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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드라실 방어전(3)
쿵! 쿵! 쿵! 쿵!
봇물 터지듯 밀려오는 오거들.
“미, 미친!”
“오, 오거가 이렇게 많으면 사기지.”
“씨발, 너무하네. 갑자기 난이도가 수직으로 급상승해!”
오거는 중간보스급.
드레이크는 드래곤의 가디언 격이니, 오거가 로그드라실 침식지에서 만날 수 있는 가장 강한 몬스터라고 보면 된다.
현대 무기에 비유하자면 돌격 전차.
보병들의 따콩따콩 개인화기는 흠집도 낼 수 없는 강려크한 돌격 탱크 수백 대가 한꺼번에 전장으로 들이닥쳤다.
쿵쿵쿵쿵!
무서운 속도로 로그드라실 중앙을 향해 돌진하는 오거들.
“피, 피해!”
파바박! 파삭! 퍽! 퍽! 퍽! 퍽!
오거가 휘두르는 팔에 맞아, 어깨에 받쳐, 다리에 걷어차여, 마네킹처럼 휙휙 날아가는 용병들, 촘촘하게 짜인 방어진이 순식간에 와해 됐다.
“켁!”
“끄아악!”
“악!”
슷, 스슷, 스스슷!
사방이 가루다.
용병 아바타가 죽어서 사라지는 가루.
“어, 어떡하죠?”
딸기의 목소리가 떨린다.
이번만큼은 그녀의 공포가 이해된다.
“딸기씬 뒤로 빠져요.”
“아, 아닙니다. 열심히···.”
“역부족이니까 물러나요,”
딸기를 뒤로 하고 찬웅은 가장 앞에서 달려오는 오거에게 달려갔다.
스르륵, 미끄러지듯 밑으로 들어가, 팟! 순간 가속으로 오거 하체에 도달해, 도끼로 놈의 발목을 콱!
“크아아···.”
고통에 찬 괴성을 내뱉는 오거, 자신에게 상처를 입힌 적을 찾으려는 듯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찬웅은 이미 놈의 등 뒤에서,
팟!
등짝을 도끼로,
콱!
“크엑?”
콱! 콱! 콱!
양손을 번갈아 움직여 등가죽을 찍고 머리까지 등반하는 찬웅, 오거가 떼어내려 버둥거렸지만 이미 머리통이 사정거리에 들어왔다.
냄새 풀풀 풍기는 정수리에 한방.
콰지직!
소리가 좋다.
오거 두개골 빠개지는 소리 말이다.
콱콱콱콱!
앙증맞은 머리 따개.
아무리 생각해도 참 이름 잘 지었다.
쿵!
통나무처럼 앞으로 쓰러지는 놈.
하지만 겨우 한 마리.
전장엔 수백 마리의 오거들.
용병들이 짓밟혔다.
퍽퍽 터져나갔다.
세계수의 가호, 1회에 한 해 페널티 없는 부활,
그러면 뭘 하나? 다시 참전했지만 두 번 죽어 영영 이탈한 용병들도 많았고,
우르르르르,
용병들의 필사적인 저항에도 방어 전선은 속절없이 무너졌다.
딸기가 찬웅에게 달려와 말했다.
“이러다 세계수까지 밀리겠어요.”
“···그럼 나가린데.”
밀리면 방어전 패배.
공적도, 랜덤 박스 깔 기회도 사라진다.
그때였다.
[웨이브 방어전에 엘프들이 참전합니다.]
세계수가 몸을 떨었다.
우수수수수,
더더욱 강렬해지는 축복.
“망할 놈의 뚱땡이 새끼들,”
허공에 몸을 띄운 채 오연하게 지상을 바라보는 엘프 장로 에루인, 그녀의 손짓에 따라 희미하게 일렁이는 무언가.
‘정령?’
맞다.
정령이었다.
츠리리릿! 츠리릿!
정령이 쏟아내는 바람의 칼날이 로그드라실 웨이브 전장을 휩쓸었다.
하늘을 까마득하게 채워오는 엘프 레인저의 화살 공격도.
푸북! 푸푸푹! 푸푸푸푸푸푹!
정확하게 오거 무리의 몸에 명중했다.
“꾸에에엑!”
“크아아!”
용병들의 방어선이 무너지자마자 빠르게 참전한 엘프들.
에루인이 훨훨 날아와 찬웅에게 말했다.
“괜찮냐?”
“···끄떡없습니다.”
“좋아, 근데 얘는 누구야? 애인? 넌 하라는 사냥은 안 하고 어디서 연애질을···,”
딸기를 흘깃 보며 말하는 에루인.
“아아, 오해 마세요. 사부님, 제자, 아니 파티원입니다.”
“아무튼 난 반대.”
“네네, 존중합니다.”
“그래도 재능은 있네.”
딸기는 엘프와 스스럼없이 이야기하는 케이가 신기하기만 했다.
‘와! 엘프와 이야기했어.’
저 콧대가 자기 이마를 뚫을 만큼 건방진 종족이? 그것도 꽤 높아 보이는 엘프 같은데.
“그런데 맞싸워도 상관없겠습니까? 침식지 몬스터인데···,”
“세계수께서 보호해주시니 괜찮아. 가호의 권역을 벗어나면 큰일 나지만.”
“아하!”
“있다가 보자. 끝낼 때가 됐어.”
다시 하늘로 높이 치솟아 오르는 에루인.
전장 곳곳에서 엘프들이 가세하자 서서히 회복되는 방어 진형.
“우리도 가요!”
“네!”
엘프들의 지원으로 싸우기 조금 편해졌지만 용병들의 숫자가 많이 줄었다.
거의 3분의 1은 사라졌다.
찬웅은 철저하게 오거의 발목만을 공략했다.
기동성을 공략 제압하는 것, 탱커 잡는 방법도 비슷하다.
날아드는 화살을 등에 업고 조금씩 오거들을 밀어내는 용병들.
로그드라실 방어군이 승기를 잡았다.
입에서 단내가 나온다.
딸기도 지쳤는지 숨을 헐떡이며 찬웅의 뒤를 지켰다.
바로 그 순간!
“쿠오오오오오오오!”
펄럭펄럭,
하늘 저편에서 들리는 날갯짓 소리.
펄럭펄럭,
희뿌옇게 일어나는 흙먼지.
용병들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아!”
“세, 세상에!”
“미, 미친!”
수천 마리의 공중 군단.
새까만 비늘과 날카로운 발톱을 자랑하며 커다란 날개로 활강해오는 드레이크.
그리고.
“···드래곤?”
“보스가 왜 여기까지···,”
[침식지 보스 광룡 레지키쓰론이 로그드라실에 출현했습니다.]
어떻게 하늘에 떠 있을 수 있는지 의문을 자아내는 커다란 몸체, 녹색으로 빛나는 비늘, 지상을 주시하는 새빨간 눈.
로그드라실 이벤트의 마지막 단계, 침식지 보스 광룡 레지키쓰론이었다.
광룡의 목울대가 부풀어 오른다.
다급한 엘프 장로 에루인의 외침.
“모두 피해!!!”
로그드라실 방어군의 바로 머리 위에 브레쓰가 쏟아져 내렸다.
콰콰콰콰콰콰콰콰!
드래곤의 궁극기 브레쓰,
기교 따위는 필요 없는 압도적인 파괴력, 초록색 불꽃이 땅에 닿았다. 무서운 속도로 번져나가는 불길.
폭발력을 동반한 레드 드래곤의 브레쓰와는 달리 그린 드래곤의 불은 끈적이고 집요했다. 한번 붙으면 절대 꺼지지 않는다.
화르르르르륵!
찬웅은 공포에 질려 멍하니 서 있는 딸기의 손을 잡아챘다.
“왜 멍하니 서 있어요? 달려!”
“아, 알았어요. ”
그나마 브레쓰 범위의 가장자리에 서 있던 찬웅과 딸기, 죽어라 달려 가까스로 영향력에서 벗어났다.
화르르르르륵!
초록색의 불길이 전장 전체를 휩쓸었다.
심지어 매캐한 독 안개까지 펼쳐졌다.
몬스터고 용병이고 가리지 않았다.
사이좋게 활활 태웠다.
그나마 민첩한 엘프들의 피해는 적었지만.
이상한 건 세계수 쪽은 쳐다보지도 않는 것, 애초에 공격할 마음도 없는 듯 했다.
광룡의 공격은 오로지 용병 플레이어에게만 집중됐다.
왜?
웨이브 목적이 세계수 파괴 아니었나?
가공할 위력의 브레쓰.
부활을 시전한 자들도 있었고, 이미 한 번의 기회를 사용해 부활하지 못한 자들도 있었다. 거의 절반 이상 쓸려나간 용병들.
숨을 헐떡이며 딸기가 물었다.
“헉헉, 괘, 괜찮으세요?”
“···.”
“왜 말이 없으세요?”
“···.”
“다쳤어요? 왜 하늘을 보고···, 으아?”
딸기는 찬웅이 바라보고 있는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러더니.
“···이, 이, 이 개새끼야!”
냅다 욕을 질러대는 딸기.
그럴 수밖에 없었다.
또 목울대가 잔뜩 부풀어 오른 광룡, 놈의 입이 정확하게 이쪽을 향하고 있었다.
이건 피할 수 없다.
콰콰콰콰콰콰콰콰!
쏟아져 내리는 브레쓰.
끈적한 불길, 알싸한 독무의 내음.
“안 돼!”
딸기는 용감하게 두 팔을 벌려 찬웅의 앞을 막았다.
그런다고 막힐까?
후끈!
통각을 줄였다지만 영혼이 불타버릴 것 같은 고통.
‘으윽!’
[당신은 사망했습니다.]
‘죽었네.’
딸기도.
그러나 곧바로 발동한 세계수의 가호와 축복.
[현재 사망한 자리에서 페널티 없이 부활합니다.]
‘하아,’
부활하면 뭘 해?
브레쓰가 쏟아지면 또 죽을 건데.
저놈을 한 대라도 때리기 위해선 하늘로 올라가야 하지만 찬웅에겐 날개가 없다.
‘도끼를 확 던져버려?’
꽂히기나 할는지 모르겠다.
※ ※ ※
콰콰콰콰콰콰콰콰!
두 번째 브레쓰 작열로 거의 전멸해버린 용병 플레이어, 남은 이가 100명이나 될까?
엘프들도 예외는 아니었지만 그나마 빠르게 움직여 피해는 적었고,
하지만 엘프 장로, 에루인은 도망가지 않았다.
소환할 수 있는 모든 정령을 동원해 드래곤에 맞섰지만, 결국 정령들이 역소환되고 자신은 막대한 타격을 입었다.
“···으읏!”
입에서 흘러내리는 핏물.
그녀는 광룡을 노려보며 목이 터지라 외쳤다.
“레, 레지키쓰론!!! 제발, 제발 정신 차려라! 드래곤으로서 부끄럽지 않은가? 위대한 존재가 침식을 당하다니···.”
펄럭펄럭.
벌레 보듯 에루인을 내려보는 광룡 레지키쓰론.
에루인은 아직도 믿어지지 않았다.
고룡, 살아있는 생물 중에서 가장 강하고 현명한 존재인 드래곤, 그런데 침식을 당했다니.
“레지키쓰···,”
- 닥쳐라! 에루인.
“···뭐?”
- 여전히 멍청하구나. 아직도 내가 당했다고 생각하나?
“무슨?”
- 내 자유의지다. 스스로 선택한 일. 너희들과는 달리!
“거, 거짓말.”
- 정신을 차려야 하는 건 네년이다.
레지키쓰론은 거대한 세계수를 힐끗 일별하면서 조소했다.
- 세상의 실체를 알지도 못하는 주제에.
에루인은 광룡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정말 미쳐버렸구나.”
- 클클클, 그래 미쳤다고 해두지. 하긴 네년은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 터.
쓰읍!
숨을 들이켜며 다시 한번 브레쓰를 준비하는 레지키쓰론.
- 어차피 목적은 이뤘다만 확실하게 해 두는 것이 좋겠지.
“아, 안 돼!”
- 걱정 마라. 세계수는 건들지 않을 테니, 소멸시켜봐야 다시 만들어내면 그만인 것을, 내가 원하는 건 오로지 저 이방인들이다.
크게 입을 벌리는 레지키쓰론.
마지막 숨통을 끊어놓으려는 브레쓰였다.
※ ※ ※
페널티 없는 부활.
찬웅과 딸기는 죽은 자리에서 바로 부활했다.
“어, 음. 싸, 싸부님, 제가 겁먹어서 그런 건 아닌데요···, 저어 좋은 생각이 있는데,”
“무슨?”
“튀어요! 저건 아무리 해도 못 막아요.”
“···.”
그럴까?
딸기의 말도 틀린 건 아니다.
참혹했다.
그 많던 용병들과 몬스터들이 무참하게 쓸려나갔다.
“캬아악!”
그나마 남아있던 용병들도 하늘에서 하강해오는 드레이크의 공격에 무력하게 죽어 나갔고.
이 웨이브는 용병 백만이와도 못 막는다.
드래곤을 어떻게 죽여?
두말할 필요 없는 밸런스 붕괴.
“싸부님?”
“···쉿!”
“넵!”
찬웅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딸기가 싸부님이라는 말을 들으니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에루인은?’
엘프들이라고 브레쓰에 무사할 리 없다.
그런데 꽤 많이 살아남는 것 같다.
화살을 쏘며 드레이크의 공격에 저항하는 엘프들.
‘어디···, 아!’
다행이다.
저 멀리 드래곤과 마주하는 에루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자신은 죽어도 부활하지만 NPC는 아니다.
찬웅은 결심했다.
“딸기씨, 드래곤이 무서워요?”
“에? 저 도마뱀 새끼요? 전혀요. 3일간 접속 제한을 당하는 게 무섭지. 아니 죽도록 싫을 뿐이죠.”
“그런데 전 더 싫은 것이 있어요,”
“뭐에요?”
“무기력하게 당하기만 하는 거, 죽을 때 죽더라도 저 새끼, 한 대만 때립시다.”
“전 찬성!”
“그럼 이렇게 하죠.”
딸기에게 자신의 계획을 설명하는 찬웅.
반짝반짝 눈을 부릅뜨고 집중하며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딸기.
“이해했어요?”
“반드시 해낼게요. 한번 믿어보세요!”
“좋아요. 갑시다.”
“넵!”
딸기가 먼저 달려 나갔다.
그 뒤를 뒤따르는 찬웅.
캬악!
위에서 자신들을 노리고 발톱을 드러낸 채 밑으로 떨어지는 드레이크.
하지만 딸기는 피할 생각도 없었다.
그저 앞만 보고 달렸다.
딸기를 보호하는 것 찬웅의 몫.
‘비열한 습격!’
츠리릿!
연달아 쏘아지는 두 개의 쌍도끼.
“케엑!”
“크릭!”
비록 드레이크의 숨통을 끊지는 못했지만 지상 공격을 저지하기엔 충분했다.
어느새 목적지 가까이 당도한 딸기.
“지금!”
“네!”
딸기는 달리는 걸 멈추고 뒤로 돌았다.
팍!
한쪽 무릎을 뻗어 굽히며 나머지 뒷발로 땅을 지지해서 무게중심을 앞으로, 깍지 뀐 두 손은 디딜 발판을 만들었다.
딸기를 향해 맹렬하게 돌진해오는 찬웅, 아바타 케이.
동시에 기회다 싶었는지 공중에서 쇄도해오는 드레이크 한 마리.
쐐애액!
딸기는 하늘을 힐끗 보며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드레이크가 온다.
뱀눈깔 공중 몬스터가 송곳니를 번뜩이며 자신을 노린다.
피하고 싶지만 그럴 순 없다.
이건 정확한 타이밍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팍!
찬웅이 땅을 박차고 도약했다.
두 팔에다 자신의 모든 포스를 집중시킨 딸기, 다리에 모든 포스를 집중시킨 찬웅, 오른발로 딸기가 손으로 만들어낸 발판을 밟고,
“끄응!”
딸기는 있는 힘껏 찬웅의 발을 받쳐 올렸다.
“얍!!!”
푸슛!
마치 로켓처럼 하늘 높이높이 치솟아 오르는 찬웅.
그리고 어느새 지상에 내려온 드레이크가 무방비 상태의 딸기 머리를 냉큼 집어삼켰다.
까드득!
“···아씨!”
딸기, 사망, 2번째, 부활 불가.
그녀의 희생을 발판 삼아 찬웅은 계속 올라갔다.
얼마나 높이 올랐는지 발밑에 드래곤이 보인다.
‘됐어.’
그리고 바람을 느꼈다.
세차게 부는 바람.
바람길 산책.
팟! 팟! 팟! 팟···.
낙하하면서 순간 가속으로 드래곤 가까이로 접근하는 찬웅,
놈은 에루인과의 대화에 집중하는지 자신이 다가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놈의 목울대가 또 부풀어 오른다.
브레쓰다.
‘빨리···!’
팟! 팟! 팟!
드래곤의 시커먼 목구멍이 보인다.
그제야 자신을 발견한 광룡 레지키쓰론.
- ···넌?
아바타 케이의 허리가 활처럼 휘었다.
도끼를 든 손도 크게 뒤로 젖히며 마치 배드민턴 스매싱 자세로,
“플레이어다! 씨발 새끼야!”
제발!
한 대만 때리자.
콰악!
앙증맞은 머리 따개가 드래곤의 콧잔등에 틀어박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