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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이는 것보단 살리는 게 좋다(1)
사건이 일어난 지 두시간 후, ASP 팀장 최기병은 사건 현장인 아파트 현관문으로 들어갔다.
국정원 이필동 과장이 전처럼 미리 와서 현장을 조사하고 있었다.
“오셨어요?”
“네. 그보다···,”
“박달환 맞습니다.”
“아!”
“여기 뒈진 새끼가 그놈입니다.”
정말 놈이 맞나?
도무지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현실에서, 또 가상에서 국가 기관 요원들을 농락했던 귀신작두, 박달한이 이렇게 처참하게 죽어버리다니.
오른쪽 어깨가 통째로 잘려 나가고, 가슴은 속까지 다 보일 정도로 쩍 갈라진 시체, 최기병은 밑으로 푹 꺾인 시체의 머리를 손으로 잡아 올렸다.
맞다.
그놈이다.
각성 플레이어 박달환, 사이코패스 살인마.
‘씨발 새끼,’
이렇게 쉽게 죽어선 안 되는데.
죽는 도중에 고통은 느꼈을까?
아주 많이많이 느끼고 갔으면 좋겠다.
“신고자는 누군지 파악했습니까?”
“그게 잘···, 희생자 전화로 112 신고를 했는데 일단 확보한 건 목소리밖에 없습니다.”
신고자가 박달환을 죽였을 가능성이 제일 높은데···.
하지만 목소리 하나만으론 별 소용이 없다.
“혹시 내부 CCTV는 없었나요?”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애완동물을 키우는 집에 간혹 있지만 여긴 강아지나 고양이를 키우지 않는 것 같고요.”
“이 집에 살던 사람들은요?”
“안타깝지만 모두 사망했습니다. 저쪽 방 안에···.”
방안에 가지런히 놓인 4구의 시신들, 구부러진 알루미늄 방망이도 보인다.
“이건 박달환이 그런 겁니까?”
“네, 손자국이 일치합니다. 희생자들이 저항하자 힘을 과시한 듯했고요.”
정리해보자.
최고급 접속 캡슐 장치가 있는 집을 골라 침입한다.
그리고 거기 사는 사람들을 죽이고 캡슐로 접속, 어느 정도 오래 머물렀다 싶으면 다른 집으로 옮기고.
여기 이 집도 마찬가지.
희생자들의 저항은 실패, 비참하게 살해당했으며, 놈은 캡슐에 접속해 내일 있을 이벤트에 참가하려고 했다.
그런데 죽어버렸다니.
그 박달환이?
훈련받은 요원들을 죽이고, 알루미늄 방망이를 우그러뜨리며, 고층 아파트를 쉽게 기어 올라가는, 초인이나 다를 바 없는 놈이?
“어떻게 죽었는지···.”
“이쪽으로.”
이필동을 따라 다시 거실로 나간 최기병.
“무거운 날붙이에 당한 것 같습니다. 도끼 혹은 커다란 칼, 마체테나 정글도 같은 무기요. 아! 중식도도 범위에 들 수 있겠네요.”
“···.”
“직접적 사인은 심장에 한칼 먹은 거지만 그전에···, 저기 보이시죠?”
이필동은 손가락으로 거실 벽면을 가리켰다.
벽면에 세로로 난 금, 흩뿌려진 선혈 자국.
“꽂힌 자국? 흉기입니까?”
“네, 깊숙하고 깔끔하게 들어갔어요.”
“흐음, 날아가 박힌 건가요?”
“그렇게 추정하고 있습니다. 어깨와 자국의 높이가 똑같아요. 그러니까 박달환이가 이쪽에 서 있었는데, 도끼가 날아서 놈의 어깨를 절단하고도 그 기세를 전혀 잃지 않은 상태로 곧장 날아가 콘크리트 벽에 콱!”
“그럼?”
“보통 인간은 할 수 없죠. 포스의 힘이 분명합니다.”
“후우,”
박달환이 죽어버린 건 좋지만 각성 플레이어가 또 한 명 나타났다.
“산 넘어 산이라더니.”
“이놈도 박달환 못지않게 위험해요. 무기까지 가지고 다니면서 자경단 행세를 하는 듯한데.”
“그 말은 처음부터 박달환을 노리고 이곳으로 들어왔을지도 모른다는 겁니까?”
“그렇죠.”
“어떻게요?”
“글쎄요. 그게 가장 큰 수수께끼라서.”
경찰과 국정원, 군 수사기관까지 동원해도 못 찾은 박달환을 무슨 수로 찾았지?
“우연히 마주친 건 아닐까요? 아니면 원래 알고 있었던 사이라던가.”
“네, 원래 아는 사이였다면 의문이 풀리죠. 그래서 우리도 박달환 주변을 다시 조사하는 중입니다.”
최기병은 찜찜했다.
죽어야 할 놈이 죽었고, 앓던 이가 쑥 빠질 만큼 시원했지만, 박달환과 비슷한, 아니 그보다 더 강할지도 모르는 각성 플레이어가 또 한 명 나타났기 때문이다.
찾을 수 있을까?
뭐라도 나와줬으면 좋으련만.
“그건 그렇고, 박달환이 죽어버렸으니 한숨 돌리긴 했네요.”
“모르죠. 그놈도 힘에 취해 아무나 죽이고 돌아다닐지.”
“아닐 겁니다. 그럴 놈이었다면 진작에 그러고 다녔겠죠.”
사실 너무나 고맙다.
자경단 행세든, 뭐든, 살인마 새끼를 처단해 더 큰 피해를 막아줘서.
제발 조용히 지냈으면, 잡혀주면 더 좋고.
“참! 이번 용병 이벤트 준비는 잘되어가고 있습니까? 하루 남았죠?”
“다소 차질은 있지만, 무리는 없을 겁니다.”
전담반이 육성하는 용병 플레이어가 100명, 그중에 150%대의 플레이어가 무려 12명.
비록 로그드라실에서 놈의 도발에 넘어가 자신과 30명의 전담반 소속 용병 플레이어가 접속을 못 하게 되었지만 그 정도는 감당할 수 있다.
내일 있을 이벤트는 국가 차원에서도 기회였다.
한국 말고도 미국이나 중국, 일본에서도 준비하고 있는 상황, 왜냐하면 이런 대규모 이벤트에서도 각성의 확율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표면적으로는 이벤트 보상 중 하나인 동화율 경험치 2배 상승, 그러나 각성 확률 또한 2배일 수도 있다.
근거 없는 추측이 아닌 게, 1년 전에도 웨이브 이벤트가 있었다.
현재 존재하는 각성 플레이어의 절반 가까이가 그 이벤트에서 각성했다는 정보도 있고, 뭐, 확실하진 않지만.
“미국과 러시아, 중국, 일본에서도 이번 이벤트에 집중하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수천억을 투입하고 있다던데.”
“그렇겠죠.”
혹시나 각성할지도 모르는, 집중 육성 대상인 용병 플레이어에게 경험치 몰아주기도 해야 하고, 랜덤 박스 득템 확률도 상승하니까 틈틈이 상자도 까야 하고.
‘돈이 많이 필요하지.’
‘통제 가능한’ 각성 플레이어의 가치는 상당하다.
얼마 전 미국 소속으로 추정되는 2명의 각성 플레이어가 시리아에서 테러 단체의 수장 압둘 하미안이 이끄는 500여 명의 ISS 부대를 전멸시켰다.
만약 한국에서도 통제할 수 있는 각성 플레이어를 확보한다면? 여러 방면에서 매우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을 터.
그래서 박달환을 회유하려고 했던 것이고.
박달환을 누가 죽였는지 알아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 당장 급한 건 로그드라실 이벤트 준비, 비록 직접 참가하진 못하지만 계획은 세워뒀다.
‘제발 한 명이라도 각성해 줬으면 좋겠군.’
그리고 몇 시간 후, TV에서 뉴스 속보가 흘러나왔다.
- 6명을 살해한 것으로 추정되는 박모씨가 경찰과의 대치 끝에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박씨는 반포구 모 아파트에 침입해서 가족들을 살해하고 고가의 게임 접속용 캡슐에 접속하는 엽기적인 만행을 저지르다 추적하던 경찰들에게 발각되어···, -
※ ※ ※
가상과 현실의 균형.
앞으로 한 달에 한 번은 무조건 1만 코인 정도 팔아야지.
그건 현실에서 월급 같은 것.
1만 코인이야 사흘정도 슬슬 사냥해도 충분히 버는 돈.
예전부터 느끼는 거지만 자신에겐 코인이 유독 잘 떨어진다.
경험치 몹을 잡아도 코인을 벌었을 정도니까.
‘아예 한 달에 2만 코인씩 환전해버려?’
아니면 50대 50 비율로 하거나.
뭐, 1만 코인이면 충분한 것같다.
이제 상자 까기 시간.
상자는 깔 때마다 두근거린다.
과연 어떤 아이템이 나올까?
“오픈!”
[D박스에서 ‘끈 떨어진 샌들’ 한 켤레를 획득하셨습니다.]
[D박스에서 ‘하급 치유 물약’ 한 병을 획득하셨습니다.]
[D박스에서 ‘142D코인’을 획득하셨습니다.]
.
.
.
꽝의 연속.
하지만 찬웅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반드시 나올 거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주신(主神)의 축복이 D박스에 깃듭니다.]
‘역시.’
[D박스에서 ‘진(眞) 스톤포지 브루어리 밀맥주’ 한 병을 획득하셨습니다.]
‘맥주? ···괜찮은데?’
이것도 진(眞) 아이템, 맥주면 어때? 일전에 호두 파이를 먹어봐서 안다.
‘천상의 맛이었지.’
게임에서만 보던 드워프 맥주를 현실에서도 마실 수 있다.
과연 무슨 맛일까?
[D박스에서 ‘잘 구운 양다리’ 한 짝을 획득하셨습니다.]
[D박스에서 ‘스킬 상승의 물약’ 한 병을 획득하셨습니다.]
잘 구운 양다리는 진(眞)이 아니었다.
그것까지 진(眞)이라면 맥주 안주로 그만일 텐데.
그리고 스킬 상승의 물약
이 또한 진(眞)은 아니지만 괜찮은 물약이다.
일정 시간 동안 스킬 레벨을 올려주는 효과.
꽝은 계속 이어졌다.
솔직히 살짝 불안한 감도 있긴 했지만···,
’에이, 설마!‘
그러자 4개 남은 시점에서.
[주신(主神)의 축복이 D박스에 깃듭니다.]
[D박스에서 ‘진(眞) 자원 재생의 물약’ 한 병을 획득하셨습니다.]
“떴다.”
자원 재생의 물약은 치유 물약처럼 흔하고 필수적이다. 타게임 아이템으로 치면 마나 물약.
아이템 정보를 확인하면.
[진(眞) 자원 재생의 물약]
[등급 : 레어]
[종류 : 소모품]
[귀속 여부 : 거래 가능]
[효과 : 소모된 자원의 50%를 즉시 회복하고 1분간 자원 재생 속도가 상승합니다.]
자원이란 아바타의 힘의 원천, 용병은 포스, 예술계열은 아우라, 학자나 정치인은 집중력, 상인은 눈썰미.
‘좋네. 인벤토리에 넣어뒀다 쓰면 되겠어.’
[주신(主神)의 축복이 D박스에 깃듭니다.]
또!
[D박스에서 ‘진(眞) 자원 재생의 물약’ 한 병을 획득하셨습니다.]
똑같은 것이 2개째.
뭐,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인벤토리도 넉넉하고,
[주신(主神)의 축복이 D박스에 깃듭니다.]
[D박스에서 ‘진(眞) 상급 치유 물약’ 한 병을 획득하셨습니다.]
“하하,”
두 번째로 얻은 진(眞) 상급 치유 물약이다.
외상은 물론 내부의 상처, 혹은 질병까지도 치유해주는 아이템, 이미 하반신 마비가 치유되어 더는 필요가 없지만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배달 상자가 가득 차겠네.’
그리고,
[주신(主神)의 축복이 D박스에 깃듭니다.]
‘뭐지? 신들렸나?’
[D박스에서 ‘진(眞) 상급 힘의 영약’ 한 병을 획득하셨습니다.]
“···힘의 영약!”
힘이란 무엇인가?
힘은 곧 포스.
그럼?
[진(眞) 상급 힘의 영약]
[등급 : 영웅]
[종류 : 소모품]
[귀속 여부 : 거래 가능]
[효과 : 영구적으로 포스 500이 늘어납니다.]
“대박이네.”
이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아바타의 동화율 5% 올려야 포스가 500 늘어난다.
현실에서도 똑같이 포스 500 상승이 적용되면?
‘이건 빨리 먹어버리자.’
랜덤 D박스 20개 까서 진(眞) 아이템 4개면 괜찮은 편, 자원 재생 물약 2병에 상급 치유 물약 1병, 힘의 영약 1병, 인벤토리에 넣고.
이제 웨이브 이벤트까지 남은 시간은 하루.
박달환 그놈 때문에 허비한 시간을 보충해야지.
그래서 오늘도 실전 훈련.
오크는 많이 잡아봤으니까.
오크보다 상위 몹은 뭘까?
오크는 돼지, 그보다 더 위는···,
맞다.
바로 소다.
미노타우루스.
하지만 조심해야 한다.
미노타우루스를 잡다가 죽어버리면 이벤트는 물 건너 간다.
혼자 잡기는 좀 그렇고,
‘파티를 구해야 하나?’
믿을 만한 사람이라면 좋겠는데,
그때였다.
띠링.
[상큼한 딸기] : 케이님?
딸기?
가만···, 괜찮은데?
[상큼한 딸기] : 사부님?
[케이] : 제가 왜 님 사부님입니까?
[상큼한 딸기] : 와! 대답하셨다. 그야 절 가르쳐주셨으니까 사부님이시죠.
[케이] : 가르쳐줬다기보단 공포심을 극복하기 위한 조련, 아니 훈련을 시켜드린 것뿐이고.
[상큼한 딸기] : 그게 가르쳐 주신 거죠. 저 많이 늘었어요. 초보 딱지도 뗐고, 제대로 한몫할 수 있습니다!
결정했다.
이왕 파티할 거면 한번 손발을 맞춰본 플레이어가 낫지.
재능도 준수한 편이고.
[케이] : 혹시 로그드라실이라면, 같이 사냥가실래요?
[상큼한 딸기] : 아싸! 저야 대환영입니다. 뭐 잡으실 건데요? 고블린? 오크?
[케이] : 미노타우루스요.
[상큼한 딸기] : ···네?
[케이] : 소 잡으러 갑시다.
[상큼한 딸기] : 으음, 되, 되게 큰 놈이죠?
[케이] : 두 발로 서면 한 3m 정도 되나?
[상큼한 딸기] : ···.
갑자기 말이 없는 딸기.
[상큼한 딸기] : 저어, 지금 병원이거든요. 주사 맞아야 해서. 다음에···.
[케이] : 용병 플레이어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뭐라고 했습니까?
[상큼한 딸기] : 고, 공포심 극복?
[케이] : 알면 빨리 오세요. 위치 좌표 보내드릴게요.
[상큼한 딸기] : ···네에.
메시지 대화를 끝내고 피식 웃는 찬웅.
‘사부님은 무슨.’
자신은 에루인에게 스킬이라도 배웠지.
별로 가르친 것도 없는데.
찬웅은 로그드라실로 통하는 게이트의 문을 열었다.
화아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