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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작두(3)
각성 플레이어 전담반 최기병 팀장은 괴성을 지르며 캡슐에서 몸을 일으켰다.
“으아아아아!!!”
평소엔 냉정하고 진중한 성격의 그였지만,
“개새끼! 비열한 새끼!! 좆같은 살인마 새끼!!!”
흰자위가 희번덕, 눈동자가 완전히 돌아갔다.
같이 캡슐에서 깨어난 팀원들도 참담한 표정, 놈을 죽이지 못한 건 둘째치더라도, 다음 기회까지 완전하게 날려버렸기 때문에.
아바타 사망, 그래서 3일 동안 접속 제한, 당장 내일이 로그드라실 웨이브 이벤트 날인데, 아무것도 못 하게 생겼다.
박달환은 이벤트 기간동안 경험치를 두 배나 먹을 거고, 동화율과 반영률을 올려 현실에서 더 강한 힘을 가지게 될 터.
한동안 난리 치던 최기병은 비틀비틀 걸어가 의자에 풀썩 주저앉았다.
“누구 담배 있는 사람?”
“···여기,”
“라이터도,”
금연한 지 5년 지났지만 오늘은 정말 담배가 땡긴다.
“후우,”
이제 어떡하지?
무조건 현실에서 놈을 잡아야 하는데···, 단서라고는 하나도 없으니.
물론 놈이 했다는 증거는 차고 넘쳤다.
지문도 덕지덕지 남기고, 희생자 냉장고를 열어 음식도 처먹고, 그리고 캡슐에 들어가 접속까지 했다.
다만 현재 놈의 위치가 어디인지, 어떻게 하면 놈을 잡을 수 있는지가 오리무중.
더 이상의 진전이 없었다.
어디 있는지 알아야 잡지.
알아도 잡기 힘든 판국에.
현실에서 놈을 잡을 수 없는 이유가 뭘까?
각성 플레이어 박달환은 행동양식 자체가 다르다.
일반적인 고정관념과 상식에서 벗어난다.
보통 범죄자들은 범죄를 저지를 때 나름 계획을 세운다.
시작 시점, 범죄방식, 탈출로, 뒤처리···,
이놈에겐 그런 거 없다.
즉흥적이라 지 마음대로다.
그걸 뒷받침해줄 막강한 신체 능력이 있으니까.
막을 수가 없다.
들어가고 싶은 장소가 있으면 그냥 문고리를 뜯고 들어간다.
저항?
누가 저항을 해?
그냥 가서 모가지를 비틀어버리는데.
범죄 행위가 끝나면 그냥 떠난다.
아무 데나, 마음 내키는 대로.
건물과 건물 사이를 뛰어넘거나 벽을 타고 넘어가고, 빠르기도 상상을 초월, 서울 서쪽 끝에서 동쪽 끝까지 이동하는 데 얼마 걸리지도 않는다.
설령 놈이 있는 곳을 알아냈다고 치자.
잡는 것도 어렵다.
동서남북 사방에 병력을 투입해 물 샐 틈 없이 방비해도 못 막는다. 그나마 가능성 있는 방법이라면 놈이 있는 지역에 대포나 미사일을 쏴서 폭사시키는 것.
“제기랄!”
그래도 포기할 순 없다.
분명 박달환은 또 살인을 저지른 게 틀림없다.
최고급 캡슐을 가진 누군가의 집에 또 침입해 그걸로 현재 접속하는 게 뻔하고, 결국 할 수 있는 일이란 놈이 저지른 살인사건을 단서로 삼아 뒷북을 치는 수밖에.
“국정원에 연락해. 실패했다고.”
“차후 대응 방안을 물어오면 어떻게 대답합니까?”
“···후우,”
최기병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딱히 방법이 없다.
신이 있다면 놈에게 천벌이라도 내려줬으면 좋겠다.
깊고 깊은 수렁 속으로 빠져들어 간 기분.
이미 엎질러진 물,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고 치고, 흥건하게 젖은 물기나 닦아낼 수 있다면 좋으련만.
※ ※ ※
‘아바타 [귀신작두]의 플레이어가 현실에서 접속하고 있는 장소는요?’
솔직히 대답해줄 거라는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답변해 드리겠습니다. 서울특별시 서초구 반포 1동 라미안 아파트 357동 5004호.]
[현재도 접속하고 있는 중입니다.]
대체 뭐지?
‘왜 이 질문엔 대답해주는 겁니까? 저한테 바라는 것이 있습니까?’
[답변할 수 없는 질문입니다.]
‘제가 놈을 직접 처리하길 원하세요?’
[답변할 수 없는 질문입니다.]
‘···.’
이후에도 수많은 질문을 던져봤지만 돌아오는 건 답변할 수 없다는 앵무새 같은 대답.
‘하아,’
어질어질하다.
찬웅의 상태를 알았는지 걱정스러운 어조로 물어오는 에루인.
“케이, 왜 그래? 세계수님께서 뭐라고 하시든?”
“아, 아뇨. 잠시 어지러워서,”
“으흠, 그럴 만도 하지. 초월적인 존재와의 교감은 심력 소모가 큰 법이야.”
“저, 잠시 쉬었다 오겠습니다.”
“그래그래, 푹 쉬다 와. 아직 웨이브는 한참 남았으니까.”
찬웅은 대기실로 귀환했다.
어차피 세계수가 가르쳐준 거긴 하지만 현실의 일이다.
현실의 일은 현실에서 고민하자.
로그아웃하기 전에.
‘상태창!’
[이름 : 케이]
[직업 : 용병(숙련)]
[포스 : 4,300]
[액티브 스킬 : 비열한 습격(3단계), 바람길 산책(3단계), 별빛 가르기(3단계)]
[패시브 스킬 : 방출(3단계), 듀얼 스트라이크(3단계)]
[동화율 : 143%]
[반영률 : 31%]
스킬은 모두 3단계로.
동화율이 143%니까 포스는 4300.
세계수와의 교감으로 반영률이 10%나 올랐다.
반영률 31%면 현실에서 사용할 수 있는 포스량이···.
‘1300 정도네.’
나가보자.
로그아웃!
지이잉,
찬웅은 캡슐에서 나왔다.
먼저 시원한 물 한잔 하고.
꿀꺽,
이 요상한 게임은 하면 할수록 사람을 당황하게 만든다.
세계수와의 만남, 갑작스러운 반영률 상승, 그리고 교감.
정작 원했던 답변은 해주지 않고, 무심코 아무 생각 없이 한 질문은 정확한 답변이 돌아왔다.
서울특별시 서초구 반포 1동 라미안 아파트 357동 5004호, [귀신작두]가 현실에서 접속하고 있는 장소.
어떻게 알고 있는지는 추측이 간다.
세계수가 보조 운영자가 확실하다면 플레이어가 접속한 위치를 아는 건 너무나 당연하고 쉬운 일이니까.
하지만 왜 그걸 자신에게 알려주지?
‘귀신작두라.’
어쨌거나 놈이 있는 곳을 알았다.
물론 아직 확실한 건 아니다.
‘그거야 확인하면 될 테고.’
어떡할까?
경찰에 신고부터 해야 하나?
‘어떻게 알았냐고 물어오면···,’
무척 귀찮아질 터.
그럼 신분을 숨기고 공중전화 같은 데서 제보를?
그것도 좋은 방법은 아니다.
공중전화에서 전화한다고 해서 안 걸릴까?
발신 시각과 장소는 기록에 남는다.
그걸 바탕으로 CCTV를 이용해 추적할 수도 있고.
‘뭐, CCTV를 피할 수 없는 건 아니지만.’
그때였다.
딩동!
갑자기 울리는 초인종 소리.
인터폰 화면엔 아무도 없으니까···,
찬웅은 현관문을 열고 앞에 놓인 상자를 안으로 가지고 들어왔다.
‘야행복이구나.’
진(眞) 암살자 루인의 노골적인 야행복, 은신막 발현에 피격시 데미지 감소까지.
결심했다.
직접 확인해보자.
아무리 연쇄 살인마라 하더라도 놈은 일반인 아닌가.
혼자 힘으로 충분히 처리 가능하다. 기절시키거나 묶어서 몰래 파출소 앞에 던져둬도 되고.
찬웅은 야행복을 착용하고 그 위에 겉옷을 입었다.
장갑과 모자, 그 위에 후드까지 덮어쓰고, 도끼도 인벤토리에 잘 있는지 꺼내서 확인도 해보고.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무기는 필수적으로 챙겨야지.
그런데?
‘어?’
뭔가 다르다.
도끼를 손에 드는 순간 그렇게 느껴졌다.
포스량이 순간 상승한 기분.
도끼를 인벤토리에 집어넣으니,
‘좀 전과 같아졌고.’
또 꺼내 드니.
‘아!’
상태창이 없어 확인할 수 없지만···,
‘세트 효과?’
분명하다.
암살자 루인의 앙증맞은 머리 따개, 암살자 루인의 노골적인 야행복.
나중에 확인해봐야겠다.
지금은 할 일이 있으니까.
현재 새벽 1시, 여기서 반포동 라미안 아파트까진 약 15km.
사람이 드문 곳으로, 바람길 산책의 힘을 빌려, 또한 은신막을 발현해서 가면 들키지도 않고 10분 언저리에 도착할 수 있다.
찬웅은 목발을 짚고 밖으로 나갔다.
일단 집에서 멀리 떨어지는 게 좋겠다.
한참을 걸어서 으슥한 곳으로, 그리고 목발을 인벤토리 안에 집어넣었다.
‘뛰어가자.’
현실에서 사용 가능한 포스는 1300 이상, 인벤토리 용량도 43칸, 스킬 숙련도도 늘어났다.
뒷골목으로 들어가 포스를 다리에 집중하고 찬웅은 건물 벽을 타고 올랐다,
탁! 타탁! 타다닥!
건물은 매끈하지 않다. 군데군데 튀어나온 창틀, 에어컨 실외기, 그것들을 밟고 올라가는 건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운동 신경이 좋은 일반인들도 ‘파쿠르’라는 것을 통해 기예를 뽐내는데, 포스를 현실에서 사용하는 찬웅에겐 식은 죽 먹기.
건물 옥상으로 올라가 라미안 아파트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슬슬 속력을 올려볼까?’
다다다다!
빠르게 발걸음을 움직여 힘차게 도약!
건물 옥상을 가로질러 다음 건물로, 조금 높다 싶으면 외벽에 착 달라붙어 올라가고, 건물 사이가 멀면 땅으로 내려서서 이동, 그러다 다시 건물 옥상으로.
몇 년 전 거의 천만에 가까운 관객을 동원한 영화, 유독 가스를 피해 건물과 건물을 뛰어넘어 안전한 곳까지 대피하는, 유명한 재난 영화의 주인공처럼.
넉넉한 포스량, 그리고 스킬, 포스를 살짝 주입하면 자동으로 발현되는 은신막, 포스 폭발로 연속적으로 펼칠 수 있는 바람길 산책의 순간 가속.
팟! 팟! 팟!
목적지에 도착하는데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357동이었지?’
그리고 5004호면 50층, 맨 꼭대기 층.
‘쉽겠네.’
옥상까지 올라가서 벽 타고 내려오면 된다.
그러나 여기까지 오느라 포스가 바닥이 났다.
순간 가속을 얼마나 많이 했는데.
‘조금만 쉬고 나서.’
시간이 지나 포스가 충분히 채워진 후, 찬웅은 다시 아파트 외벽을 통해 위로 올라갔다.
스슷! 타다닥! 타닥!
아파트 꼭대기에서 다시 5004호가 있는 쪽으로 다가가 옥상에서 슬금슬금 내려왔다.
에어컨 실외기 받침대에 발을 지지하고, 베란다 전망창을 통해 안을 살펴봤는데,
‘아무도 없구나.’
그저 넓은 거실 중앙에 커다란 캡슐 접속 장치만 덩그러니 놓여있었고, 방 쪽으로는···,
‘응?’
거실 옆방 베란다에 난 창문, 그런데 유리창 잠금장치가 있는 부분에 구멍이 뻥 뚫려있다. 사람의 손이 들어갈 만한 크기의 구멍 말이다.
‘설마···,’
안에서 유리창을 깼을 리는 없다.
‘박달환, 그놈이 했나?’
집에 찾아온 형사의 말로는 살인 용의자가 최고급 캡슐을 보유하고 있는 집에 침입해서 살인을 저지른다고 했다.
여기서 드는 의문점 하나.
집에 캡슐이 있는 걸 어떻게 알고?
물론 자신이 했던 것처럼 밖에서 유리창을 통해 보면 확인은 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긴 50층 아닌가!
‘가스 배관을 타고 옥상까지 올라가서 밧줄을 타고 내려왔을 수도···.’
그리고 나서 유리창을 깨트려 잠금장치를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아무리 신체 능력이 뛰어난 일반인이라도 보통 담력으론 할 수 없는 짓.
찬웅은 창문을 옆으로 밀어보았다.
열린다. 그럼 들어갈 수 있긴 하지만···,
‘불법침입이잖아.’
자신도 비슷한 일을 경험했기에 좀 꺼림칙하다.
물론 그땐 피해자였지만 문을 열고 들어가면 불법침입 가해자.
그러나 들어가야 한다.
그래야 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찬웅은 손을 뻗어 창문을 열었다.
베란다를 통해 다시 방의 창을 열어 들어갔는데···,
어두컴컴한 방안, 그리고 코를 덮쳐오는 시큼한 냄새.
결국 발견하고야 말았다.
방안에 널브러진 4구의 시신을.
‘···하아.’
죽은 지 얼마 안 돼 보인다.
지금 막 부패하기 시작하는 모양, 남성 세 명, 여성 한 명, 중년 부부로 보이는 두 사람과, 나머지 둘은 형제로 보이는 20대 청년들, 가족인 듯했다.
누가 이랬을지는 안 봐도 뻔하다.
순간 치솟아 오르는 분노.
손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가슴 속은 돌이라도 걸린 듯 숨이 콱 막혀왔고.
사람이 사람을 이렇게 잔인하게 죽여?
‘이 씨발 새끼!’
찔린 듯한 상처는 없는 것으로 보아 목이 졸렸거나 맞아서 죽은 듯했다.
남자가 세 명씩이나 있는데, 그것도 20대의 건장한 청년이 둘씩이나 있는데, 왜 저항을 못 했지?
바로 그때!
‘···이건?’
찬웅은 시체들 옆에서 둥글게 구부러진 무언가를 발견했다.
‘알루미늄 방망이?’
동그란 공처럼 말아져 있었고, 위쪽 두꺼운 부분은 움푹 들어가 있었다.
‘모양이···,’
사람의 손자국이다.
확실하다.
알루미늄 방망이의 윗부분을 잡아 손으로 힘을 주고 우그러뜨리면 저런 모양이 나온다.
그리고 힘을 주어 동그랗게 말아버린 것 같다.
어떻게 인간의 힘으로?
물론 자신은 너무 쉽게 할 수 있지만···.
‘···어?’
순간 찬웅은 깨달았다.
모든 의문이 실타래처럼 올올히 풀렸다.
‘포스, 포스의 힘이야.’
그랬다.
귀신작두 박달환.
그놈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현실 포스 능력자였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겠다.
놈은 일반인이 아니다.
현실에서 포스를 사용할 줄 아는 사람.
그럼 한발 물러서야 하나?
아니다.
오히려 더 확고해졌다.
반드시 지금 놈을 처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방 안에 있는 시신과 같은 안타까운 희생자들이 점점 더 늘어나게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