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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이는 것보단 살리는 게 좋다(3)
지이잉,
찬웅은 게임에서 접종하고 캡슐에서 몸을 일으켰다.
로그아웃하기 전 상태창을 확인해보니 [동화율 : 145%], 그리고 [반영률 : 32%].
동화율은 여러 가지를 나타내는 척도다.
아바타의 레벨, 아바타의 재능, 아바타의 파워, 거기에 플레이어가 아바타를 운용하는 능력, 플레이어와 아바타의 합일성 등등.
100%로 시작해서 이론상 200%까지, 그러나 160%에 도달한 플레이어도 몇 없다고 한다.
반영률은 일반 플레이어는 모르는, 각성 플레이어에게만 주어지는 스탯, 그래서 극히 일부만 알고 있는 수치.
이런 것이다, 하고 추측만 하고 있을 뿐 아직은 미지의 영역이고.
‘왜 반영률을 보상으로 주지?’
기존 시스템 메시지가 게임과 관련된 거라면, 세계수와의 교감에서 들리는 메시지는 현실과 관계된 듯하다.
귀신작두 박달환, 상큼한 딸기 신여은처럼.
‘···근위축성 측색경화증이라.’
남의 일 같지 않다.
딸기도 지병이 있었다. 그녀에게 가상현실 게임은 힘든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일종의 탈출구였고.
그녀가 접속하고 있는 장소, 대현 종합 병원 VIP 입원실.
병원에서 접속한다고? 병원이 무슨 게임방이야?
그런데 의외로 많다.
화정 그룹 정규광도 비슷한 케이스.
원래 몸이 아프면 게임 접속도 불가능하다.
치료가 먼저지, 게임이 먼저인가?
하지만 의학의 힘으로 치료가 불가능할 때, 남은 여생이라도 편하게 보내길 원할 때, 의사가 게임 접속이 가능하게 최소한의 처치를 해준다고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강제 접종이라면?
‘병원에서도 손쓰지 못할 만큼 위중한 상태라는 말인데.’
딸기가 아프다.
운영자, 세계수가 이걸 알려준 이유가 뭘까?
단순하게 생각해보면.
‘살리라는 거 아니면 뭐겠어.’
그것 말고는 답이 안 나온다.
하긴, 죽이는 것보다 살리는 게 더 좋다.
잠시 시간이 흐른 후,
딩동!
들리는 초인종 소리.
찬웅은 문을 열고 나가 제법 큰 배달 상자를 집안으로 가지고 왔다.
상자를 개봉해보니 먼저 아름다운 문양이 새겨진 철제 병 하나, 위에는 코르크 마개로 봉해져 있었고,
‘맥주?’
진(眞) 스톤포지 브루어리 밀맥주.
맥주도 맥주지만 그걸 담은 철제 병이 더 희한하다.
손가락이 시릴 듯 차가운 냉기, 이거 냉장고에 넣지 않아도 온도 유지가 된다.
당장이라도 한잔 따라 마시고 싶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고.
다음으로 진(眞) 자원 재생의 물약 두 병, 언제나 드는 생각이지만 게임 속 그것과 어떻게 이렇게 똑같은지, 이것도 보관.
다음은,
‘진(眞) 상급 힘의 영약, 이건 먹자.’
포스를 영구적으로 500이나 상승시켜주는 영약, 찬웅은 따개를 열어 꿀꺽꿀꺽 마셨다.
바로 효과가 오는 것 같다.
‘흠,’
내부에서 휘몰아치는 포스의 기운.
현실에도 포스 500이 그대로 적용되나?
다음으로 상자 안에 든 것은 진(眞) 상급 치유의 물약.
핵심은 이 물약이다.
‘판단은 내 자유랬지?’
찬웅은 병을 꼭 쥐었다.
하반신 마비가 다 치유된 상황에서 자신에겐 필요 없지만, 사실 오늘 배달온 물건 중 가중 가치가 있는 진(眞) 아이템.
말 그대로 치유.
외상, 내상 가리지 않고 모든 질병을 치유하는 보물 중의 보물.
만일을 위해 킵 해둘 것인가? 아니면 타인을 위해 쓸 것인가?
‘···가서 보고 결정하자.’
판단은 자신의 몫.
찬웅은 외출준비를 했다.
지금은 새벽 2시.
한국 시각으로 오늘 밤 로그드라실 이벤트가 시작되니 시간은 넉넉하다.
야행복을 입은 후, 그 위에 후드가 달린 티셔츠를 입고, 마스크도 끼고. 알 없는 안경도 썼다.
대현 병원까진 금방이었다.
병원 로비에서 VIP 입원실의 위치를 확인하고.
‘새벽이라 사람이 적어서 다행이네.’
야행복의 은신막 스킬,
빛의 굴절 현상.
언뜻 보면 마치 투명 인간.
빠르게 움직이면 티가 날 수도 있다. 그래서 아주 천천히, 조심스럽게, 사실 은신막이라는 것이 과학 기술의 원리와 비슷하다.
아주 예전 ’포식자‘라는 영화에도 나왔다.
행성을 침략해온 에일리언, 클로킹으로 자신의 몸을 투명하게 만들어 인간을 사냥하는 그런 이야기.
‘그러고 보니 마법이 아니라 과학 같아.’
고도로 발전한 과학은 마법과 같다는 말을 알고 있긴 했지만.
천천히 조심조심, 될 수 있으면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병원은 바쁘다.
자기 일만 하기도 시간이 모자라다.
그래서 찬웅은 조용하게 스며들 수 있었다.
※ ※ ※
대현 병원 VIP실.
쌕쌕, 산소호흡기를 착용하고 가쁜 숨을 몰아쉬는 신여은.
담당 의사가 진찰하더니 침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더 이상의 게임 진행은 불가능합니다. 전반적으로 너무 쇠약해진 상태라 캡슐이 받아주질 않아서···,”
“으흑,”
결국 울음을 터뜨리는 신여은의 엄마.
“우리 딸, 게임이 현실을 버티는 수단인데, 어떻게 접속할 방법은 없을까요?”
“현재로선 게임보다 안정이 더 중요합니다. 조금만 기다려 보세요. 저도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의사와 엄마가 나누는 대화를 똑똑하게 듣고 있는 신여은.
제발 어떻게든 게임만 해달라고 소리치고 싶지만 이미 성대가 굳어 말도 할 수 없다.
근위축성 측색경화증.
주로 60세 이상에 발생하는 경우가 많지만 드물게 20대에도 발병하는 불치병.
병에 걸리면 10년 안에 사망률이 90%다.
특히 자신의 경우에는 진행이 빨라 벌써 혀와 목도 딱딱하게 굳었다.
의식은 멀쩡해서 더 비참했다.
죽어가는 것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으니까.
그나마 가상현실 게임이 낙이었는데.
지금이라도 당장 접속하고 싶은데,
조금 있으면 이벤트 날인데.
밤늦은 시각, 의사도 나가고, 이젠 엄마와 자신 둘뿐.
자야 하는데 잠도 오지 않았다.
불면증이 있은 지 꽤 됐다.
‘이제 그만···.’
떠났으면 좋겠다.
···부모님 가슴은 찢어지겠지.
‘안 돼!’
하나뿐인 딸이 자신들보다 먼저 떠난다는 것이 얼마나 가혹할까.
그래서 이런 생각은 절대 하면 안 된다.
‘극뽁!’
사부님도 그렇게 이야기 했질 않나! 극복, 두려움을 이겨내고 끝까지 버틴다.
드르륵,
병실 문이 열리는 소리.
‘간호사?’
드르륵,
닫히는 문.
누가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것 같은데.
‘엄마?’
부모님들은 돌아가면서 자신의 병실을 지킨다.
이것도 못 할 짓이다.
그분들도 자신의 인생이 있는데.
드르륵,
또 문이 열렸다.
“수액 교체할 시간입니다.”
간호사였다.
어느새 엄마도 옆에 다가와 자신의 손을 꼭 잡는다.
이 늦은 시간에 잠이라도 좀 자두지.
“간호사님, 우리 딸 어때요.”
“···의사 선생님께 말씀 들으셨을 테지만, 이럴 때일수록 씩씩해지셔야 합니다. 어머니.”
“흐윽, 우리 딸이 무슨 죄가 있다고.”
“어머니가 무너지시면 여은양이 힘들어요. 간절히 바라면 우주가 도와준다는 말도 있잖아요. 근위축성 측색경화증에 걸린 환자 중에 10년 이상 생존하는 환자들도 많거든요.”
“네, 그렇게 되길 바라고 있어요. 기적이 왔으면 좋겠어요.”
신여은도 말하고 싶었다.
걱정하지 말라고, 반드시 이겨낼 거라고.
하지만 입에서 말이 나오지 않는다.
드르륵,
문이 열리고,
드르륵, 또 닫히고.
“씩씩한 우리 딸, 포기 안 할 거지? 엄마 아빠도 포기 안 할 거야.”
‘응, 안 할 거야.’
신여은의 엄마는 침상 옆에서 조근조근 이야기하다가 다시 병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하도 답답하신 모양인지 바람이라도 쐬러 나가는 가보다.
어두운 병실 안.
찬웅은 그런 딸기의 모습을 옆에서 조용히 지켜만 봤다.
병실 안엔 상큼한 딸기 신여은과 자신뿐.
‘역시 불치병이 맞았어.’
그것도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중증.
나이는 24살이지만 겉으로 보면 40대 이상으로 보인다.
안면 근육도 굳은 듯 표정도 이상하고.
‘아마 병 때문이겠지.’
VIP 병실엔 게임 접속용 캡슐도 보인다.
‘이걸로 버텼구나.’
측은지심, 불쌍한 사람이 옆에 있으면 동정심이 생기는 것이 인간의 본성, 현재 찬웅이 그런 마음이다.
더구나 동병상련이란 말도 있지 않나. 자신과 같은 상황을 겪고 있는 신여은을 보니 안타까운 마음은 배가 되었고.
찬웅은 결정을 내렸다.
굳이 세계수의 의도가 아니더라도 그녀를 살리고 싶다.
몇 번 보지도 않은, 그것도 현실이 아닌 가상에서 플레이어, 얼굴도 모르고, 나이도 모르지만 그냥 그러고 싶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간절히 원하는 사람이 있다.
‘그래, 필요한 사람에게 가는 게 맞지.’
더욱이 이번엔 살리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 마음에 든다.
시간이 없다.
‘빨리 처리하고 나가자.’
고민하다 보면 한도 끝도 없다.
찬웅은 신여은의 산소호흡기를 벗겨냈다.
‘···!’
깜짝 놀란 신여은.
여긴 아무도 없을 텐데,
눈을 뜨자 흐릿하게 보이는 한 사람, 마스크와 후드를 뒤집어써 누군지 모르지만 반짝이는 눈빛은 볼 수 있었다.
‘이 사람은 누구지? 그리고 왜?’
호흡기가 벗겨지자 숨이 가빠온다.
날 죽이려고 하나?
가만히 놔두어도 어차피 죽을 건데 굳이···.
퐁!
병마개 따는 소리가 들렸다.
“마셔요.”
뭘?
“이거 마시면 나아질 거예요. 괜찮아요. 안심해요. 겁내지 말고.”
대체···.
그런데 이상하다.
말투가 익숙하다.
특히 겁내지 말라는 그 말.
‘읍!’
목구멍으로 차가운 액체가 들어왔다.
꼴깍꼴깍.
이거 뭐지?
순식간에 몸속으로 퍼지는 청량감.
“자, 다 됐습니다.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고, 항상 씩씩하게! 극복!”
네?
자, 잠깐!
극복이요?
순간!
그녀는 떠올렸다.
겁내지 마라, 씩씩하게 맞서라, 극복해라···,
‘설마···,’
아바타 케이.
한국 사람일지도 모를 플레이어.
‘케이? ···케이님?’
그가 맞는다고 쳐도 여긴 어떻게 알고,
그러나 드르륵,
문이 열리고,
드르륵!
문이 닫히고.
신여은은 소리쳐 물어보고 싶었지만 혀가 굳어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가, 가지 말아···,’
드르륵.
또 문이 열렸다.
다시 왔나?
힘을 내보자.
“케···,”
나온다.
목소리가 나온다.
좀 더 힘을 주고,
“케, 케이···”
“에구머니나! 여은아!”
엄마였다.
“어, 엄마?”
“우리 딸, 어, 어떻게 말을···,”
“엄마!”
“세, 세상에!”
이상하다.
‘내가 말을 해?’
숨도 잘 쉬어진다.
그럼 호흡기도 필요 없겠다.
어쨌든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
“여은아! 이거 꿈 아니지?”
“···엄마, 나 지금 게임 할래.”
“으응? 얘는 지금 이 상황에, 자, 잠깐만,”
부리나케 밖으로 뛰어나가는 여은의 엄마.
“간호사님! 간호사님! 의사 선생님 좀 불러주세요. 우, 우리 여은이가, 여은이가!”
빨리 접속하고 싶다.
※ ※ ※
로그드라실 침식지는 어마어마하게 넓다.
길게 이어진 산맥 전체가 하나의 침식지.
산맥에 둘러싸인 분지 지형의 도시가 바로 로그드라실, 즉 침식지로 포위되어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이 때문에 인간 및 타 아인종과의 교류가 끊어져 엘프 왕국은 고립된 처지, 엘프와 플레이어 말고는 다른 종족들은 없다.
다양한 직업의 플레이어들이 있었다.
용병들을 상대로 장사하는 상인 플레이어가 대부분, 이참에 한몫 단단히 잡아야지.
그러나 이벤트가 시작되면 용병이 아닌 플레이어들은 모두 ‘강제 귀환’된다. 오로지 용병만을 위한 이벤트, 타직업군이 함께 있으면 웨이브 방어에 차질이 빚어지게 될 테니.
찬웅도 준비를 끝마쳤다.
딸기에게 약을 먹이고 집으로 돌아와 알람을 맞추고 잠이 들었는데 어느새 저녁, 급하게 접속했다.
찬웅은 이번에도 세계수 앞에 다가갔다.
손을 대자마자.
[보상으로 아바타 케이가 반영률을 1% 돌파했습니다.]
확실하다.
이건 일종의 퀘스트.
‘제가 이제 뭘 물어보면 되죠?’
[답변할 수 없는 질문입니다.]
‘뭐, 그러시겠지.’
세계수와 스무고개를 하는 것도 지친다.
웨이브나 준비하자.
이제 남은 시간은 1시간.
비록 파티는 물 건너가고 뒤를 받쳐줄 사람 없이 혼자 하게 되었지만 어떻게든 해봐야지.
살아남는 데 주력하자.
공적 쌓기는 신경 쓰지 말고.
그때였다.
띠링.
[상큼한 딸기] : 케이님?
뭐야?
이 사람 게임에 환장했나···.
제정신인가?
뭐라고 말할 수도 없고.
[상큼한 딸기] : 사부님?
[케이] : 몸이 아프시다면서. 작별 인사까지 해놓고는, 다 나으셨나 봐요.
[상큼한 딸기] : ···저 다 알아요.
[케이] : 뭐, 뭘요?
잠시 흐르는 침묵.
[상큼한 딸기] : 네, 안 물어볼게요. 언급도 하지 않을게요. 그리고 절대 말 안 해요. 엄마 아빠 포함해서 누구에게도.
눈치 빠르네.
아무튼 비밀로 한다고 했으니.
[케이] : 빨리 와요.
[상큼한 딸기] : ···네?
[케이] : 웨이브 얼마 안 남았잖아요. 파티 안 할 겁니까?
[상큼한 딸기] : 넵! 지금 당장 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