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아바타의 재능으로 동화율 돌파-15화 (15/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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섰다!

듀플렉스 스페이스의 영향을 받아 초인이 된 각성 플레이어는 극히 적다.

가상현실 게임을 즐기는 사람은 약 20억, 그중에 용병 플레이어 숫자는 추산해볼 때 0.02%인 40만 명, 아니 그보다 더 적을지도 모르지, 아무튼 그중에서 과연 몇 명이나 각성했을까?

사실 꽤 있다.

철저하게 통제되어 밝혀지지 않았을 뿐.

6개월 전, 아프리카 모잠비크 공화국에서 대통령 일가가 몰살당했다. 대통령궁이 불에 전소되어 단순한 화재 사건으로 종결지었지만 아는 사람은 다 안다.

각성 플레이어가 벌인 짓이라는 걸.

용케 불에 타지 않고 남은 CCTV 하드 저장장치에 남겨진 영상, 독재자인지라 자신의 경호는 철저하게 하는 편인데도 단 한 명의 침입을 막지 못했다.

너무 빨라서 화면으로도 움직임을 쫓을 수 없을 정도, 느린 재생으로 천천히 돌려봐야 확실하게 판별할 수 있었다.

날 선 정글도 하나만을 가지고 들어와 대통령궁을 지키는 군병력을 하나하나 조용하게 처리하는 장면, 소름이 끼쳤다.

총이 무슨 소용인가?

자신이 기습을 당하는지도 모른 채 죽어버리는데, 알아챘다 하더라도 이미 정글도가 심장을 찌르고 있었고,

이 영상을 본 미국 백악관 정부는 발칵 뒤집어졌다.

한국도 그랬고.

서로 사이가 좋지 않은 나라들이 있다고 치자.

그중 한 국가에서 각성 플레이어를 포섭해 다른 국가로 보낸다면? 영상에 나왔던 암살자처럼 말이다.

어떻게 막나?

각성 플레이어 전담반(Awaken Player Squad), 최기병 팀장은 오늘도 제시간에 퇴근하지 못하고 근무 중이다.

업무는 비교적 단순하지만 그에 비해 양은 너무 과중하다. 그래도 자신은 조금 나은 편, 최소한 교대 근무는 하지 않고 있으니까.

본부 건물엔 의자형과 캡슐형을 포함 약 100여 개의 접속 장치가 있다. 곧 있으면 50기가 더 들어온다.

군부대나 국가기관에서 충성도가 높은 인원을 선발해서 기초 교육이 끝나는 대로 현장에 투입할 예정, 재능이 있으면 용병 플레이어로, 그렇지 않으면 각성자 탐색조로.

또 하나,

가장 중요한 업무.

바로 각성 플레이어를 관리하는 일

“박달환이는? 순순히 말을 잘 듣고 있나?”

“굉장히 협조적입니다.”

“그래도 방심하지 마. 그놈이 어떤 자식인지 잘 알고 있지?”

“명심하고 있습니다.”

경기도 외곽, 안가에 격리되어 보호를 받는 각성 플레이어.

현재 국정원과 전담반이 함께 관리하는 중.

“참! 정규광 회장 건에 보고드릴 내용이 있습니다.”

“진(眞) 아이템이겠지?”

“정회장 아바타 네임이 [성실친절정직]인건 알고 계시죠?”

“알아.”

“캬쟌 침식지 보스 레이드 실패 이후, 도시 안에서 한 명의 용병 플레이어와 거래를 한적이 있다고 탐색조가 알려왔습니다.”

“상인이 거래하는 건 당연한 거지.”

“그게···, 제발 물건을 팔아 달라며 애걸복걸하는 모습을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는 증언이 있습니다.”

“뭐?”

화정 그룹 정규광이?

상인 직업이라 그렇지 동화율이 150%대인 플레이어, 그래서 웬만한 상인 NPC보다 영향력이 더 큰 플레이어다.

즉 꽤 거물이라는 의미, 안에서도, 밖에서도.

“출처는? 믿을 만해?”

“우리 직원 중 한 명이 카쟌 시내 광장에서 장사하는 복수의 NPC 노점상들에게 탐문한 결과, 알아낸 정보입니다.”

“정규광이 그깟 아이템 때문에 고개 숙일 인물은 아니잖아. 그렇다면···,”

“네, 진(眞) 아이템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전 확신하고 있습니다.”

현질로 뽑아낸 것이 아니라 거래로 획득했다는 말인가?

“거래한 용병 플레이어는? 알아봤어?”

“네, 성별은 남자, 아바타명 [케이]입니다.”

“케이라···,”

너무 흔한 이름이다.

이름에서 국적이나 문화의 냄새도 나지 않는 지극히 평범한 아바타 명 케이.

“직원들 파견할까요?”

“으흠, 됐어. 굳이 뭐하러?”

거래는 이미 끝났다.

그 귀한 진(眞) 아이템을 하나 더 가지고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고.

“그런데 조금 미심쩍은 부분도 있어서,”

“뭔데?”

“정규광의 아바타가 여전히 카쟌에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도시 안에서 아바타 케이의 행방을 수소문하고 있답니다. 심지어 케이가 사냥하는 침식지로 가다가 PK 플레이어들에게 걸려 사망했다고,”

“엥?”

그 쫄보 양반이 몬스터가 득시글거리는 침식지에?

지가 주최하는 보스 레이드 할 때도 도시에 숨어 나오지 않던 정규광이···,

“거래는 끝났을 테고, 그래도 계속 만나고 싶어 한다, 게다가 안달이 나서 성문 밖을 나섰다, ···그 케이라는 플레이어에게 뭔가가 더 있다는 말이군. 이를테면?”

“진(眞) 아이템.”

“하!”

한 개인이 하나 이상의 진(眞) 아이템을?

혹시 권력자나 부자?

아니다. 그러면 정회장과 거래할 이유도 없다.

“대응 방안은?”

“현재 카쟌으로 5명의 요원을 보냈습니다. 케이와 접촉해보겠습니다.”

“신중하게 접근해봐.”

※ ※ ※

가르침은 일방적인 건 아니다.

배우는 것도 많다.

특히 상큼한 딸기는 생각보다 재능이 있다.

징그러운 것을 싫어하는 성격만 고치면 말이다.

“또또, 몸이 뻣뻣하게 굳어버리네.”

“···.”

“저기요. 눈 감고 때릴 거면 다른 직업 찾아보세요.”

“···.”

“슥! 팍! 푹! 슥! 팍! 푹!”

“아이씨, 알았어요! 슥! 팍! 푹!”

그래도 깨우치긴 했다.

조금이나마 두려움을 극복하고, 집중하여 전진하고, 정해진 표적을 확실하게 공격한다. 그게 몬스터 사냥의 전부.

말은 쉽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확실히 재능은 있네.’

처음엔 위험한 상황도 많이 벌어져 어쩔 수 없이 함께 싸워줘야 했지만 지금은 간간이 거드는 정도.

“아싸! 또 돌파!”

딸기는 동화율 올랐고 찬웅도 올랐다.

이제

거기에 독식 분배 방식으로 코인은 고스란히 자신에게 들어오고 있었고.

그러고 보니 코인도 꽤 모았다.

상자 10개 깔 정도는 된다.

‘대기실에 가서 까자.’

슬슬 카쟌을 떠날 때가 된 것 같다.

원래는 여기서 방울뱀 잡고, 낙타 잡고, 왕도마뱀까지 잡아서 동화율을 돌파하고자 했지만 여의치 않다.

질척대는 [친절성실정직] 정규광 회장에다, 3일 후에나 볼 수 있겠지만 어쨌든 적대관계가 되어버린 [퍼킹 리버풀]의 PK 파티, 그리고 [상큼한 딸기]까지.

게임에 방해가 되는 요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으니.

게이트를 하나 달아둔 터라 목적지만 입력하면 지금 바로 갈 수도 있다.

그래서.

“이만하죠. 보니까 파티에 낄 실력 정도는 된 것 같은데.”

“아, 안 돼요. 아직.”

“저도 한가한 건 아니라서요. 로그아웃할 겁니다.”

“···알았어요.”

살짝 풀이 죽은 딸기.

“그럼 언제 재접하시죠?”

“글쎄요. 한다고 해도 이곳을 떠날 거라,”

“네? 어, 어디로.”

“정해진 곳은 없어요.”

알려주기 싫어 완곡하게 표현했다.

그녀도 눈치는 있어 더는 물어보지 않았지만.

“친구 신청을···,”

“안 할 겁니다.”

“···되게 단호하시네요.”

“그냥 게임에 집중하고 싶어서요. 메시지가 자꾸 뜨면 신경이 쓰여서.”

“메시지는, 으음, 하루에 한 번 보내서 대답 안 하면 더 이상 안 보낼게요.”

하아,

이젠 거절하기 뭣하다.

“···요청하세요. 수락해 드릴 테니.”

“네!”

친구 요청 들어온 걸 수락해주고.

“전 이만,”

“잠깐만요.”

대기실로 귀환하려는 찬웅을 부르며,

“신여은!”

“뭘···,”

“제 실명요. 신여은, 국적은 한국.”

“네네, 이름 좋으시네요.”

스웅!

“너무해!!!”

상큼한 딸기, 신여은의 원망 섞인 외침을 뒤로 하고 찬웅은 바로 귀환을 탔다.

자기 실명을 밝혔으니 너도 이름을 알려달라는 것 같은데, 누가 알려달라고 했나?

그나저나 또 한국인이었네.

하긴, 세화 길드 카쟌 침식지 레이드 건으로 이곳에 한국인들이 많이 몰려왔다는 얘긴 들은 것 같다.

익숙한 대기실의 정경.

이제 까보자.

랜덤 D박스, 10개 구입, 그리고 오픈!

[D박스에서 ‘강철 주괴’를 획득하셨습니다.]

오케이! 꽝!

[D박스에서 ‘헐거운 가죽 신발’을 획득하셨습니다.]

꽝!

[D박스에서 ‘썩은 양말’을 획득하셨습니다.]

‘이건 뭐,’

썩은 양말?

정말 푹 썩었다.

냄새까지 난다.

‘···나중에 버리자.’

[D박스에서 ‘중급 마정석’을 획득하셨습니다.]

‘마정석이라, 이거 꽤 많이 있는데, 또 나왔네.’

그 이후로 별거 없었다.

죄다 꽝!

하지만 주인공은 역시 마지막에 나타나는 법.

[D박스에서 ‘진(眞) 상급 치유 물약’을 획득하셨습니다.]

“···!”

너무 기뻐서 말도 안 나온다.

상급, 드디어 상급!

중급만 먹어도 무릎아래 감각이 완전히 돌아왔는데, 어쩌면?

‘이, 일어설 수도 있겠어.’

휠체어에서 일어난다.

흥분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얼굴이 붉게 상기된 찬웅.

‘지금 당장 로그아웃해서···, 아니지. 좀 가라앉히자.’

그전에 설정부터.

카쟌을 떠나기로 했으니.

찬웅은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은 강철문 앞으로 다가갔다.

‘어디로 설정해야 하나.’

그러다 든 생각.

‘마정석이 많이 모였어.’

전에 박스 5,000개 깔 때 최하급, 하급, 중급, 약 60개 정도의 마정석이 모였다.

이건 코인으로 바꿀 수 있다.

가장 거래가 활발한 곳이 마법사들의 나라 부유 왕국 테라퓨타, 마도 공학의 마키나 공화국.

그래서 찬웅은 결정했다.

‘로그드라실로 가자.’

판타지의 로망, 엘프와 세계수의 왕국.

맨날 몬스터만 잡나?

휴식도 있어야지.

마정석은 대기실에 뒀다가 나중에 필요할 때 팔면 되고.

찬웅은 손잡이를 잡았다.

[게이트와 연결된 장소가 없습니다.]

[도시를 설정해 주세요.]

“로그드라실!”

[한번 설정하면 한 달간 변경이 불가능합니다. 괜찮으십니까?]

“설정!”

[게이트 통로가 세계수 로그드라실로 설정되었습니다.]

그리고 로그아웃!

※ ※ ※

게임 안에서 마시는 액체는 물약, 비약, 영약으로 구분된다.

비약은 효과 유지 시간이 비교적 길다. 최대 72시간, 영약은 약효가 천천히 나타나지만 영구적이다.

물약은 유지 시간이 짧지만 즉효성, 먹으면 효과가 바로 나타난다.

배달된 상자에서 물약을 꺼내든 찬웅, 진(眞) 상급 치유 물약, 때깔부터 다르다.

천천히 밀랍을 벗기고 코르크 뚜껑을 따서,

퐁!

한 방울이라도 흘릴세라 조심조심 꿀꺽꿀꺽 마셨다.

물약이 식도를 타고 넘어간다.

찬웅은 휠체어에 앉은 채 잠시 기다렸다.

느낌이 올까?

‘온다!’

고관절 밑으로 느껴지는 감각, 뜨겁기도 하고, 근질근질하기도 하고, 확실한 건 힘을 줄 수 있다는 것.

찬웅은 양팔에 힘을 주어 휠체어 팔걸이를 잡았다.

그리고 천천히.

우뚝!

섰다.

“하하···, 흐으, 흐억,”

웃다가 웃으면 똥꼬에 털이 난다는데.

10년 만이다.

두 발로 당당히 선 것이.

아직은 걸음을 옮길 수 없다.

다리가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져 근육이 거의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휠체어 버리고 목발을 쓰자.

천천히 운동을 시작해서 근육을 키운다.

그리고 괜찮아지면 마음껏 뛰어봐야지.

하루 종일, 숨이 턱밑에 차오를 때까지, 심장이 터지기 직전까지!

※ ※ ※

영국 런던의 한 가정집.

폴 휴즈는 다 마시고 난 맥주캔을 벽에다 집어 던졌다.

팍!

“퍽! 퍼킹! ”

그 아바타 새끼 이름이 케이였지?

다행히 장비 드랍은 되지 않았지만 PK 판정으로 동화율이 5%나 하락했다.

“리버풀 새끼들보다 더 나쁜 새끼야.”

도저히 그냥은 못 넘어간다.

3일 후 접속하면 지인들 모아서 뒷치기라도 해야 직성이 풀리겠다.

그 빌어먹을 딸기년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오래된 팬이자, 듀플렉스 스페이스 아바타 네임, [퍼킹 리버풀], 폴 휴즈는 그렇게 다짐했다.

근데 아까부터 뒤통수가 왜 이렇게 아프지?

게임에서 케이라는 놈에게 도끼 맞은 곳과 같은 부위 같은데···.

※ ※ ※

서울 나산 병원, VIP 입원실.

침대 대신 캡슐 하나, 그 안에 가냘픈 젊은 여자가 누워 있었고.

서로 미소를 지으며 가수면 상태의 그녀를 바라보는 중년의 부부.

“여보, 우리 여은이 웃는 거 좀 봐.”

“좋은 일 있나 보네. 물어볼까?”

“놔둬요. 계속 행복한 꿈 꾸게.”

웃고는 있지만 부부의 마음은 그렇지 않다.

루게릭병, 근육 위축성 측색경화증.

금지옥엽, 꽃 같은 20대 나이, 귀하게 키웠던 딸이 불치병에 걸려 죽어가고 있으니, 하늘도 무심하다.

“그래, 좋은 꿈 꾸렴. 우리 딸.”

그 말을 들었는지 신여은의 미소가 더욱 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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