드라실 이벤트의 보상 중 하나.
동화율 2배 상승.
분명 플레이어의 각성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이번 APS에서 육성한 플레이어 중 무려 2명이나 각성하지 않았나?
최기병은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아마 각성 플레이어들이 꽤 많이 나왔을 것이다.
대책을 세워야 한다.
평범한 인간에게 갑작스럽게 큰 힘이 주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그 힘에 취해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른다. 제2, 제3의 박달환이 출현할 수도 있다.
물론 2명의 각성 플레이어를 확보한 터라, 전처럼 무력하게 당하지는 않겠지만.
“나온 거 없지?”
“네, 아직까진···,”
그럴 리 없겠지만 이벤트 순위 발표처럼 각성 플레이어를 공식적으로 알려주면 얼마나 좋을까.
[이번에 각성한 플레이어의 이름은 ㅇㅇㅇ입니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어렵군, 정말 어려워.’
괜히 팀장직을 맡았나?
어쩔 수 없었다.
국가 공무원 중 이 가상현실 게임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바로 자신이었으니까.
“다만 특이한 사항이 두 가지 있어서,”
“보고해봐.”
“이번 중국의 로그드라실 이벤트가 대실패였다는 건 아시고 계시죠?”
“그래, 국정원에서 알려주더군.”
중국의 목적은 성황의 축복, 그리고 작위 획득으로 가상현실에서 영지 확보, 그것들이 모두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순위 입성뿐만 아니라, 최종 방어전까지 살아남아서 랜덤 D박스를 까려고 1억 코인까지 준비했지만 그것도 실패했답니다.”
“잘됐네. 축하라도 해줘야 하나?”
“쌤통이죠. 그런데 그 실패의 원흉으로 지목된 플레이어가 한 명 있어서.”
이건 또 무슨 말?
“누군데?”
“아바타 명 [케이]라고,”
“케이? 어디서 많이 들어봤···, 아! 그 케이 말이지? 정규광 회장이 찾던.”
“네, 맞습니다.”
케이라는 이름은 꽤 흔한 아바타 이름이니.
“그놈이 그놈일까?”
“하나 더 이상한 부분이 있습니다.”
“뭐 또 있어?”
“어제 팀장님이 상큼한 딸기를 조사해보라고 하신 적이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검색어를 넣고 키워드 탐색 프로그램을 돌렸는데···, 여기 이걸.”
“또 너튜브야?”
어쩔 수 없다.
자유롭게 영상을 올릴 수 있기에, 가장 많은 정보가 있는 곳이 바로 여기.
“이 채널의 주요 컨텐츠가 용병 플레이어 전투 장면 소개입니다. 그런데 이번 건 누군가를 저격하는 영상이더군요.”
“그래서?”
“한번 들어보십시오. 뭐라고 말하는지.”
죄다 욕이다.
누군가에게 심하게 당한 모양.
초상권과 PK, 어쩌고저쩌고, 차분하게 양해를 구했는데 다짜고짜 죽이더라, 그것도 두 번 죽이더라.
그런데 욕을 하는 대상이···,
“상큼한 딸기와 케이? 또 케이?”
“네, 공적 순위 10위의 상큼한 딸기와 앞서 이야기 했던 그 케이입니다. 웨이브 방어전에서 두 명이 같은 파티원이었나 봅니다.”
“이게 무슨···.”
상큼한 딸기와 케이가 함께 언급이 되었다고?
아바타 케이.
중국, 정규광, 딸기, 희한하게 안 엮이는 데가 없다.
우연이 겹치면 필연이라던데.
“케이, 아직 감시 대상에 올라있지?”
“확인해보겠습니다.”
“주요 접촉 대상으로 올려둬. 필요하다면 인원 충당해서 샅샅이 뒤져.”
“네.”
“또 다른 건?”
APS 요원이 들고 온 서류철을 최기병에게 건냈다.
“직접 확인해보십시오.”
“흐음, 여자네? 이름은 신여은, 아버지는 변호사에, 루게릭병을 앓고 있고,”
서류를 읽다가 갑자기 눈이 휘둥그레진 최기병.
“나았다고? 병이?”
“네, 거의 말기 수준이었는데, 갑자기 호전되었습니다.”
불치병을 앓다가 기적적으로 회복된 사람들, 그들에 대한 조사도 APS 업무에 포함된 사안이다. 정규광 회장도 그랬고.
“아시다시피 루게릭병은···,”
“불치병이지. 늦출 수 있지만 호전되는 건 불가능하고,”
“네, 시기도 로그드라실 웨이브 방어전 때였습니다.”
“···각성 아니면 치유 물약이겠군.”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포스 각성이 병을 치유해 주진 못하지만 외적인 도움은 주는 걸로 알고 있다. 없던 힘이 생겨나니까.
특히 근육과 관계있는 루게릭병이 호전되었다면 포스 각성일 가능성이 다분하다. 치유 물약이라면 운이 좋았나 하며 넘어갈 일이지만, 각성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사람을 보낼까요?”
“아니, 내가 직접 알아보지. 우현수 상사 호출해줘.”
“지금 가시게요?”
“미룰 필요 있나?”
자신이 가야 한다.
조금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안 엮이는 곳이 없다라,’
정규광 회장 케이스도 그렇고, 신여은도 케이와 연관이 있다면?
슬쩍 떠볼 필요가 있다. 케이에 대해 아는지.
물어본다고 손해 볼 것도 없고.
최기병은 곧장 병원으로 가기로 했다.
병원장 협조를 받아 의사 신분으로 위장해 만나면 된다.
※ ※ ※
늦은 저녁, 찬웅은 안양천 둔치를 가볍게 뛰고 있었다.
물론 후드티에 마스크까지 완전 무장하고,
“후욱, 후욱.”
자고 일어났더니 몸이 달라졌다.
자기 전에 마셨던 상급 활력의 영약, 중급 체력의 영약, 하급 인식의 영약.
활력, 몸에선 생기가 넘쳐났고.
체력, 전신에서 근육이 불끈.
인식, 예민해진 감각, 특히 시각과 후각, 청각.
더 건강해지고, 더 잘 보이고, 더 잘 맡고, 더 잘 들린다.
이러니 가만있을 수가 있나.
당장 밖으로 나가 몸을 움직였다.
‘확실해. 다 나았어.’
이젠 포스를 사용하지 않아도 걸을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전동 휠체어는 필요하다.
들키면 곤란해진다.
하반신 마비의 장애인이 갑자기 걸어 다니면 누구라도 의심할 수밖에 없다.
‘계속 이렇게 숨기고 살아야 하나?,’
다 나았음에도 꼬박꼬박 장애 수당을 타 먹는 것도 양심에 찔리고.
뭐, 이 정도 리스크야 다시 걷게 된 것에 비해 새 발의 피지만.
‘그러고 보니 딸기씬 괜찮나 모르겠네.’
장애의 정도로 따지면 어쩌면 자신보다 더 위중했던 그녀였다.
치유 물약 하나로 완치되기는 힘들다.
딸기는 드래곤 한 방 먹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플레이어.
하지만 그 때문에 죽어버렸고, 장애를 가진 사람이 3일 동안 접속 못 한다고 생각해보라, 얼마나 힘이 들까?
또한 자신의 파티원이다.
믿음직한 동료 한 명쯤 옆에 두면 든든하기 그지없다.
‘하급 치유 물약 하나라도 쥐여줘야겠어.’
현재 찬웅의 인벤토리에 든 치유 물약은 총 15병, 하급 8개, 중급 5개, 상급이 2개.
어차피 상자 까다 보면 계속 나올 테니까.
찬웅은 그녀가 있는 병원으로 발길을 돌렸다.
동화율과 반영률 상승으로 더 높아진 포스, 스킬도 올랐고.
츠리릿!
노골적인 야행복에서 발현되는 은신막, 빛의 굴절의 효과가 더 좋아졌다. 막 뛰어다녀도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
‘바람길 산책.’
팟팟!
찬웅의 몸이 쭉쭉 뻗어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