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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영
알쏭달쏭하다.
여기가 현실인지 게임인지.
자신이 찬웅인지 케이인지.
그래, 뭐, 놀랍지도 않다.
인벤토리라고 안될까.
‘들어갔다 치고, 어떻게 꺼내지?’
그렇게 의식하는 순간 다시 찬웅의 손에 나타난 쌍도끼.
‘···.’
넣고 빼내는 방법은 알았고.
‘얼마까지 들어가는 거야?’
듀플렉스 스페이스 가상현실로 기준을 잡아보자.
아바타 생성 시 기본적으로 인벤토리를 부여받는다. 처음엔 100칸, 동화율을 1% 돌파하면 1칸씩 늘어나고.
그래서 현재 찬웅의 아바타 케이가 가지고 있는 인벤토리 칸수는 133칸.
언뜻 생각하면 133칸이니, 133개의 물건을 집어넣을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렇진 않다.
기본적으로 1칸을 차지하는 건 물약 종류, 겹치기 불가능.
반면 무기나 방어구는 꽤 많은 칸을 필요로 한다. 방어구는 종류에 따라 최소 15칸에서 30칸, 무기는 10칸에서 25칸 사이, 탈것 소환수도 장비로 판정, 무조건 30칸이 필요하다.
찬웅의 머리 따개 쌍도끼는 12칸 정도, 워낙 앙증맞아서 그렇다.
‘12칸은 넘는다는 소린데···.’
쌍도끼를 집어넣고 찬웅은 냉장고 앞으로 다가갔다.
냉장고에 가득 들어간 생수들, 음료수,
문을 열어 생수 한 병을 꺼내, 그걸 인벤토리에 집어넣고 싶다고 생각하자.
스슥!
사라지는 생수병.
‘들어가는군.’
만약 생수병이 한 칸이라고 치면···, 한 병 더?
스슷!
또 들어간다.
쥬스도 집어넣었다. 캔 커피, 탄산음료···, 인벤토리에서 한 칸 판정을 받을 법한 물건들만 집어넣었다.
들어가지 않을 때까지 넣어봤다.
최종적으로 생수 등등 합이 14병, 쌍도끼 12칸, 생수병, 음료수가 물약처럼 한 칸이라고 봤을 때 총 인벤토리는 26칸.
현실에서도 26칸의 인벤토리를 사용할 수 있다,
‘어질어질하네.’
어찌 된 게임인지 하면 할수록 수수께끼만 넘쳐난다.
하긴 처음부터 단순한 게임은 아니었지.
진(眞) 아이템을 시작으로, 포스, 스킬, 인벤토리까지.
하지만 고민한다고 답이 나오나?
이럴 땐 그냥···,
‘받아들이자. 지금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건 없잖아?’
답은 결국 게임 안에 있다.
빨리 게임이나 해야지.
찬웅은 전동 휠체어를 타고 접속 캡슐로 다가갔다.
캡슐 안에 누우려고 했는데 몸이 성한 데가 없다.
전신이 타박상.
너무 일찍 퇴원했나?
‘아픈 건 아무렇지도 않아. 접속이 되어야 할 텐데.’
캡슐 오픈 버튼을 누르니,
지이잉, 뚜껑이 열리고, 찬웅은 힘겹게 캡슐 안에 몸을 누였다.
“으윽!”
고통은 변함없었다.
그러나 기분 좋은 고통.
[어서 오세요. 고객님! 듀플렉스 스페이스의 세상으로 오신 걸 환영합니다.]
‘되는구나.’
접속 성공, 아바타 케이와 합일.
현실에서 포스를 각성하고 난 뒤 처음으로 만나는 아바타.
그런데?
[아바타의 상태창에 새로운 스탯이 추가되었습니다.]
‘새로운 스탯이라니.’
[이름 : 케이]
[직업 : 용병(숙련)]
[포스 : 3,300]
[액티브 스킬 : 비열한 습격(1단계)]
[패시브 스킬 : 방출(2단계), 듀얼 스트라이크(1단계)]
[동화율 : 133%]
[반영률 : 20%]
‘반영?’
반영이라,
사전적 의미로 다른 것에 영향을 받아 어떤 현상이 나타남. 또는 어떤 현상을 나타냄.
‘다른 것에 영향을 받아, 다른 것에 영향을 받아···,’
그렇구나.
반영.
게임의 아바타가 현실의 플레이어에게 영향을 줬다는 뜻, 그 퍼센티지가 20%.
“참나,”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한 거지?
속 시원하게 대답해 줄 사람 없나?
‘혹시 운영 시스템은···,’
한번 물어볼까?
대답해 줄지도 모르잖아.
그래서 대기실 허공을 향해 질문했다.
“반영 스탯은 원래 플레이어에게 적용되는 거야?”
······.
조용하다.
“도대체 목적이 뭐야? 나한테 원하는 게 뭔데?”
조용.
하긴, 시스템이 대꾸해줄 리 없지.
어쨌든 확실한 건 혼자뿐이 아니라는 것, 자신 말고도 진 아이템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으니, 포스를 각성한 이 또한 반드시 있다.
‘현실에서 포스를 다룬다···,’
이건 그냥 슈퍼맨 수준 아닌가.
아무튼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
현실은 슈퍼히어로 영화가 아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사실이 알려지면 분명 자신을 가만히 두질 않을 것이다.
‘조심해야겠어.’
게임은 상관없지만 문제는 현실.
박동구를 처리할 때처럼 그렇게 하면 큰일 난다.
순간!
띠링,
또 뭐지?
[성실친절정직] : 흠흠, 바쁘신가?
[케이] : ···.
[성실친절정직] : 바쁘지 않으면 잠시 대화를 나누면 어떻겠나? 제안할 것이 있어서 그러는데.
[케이] : 글쎄요. 딱히,
[성실친절정직] : 허허허, 이야기를 들으면 생각이 달라질 걸세. 직접 얼굴을 보고 말하면 더 좋을 듯한데···.
“하아, 이 영감, 대체 뭐 하는 수작이지?”
전부터 계속 만나자고 한다.
얼굴 봐서 뭐 하려고?
게임 안이라면 모르지만 현실에선 급이 다르다.
재벌 VS 흙수저, 고아, 장애인.
재벌씩이나 되는 사람이 자신에게 치근덕대는 이유가 뭘까?
‘진(眞) 아이템 때문일 거야.’
활력의 영약 싸게 넘겨준 걸로 만족할 것이지.
차단하자.
아쉬운 것도 없다.
대등하게 거래했고 서로 만족했으니 만날 일도 없고.
[아바타 성실친절정직의 메시지를 차단합니다.]
친구 삭제도.
[아바타 성실친절정직을 친구 목록에서 삭제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바빠 죽겠는데.
찬웅은 카쟌으로 통하는 강철문 손잡이를 잡았다.
그러나 뭔가 생각난 듯.
‘활동 지역을 옮길까?’
커뮤니티 사이트엔 용병 플레이어 추천 지역이 몇 군데 있긴 하다.
가장 큰 침식지가 있는 카시우스 제국, 또는 대형 마탑이 있어 스킬을 비교적 쉽게 얻을 수 있는 부유 왕국 테라퓨타, 보기만 해도 즐거운 비쥬얼 끝판왕인 엘프와 세계수의 로그드라실, 질 좋은 장비를 구할 수 있는 드워프들의 왕국 스톤포지, 마도 공학이 발달한 마키나 공화국···, 등등.
그에 반해 카쟌은 방대한 듀플렉스 스페이스 가상현실에서 존재감 없기로 유명한 지역.
‘나름 좋은 점도 있잖아.’
맞다.
가장 큰 단점이자 장점, 바로 플레이어 숫자가 적다는 것, 그래서 경험치와 코인을 거의 독식할 수 있고 PK의 위험성도 줄어든다.
‘좀 더 머무는 것도 좋겠어.’
사람은 큰물에서 놀아야 하지만, 찬웅이 이 게임에 바라는 건 단 한 가지, 진(眞) 치유 물약을 최대한 빠르게 확보해 장애를 극복하는 일.
그런 목적이라면 이만한 곳도 없다.
‘가볼까?’
찬웅은 카쟌으로 통하는 게이트를 열었다.
※ ※ ※
장형사는 박동구가 깨어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다행이군. 대화는 가능해?”
“네. 가능합니다.”
“그럼 가보지.”
최소한 죽지는 않았다.
그래서 한달음에 병원으로 달려가 처참한 몰골로 병실 침상에 누운 박동구에게 질문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라 집으로 놀러 갔단 말이지? 그리고 어떻게 했어?”
“으으으, 제, 제가요.”
“그래, 말해봐.”
“기, 기억이 안 나요.”
“뭐?”
“친구 오랜만에 만나서 서로 마, 말다툼한 건 기억나는데, 그다음부터 뭘 했는지 정말 모르겠어요. 깨어나니 병원이라.”
박동구는 정말 기억이 안 난다.
그 새끼, 버릇 고치기 위해 물을 끓이던 기억이 전부, 그리고 깨어나 보니 병원.
옆에서 지켜보던 의사가 덧붙였다.
“단기 기억상실증 같습니다. 머리가 큰 충격을 당하면 간혹 이런 경우가 있거든요.”
“쯧, 시간이 지나면 기억이 돌아올까요?”
“장담할 수 없습니다. 1년, 5년, 아니 죽을 때까지 무슨 일을 겪었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아서.”
양아치 새끼, 여하튼 도움이 안 된다.
순간!
뭔가 생각났다는 듯 반짝 눈을 빛내며 말하는 박동구,
“형사님!”
“어, 기억났어?”
“그, 그건 아니고요, 절 이렇게 만든 강찬웅 그 새끼 잡았어요? 형사로 입건되면 민사도 진행하고 싶은데, 절대 합의 안 할 겁니다.”
“···하아,”
“혹시 놓쳤습니까? 병신 새끼라 멀리 가지도 못했을···.”
“지랄하네.”
“네?”
장형사는 붕대가 칭칭 감겨 눈만 빼곡하게 나온 박동구에게 가까이 다가가 말했다.
“친구 만난다면서 삼단봉은 왜 들고 갔어? 회칼은?”
“어, 음, 그, 그게···,”
“CCTV에 다 찍혔어. 너희들이 배달원 속여서 음식 가지고 강찬웅씨 집으로 밀고 들어가는 모습 말이야.”
“···.”
“너희들 전적도 있잖아? 친구라면서 똑같은 방식으로 무단침입해서, 피해자를 정신병원 신세까지 지게 만들고.”
“뭔가 잘못 아시는 것 같은데, 그때도 오해가···,”
철컥!
장형사는 놈의 한쪽 손목에 수갑을 채워 병원 침대 철제 프레임에 걸고 싸늘하게 속삭였다.
“형사가 바본 줄 알아? 첫 번째는 모르지만 두 번째는 절대 안 되지. 흉기 소지 불법 침입, 폭행, 감금···, 넌 무조건 실형이야! 이 범죄자 새끼야!”
“아, 아닙니다. 한출이, 한출이, 그 새끼가 먼저 하자고 했어요.”
“놀고 있네. 김한출이가 먼저 자백했어.”
“다 거짓말입니다. 전 하지 말자고 했다고요! 근데 그 새끼가···,”
“닥쳐!”
쩌렁쩌렁한 고함에 찔끔하며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는 박동구, 솟아날 구멍을 찾는가 본데···, 어림도 없다.
‘사건 종결지어도 되겠어.’
장형사는 내심 기분이 좋다.
피해자 강찬웅을 과잉방어로 문제 삼지 않아도 되고, 거기에 양아치 두 마리 감옥에 처넣을 수 있게 되었으니, 담당 검사도 무척 만족할 것이다.
※ ※ ※
동화율도 133%, 용병 등급도 숙련, 사막 전갈도 이젠 쉽고, 슬슬 더 상급 사냥터로 진출할 때가 됐다.
‘방울뱀 잡을까.’
오염된 사막 방울뱀.
방울뱀 정도는 잡아야 어딜 가든 나 용병이요, 하고 다닐 자격이 된다.
전통적인 판타지 몬스터에 비견하면 딱정벌레는 코볼트, 전갈은 고블린, 방울뱀은 오크에 비견된다.
실제로 일부 침식지에서 고블린, 오크들이 출현한다.
‘방울뱀은 파티형 몹인데···,’
방울뱀은 기본적으로 3마리 이상 몰려다닌다.
혼자 다니는 법이 없다.
그래서 탱커 역할을 하는 플레이어가 필요하고 딜러도 최소한 3명은 붙어야 한다.
서포터야 물약이 있으니까 상관없고.
‘혼자 잡을 수 있을지 모르겠군.’
133% 동화율로는 솔직히 한계가 있다.
‘일단 도전해보고···,’
안되면 튀어야지.
쿠쿵, 쿠쿵,
탈것 소환수 갈색곰이 모랫바닥을 차고 앞으로 나아갔다.
갈색곰의 등급은 레어.
원래 탈것이 레어로부터 시작하니까 최하급.
타고 가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못 한다.
‘전설 등급 정도면 서로 소통도 하고 서포터도 해주고 그런다던데,’
하지만 전설급 탈것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비싸니.
바로 그때!
“저쪽으로 몰아!!!”
“몰고 있다고! 좆나게 빠른 걸 어떡해?”
“아악! 저 씨발년이,”
싸움 났나?
그런가 보다.
플레이어야, 아니면 NPC야?
듀플렉스 스페이스는 가상현실 게임이라는 정의에 걸맞게 NPC들도 매우 현실적, 인간과 다름없이 행동하고 사고하며 욕망한다.
즉 NPC들도 자유의지를 가진 주체이자 자아정체성이 확립된 지성체, 그들 중에는 인간의 탈을 벗어 던진 괴물들도 다수 있다.
카시우스 제국의 그랜드마스터 검신 카라카스 공작, 부유왕국 테라퓨타의 9서클 대마도사 브랜데인, 불굴의 망치 드워프 국왕 쓰론비어드, 마키나 공화국의 수석 연구원 데우스칩, 천년을 살았다고 전해지는 엘프 장로 에루인···,
동화율 200%의 용병 플레이어도 한 방에 으깰 무력을 가진 이들.
아무튼 이 가상현실도 당연히 사람 사는 냄새를 찐하게 풍겨댄다.
NPC라고 추악한 냄새라고 안 날까?
범죄는 기본, 권력 다툼, 협잡, 중상모략, 권모술수, 차도 살인, 거짓 선동···, 어떻게 보면 인간사회보다 더 은밀하고 추악하다.
역시 싸움 구경이라도 할까 생각했지만 그냥 가는 게 좋겠다.
찬웅은 가던 방향으로 계속 갔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쪽으로 온다.
‘NPC는 아니구나.’
NPC와 플레이어를 구별하는 방법은 쉽다.
머리 위에 이름표가 있는지 없는지만 확인하면 되니까.
저들은 모두 이름표가 달린 플레이어.
모두 5명
흉흉한 기세로 목표물을 쫓는 4명의 플레이어, 날쌘 몸놀림으로 화살을 날리며 추적자들을 따돌리는 한 명의 플레이어, 성별은 여자.
근데 저 아바타···,
‘왜 낯이 익지?’
어디서 봤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