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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와 파티
쫓기는 아바타의 성별은 여성, 실제 플레이어는 남자일지도 모른다.
그런 사람들이 의외로 많으니까.
“그만 도망쳐. 어차피 못 벗어나!”
“무기만 살짝 땅에 내려놓으면 쫓지 않을···, 쌍년아! 거기서!”
“젠장, 저년을 우리 팀 윙어로 데리고 와야 하는데.”
“낄낄, 그거 좋은 생각이야.”
도와줘야 하나? 하지만 일이 어떻게 벌어졌는지 정확하게 모르는 판국에, 괜히 끼어들기에도 뭣하고,
여성 아바타의 네임은 [상큼한 딸기].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과일이 딸기이긴 한데.’
그것 아무런 관계가 없고,
‘아무튼 잘 싸우네.’
머리는 뒤로, 몸은 앞으로 달리기.
앞은 보지도 않는다.
추적자들을 보면서 화살을 날려 견제하고, 그러다가 탈것 탄 놈이 빠르게 접근하면 바로 검을 꺼내 휘두르고, 다시 거리를 벌리면서 화살!
용병의 미덕을 다 갖추고 있다.
원래 전투계열에는 원거리, 근접 따로 없다.
둘 다 잘해야 한다.
자신이 익힌 비열한 습격도 알고 보면 원거리 스킬.
‘그나저나 정말 낯이 익어. 아바타 네임도 그렇고, 기억이···,’
순간!
휙휙!
‘어?’
이쪽으로 온다.
왜 하필 이리로 와?
자리를 피할까?
하지만 어느새 [상큼한 딸기]가 찬웅 가까이 왔다.
빠르긴 빠르다.
그제야 찬웅을 발견한 모양.
“어? 누구세요?”
“···지나가는 행인이요.”
“헉헉, 도망쳐요. 빨리!”
나보고 하는 소린가?
“···내가 왜요?”
“나쁜 놈들이 쫓아오잖아요.”
“쫓는 사람이 반드시 나쁜 건 아니죠. 당신만 쫓아오는 것 같은데? 나는 상관없고.”
“저 자식들 PK거든요? 닥치는 대로 죽이고 다니는 놈들이에요.”
그런가?
“나 말고 당한 사람들 많아요. 조금 전에도 한 상인 플레이어가 놈들에게 죽임을···, 하악하악, 뭣하면 제가 시간을 끌어볼게요.”
아무래도 지친 것 같다.
숨을 헐떡이는 것이 더는 도망칠 여력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도 기특하네.
도망치라며 시간을 끌어준다는 말까지 하고.
턱밑까지 다가온 추적자들.
“어? 이 새끼는 또 뭐야, 언제 나타났어?”
“흐흐흐, 잘 됐지. 같이 죽여버려. 너흰 저놈 맡고, 우린 저년 죽이고.”
[상큼한 딸기] 말이 맞다.
저 새끼들 나쁜 놈이다.
마가 꼈나?
현실에선 양아치들이 껄떡대고, 게임에선 PK 파티 새끼들이 집적대고,
탈것에서 내린 찬웅은 암살자 루인의 앙증맞은 머리 따개를 꺼내 들었다.
“와! 이놈 무기도 장난 아니네.”
“씨발, 이년 무기하고 저놈 쌍도끼까지 빼앗으면 좆같은 카쟌 침식지 레이드에서 입은 손해 보충하고도 남겠어.”
“방심하지 마.”
“무기 말고는 특별한 것도 없는데 그냥 죽여!”
무시무시한 톱날 검이 찬웅의 아바타 케이의 몸을 썰어왔다.
아니, 썰려고 했다.
그러나.
콰직!
“켁!”
톱날검이 날아들기도 전에 찬웅은 PK 파티의 플레이어 아바타의 가슴에 도끼를 박아넣었다.
“어?”
“···뭐.”
“무, 무슨!”
또 옆에서 멍하니 석궁을 들고 서 있는 놈의 머리도.
서걱!
툭!
가루가 되어 사라지는 놈들.
기분이 묘하다.
아무리 게임이라지만 모습은 진짜 같은 인간, 솔직히 아무렇지도 않다면 거짓말이지.
그러나 이들은 게임 데이터.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명확하게 구분해야 한다.
게임 아바타는 인간이 아니다.
가끔씩 혼동하는 자들도 있어서 문제.
교복 입은 캐릭터가 나오는 애니메이션 영상을 봤다고 아청법으로 걸리는 게 실제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 아닌가.
정작 지들은 온갖 더러운 짓을 다 하고 다니면서.
그 이유로 용병 플레이어들을 욕하는 놈들도 있다.
‘생명체를 죽여? 너무 잔인하잖아.’
‘저렇게 죽이다 보면 현실에서도 살인마가 될지도 몰라.’
‘용병 새끼들은 처음부터 정상이 아니야. 피에 미친 미치광이지.’
우습다.
뭐가 생명체야?
감각의 교란으로 그렇게 느껴지는 건데.
아무리 진짜 같은들, 가상과 실재를 구분 못 할 리가?
띠링!
[상대방의 선제공격으로 정당방위가 인정됩니다.]
‘정당방위, ···게임이 훨씬 낫구나.’
현실에선 가해자가 다치면 과잉방어 운운하면서 피해자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는데 말이다.
사실 이렇게 나선 건 도와주려는 의도 말고도 두 가지 이유가 더 있었다.
첫째, 먼저 덤볐으니까, 그리고 할 수 있을 것 같았기에.
쫓기고, 추격하고, 싸우는 모습을 봐서 저 정도면 나서도 되겠다 싶었다.
맞다.
놈들은 약하다.
동화율이 얼마나 되는지 몰라도 무조건 이길 수 있다고 확신했다.
두 번째는 예방주사를 맞기 위함.
용병 직업으로 나선 이상 언젠가는 경험해봐야 한다. 몬스터를 죽이는 것 말고 플레이어 아바타를 죽이는 것 말이다.
듀플렉스 스페이스 가상현실 게임에서 PK는 매우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
찬웅의 공격에 PK 파티의 리더, [퍼킹 리버풀]은 화들짝 놀랐다.
‘미, 미친···,’
한방에 한 명씩이라고?
“저 새끼 뭐야?”
동화율 135%의 [퍼킹 리버풀], PK 파티를 이끌고 수많은 플레이어와 싸워봤다.
죽이기도 했고, 도리어 죽어도 봤다.
그런데 이렇게 일방적인 합은 처음, 저 케이라는 아바타는 너무 빠르고, 강력했다.
‘대체 동화율이 얼마길래···,’
설마 150%쯤 되나?
그럼 랭커?
랭커가 왜 이 외진 변방에···,
저만한 실력에다 저 딸기 년까지 합세하면···, 승산이 전무하다는 건 뉴비도 알겠다.
“저, 저놈 주, 죽여!”
지시를 내리고 자신은 정작 몸을 돌려 쏜살같이 도망가는 [퍼킹 리버풀].
리더가 도망치는데 다른 파티원은 말을 들을까?
“으아아! 씨, 씨발,”
각각 반대 방향으로 나누어 도망쳤다.
그냥 놔두기엔 뭐하고, 먼저 건드렸으니 책임을 져야지.
뒤통수를 까는 건 마음에 걸리지만 이건 특별한 경우니까.
‘비열한 습격!’
그리고 듀얼 스트라이크 발동!
스핏! 피리릿!
빛살처럼 두 방향을 나르는 도끼, 정신없이 달려가는 리더 [퍼킹 리버풀]과 다른 PK 아바타의 뒤통수에 동시에 날아가 꽂혔다.
퍼억! 퍼억!
저 멀리서도 가루가 되어 흩날리는 모습이 생생하게 보인다.
PK 하려고 했으면 자기도 당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아야지.
“와!”
짝짝짝,
눈을 동그랗게 뜨며 손뼉 치는 [상큼한 딸기].
꼼짝없이 죽었다고 생각했다.
도망치다 괜히 엄한 사람 휘말리게 해서 미안한 마음뿐이었는데···,
“케이씨는 랭커세요?”
랭커는 무슨,
“됐죠? 나쁜 놈들 죽였으니까 안심하고 갈 길 가세요.”
“···케이님은 어디로 가는데요?”
“알아서 뭐 하게요.”
“아, 아니 뭐, 그, 그냥 물어볼 수도 있지. 어쨌든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찬웅은 소환수를 꺼내 타고 침식지 안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런데도 [상큼한 딸기]는 찬웅을 계속 쫄쫄 따라온다.
“케이씨?”
“···.”
“여기서 더 가면 방울뱀 구역인데, 솔플 하시려고요?”
“···.”
“뭐, 랭커시니까 방울뱀 정돈 충분히 잡겠죠.”
“···.”
“좋겠다. 동화율 150%가 보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
종알종알,
도저히 안 되겠다.
“상큼한 딸기씨?”
“넵!”
“전직 시험은 용케 통과했나 보네요.”
“···네?”
“초보 주제에 동화율이 높은 걸 보니 기물의 힘을 빌렸고, 아티팩트와 좋은 무기까지 가지고 시험을 치렀는데 1시간 이상 걸렸잖아요. 그냥 때려잡으면 되는 시험용 몹을,”
“그, 그걸 어떻게,”
“우리 본 적 있죠? 카쟌 용사의 전당에서,”
사실 조금 전에 기억이 났다.
처음 전직 시험을 통과했을 때 봤던 그 아바타.
성기사 시험관에게 무안을 당하고 쫓기듯 도망갔던,
“아! 혹시? 그때 그분이시구나. 와! 그럼 우리 구면이네요.”
딸기도 기억났다는 듯 환하게 웃다가 뭔가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그런데 왜 이렇게 강해요? 케이씨도 시험에 통과한 지 얼마 안 됐잖아요. ···랭커 아니세요?”
“당연히 아니죠.”
“마, 말도 안 돼.”
그건 찬웅도 동의하는 바다.
스스로 생각해도 말이 안 되니까.
계속 캐물으면 골치 아프니 주제를 전환해서,
“근데 왜 그땐 전직 시험 실패했죠? 아까 보니까 꽤 잘 싸우시는데,”
“괴물은 징그럽잖아요. 전 징그러운 거 딱 질색이에요. 재시험도 겨우 통과했고.”
“사람은? 안 징그러운가?”
“뭐가 징그러워요! 그리고 사람이 아니라 아바타고.”
희한한 변명입니다.
“전직 시험 극복하셨으니 열심히 해보세요. 재능도 있어 보이는 데 금방 랭커 되시겠네. 여기서 찢어집시다.”
“아, 아니, 저···.”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우물쭈물하는 상큼한 딸기.
그러더니.
“저 한 번만 해주면 안 돼요?”
해줘?
“···뭘요?”
“파티요. 몬스터 잡는 법 배우고 싶어요. 동화율이 낮다고 해서 파티에 끼워주질 않아서 혼자 나왔는데,”
“흐음.”
파티라,
언젠간 할 때가 있겠지만 지금은 굳이···,
“저기 전초기지만 가셔도 초보자 파티 있던데.”
“지금은 없어요. 제발요. 코인은 필요 없어요.”
“아,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한 번만 도와주세요. 열심히 배우겠습니다아!!!”
“···.”
난감하네.
어쩔 수 없다. 데리고 가자.
빡세게 굴리면 정신 차리겠지.
더불어 파티 사냥도 경험해보고.
자신도 파티를 못 해서 솔플로 나선 거 아닌가.
“그래요. 합시다. 파티!”
[아바타 상큼한 딸기와 파티가 체결되었습니다.]
[파티 리더는 케이님입니다.]
※ ※ ※
화정 그룹 정규광 회장은 최고급 접속 캡슐에서 깨어나자마자 괴성을 질러댔다.
“이 불한당 같은 놈들!!! 개자식들, 삼대가 빌어먹을 놈들.”
“회, 회장님!”
“김비서! 당장 세화 길드에게 연락해!”
“네?”
“척살령을 내리라고, 아바타 이름은 [퍼킹 리버풀], 카쟌 침식지에서 활동하는 PK 파티 우두머리야. 동화율이 바닥날 때까지 계속 죽여!”
“아, 알겠습니다.”
정규광은 상인, 용병이 아닌 직업이라 PK 당하면 장비 드랍 같은 건 안 되지만 동화율 하락은 여지없이 적용, 무려 2%나 하락했다.
“허어, 이놈이나 저놈이나,”
이게 다 망할 놈의 [케이] 때문이다.
감히 자신의 메시지를 차단하고 친구까지 삭제해?
그러나 어쩔 수 있나?
아쉬운 사람은 자신인데.
흥분을 가라앉히자.
‘너무 성급하게 다가갔어.’
진(眞) 아이템이 뭔지 아는 놈이었다.
더 가지고 있을 수도 있고, 그런 이유로 자신을 경계하는 것일 테고.
정규광은 케이를 직접 만나 구슬려보기로 했다.
돈이면 다 되지 않을까?
거절할 수 없을 정도로 큰돈이면 말이다.
잘하면 국적뿐만 아니라 실제 사는 곳도 알아낼 수 있을지 모르지.
그래서 카쟌 성문 밖을 나섰다.
최소한 어디 있는지는 알아야지.
그런데 어이없게 PK 파티를 만나 죽임을 당해버렸다.
“회장님, 척살령 지시 내렸습니다.”
“그래? 으흠,”
잠시 뭔가 고민하는 정규광,
“김비서.”
“네, 말씀하십시오.”
“어떻게 하면 좋겠나? 케이 그놈, 조심성이 많아 좀처럼 다가가기 힘들어.”
김비서는 골똘히 생각했다.
그러더니,
“제가 접근해볼까요?”
“자네가?”
“네, 아무도 모르는 것처럼 접근해서 친분을 쌓아보겠습니다.”
“흐음, 할 수 있겠나?”
“반드시 해내겠습니다.”
정규광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좋은 생각이다.
자신은 3일 접속 제한에 걸려버렸으니.
“그렇게 해. 다만 신중하게 처리하게. ···자네 캡슐은 있어?”
“일반형 접속 의자는 있습니다.”
“이참에 본격적으로 해봐. 업무비로 캡슐 하나 구매해서 내 옆에 가져다 놓게. 용병으로 전직도 하고.”
“알겠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범상치 않은 놈이다.
분명 뭔가 있다.
진(眞) 아이템을 더 가지고 있든가, 그것을 뽑아낼 방법을 알고 있든가.
그럼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한다.
※ ※ ※
간절한 부탁에 파티를 맺었지만 아무래도 미덥지 못했다.
그래서 찬웅은 사막방울뱀 말고 비교적 상대하기 쉬운 사막 전갈 서식지로 [상큼한 딸기]를 데리고 갔다.
후회는 빨랐다.
“눈 똑바로 뜨고! 내가 몇 번 말했어요? 저거 진짜가 아니라니까?”
“아, 알아요. 근데 몸이 움직여지지 않아서.”
“아바타와는 그렇게 잘 싸우시던 분이 왜 몬스터만 만나면 몸이 굳어?”
“···그래도 많이 나아진 거예요.”
안 되겠다.
공포부터 지우자.
찬웅은 사막 전갈 한 마리를 잡아 집게발부터 부쉈다.
빠각, 빠각!
꼬리 독침도,
서걱!
“자, 이제 놈은 허수아빕니다. 검으로 찔러봐요.”
“네에···,”
“눈 감지 말고!”
“···.”
푹푹!
공포라는 것이 그렇다.
영원히 지속되는 건 아니다.
언젠가는 둔감해지기 마련, 딸기도 그랬다.
허수아비처럼 공격도 못 하는 전갈인데 뭐가 무서울까?
“저, 잘했죠?”
“그러네요. 다음은 멀쩡한 놈으로···,”
“네?”
“아까 그 PK 놈들과 싸웠던 몸놀림만 기억하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겁니다. 위험하면 내가 도와줄 테니.”
“으음, 해, 해볼게요.”
씩씩하게 혼잣말로 다짐하며 용감하게 전갈 앞에 나서는 딸기.
하지만 몸이 얼어붙어 삐걱대는 건 여전했다.
“아니! 이렇게 쉬운 걸 왜 못해? 슥! 피하고, 팍! 돌진해서, 푹! 찌르면 끝 아닌가?”
“···슥, 팍, 푹?”
“그래요! 슥! 팍! 푹! ”
“···씨이,”
“뭐라고요?”
“아, 아니에요.”
아무래도 좀 더 굴려야 할 것 같다.
하다 보니 가르치는 것도 재미있다.
뭐, 재미있으면 된 거지.
[12D코인을 획득하셨습니다.]
분배 방식을 파티 리더 전담으로 한 터라, 코인도 독식하고 있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