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아바타의 재능으로 동화율 돌파-18화 (18/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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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드라실 이벤트(2)

안내를 받아 고풍스러운 오두막으로 안내된 찬웅.

무슨 퀘스트일까?

코인 많이 많이 주는 거면 좋겠다.

“장로님.”

“스마엘? 너 무슨 일로···,”

엘프 장로 에루인, 겉모습은 가냘픈 여인.

하지만 제국 그랜드마스터 검신 카라카스 공작도 고개를 숙인다는 절대 강자.

“어? 이방인 나부랭이 새끼는 누구야?”

“저, 말 좀 가려서, 제가 장로님께 보여드리려고 특별히 부탁해서 모셔온···,”

“모셔왔다고? 내가 아무리 궁해도 인간을···, 응?”

무슨 이유에서인지 흠칫 놀란 에루인, 묘한 눈길로 찬웅을 아래위로 자세히 관찰했다.

“으흠, ···흠흠, 그래, 오!”

탄성도 지르고, 그러더니.

“나부랭이 새끼라는 말 취소, 미안, 미안, 이방인이라고 다 똑같은 새끼들이 아니구나.”

“장로님!!!”

“알았어. 그만 가봐. 얘하고 할 이야기가 있으니까.”

“네, 전 이만···.”

스마엘이 꾸벅 인사를 하더니 밖으로 나갔다.

뭐지? 이 생각지도 못한 상황은?

“저어···,”

“케이라, 자알 생겼다!!!”

“네?”

잘생겼다니, 대충 커스터마이징한 아바타인데.

“엘프든 인간이든 내면보다는 외면이 중요한 법이지.”

“어···,”

“볼 수도 없는 내면 따위 개나 주라고 해.”

잘생겼다는 말은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다.

이 아바타가 엘프한테 먹히는 얼굴인가?

“차 한잔할까?”

“···네, 그, 그러죠.”

솔직히 예상도 못 했다.

말투부터가 심상치 않은, 그것도 NPC 랭킹 최상위권에 위치하는 주요 인물, 엘프 장로 에루인, 그녀를 보게 될 줄도 놀랐고, 또한 저런 성격이었다니.

사실 직접 만나는 것조차 말이 안 된다.

제국 황제와 독대하는 경우와 다를 바 없다.

지금까지 그런 플레이어도 없었고.

탁자에 앉아 에루인이 건네주는 차를 한 모금 마셨는데.

“···이거 차 아닌데요?”

“차 맞아. 발효가 잘돼서 조금 시큼해졌을 뿐이지.”

무슨! 완전 술인데.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간단한 과거사 들어볼래? 반전도 있어.”

반전은 또 뭐야.

퀘스트 시작인 듯하니 들어보자.

“듣겠습니다.”

“그러니까 500년 전쯤, 인간과 아인종 사이에 대전쟁이 벌어졌지.”

뜬금없이 전쟁 이야기.

그것도 500년 전.

하지만 찬웅은 토 달지 않고 묵묵하게 들었다.

“근데 뭐가 일어났는지 알아? 대륙 곳곳에서 기이한 현상이 일어난 거야. 빠앙! 환경의 변화, 동물들의 변이, 마치 역병처럼,”

“···아! 침식.”

“그래, 침식. 그 때문에 전쟁은 끝났고.”

그건 시나리오에도 나오는 이야기.

침식지의 발호는 아이러니하게도 전쟁의 종식이라는 결과를 가져왔다.

“전쟁은 끝났지만 인간에게 붙잡힌 엘프들이 있었어. 물론 포로 교환이 이루어졌지만 풀려난 이들보다 숨겨진 이들이 더 많았으니까. 그들은 인간들의 노예로 비참한 삶을 살았고, 생각해봐, 인간 새끼들이 엘프들을 데리고 뭘 했겠니?”

맞다. 안 봐도 뻔했다.

“당시 난 엘프들을 책임지는 지도자였고, 씨발, 개 같은 인간 새끼들은 포로들을 내어주려 하지도 않잖아. 내가 어떻게 해야 했겠어?”

“그, 글쎄요.”

“죽였어.”

“네?”

누굴 죽였다고···.

“모조리 죽였지. 엘프들을 억류해서 숨겨둔 새끼들을.”

“···.”

“전쟁이 끝나서 엘프 지도자의 신분이라 그 짓거릴 하면 안 될 형편이었고, 그래서 얼굴도 바꾸고, 이름도 바꾸고, 신분도 바꾸고···, 엘프를 포로로 잡아 온갖 추악한 짓을 하는 인간들을 상대로 족족 대가리를 따고 다녔지.”

이건 시나리오상에도 나오지 않는 이야기.

에루인의 이야기는 계속됐다.

“당시 내가 어떤 이름으로 활동하고 다녔는지 알아?”

그걸 어떻게 알아?

에루인은 찬웅의 허리춤에 찬 도끼를 보며 말했다.

“루인, 암살자 루인.”

찬웅의 눈이 크게 떠졌다.

루인···, 에루인이 그 루인이었다고?

“일부러 이름을 그렇게 지었어. 두려워하라고. 그래서 나라는 걸 알아채고 항의가 많이 들어왔지만 딱 잡아떼면 지들이 어쩔 건데.”

“아!”

“그 도끼로 대가리 많이 깠지. 공포를 심어주려는 게 목적이었어. 엘프들을 건들지 마라, 포로로 잡은 종족들을 풀어줘라.”

솔직히 조금 놀랐다.

전설 아이템은 다른 아이템과는 달리 오직 하나만 있다.

전설이라는 등급답게 스토리텔링과 장비의 주인이 존재하며 듀플렉스 스페이스 세계관과 연결되는 식.

보통 아이템의 주인은 오래전에 사망한 사람이 대부분, 그러나 ‘암살자 루인의 앙증맞은 머리 따개’의 주인은 아직 생존해 있었다.

‘엘프들은 오래 사니까.’

기분이 묘하다.

도끼의 주인을 이런 곳에서 만나다니.

“잠깐 그 도끼 줘볼래?”

···혹시 원래 자기 거라고 빼앗아 가는 건 아니겠지.

“여기···.”

찬웅이 건넨 도끼를 만져보고, 휘둘러보고, 표면을 잠시 쓸어보기도 하더니, 이내 말했다.

“오랜만에 만져보니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네.”

사람 죽인 기억?

“근데 계속 가지고 있지 않으시고.”

“킁킁, 어후! 아직도 도끼에 피 냄새가 나는 것 같네. 뭐, 나라고 죄책감이 없었겠냐?”

없는 것 같은데.

“아무튼 목적을 어느 정도 달성한 후, 이호라투 산맥의 호수 깊숙한 곳에 던져버렸어, ···근데 이걸 어디서 얻었어?”

뭐라고 말해야 하지?

진실이 답, 사실대로.

“장비 확정 랜덤 박스···,”

NPC들은 랜덤 D박스를 어떻게 인식할까?

“아하, 주신(主神)께서 주신 거구나. 그래. 그럼 니꺼지.”

에루인은 다시 머리 따개를 찬웅에게 돌려줬다.

“이 도끼와 상성이 맞는 기술도 몇 개 있는데, 그것도 배웠어?”

찬웅이 배운 액티브 스킬은 단 하나.

“비열한 습격이라고 투척 스킬 하나만···,”

“그것도 주신이 내리신 거?”

“맞습니다. 랜덤 박스에서 나온 거죠.”

“역시 주신의 꼼꼼하신 안배란···. 비열한 습격도 내가 쓰던 기술이야. 평화로운 분위기에서 서로 조근조근 협상하다가, 수틀리면 선빵을 빡!”

“···.”

스킬 이름 참 잘 지었다.

은근히 목소리를 낮추며 말을 건네오는 에루인.

“비열한 습격 말고도 두 가지 기술이 더 있는데, 혹시 배워보실 생각은 있냐?”

생각이라니!

가르쳐주면 좋기야 하지.

“생각 있습니다.”

“좋아! 공짜는 없다는 건 잘 알겠고.”

맞다. 공짜는 없다.

이곳 듀플렉스 스페이스 대륙에서도 통용되는 법칙.

과연 조건이 뭘까?

“코인을 드려야 하나요?”

“그깟 코인 가지고 뭘 하게? 우리 돈 많아. 약초만 캐다 팔아도 나라 하나는 살 수 있어.”

“그럼 어떤 걸 대가로···”

“너도 알다시피 듀플렉스 대륙에는 다수의 침식지가 있잖아. 침식지마다 서식하는 몬스터들이 다르고.”

“그렇죠.”

“이 로그드라실의 침식지를 지배하는 우두머리는 미쳐버린 그린 드래곤, 광룡 레지키쓰론이거든.”

설마,

“광룡 레지키쓰론을 잡으라고···.”

“호호호, 내가 미쳤냐? 나도 못 잡는 걸 너한테 떠넘기겠어?”

다행이다.

최소한 드래곤 잡으라는 소리는 아니다.

“내가 말하는 조건은 웨이브 방어전 참가야.”

“웨이브?”

“어, 광룡 레지키쓰론이 주관하는 몬스터 웨이브.”

몬스터 웨이브.

침식지마다 몬스터 종류들이 다른 만큼 특색도 다르다.

이곳, 로그드라실의 침식지, 굉장히 익숙한 전통적인 판타지 몬스터, 코볼트, 고블린, 오크, 트롤 등등은 인간보다 못하지만 지능을 갖추고 있었다.

하물며 보스인 광룡 레지키쓰론은?

찬웅이 이곳에 오기 전에 활동했던 카쟌 침식지 벌레들은 좀처럼 자신이 사는 지역을 벗어나진 않는다.

그리고 이지(理智)가 없어 본능으로만 움직인다. 보스인 타락 선인장도 마찬가지고.

그러나 이놈들은 다르다.

침략, 그리하여 침식지의 권역을 넓히려는 욕망을 가진 놈들, 그래서 때때로 대규모 웨이브를 통해 침략 전쟁을 벌인다.

“그럼 로그드라실에 몬스터 웨이브 이벤트가 일어난다는 말씀이신가요?”

“맞아. 그것도 곧, 조만간에 신의 계시가 내려올걸?”

“아하.”

신의 계시.

다른 말로 이벤트.

듀플렉스의 NPC들이 부르는 ‘신의 계시’란 게임회사에서 플레이어들을 상대로 여는 ‘이벤트’와 같다.

“로그드라실 웨이브 방어에 참여해.”

“으음, 그건 어렵지 않지만 왜 하필 저를, ···참여는 둘째치고, 보탬이 되기나 할까요?”

게임을 시작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았다.

동화율이 급상승하긴 했지만 자신보다 더 높은 수준의 용병 플레이어도 많고, 이벤트하면 알아서 모일 텐데 왜 굳이?

듀플렉스 스페이스 가상현실에서 이벤트는 일종의 축제, 퀘스트가 넘쳐나고 수천수만 개의 랜덤 D박스가 뿌려진다.

특히 웨이브 이벤트는 용병 플레이어만을 위해 벌이는 축제의 장.

이벤트에 참가하는 것만으로도 행운이긴 한데 NPC가, 그것도 엘프의 지도자라고 할 수 있는 장로 에루인이 자신을 콕 집어서 참가를 유도해?

그녀의 답은 간단했다.

“재능이 있으니까.”

“···글쎄요. 전 잘 모르겠는데.”

“있어. 날 믿어. 참가할 거야, 말 거야?”

그때였다.

띠링!

[퀘스트가 발동됐습니다.]

- 로그드라실 웨이브 방어전 참여 제안

- 제안 수락 : (거절/수락)

- 보상 : 스킬 진(眞) 바람길 산책, 스킬 진(眞) 별빛 가르기.

‘···.’

퀘스트 발동이야 전혀 이상하지 않지만, 보상이···,

“진(眞) 스킬?”

찬웅의 혼잣말에 궁금한 표정으로 되물어오는 에루인.

“방금 뭐라고 했어? 진(眞) 스킬?”

“네, 진(眞), 진 스킬요.”

“스킬이 다 진짜지. 가짜 스킬도 있나? 어쨌든 내가 가르쳐 줄 스킬은 몸을 움직이는 방법과 근접에서 도끼를 쓰는 방법이야.”

에루인은 진(眞) 아이템을 모른다.

그렇게 보인다.

“으흠, 부담되어서 그런 거라면 다음 기회에,”

“아, 아닙니다. 수락하겠습니다.”

“좋아.”

띠링.

[아바타 케이가 퀘스트를 완료하셨습니다.]

- 로그드라실 웨이브 방어전 참여 (수락)

퀘스트 완료, 그럼 보상은? 어떻게 주려고, 스킬 구슬?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잠잠한 시스템 알림.

“자, 그럼 가자!”

“어디로요?”

“심상의 공간.”

“네?”

“한번 가봤잖아, 용병 시험 칠 때.”

“아하. 근데 거긴 왜요?”

“나한테 스킬 배워야지”

뭐야!

직접 가르쳐 준다는 의미?

그리고 환경이 변했다.

※ ※ ※

경찰, 군부대, 국정원까지 벌인 각성 플레이어 체포 작전은 결국 실패했다.

최기병으로선 예상했던 결과였다.

“나노칩 추적 장치가 작동하지 않았나?”

“아닙니다. 정확하게 작동했습니다.”

“그런데 왜?”

“그, 그게···, 추적해서 잡았더니 고양이가,”

“고양이라니?”

“고양이 배속에 추적 장치가 있었습니다. 놈이 자신의 몸속에 있는 걸 빼내어 고양이에게 먹인 것 같습니다.”

“하아.”

비상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행정 안전부 장관이 주재, 경찰청장, 군 사령관, 국정원장, 최기병까지 참석한 회의.

행정 안전부 장관이 말했다.

“어떻게 찾을 거야? 이미 희생자가 발생했어. 구로동 주택가에서.”

“···.”

“···.”

아무도 말하는 이가 없다.

놈은 벌써 살인을 저지르고 있었다.

문제는 그걸 막을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것.

결국 최기병이 나섰다.

“직접적인 방법은 없지만 간접적인 방법이 하나 있긴 합니다.”

“최팀장, 말해보게.”

“박달환은 게임은 끊을 수가 없습니다. 분명 어디선가에서 접속하고 있을 겁니다.”

“근거는?”

“게임은 일반인들에겐 유희지만 각성 플레이어에겐 자신의 힘을 강화하는 수단입니다.”

“그렇지.”

“그래서 게임에서 놈을 죽여 동화율을 하락시켜야 합니다.”

미덥지 못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는 행정 안전부 장관.

“그게 효과가 있나?”

“있습니다. 놈은 동화율 150%대의 랭커입니다. 사망 페널티도 상당히 높죠. 게임 안에서 죽으면 동화율과 반영률이 동시에 하락할 겁니다.”

“으흠, 그럼 실제 현실에서도 놈의 힘이 약화될 거다?”

“네. 확실합니다. 다만···,”

“뭔가?”

“어느 정도는 공개해야 합니다.”

“공개?”

“박달환의 아바타 명 [귀신작두], 비록 각성 플레이어라는 사실은 숨긴다고 하더라도 그 플레이어가 살인사건의 용의자라는 건 밝힐 필요가 있죠.”

“흐음, 그 정도는 뭐, 좋아, 그건 최팀장이 알아서 하고,”

경찰청장도 방안을 냈다.

“만약 놈이 게임을 계속하고 있다면 분명 최고급 접속 캡슐을 이용하고 있을 겁니다. 캡슐 소유자를 중심으로 탐문수사를 실시하겠습니다.”

“명단이 있나? 듀플렉스 게임회사에서 이용자 정보는 철저하게 보호하고 있는 걸로 아는데,”

경찰청장의 제안을 거들어주는 최기병.

“가능합니다. 전부는 아니지만 ASP에서 자체적으로 조사한 명단이 있습니다.”

“그래? 그럼 청장도 수고해주시고, 국정원과 군의 계획은 어떠신가?”

“···.”

“···.”

“없나 보군. 그럼 경찰과 ASP, 서포트라도 해주게.”

난감했다.

워낙 재빠르고 조심성 많은 신출귀몰한 놈이라 현실에선 마땅히 놈을 잡을 방법이 없다. CCTV도 무용지물이니,

결국 그 방법이 최고다.

게임에서 놈을 만나 찾아 죽이고 또 죽여서 동화율을 바닥으로 떨어뜨리는 방법, 일반인과 다름없는 수준이 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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