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아바타의 재능으로 동화율 돌파-17화 (17/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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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드라실 이벤트(1)

제일 처음 각성 플레이어를 발견하고 그들을 통제하기 시작한 나라는 미국이었다.

한국은 후발주자 중에서도 많이 느리고,

그래서인지 고작 하나밖에 없는 각성 플레이어를 관리하는 일도 쉽지만은 않았다.

결국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놈은 모두를 속였다.

어두운 밤, 경기도 남양주 외곽의 한 작은 별장.

최기병 팀장은 별장 현관문을 열었다.

끼이익,

천천히 열리는 문.

현관부터 두 명이 죽어있었다.

최기병에게 보고하는 현장 감식 요원.

“국정원 요원들입니다. 도망치려다 죽은 것 같습니다.”

“후우···”

타일 바닥, 문, 신발장까지 붉게 칠해진 선혈.

현관을 지나 거실로 들어갔다.

별장 거실, 최고급 캡슐형 접속장치 주위에도 3구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날카로운 칼에 베인 듯 1구는 목이 잘렸고, 2구는 심장이 찔려 과다출혈로 사망한 것 같다.

“제기랄,”

거실의 시신들은 각성 플레이어 전담반 소속 직원들, 그중 한 명은 고향 후배, 꿀 빠는 직장이라며 자신이 직접 데려왔다.

싫다고 하는 걸 굳이 꼬셔서.

‘···미안하다. 정말 미안해.’

가슴이 미어졌다.

후회, 자책, 그리고 놈에 대한 분노.

하지만 감정을 드러낼 순 없다.

자신은 책임자니까.

마음을 정리한 최기병이 감식을 하고 있는 요원에게 물었다.

“가족들에겐 연락했나?”

“아직···,”

“그래, 내가 연락하지.”

치밀어오르는 욕지기를 가까스로 참고 최기병은 거실을 가로질러 침실 안으로 들어갔다.

역시 바닥에 쓰러진 2구의 시신, 혈흔은 보이지 않았다.

“하아,”

“경추를 한 번에 부러뜨렸습니다.”

최소한 고통 없이 갔을 터, 하지만 참혹한 희생이었다.

고개를 돌려 침실 안을 훑어보는 최기병, 그리고 발견했다. 침대 위에는 보란 듯이 올려져 있는 피 묻은 마이크로 칩을.

“개자식!”

추적 및 제어 장치.

놈은 자신의 몸속에 삽입한 마이크로 칩을 살덩어리와 함께 손으로 직접 뜯어냈다.

“CCTV는? 놈이 어디로 갔는지 찾았어?”

“서울로 숨어든 것 같답니다. 방금 전 송파구에서 놈이 타고 간 차량을 발견했다고···.”

남양주 별장에서 관리를 받고 있던 각성 플레이어 박달환, 국정원 및 ASP 요원 7명을 살해하고 이곳을 탈출했다.

조사를 위해 파견된 국정원 이필동 과장에게 최기병이 물었다.

“이과장님, 현 상황은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가용 병력 총출동시켰습니다. 서울 전체, 아니 경기도 일대를 작전 구역으로 정하고 군부대, 경찰과 함께 합동 수색 중입니다.”

“추적은 잘 됩니까?”

“수도권에 있다면···, 반드시 찾습니다.”

이필동 과장은 자신했다.

놈도 간과한 것이 있다.

추적 장치를 하나만 심었을까?

마이크로 칩은 작지 않은 크기라 알아차릴 수 있다지만, 각성 플레이어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미세한 크기, 그래서 주사기로도 주입할 수 있는 나노칩 추적 장치는 절대 못 찾을 것이다.

단점이 있다면 탐색 반경이 좁은 것이 문제.

그것도 인력을 투입하면 된다.

이필동 과장의 자신에 찬 표정, 그러나 최기병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진작에 제거했어야 했어.’

시한폭탄 같은 놈이었다.

잔인하고 흉포한 사이코패스.

박달환의 아바타 네임은 [귀신작두].

듀플렉스 스페이스 가상현실 게임에서 놈은 원래 PK 플레이어, 용병들 사이에선 꽤 유명했다. 왜냐하면 카시우스 제국의 현상금 목록에 이름을 올린 놈이니까.

용병을 시작한 이유가 바로 PK,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가상현실이 가진 극도의 현실감으로 실제 사람을 죽이지 않아도 죽인 것처럼 기분을 낼 수 있어서란다.

가상현실에서 살인을 저지른다.

그것도 진짜와 똑같이,

아바타를 PK 하는데 경찰에 잡혀갈 일도 없고, 계속해서 그 쾌감을 맛볼 수 있다.

그러다가 플레이어들에게 유명세를 타게 되고 자신을 슬슬 피하게 되자 NPC로 눈을 돌렸다.

자유도 또한 높은 가상현실 게임.

NPC를 대상으로 한 납치, 고문, 살인, 그리고 유사 강간, 입에도 담기 힘든 추악한 짓거리를 태연하게 저질렀고, 당연히 NPC에게도 쫓기게 된 것.

어처구니없게도 그걸 자랑으로 여기는 놈, 자신의 SNS에 ‘듀플렉스 정화 일기’라는 기록을 남기면서 각성 플레이어 전담반(APS)의 주요 감시 대상이 되었는데···,

그러다 놈이 각성했다.

박달환이 SNS에 올린 일기에서 ‘난 현실에서 신(神)이 되었다. 가상이 아닌 실제 세상 또한 나에 의해 정화될 것이다’라는 문구를 발견하고는 경찰 특공대와 군 특수부대를 동원해 놈의 집을 급습, 신병을 확보했다.

‘그때 그냥 죽였으면···.’

처음부터 최기병은 박달환을 제거해야 한다고 상부에 보고를 올렸다.

위험했다.

게임에서 그 짓거리를 하고 다니는 놈이다.

현실에선 공권력 때문에 본성을 억누르고 있었고,

그러나 상부의 입장은 달랐다.

놈을 회유해서 포섭하라.

정부는 놈을 활용할 생각이었다.

어쩔 수 없었다.

명령대로 하는 수밖에.

비밀 안가에 격리해 마이크로 칩을 심고, 정신과 의사도 불러 상담하게 하고, 또 포스의 힘이 어떤 식으로 발현되는지 연구도 하고,

의외로 놈은 순순히 협조했다.

게임만 하게 해준다면 시키는 것이 뭐든 다 하겠다고 했다.

아마 고개를 바짝 숙이면서 속으로는 계산기를 두드렸을 터.

자신의 힘이 어느 정도 되는지, 공권력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지, 절대 잡히지 않을 자신이 있는지.

그리고 놈은 기어이 결행하고야 말았다.

전화를 받던 국정원 이필동 과장이 실실 웃으며 다가왔다.

개새끼, 사람이 몇이나 죽었는데, 저따위 표정을 지어?

“최팀장님.”

“···네.”

“박달환이 신호 포착했습니다.”

“어디랍니까?”

“구로구 쪽입니다. 현재 특수부대와 요원들이 수색 중입니다.”

“국정원 입장은 아직 변하지 않았습니까? 설마 생포하려는 건 아니겠죠?”

“후우, 저희도 책임을 통감하고 있습니다. 일이 이렇게까지 되었는데, 당연히 사살해야죠.”

하지만 너무 늦었다.

이제라도 바로 잡으면 되지만···.

“잡을 수 있겠습니까?”

“당연합니다. 이번 경우는 방심에 의한 실수일 뿐, 대비하고 들어가면 놈은 죽은 목숨이죠”

웃기고 있네.

그렇게 쉬울 것 같았으면 모잠비크 공화국 사건은?

솔직히 이게 다 좆같은 국정원 때문이다.

각성 플레이어를 국가 요원으로 끌어안아야 한다고, 쓸모가 많아서 나라를 위해 큰 보탬이 될 전력이라고, 다른 나라들도 다 하는 거라고, 우리가 늦은 거라고, 그렇게 설레발을 치더니,

잘못된 판단으로 무려 7명이 죽었다.

고삐 풀린 사이코패스 살인마가 인구 천만의 도시 서울로 숨었다.

“섣불리 접근하면 큰일 납니다. 자칫하면···,”

“뭐, 이쪽은 우리가 전문가니까, 걱정 마십시오.”

“···.”

최기병은 불안했다.

너무 쉽게 생각한다.

물론 아무리 각성 플레이어라 하더라고 총을 맞으면 죽는다. 제아무리 단단하다 한들, 방탄복도 뚫어버리는 철갑탄 맞으면 몸에 구멍이 뻥뻥 나지.

하지만 안 맞으면?

가만히 서서 나 과녁이오! 하는 식으로 맞아줄까?

사망한 요원들도 개인 화기쯤은 다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총을 꺼내지도 못했다.

놈을 처음 발견했을 때, 아직 놈의 각성이 완전치 않았을 때, 머리통에 총알을 박아 넣었어야 했다.

APS, 각성 플레이어 전담반은 그럴 권한도 있었고,

그러나 정치질 때문에 국정원이 개입하고, 구(舊) 기무사였던 군사안보지원사령부도 숟가락을 얹고···, 그래서 이런 꼴이 났다.

‘씨발, 우리보고 책임지라고 하겠지.’

최기병도 게임을 좋아한다.

특히 몬스터를 죽이고, 레벨을 올리고, 좋은 장비로 업그레이드하고, 심지어 PK도 많이 해봤다.

그러나 그건 컴퓨터 게임, 그냥 화면을 통해 그럴싸하게 만든 그래픽으로, 게임 캐릭터를 마우스와 키보드 클릭하여 움직이는 그런 평범한 게임, 어린 잼민이가 해도 잘하는 게임.

그거 잘한다고 진짜 현실에서도 잘 싸우나?

하지만 듀플렉스 스페이스는 다르다.

너무나 현실 같아서 보통 사람들에게 용병은 너무 장벽이 높은 직업, 그래서 용병이 될 수 있는 플레이어는 제한적, 그걸 재능이라 부르는 거고,

용병의 재능이란?

보기만 해도 무시무시한 몬스터와 맞설 수 있는 용기, 판단력, 과감함, 잔인성···, 이런 거다.

박달환은 용병 중에서도 동화율 150% 넘는 랭커, 그 힘을 현실에서 풀어낸다면···.

최기병은 확신했다.

아무리 훈련받은 군인들과 요원이라 하더라도 놈을 잡기엔 역부족이라는 걸.

‘어쩌면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르지. 추적 장치가 하나 더 있다는 걸.’

※ ※ ※

화악!

넓은 평지에 나타난 찬웅의 아바타 케이.

저 멀리 하늘을 찌를듯하게 높이 솟아오른 거대한 나무가 보인다.

로그드라실.

비교적 자유로운 인간들의 도시와는 전혀 다르다.

특히 이방인, 플레이어 마음대로 활동할 수 없다.

먼저 허락부터 받아야 한다.

흔히 엘프들의 도시가 숲으로 이루어진 곳이라 상상할만하지만 여긴 그렇지 않다.

오래된 석조건물과 아름드리나무 사이로 구불구불 이어진 도로, 그 옆을 흐르는 시냇물, 징검다리, 마치 공원 같은 느낌.

친환경 도시 그 자체.

찬웅은 아름다운 도시의 모습을 감상하며 미리 수집한 정보를 바탕으로 제일 먼저 가야할 곳을 향해 걸었다.

전당은 전직 시험만 치르는 곳이 아니라 활동의 편의를 위한 업무도 함께 처리해준다.

전당 앞에 길게 늘어선 줄.

맨 앞에서 모델 같은 엘프가 무표정하게 손등에다 도장을 찍어주고 있었다.

‘손등 도장이 허가증 같은 건가?’

그 옆에서 활과 검을 들고 매의 눈으로 지켜보는 레인저 엘프들, 엘프라면 레인저지.

아무리 동화율이 높은 용병이라도 섣불리 설칠 수 없는 이유, 순수한 무력으로만 따지자면 NPC, 즉 듀플렉스 스페이스의 원주민들이 훨씬 강하다.

하지만 이들도 약점이 있다.

바로 침식지다.

이건 상성의 문제.

NPC들은 침식지 몬스터들을 만나면 맥을 못 춘다. 게다가 오래 접촉하면 NPC들도 침식되어 괴물로 변하고.

포스를 익힌 용병들이야 침식지는 코인 채굴 광산, 뭐, 죽어도 동화율 하락에 3일 접속 제한 정도의 페널티만 받고 다시 살아나니까.

NPC들은 웬만해선 침식지 몬스터와 싸우려 들지 않는다. 그래서 용병의 존재가 필요한 것이고, 엘프들도 용병을 벌레처럼 싫어하지만 그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플레이어들은 손등에 도장만 받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와! 진짜 씨늘하다. 비수가 날아와 꽂히는 느낌이야.”

“우리가 그렇게 싫을까?”

“우리도 책임은 있지. 게임 초기 플레이어 새끼들이 로그드라실에서 별짓을 다 했잖아.”

“아니, 내가 그랬냐? 내가 그랬어? 졸라 비싸게 구네. 입력된 프로그램 주제에.”

“그니까. 어떤 프로그래머 새끼가 컨셉을 이딴 식으로 잡았어?”

“그래도 보는 것만으로 좋아. 향기도···.”

“우리 업계에선 보상이지.”

하지만 성격은 얼음처럼 싸늘하지만 남자 여자 가릴 것 없이 예쁘고 늘씬한 엘프들,

그러나 하는 짓은 꼰대 중에 꼰대.

‘유교 탈레반 엘프 왕국’이란 말이 괜히 나온 것 아니다.

“야! 나 딴 데로 간다. 넌?”

“···난 좀 더 있다가.”

“변태 새끼.”

“뭐, 뭐가 변태야?”

“은근히 통제당하는 거 좋아하지?”

“···.”

찬웅도 줄을 섰다.

도장이나 받고 사냥하러 가자.

이윽고 차례가 왔다.

역시 다른 사람들처럼 자신에게도 손도장을 찍으려다, 갑자기 뚫어지라 자신을 바라보는 엘프.

‘왜 째려보는 거야?’

그러더니.

“케이님, 무슨 일로 이곳에 오셨죠?”

옥구슬 굴러가는 청량한 음성, 순간 사람들의 시선이 찬웅의 아바타 케이에게 쏠렸다.

“어?”

“뭐야?”

“탈레반 엘프가 왜 저렇게 다정해?”

“저 새끼는 뭔데? 케이?”

“와아, 이거 차별 아니야?”

솔직히 찬웅도 당황했다.

엘프의 얼굴엔 옅은 미소까지 어려있으니.

왜 왔냐고 물었으니 답이나 해주자.

“···용병이 여기 뭐하러 왔겠어요. 사냥하러 왔죠.”

“그래요. 잘 오셨어요. 로그드라실에 온 걸 환영해요.”

“으음, 네.”

그리고 찬웅의 허리춤에 걸린 쌍도끼를 힐끗 보더니.

“혹시 시간이 있으시면 우리 장로님 한번 뵙는 게 어떠실는지.”

“네? 장로님이라면···,”

“에루인 장로님이요. 으흠, 처음 만나면 당황하실 수도 있지만 그래도 좋은 분이세요.”

당황이라.

엘프 장로 에루인이라면···, 듀플렉스 스페이스 세계의 절대자 중 1명.

비유하자면 러시아 대통령을 독대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래서 이미 당황하고 있는데.

“만나보실래요?”

“···네.”

“절 따라오세요. 안내해드릴게요.”

듣던 거와는 달리 상당히 친절하네.

‘아무튼 분명 퀘스트야.’

그럼 무조건 받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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