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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작두(4)
박달환은 창문을 통해 집안으로 침입했다.
포스를 익혔다면 고층 아파트 꼭대기라도 문제없이 들어올 수 있다.
희생자들은 필사적으로 저항했을 것이다.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
그러나 알루미늄 방망이가 종이짝처럼 구겨지는 모습에 어찌할 바를 몰랐을 터, 공포에 질려 전의를 상실했을 테고, 결국 한명 한명씩, 너무나 쉽게, 그리고 잔인하게···.
눈앞에서 가족들이 살해당하는 걸 보는 심정은 얼마나 끔찍할까?
나쁜 새끼인 줄 알았지만 상상을 초월한다. 이놈은 살아있어서는 안 되는, 사탄도 울고 갈 악마다.
‘씨발 새끼···,’
찬웅은 방문을 열었다.
끼익,
텅 빈 거실, 혹시 도망갔나?
거실에 놓인 캡슐 장치가 눈에 들어왔다.
가만히 손을 대어보니 아직 따듯하다.
방금 전까지 접속해 있었다는 뜻.
그때였다.
삐걱,
현관 바로 옆, 화장실 문이 조용히 열렸다.
그리고 안에서 나오는 한 사람.
놈이었다.
귀신작두, 박달환.
“응?”
찬웅을 보자마자 멈칫하며 눈을 깜빡이는 놈.
“뭐야? 너 누구야?”
“박달환?”
“···어디서 왔어? 경찰? 국정원? 아니면 각성 플레이어 전담반?”
박달환은 눈살을 찌푸리며 계속 말을 이어갔다.
“어디든 상관없겠지. 아쉽군. 기껏 기계 하나 구해놨는데 또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하나?”
놈에겐 사람을 죽였다는 죄책감 따윈 보이지 않았다.
하긴 그럴 놈이었다면 애초에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겠지.
“그런데···, 뭐야? 혼자 왔어?”
“그래.”
“정말 혼자 왔다고? 허어, 넌 내가 누군지 모르는 모양이군. 네 상관에게 무슨 잘못이라도 저질렀나? 죽을 자리인지도 모르고.”
박달환은 성큼성큼 걸어가 아파트 베란다 전망창 방향에서 멀리 떨어졌다.
“맞은 편에 저격수라도 배치해 뒀나?”
“쫄지마. 저격수 같은 건 없어.”
찬웅의 무심한 말에 박달환은 그제야 그를 요모조모 살펴보았다.
“이상하군. 넌 누구야? 협상가? 좋은 조건이라도 들고 왔나 보지? 하지만 착각하지 마라. 이제부터 협상은 없어. 모든 건 내가 주도한다.”
“협상가도 아니야. 살인마 새끼랑 말 섞기도 싫고.”
“···하하하.”
기가 찬다는 눈빛의 박달환.
어떻게 들어왔는지도 궁금하고, 저 건방진 태도도 희한하다.
정말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나?
“너 대체 뭘 믿고···.”
“전에도 했었지, 그 말.”
“응?”
“우리 만난 적 있잖아. 내가 누군지 몰라?”
“···전담반 요원은 확실히 아니고, 어디서?”
“로그드라실.”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에 박달환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디라고?”
“로그드라실. 아바타 케이, 내가 기억했다고 했지? 넌 이벤트에 참가 못 할 거라고.”
“으흠, 아!”
이제야 기억났다는 듯,
“아, 케이, 그러고 보니 기억나네. 분수도 모르는 아바타 새끼가 한 명 있긴 했었지.”
“맞아.”
“···거긴 게임 안이었잖아.”
“그렇지.”
“···여긴 현실이고,”
“그것도 맞아.”
“근데 내가 있는 걸 어떻게···.”
박달환은 고개를 양쪽으로 우드득, 꺾으며 말했다.
“말해. 어떻게 알았어?”
“글쎄, 네가 맞춰봐.”
“참나, 그래, 수수께끼 하자는 것도 아니고,”
유들유들한 태도에 화가 난 듯 박달환은 안색이 시뻘겋게 변했다.
“일단 살아갈 생각은 마라. 그다음 조금 맞자. 장담할게. 맞다 보면 털어놓을 거야.”
우우웅,
박달환의 두 팔에 어리는 희미한 푸른색 기운,
“이런 거 처음 보지?”
천천히 걸어가 거실 탁자 위에 놓인 화강암 수석(壽石)을 집어 들고 힘을 주더니.
퍼석! 와그작!
돌덩이가 잘게 조각조각 나 바닥으로 떨어졌다.
투툭, 투두둑!
그러고 나서 뿌듯한 표정을 짓는 박달환.
“선택받은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힘이야.”
박달환의 자부심은 하늘을 찔렀지만 찬웅은 한 눈으로 알았다.
놈은 자신보다 약하다.
“지금이라도 사실대로 말하면 살려준다. 아니면 무릎을 꿇고 빌던가.”
“내가 왜 그래야 하지?”
“그렇지 않으면 뒈질 텐데? 저 방안에 시체처럼.”
“봤어. 그리고 그것이 네가 여기서 죽어야 할 이유고.”
“참나, 내가 잘못 들었나? 미친놈이···,”
아무래도 뜨거운 맛을 보여줘야 고분고분해질 터.
휘릿!
박달환은 사람이 낼 수 없는 속도로 돌진했다.
꼼짝 않고 멍하니 서 있는 건방진 애송이.
얼어붙었겠지.
그러나 후회해도 늦었다.
무릎을 꿇고 순순히 털어놓았다면 고통 없이 죽여줬을 것이다.
아무튼 모가지를 확 틀어쥐었는데···,
바로 그 순간!
팟!
‘음?’
뭐지?
마치 마술처럼, 잔상만 남기고 순식간에 사라지는 놈.
‘어딜···,’
박달환은 느꼈다.
뒤통수에서 느껴지는 싸늘한 살기를,
천천히 뒤로 돌아봤는데.
‘씨발,’
도대체 어떻게 움직였는지 모르지만 놈은 거기 서있었다.
바로 자신이 있던 자리에.
솜털까지 곤두서는 긴장감.
저놈은···.
“너도?”
분명하다.
놈도 각성 플레이어다.
“···믿는 구석이 있었구나.”
“어서 끝내자. 네 얼굴 보는 것만으로도 구역질 날 것 같으니까.”
“이 건방진!”
박달환의 가슴이 두근거린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불안감.
저 케이란 놈에게서 언제나 자신의 목숨쯤은 가볍게 취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느껴졌다.
전력을 다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저놈 말대로 자신은 죽는다.
박달환은 있는 힘을 다해 포스를 일으켰다.
우우웅!
전신에서 소용돌이치는 포스.
시선을 놈의 눈에 고정하고, 천천히 거리를 재며, 한발, 한발.
“죽어!”
박달환은 혼신의 힘을 다해 왼발을 앞으로 내디디며 마치 미사일처럼 오른 주먹을 찬웅의 안면에 꽂아 넣으려고 했지만.
찬웅은 인벤토리에서 앙증맞은 머리 따개를 꺼냈다.
스슷!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의 박달환.
“···어?”
스우웅,
쌍도끼에 짙고 푸른 빛이 어렸다.
츠릿!
번쩍! 빛을 발하며 날아와,
서걱!
“어헉!”
툭!
박달환의 오른쪽 어깨가 통째로 잘려져 떨어졌다.
콰악!!
어깨를 자르고도 힘이 남았는지 도끼는 벽면에 그대로 날아가 박혔다.
박달환은 정신이 반쯤 나갔다.
아픔도 없다.
그저 피를 꿀렁꿀렁 뱉으며 나뒹구는 자신의 잘린 어깨만 눈에 들어왔다.
“내 팔···.”
꿈인가?
아니면 가상현실에 아직 접속 중?
뭐지? 어떻게 돌아가는 거지?
“···서, 설마 스킬? 이, 인벤?”
확실하다.
대체 저놈은 누구인가?
포스에, 인벤토리에, 스킬까지.
“으어어, ···스, 스킬? 저, 정말 스킬? 이, 인벤토리, 그, 그런 말도 안 되는···,”
“지금 보고 있잖아.”
“어, 어떻게 스킬을, 어디서 배운 거야? 네 동화율은? 인벤토리도, 호, 혹시 반영률이 올라가면 스킬도 배워지나?”
“그게 중요해? 사람을 몇이나 죽여놓고도,”
“씨, 씨발, 버러지 몇 마리 뒤진 게 뭐가 중요하다고!”
“그래? 저승에 가면 네가 죽인 사람들에게 속죄하면서 살아.”
갱생의 가치가 없는 놈,
찬웅은 이미 결정을 내렸다.
놈을 죽이기로.
박달환도 느꼈나 보다.
케이라는 놈은 자신을 죽이려고 한다.
공포로 물든 눈동자.
정작 자신이 죽을 거라 생각하니 아득히 다가오는 절망감.
털썩 무릎을 꿇으며.
“어···, 사, 살려줘, 우, 우린 선택받은 사, 사람이잖아. 이, 이렇게 하자고. 날 부하로 삼아. 충성을 다 할게.”
저벅저벅 시퍼렇게 날이 선 쌍도끼를 들고 박달환을 향해 걸음을 옮기는 찬웅.
“아, 안 돼! 살려달라고! 뭐든지 다 할게!!!”
박달환은 나머지 한쪽 손을 뻗어 저항하려 했지만,
“제, 제발, 이 씨발 새끼야!!!”
콱!!!
도끼는 놈의 심장에 그대로 틀어박혔다.
“컥! 끄르륵!”
박달환은 입에서 피거품을 뿜으며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후우,’
사람을 죽였다.
게임 속 아바타가 아닌 실제 인간을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한 줌의 죄책감도 들지 않는 이유는 뭘까?
‘이 새끼는 인간이 아니니까.’
옆 방에 지가 살해한 시체들을 두고 태연하게 게임이나 하고 있어?
놈은 악마다.
침식지 몬스터다.
졸지에 자경단이 된 셈이지만 처음부터 그럴 의도는 추호도 없었다.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하지 않으면 더 많은 희생자가 생겨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법의 심판을 받게 하면 안 되냐고?
사형이 금지된 국가에서 심판이라 해봐야 무기징역 정도겠지. 교화가 가능하다면 생각해볼지도 모르지만 과연 이 악랄한 악마가 자신의 죄를 뉘우칠까?
턱도 없다.
그런 새끼를 국가 세금으로 먹여 살리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나저나 뒤처리는?’
주위를 살피자 거실 바닥에 놓인 스마트폰이 보였다. 잠금도 걸려있지 않았다. 아마도 희생자의 물건일 터.
찬웅은 장갑을 낀 손으로 스마트폰 번호를 눌렀다.
112.
누군가가 전화를 받자,
“서초구 반포 1동 라미안 아파트 357동 5004호.”
- 네?
“박달환이 여기 있습니다.”
그리고 전화를 끊었다.
다음은 경찰들이 알아서 하겠지.
찬웅은 방으로 들어가 희생자들에게 잠시 묵념하고 창문을 통해 빠져나갔다.
※ ※ ※
찬웅은 집으로 돌아왔다.
혹시 몰라 빙빙 돌아서 왔다.
피 묻은 옷을 벗어 세탁기에 집어넣고 샤워를 한 후 책상 의자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국가도 알고 있었어.’
놈의 입에서 나온 기관의 이름, 경찰과 국정원이야 익숙하지만 각성 플레이어 전담반은 처음 들어봤다.
각성 플레이어, 자신과 같은 사람을 각성 플레이어라 지칭하는가 보다.
‘그 전부터 이미 박달환과 관계를 맺어 왔을 거야.’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르지만 틀어졌고, 통제 불가능한 상황까지 왔을 터.
‘아바타 귀신작두, 박달환을 가상현실에서 필사적으로 죽이려고 하던 것도 이해가 돼.’
동화율이 하락하면 현실 능력도 하락하니까.
또 하나.
아마 박달환의 시체가 발견되면 자신의 존재를 알아차릴 것이다.
그럼 반드시 찾으려 할 테고.
‘조금 더 신경을 써야겠어.’
찬웅은 눈을 감았다.
잠시 흥분을 가라앉히자.
‘들키진 않겠지.’
그나마 야행복이 있어서 다행, 스마트폰을 이용해 실험도 해봤다.
은신막이 발현되면 카메라 렌즈를 통해 봐도 알아차릴 수 없다. 그저 투명한 무언가가 슥슥 지나가는 것만 보일 뿐, 만약 어두운 밤이라면 효과는 뛰어나다.
‘후우,’
마음을 가다듬어야 한다.
사람이 아닌 짐승을 죽인 건 확실하다.
그러나 힘에 취하면 안 된다.
그럼 박달환, 그놈과 똑같은 인간이 되어버린다.
물론 똑같은 상황에 다시 맞닥뜨린다 해도 그렇게 할 것이지만.
‘잊어버리고···,’
게임이나 하자.
그냥 바퀴벌레 한 마리 죽였을 뿐. 이걸 마음에 계속 담아두면 나만 손해, 이벤트도 코앞이고.
지이잉,
찌릿!
접속 시 느껴지는 이 빌어먹을 고통은 언제쯤 없어지려나.
[어서 오세요. 고객님! 듀플렉스 스페이스의 세상으로 오신 걸 환영합니다.]
익숙한 대기실.
맞은 편 벽면으로 보이는 두 개의 문,
하나는 로그드라실, 하나는 카쟌.
목적지는 당연히 로그드라실, 하지만 가기 전에···,
‘상자부터 까야겠다.’
오크 잡아서 모은 코인이 제법 된다.
한 마리 잡으면 17에서 20D코인을 주니, 전에 있던 것까지 합하면 약 16,000D코인.
‘20개 정도만 까자.’
6,000D코인, 이게 요즘 코인 시세로 환산하면 한화 2천만 원이다.
로그드라실 웨이브 이벤트로 코인 시세가 폭등한 탓, 현질 끝판왕 가상현실 게임.
‘코인도 팔아야지.’
게임 덕분에 여기까지 왔지만 그래도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는 현실, 대한민국.
돈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언제 또 코인이 폭락할지도 모르지 않나.
나머지 1만 코인은 거래소에 올렸다.
‘시세가 2.1달러? 많이 올랐구나.’
띠링,
[D코인 매도 주문이 체결되었습니다.]
[D코인 계좌에 한화 38,892,000원이 입금되었습니다.]
‘···이러다 재벌 되는 거 아냐?’
정말 무서운 건 현실성 없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
아무튼 까보자.
“6,000D코인으로 D박스 20개 구매!’
[D박스 20개를 구입하셨습니다.]
“모두 오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