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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폭풍(1)
신광식 변호사의 얼굴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조금 전에 만난 여은이 주치의의 말.
“기적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습니다. 비록 완치는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삶을 살아가는 데 문제가 없을 겁니다.”
“앞으로 10년 이상, ···사, 살수도 있는 거죠?”
“확답은 드릴 순 없지만 충분히 가능하리라 봅니다. 어쩌면 그 이상도···.”
“아! 가, 감사합니다.”
간절하게 희망하던 소원이 있었다.
제발 여은이, 10년만 더 살게 해달라고,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가면 안 된다. 부모가 먼저 가야지.
그런데 그 소원이 이뤄졌다.
카페에서 시원한 아이스아메리카노 한잔 뽑아온 신광식,
그건 그렇고 이놈은 언제 일어나?
목소리 좀 들어보려 했더만, 종일 게임만 하네.
병원 복도에서 방긋방긋 웃는 아내의 얼굴이 보인다.
하긴 얼마나 좋을까, 자신도 이렇게나 좋은데.
아내가 천진난만한 미소로 신광식에게 물었다.
“여보!”
“왜 그래?”
“여은이, 그년이 죽었대요.”
“어, 그래, 잘 됐···,”
신광식은 귀를 의심했다.
“뭐?”
주르륵.
벌린 입에서 흘러내리는 커피.
이게 무슨?
잘못 들었겠지.
“우, 우리 딸이 죽었다고?”
“아유, 샘통이지 뭐야, 잘 죽었어. 속이 다 후련하네.”
“···.”
아내가 미쳤을까, 내가 미쳤을까?
“요 앞에 가서 아이스크림 사 와. 베리베리 뭐 시긴가, 그거하고 사랑에 퐁당한 딸기도.”
“당신 미, 미쳤어?”
“미치긴 뭘 미쳐요? 그년이 입맛이 도나 봐. 달달한 딸기 아이스크림 먹고 싶다네.”
“그년이라니?”
“여은이 말이야.”
“···그, 그럼 죽은 사람은?”
“여은이.”
대체 무슨 영문인가.
“게임에서 괴물한테 죽어버렸대. 그래서 3일 동안 게임 못 할 거라나? 잘 됐지. 3일간은 우리 여은이하고 종일 이야기할 수 있겠다.”
“아!”
신광식은 순간 맥이 탁 풀려버렸다.
다행이지만 혼이 반쯤 나간 상태,
“···이이익, 망할 여편네가!”
“그렇지?”
“여은이 말고 당신! 처음부터 그렇게 이야기했어야지. 게임이라고!”
“으음, ···아! 미, 미안. 오해했구나.”
“시끄러워! 아이스크림은 당신이 사. 난 여은이 얼굴 좀 보게.”
거의 죽다 살았다.
푼수 같은 아내 때문에.
신광식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병실 문을 열었다.
“아빠? 언제 왔어?”
“여, 여은아!”
얼마나 듣고 싶었던 목소리였나?
두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한참 동안 대화를 나눈 후, 딸의 손을 꼭 잡으며,
“그래, 우리 딸, 뭐 불편한 거 없어?”
“으음, 나 퇴원할래. 집으로 가자.”
“그건 안 돼! 아직 낫지 않았잖아. 좋아졌으니 조금 더 있어.”
“병원 때문에 나은 거 아닌데? 아빠도 알잖아. 의사 치료라는 게 게임 접속뿐인걸. 비싼 돈 버리지 말고 집으로 가.”
신광식은 고민했다.
병원비가 너무 많이 드는 건 사실.
모아둔 돈도 거의 바닥이 났다.
“···그, 그럴까?”
“어, 나 산소호흡기도 필요 없어. 밥도 혼자서 먹을 수 있고.”
“알았어. 하지만 조건이 있어. 집에 있다 나빠지면 다시 입원하는 거다?”
“응.”
신여은은 아빠의 손을 꽉 잡았다.
어차피 3일 동안 할 일도 없는데, 집에나 가야지.
그나저나 케이는 드래곤에게 한 방 먹였을까?
분명히 먹였을 것이다.
한 대가 아니라 열 대, 백 대,
‘하아, 드레이크 새끼 때문에 그걸 못 봤어.’
지금쯤이면 이벤트 끝났을 텐데.
공적 순위도 나왔을 테고.
“아빠.”
“음?”
“스마트폰으로 내가 하는 게임 홈페이지에 좀 들어가 줘.”
“알았어. 듀플렉스 스페이스랬지?”
스마트폰으로 홈페이지에 접속하는 신광식.
“자, 들어갔다.”
“거기 로그드라실 이벤트 배너 떴지? 누르면 돼.”
페이지가 열렸다.
웨이브 방어전 성공, 보상, 공적 순위···,
“어머?”
“왜 그래, 우리 딸.”
“아, 아니···,”
신여은은 깜짝 놀랐다.
공적 순위 끄트머리에 있는 아바타 명, [상큼한 딸기]
‘내가 10위라고?’
잘 싸우긴 했지만 순위권은 아니다.
자신의 동화율은 겨우 137%, 그것도 많이 올라서 그 정도, 파티할 때도 케이를 보조하는 역할만 수행하던 정도였는데.
자신이 10위라면 케이는?
최소 3위안에 든다. 어쩌면 1위일 지도.
그래서 1위 순위를 확인했는데.
‘애널서커? 얘가 왜 1위야?’
없었다.
어디에도 케이의 이름이 없다.
‘왜지?’
대체 어떤 식으로 순위를 산정하길래.
잘못 봤나 싶어 자세히 봐도 10위, 밑에 보상도 써있다.
보상은···.
‘코인이네. 영이 몇 개야? 하나, 둘, 셋, 넷···,’
앞의 숫자 1, 뒤에 따라오는 영의 개수는 6개.
무려 100만 코인.
하지만,
‘이건 내 돈이 아니야.’
자신이 방어전에서 적합한 역할을 했다면 모를까.
여하튼 정말 알 수가 없다.
자신이 10위고, 정작 케이는 순위권에도 없다니.
‘상금은 싸부님에게 드려야겠다.’
※ ※ ※
잔치는 끝났다.
최기병은 만족했다.
기어코 성과를 만들어냈다.
막 발표된 1위부터 10위까지의 로그드라실 웨이브 방어전 공적 순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그들이 거의 각성 플레이어라는 걸.
세계 각국 정부가 비밀리에 육성하고 있는 각성자, 경험치 몰아주기로 얼마나 공을 들였는데 당연히 순위에 올렸겠지.
그 와중에 생소한 아바타도 있었다.
10위에 오른 [상큼한 딸기].
대체 누굴까?
9위까진 대충 알겠는데 상큼한 딸기라는 아바타는 처음 들어본다.
하지만 전 세계 각국 정부 기관에서 무조건 조사가 들어갈 터, 한국도 마찬가지, 공적 순위 10위는 절대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다.
어쨌든 각성 플레이어 전담반(Awaken Player Squad)는 축제 분위기, 사실 APS에서 육성한 플레이어 중에 공적 순위권에 든 아바타는 하나도 없었다.
공적 순위?
안 들어도 된다.
애초 목적은 순위 입성이 아니다.
“축하드립니다. 팀장님.”
“고생하셨어요.”
“고생은 무슨, 니들이 잘해준 덕분이지.”
짝짝짝짝!
APS 건물 지하 다닥다닥 붙어 있는 캡슐 접속실에서 연신 박수를 치는 팀원들, 최기병 팀장도 주먹을 불끈 쥐었다.
기어코 만들어 냈다.
‘통제 가능한’ 각성 플레이어를 말이다.
한 명이라면 이렇게 기쁘지 않을 것이다.
무려 2명.
그것도 공수 특전단 출신 1명에, 해군 UDT 특수부대 출신 1명, 처음부터 인간병기라고 불리었던 그들이다. 거기에 포스의 힘까지 합쳐진다면?
더구나 국가에 대한 충성도가 높은 군인 출신이라 싸패 살인마 박달환과는 전혀 다른 각성자.
믿음직하다.
아쉬운 것이 있다면 상자 오픈으로 진(眞) 아이템이 겨우 하나밖에 나오지 않았다는 것.
거의 100억 가까이 투자했는데···, 누가 다 쓸어갔나! 그나마 건진 것이 진(眞) 자원 재생의 물약.
권력자들의 관심은 각성 플레이어의 확보에 있지 않다,
오로지 진(眞) 아이템.
그런데 상자 수천 개를 까서 나온 것이 겨우 자원 재생의 물약이니,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다.
고작 100억 가지고 바라는 것도 많지.
‘후우, 진(眞) 아이템이 하나만 더 나와줬어도,’
금상첨화였을 텐데.
기왕이면 치유나 활력, 체력에 관계된 아이템 말이다.
그럼 권력자들도 만족했을 거고.
‘좀 쪼이겠군.’
어쩔 수 있나.
버텨봐야지.
※ ※ ※
로그드라실 웨이브 방어전 이벤트.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후폭풍이 지금 막 시작되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예정된 일이기도 하다.
원인은 이벤트 보상 중 하나인 랜덤 D박스 고급 아이템 획득확률 상승.
그러니까 찬웅이 [대국혼]의 뚝배기를 깰 무렵.
신여은이 아빠와 만나 대화를 나누던 때.
최기병이 팀원들과 이벤트 성공을 자축하고 있던 순간.
미국 LA,
동화율 145%의 전업 숙련 용병 플레이어 프래드 윌슨은 너튜브를 통해 개인 라이브 방송을 송출하고 있었다.
과장된 몸짓으로 어깨를 으쓱하는 프래드.
“홀리쉿! 망했어. 이 불쌍한 용병이 불쌍하지도 않아? 챗만 하지 말고 도네나 쏘라고!”
└ 망해도 우리보다 많이 버는 주제에.
└ 알았어. 근데 이게 다야? 상자 까는 영상 말고 다른 거 없어?
└ 사냥해서 돈 벌고, 방송해서 돈 벌고.
용병 플레이어가 돈을 잘 번다는 건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재능.
재능만 있다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반대로 재능이 없으면 고블린 한 마리 제대로 잡지 못하는 것이 용병 플레이어.
게임을 하면서 돈을 번다.
얼마나 축복받은 삶인가.
프래드는 사냥만 하는 게 아니라 틈틈이 영상도 찍어서 개인 방송도 하고 있다. 그렇게 한 달 열심히 돌리면 1만 달러 이상은 족히 번다.
그러나 이번 이벤트는 완전 망했다.
그놈의 랜덤 박스 때문에.
전반전이 끝나고 상자 까기, 후반전 오거한테 한번 죽고, 드레곤 1차 브레쓰에 두 번 죽었다.
프래드의 방송 컨텐츠는 거기까지.
그래도 누구보다 빠르게 이벤트 관련 방송을 선점하기 위해 접속을 종료하자마자, 라이브 방송을 시작했다.
“후우, 퍼킹! 내 2만 코인.”
└ 그러기에 사냥 영상이나 열심히 찍어 올리지, 그랬어.
└ 맞아. 랜덤 박스 까는 거 누가 본다고.
└ 맙소사! 말만 들었지, 정말 극악의 확률이군.
게임 안에서 상자 까는 영상을 녹화로 떠와 현실에서 방송하는 중.
“왜들 그리 부정적이야? 너희들 상자 까는 거 원했잖아? 쓸만한 아이템도 몇 개 나왔고.”
└ 아하! 제일 비싼 것이 레어 마법 보호 반지.
└ 상점에서 사지 그랬어. 1000 D코인 짜린데.
└ 오! 불쌍한 프레드.
“쯧, 못 보던 글자가 앞에 있어 좋은 건 줄 알았는데, 착각이었어.”
프레드가 뽑은 레어 반지는 앞에 리얼(real)이라는 글자가 붙은 아이템.
뭔가 있나 싶어 바로 착용해봤지만 곧 실망했다.
주문을 말하면 3서클 수준의 쉴드가 발동하는 옵션이 붙었는데, 쿨타임 12시간, 즉 하루에 두 번밖에 사용 못 하는 것, 그마저도 오거 주먹 한 방에 산산이 깨졌다.
이러니 레어 밖에 안 되지.
“친구들, 날 탓하지 말라고. 문제는 그 망할 이벤트야! 뭐? 획득확률 상승? 웃기고 있네.”
└ 나도 동의해. 겉만 번지르르한 사기 이벤트였지.
└ 워워, 프래드가 운이 없는 거고. 난 영웅 등급 탈것 뽑았는데?
“제기랄, 지금 날 놀리는 거?”
└ 헤이, 누굴 탓해? 영웅 등급 아이템 하나 뽑아보겠다고 수만 달러를 상자에 태운 게 멍청한 짓이지.
바로 그때!
딩동.
갑자기 울리는 초인종.
누구야?
“누가 왔나 봐. 잠시 나갔다 올게. 그동안 이 불쌍한 플레이어에게 기부 좀 해줘.”
└ 응, 없어.
└ 재미도 없는 영상 올리고 바라는 것도 많다.
프래드는 현관문을 빼꼼 열어봤다.
‘···아무도 없는데, 응?’
바닥에 뭔가가 놓여있었다.
자신의 이름이 적힌 작은 상자 하나.
‘택배? 내가 뭘 샀나?’
프래드는 상자를 가지고 들어와 다시 카메라 앞에 앉았다.
뭔가 생각났다는 듯 히죽 웃는 프래드.
“자자, 상자가 왔어. 여기 내 이름 보이지, 근데 난 물건을 사지 않았단 말이야.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겠고. 이거 까볼까? 뭐가 나올지? 언박싱 컨텐츠 간다!”
└ 오노, 프래드, 게임에서 상자만 까더니, 미쳐버린 거야?
└ 거기서 아이템 나오냐? 나오면 재미는 있겠다.
└ 미리 넣어두고 장난치는 거에 내 부랄 두 쪽 건다.
└ 웬만하면 열지 말라고, 이상한 게 들어있을 수 있잖아.
└ 그럼 그거대로 재미있겠지. 당장 해버려.
“시끄럽고, 열어볼게. ···응?”
└ 왓?
└ ···반지?
└ 맞지? 미리 넣어두고 장난친 거라니까.
└ 설마.
└ 저런 반지, 3D 프린터 하나만 있으면 만들 수 있는데?
은색의 반지.
겉면과 안쪽 면에 화려한 문양이 새겨진 굵고 투박한 링.
프래드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반지를 들고 요모조모 살펴보았다.
‘가만! 이거···.’
레어 등급, 마법 방어 반지.
요모조모 살펴봐도 똑같다.
└ 잠깐! 저거 아까 그 반지 아니야? 가챠 영상에서 뽑았던 아이템.
└ 거의 똑같은데?
└ 와! 언제 저걸 만들었어?
└ 한번 껴봐. 쉴드 터지면 도네 백 달러 간다.
└ 난 천 달러.
홀린 듯 마법 방어 반지를 껴보는 프래드.
모습은 완전 똑같다.
물론 그럴 일을 결코 없겠지만 옵션도 유효하게 발동한다면?
‘시동어가···,’
프래드는 작은 목소리로 외쳤다.
“쉴드!”
지이잉!
순식간에 프래드의 몸을 덮어오는 반투명의 막.
“어···,”
그리고 채팅창이 폭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