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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드라실 방어전(1)
변호사 연봉은 천차만별이다.
수십억을 받는 사람도 있고, 사무실 월세 걱정을 해야 하는 사람도 있다.
신광식 변호사는 많이 버는 쪽에 속한다.
판사로 재직하다 개업을 해 전관예우로 한몫 땡긴 것도 있지만, 원체 법에 대한 지식이 해박해 판사 시절 걸어 다니는 판례집으로 불릴 정도였으니.
그래서 불치병에 걸린 딸을 그 비싼 대현 병원의 VIP 병실에 입원시키고, 의료적 지원을 받아 가상현실 캡슐 장치에 접속할 수 있게 했다.
비록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모아둔 돈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긴 하지만, 딸만 즐겁다면야.
오늘도 신광식 변호사는 재판을 위해 열심히 서면을 작성하고 있었는데, 전화 진동음이 울렸다.
위이잉,
“여보세요. 어, 당신이야?”
- 여보, 우, 우리 딸이,
“여은이? 여, 여은이가 어쨌다고?”
- 그, 그게 있잖아요. 우리 딸이 지금···,
“당장 갈게. 기다리고 있어.”
신광식은 전화를 끊고 건물 밖을 나서서 택시를 잡아타고 병원으로 갔다.
“대현 병원, 빠르게 가주세요.”
택시 안에서 다시 울리는 전화기 진동음.
‘받을까?’
하지만 받지 못했다.
아내가 울먹이며 전화를 한 이유가 뭐겠나!
몸이 쇠약해져 더는 게임에 접속할 수 없을 거란 말을 들은 것이 오늘 아침,
그렇다면?
택시 안에선 차마 들을 수 없다.
펑펑 우는 자신을 가족 아닌 다른 이들에게 보여주기 싫다.
‘여은아···.’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프다.
지금까지 씩씩하게 잘 버텨줬는데,
결국···.
택시에서 내린 신광식은 빠르게 뛰어 VIP병동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탔다.
벌써 눈물이 쏟아질 것 같다.
‘가여운 것.’
혹시 늦진 않았겠지.
딸의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하고 싶었다.
두 손을 꼭 잡아주며 천국에서 다시 만나자고 말해주고 싶었다.
VIP 병동 복도.
눈물을 흘리는 아내가 보인다.
벌써부터 다리가 후들거렸다.
“여보, 여, 여은이는?”
“왜 전화를 안 받아요? 몇 통이나 했는데, 게임 하기 전에 아빠 얼굴이나 보고 하라고, 그래서 빨리 오라고 하는 전화였어요.”
“그래, 아빠 얼굴 보고 가야지, 게임 하기 전에···, 게임···, 뭐?”
잘못 들었나?
“게, 게임? ···지금 우리 여은이 이야기하는 거 맞지?”
“망할 년, 말문이 트였는데 입에서 나오는 소리가 기껏 게임이야.”
“무슨···,”
가만!
“여은이가 지, 직접 말을 했다고?”
“글쎄, 걔가 있잖아요··· ···,”
이어지는 아내의 설명
신광식은 들으면서도 이게 꿈인가 했다.
갑자기 딸이 몰라보게 회복했다니, 심지어 산소호흡기를 떼고 말까지 한다니,
“지금 어디 있어?”
“···말했잖아요. 게임하고 있다고. 지 엄마 이렇게 울려놓고.”
“지금까지 기뻐서 운 거야?”
“그럼 눈물이 안 나오겠어요?”
아직도 어안이 벙벙한 신광식은 아내와 함께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보인다.
캡슐 안에서 환하게 미소 짓고 게임에 접속 중인 딸.
“아!”
얼굴만 봐도 알 것 같다.
안면 마비로 일그러졌던 얼굴 표정이 예전처럼 돌아왔다.
병에 걸리기 전 그 예뻤던 모습으로.
‘감사합니다. 하나님, 부처님, 감사합니다.’
신광식은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딸의 얼굴을 오래도록 지켜봤다.
게임만 하는 철부지 딸이라도 이렇게나 예쁘다.
※ ※ ※
딸기와 만난 찬웅.
다행히 그녀는 병원에서 있었던 일을 묻지 않았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전 정말 이벤트 참가 못 할 줄 알았어요. 좋은 자리 맡아야죠. 싸부님! 침식지로 가서···.”
“아뇨, 우린 안 움직여요.”
“왜요?”
“저길 봐요. 저 사람들도 여기서 준비를 하잖아요.”
“어, 정말이네?”
웨이브 이벤트는 처음이 아니다.
과거 1년 전에도 한번 한 적이 있었다.
거기서 경험한 학습 효과.
“웨이브의 첫 전투는 로그드라실 안에서부터 시작입니다. 최대한 유리한 위치로 적을 끌어들여 야금야금 밀어내면서 공략하는 거죠.”
“아하!”
“그러니까 우리도 여기서 준비합니다. 장비 점검하고, 소모품 모자란 거 없는지 확인하세요.”
“넵!”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
현재 시각 20시 59분 01초.
카운트다운 시작.
드디어 웨이브 임박.
서서히 고조되어 가는 로그드라실의 긴장감.
엘프 장로이자 실질적인 지도자인 에루인은 엘프 레인저들과 함께 로그드라실의 중심부에 있었다.
용병들이 막고 있지만 반드시 뚫리는 곳이 나온다.
거길 통해 침식지 몬스터 최정예들이 세계수가 있는 이곳으로 돌격해올 것이고.
엘프들도 즉시 전장에 투입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해야 한다.
세계수가 파괴되면 로그드라실에 내린 축복과 가호가 사라진다. 그렇게 되면 엘프 종족은 침식의 운명을 피할 수 없다. 광룡 레지키쓰론처럼 말이다.
걱정스러운 표정의 에루인.
“잘해 줄지 모르겠네.”
레인저 스마엘이 궁금한 듯 물어왔다.
“누구요? 용병들요?”
“아니, 내 제자.”
“아하, 케이씨,”
“뭐야? 너 왜 이방인하고 친한 척해?”
“그, 그게 이방인 치고는 인상이 좋아 보여서.”
“잘생겼다는 말을 그렇게 돌려서 말하나? 쯧쯧, 엘프가 줏대도 없이···, 내 제자에게 꼬리치지 마라.”
“장로님이 무슨 상관이세요?”
그때였다.
“쿠오오오오오오오!”
멀리, 산맥의 한 동굴에서 울려 퍼지는 살벌한 생물의 포효소리.
“하아, 씨발,”
“광룡?”
“그래, 미친 새끼, 오랜만에 들어보네.”
광룡, 레지키쓰론이 드래곤 피어로 로그드라실 웨이브 이벤트의 시작을 알렸다.
[로그드라실 침식지 웨이브가 시작되었습니다.]
[현 시간부로 용병 플레이어 이외의 직업군은 강제 귀환 됩니다.]
슈욱! 슈욱! 슈욱!
여기저기서 보이는 빛줄기들.
용병이 아닌 플레이어들이 사라지는 모습.
[세계수의 가호가 로그드라실 영역에 내립니다.]
광범위한 축복의 버프.
딸기는 깜짝 놀랐다.
“어머!”
“알겠죠?”
“이런 거였네요.”
[포스량이 +2000 대폭 증가합니다.]
[스킬 레벨이 +2 상승합니다. ]
[사망 시 1회에 한 해 페널티, 장비 손실 없이 즉시 부활이 가능해집니다.]
[웨이브가 끝날 때까지 로그드라실에서 귀환이 불가합니다.]
포스량과 스킬 레벨, 사망시 1회 즉시 부활, 그러나 로그드라실 안에서만 적용되지 침식지에선 적용이 안 된다.
그래서 첫 전투는 세계수의 보호를 받는 유리한 지형에서 싸우면서 놈들의 숫자를 줄이고 침식지로 진격하는 식.
그것뿐인가?
찬웅은 인벤토리에서 도끼를 꺼냈다.
[암살자 루인의 빛과 어둠.]
[세트 : 앙증맞은 머리 따개, 노골적인 야행복.]
[2세트 효과 : 포스량 증가 300]
원래 포스량 4400.
힘의 영약으로 증가된 포스 500.
암살자 루인의 빛과 어둠 2세트 효과 300.
세계수의 가호로 올라간 포스량이 무려 2000.
총 7200.
할만해졌다.
최고 공적은 바라지도 않는다.
코인과 경험치만 쭉쭉 빨아보자.
※ ※ ※
웨이브 시작.
공격자는 광룡 레지키쓰론과 침식지 몬스터, 방어자는 세계수 로그드라실과 엘프, 그리고 용병 플레이어.
공격은 모든 방향에서 이루어졌다.
로그드라실이 침식지 한복판에 있는 위치라 매우 불리한 상황, 하지만 세계수의 가호가 그 약점을 상쇄해주고 있었다.
처음은 간 보기.
경험치 몹에 불과한 코볼트와 고블린 떼가 먼저 침공했다.
콰쾅! 서걱! 츠리릿! 퍼퍼펑!
세계수 가호의 또 다른 효과, +2, 두 단계의 스킬 레벨 상승.
현란한 스킬 이팩트가 로그드라실에서 화려하게 펼쳐졌다.
코볼트가 터져나갔다.
고블린이 산산조각으로 찢겨 진다.
이놈들은 정찰병이다.
진짜 공격은 오크가 몰려오면서 시작될 것이다.
용병들의 전투 양상은 크게 4가지.
첫 번째, 동화율 경험치 획득을 위한 저렙들의 전투, 가급적 코볼크나 고블린 같은 하급 몬스터들을 상대로 소수만 데려야 골라 죽인다.
두 번째, 고레벨 용병들의 몰이사냥, 최대한 많이많이 모아서 스킬을 쏟아부어 사냥한다. 시원시원하고 경험치도 많이 주고.
세 번째, 몰아주기, 이게 좀 특이한데 만약 10명이 있다면 9명이 최소한의 행동으로 몬스터를 저지하면서 공격은 오직 한 명에게만 몰아준다.
1명을 위해서 9명이 희생하는 것.
꽤 많이 보이는 전투 모습.
왜 이렇게 하는지 아는 사람만 안다.
그리고 마지막 네 번째. 전투하지 않는 용병들.
용병들이라고 다 사냥만 하는 건 아니다.
재능이 없거나 도저히 몬스터를 상대할 용기가 없는 사람들은 그냥 용병이란 간판만 달고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럼 다른 직업으로 전직을 할 것이지 왜 용병 직업을 끝까지 잡고 있을까?
이런 플레이어들은 대부분 기자거나 개인 스트리머.
듀플렉스 스페이스 가상현실 게임은 그 인기만큼이나 일상에 깊숙이 들어온 하나의 문화현상이었다.
특히 용병들이 벌이는 전투씬 영상은 인기가 높다.
용병들에겐 자신보다 재능이 뛰어난 사람들의 전투 방식을 배울 수 있고, 용병이 아닌 사람에겐 대리 만족을 선사한다.
그러나 영상들이 거의 허락받지 않는 불법 컨텐츠라는 것, 물론 스트리머들은 불법이고 뭐고 신경 쓰지 않았다.
아바타 [데미안], 그리고 [댄로이드]도 직업은 용병이지만 하는 일은 개인 스트리머, 그래서 전투 현장 후방에서 매의 눈으로 용병들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있었다.
“대규모 이벤트라면서 뭐 이래? 쪼렙들 영상은 찍을 게 없네.”
“몰이사냥 찍으면 안 되나? 시원시원하잖아.”
“그건 너무 흔해. 스트리머들도 다 그쪽에 붙어 있고.”
“실패할 확률이 낮으니까. 에이, 그냥 우리도 몰이사냥 찍어.”
“안 돼! 이벤트가 자주 열리는 것도 아니고, 제대로 한몫 잡아야지.”
그런데 바로 그때!
[데미안]의 눈에 꽤 흥미로운 장면이 포착됐다.
“저, 저 사람들 좀 봐.”
“응? 어디···,”
[데미안]이 가리킨 방향으로 눈을 돌리는 [댄로이드].
남성 아바타 한 명과 여성 아바타 한 명,
“2인 파티네?”
“맞아. 근데 저 둘이 하는 연계 동작을 눈여겨보라고.”
“오!”
확실히 남다르다.
다른 용병 플레이어보다 차별화된 몸놀림.
아무리 코볼트와 고블린이 쉬운 몹이라 해도 저러기는 힘들다.
빠르고 부드러우며 민첩하고 강했다.
“케이와 상큼한 딸기?”
“제목과 썸네일도 바로 나왔네.”
“찍어?”
“물론이지, 뭘 고민해! 빨리 수정구 들고 따라와.”
밀물처럼 쏟아져 들어오는 수십만 마리의 고블린과 코볼트,
찬웅과 딸기는 비교적 느긋하게 대처해나갔다.
오크와 미노타우루스로 손발을 맞췄는데 이까짓 잡몹쯤이야.
“아이씨! 너무 쉽다.”
쉽다는 딸기의 말이 틀린 건 아니지만.
“네네, 방심하다 큰일 나죠?”
“···.”
순간!
“오크다!”
이곳저곳에서 외치는 소리.
딸기도 반갑게 외쳤다.
“아싸! 나왔다. 오크!”
난이도 상승.
전방을 가득 뒤덮은 초록색의 물결. 나무인지 풀인지, 혹은 오크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
“취이익!”
“크륵!”
“크엉!”
동화율 저렙 플레이어들이 순식간에 쓸려나갔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오크들의 뚝배기를 깨는 쌍도끼와 대검.
말 그대로 훨훨 날아다니는 딸기와 찬웅.
[데미안]과 [댄로이드]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가까이서 본 전투는 더 기가 막혔다.
“찌, 찍고 있지?”
“···미친!”
“터졌다! 무조건 터졌어.”
“저거 무슨 스킬이야? 슷! 팟! 콱! 하니까 오크 대가리가 없어지잖아.”
“나도 몰라. 저런 스킬은 들은 적도, 본적도 없고.”
“혹시 저 케이는 랭커?”
“무조건 랭커, 아마 150대 후반? 저쪽 혼자 날뛰는 놈 보이지?”
댄로이드가 저쪽에서 전투를 하는 용병 플레이어 한 명을 가리켰다.
“경험치 받아먹기 하는 놈?”
“그래, [중화영웅], 아바타 이름 보면 어느 나라 플레이어인지 알 거고, 꽤 유명해. 한 1년 전에 이미 150%를 넘었으니까. 근데 저 중화영웅하고 케이하고 비교해봐.”
“···상대가 안 되는구나.”
“그치?”
데미안은 확신했다.
케이라는 저 남자, 못해도 공적 순위 최소 10위권 안에 들 것이라고.
“백만 뷰 갈까?”
“최소 천만 뷰.”
“촬영에만 집중해. 오크들은 내가 어떻게 해볼게.”
저 둘의 전투 장면을 너튜브에 올리면? 광고가 와장창 붙을 것이다, 그것도 돈 되는 광고들만.
딸기와 찬웅은 누가 자신들을 찍는지도 모르고, 정신없이 오크만 후드려 팼다.
순간!
뭔가 이상한 걸 느꼈는지, 갑자기 전투를 멈추고 찬웅에게 속삭이는 딸기.
“싸부님.”
“왜요?”
“우리 찍는 사람들 있어요.”
“어디···, 아!”
스트리머들이다.
용병이지만 싸우지 않는 자들.
무기 대신 촬영용 수정구를 들고 전투가 벌어지는 곳을 찾아다닌다.
“흐음.”
“뭐야, 허락도 하지 않았는데.”
찍히기 싫다면 어떡하면 될까?
정중하게 가서 이야기하거나···.
딸기가 먼저 나섰다.
“제가 가서 이야기하고 올게요.”
“그러실래요?”
찬웅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지금은 주목받을 때가 아니다.
현실에서도, 가상에서도,
“갔다 올게요. 어딜 싸부님 영상을 함부로!”
“잘 대화해서 보내요.”
“네! 저 잘해요. 대화!”
딸기는 스트리머들이 있는 곳으로 깡충깡충 뛰어가 손짓, 발짓으로 대화를 나눴다.
‘잘하려나?’
그렇지 않아도 아픈 사람인데,
겨우 치유 물약 하나 먹었다고 완치될 리는 만무하고.
그래도 여긴 가상현실이니까.
바로 그 순간!
“어?”
딸기의 대검이 사선으로 그어졌다.
쨍그랑!
산산조각이 나서 깨어지는 촬영용 수정구.
‘무슨!’
서걱!
스트리머 아바타의 목이 허공으로 떠오른다.
서걱!
또 하나.
‘아···,’
전에도 했던 생각이지만 딸기는 몬스터와는 달리 플레이어와는 굉장히 잘 싸운다.
자비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