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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
동화율 돌파는 계속됐다.
물론 끝이 없는 건 아니었다.
점점 뜸해지더니 더는 들리지 않는 시스템 메시지.
결국,
“상태창!”
[이름 : 케이]
[직업 : 용병(숙련)]
[포스 : 3,300]
[액티브 스킬 : 없음.]
[패시브 스킬 : 방출(2단계), 듀얼 스트라이크(1단계)]
[동화율 : 133%]
‘20%, 두 배나 더 올랐어.’
이유가 뭔지 알 순 없지만,
원래 10% 올라야 하는데 그 두 배!
‘동화율 133%에 포스가 3,300···.’
10% 확정 돌파 캡슐인데 20%가 올라?
‘설마 이것도 재능에 속하는 건가?’
무려 20%의 돌파.
그러나 아직까진 사냥터를 옮길 생각이 없다.
전갈 다음의 몹은 오염된 사막 방울뱀.
카쟌 침식지에서 중급 몬스터의 지위를 가졌다.
하지만 동화율 140%대의 플레이어들도 섣불리 솔플을 시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최소 3마리 이상이 뭉쳐 다니기 때문이다.
즉 중급 3마리를 한 번에 상대해야 하는 것, 방울뱀은 파티몹이다.
‘일단 전갈을 더 잡고.’
잡다가 여유가 되면 2마리를 한꺼번에 상대해보자.
그거까지 쉬워지면 다음은 방울뱀이다.
오염된 사막 전갈 서식지에 도착한 찬웅, 탈것 갈색곰을 역소환하고 쌍도끼를 양손에 꼬나쥐었다.
기운이 온몸에서 무럭무럭 솟아오른다.
동화율 133%!
실로 엄청난 체감 효과.
쌍도끼, 암살자 루인의 앙증맞은 머리 따개에 어린 짙고 짙은 포스.
사막 전갈이 저 앞에 나타났다.
뒤를 이어 또 한 마리 더,
‘마침 두 마리네.’
그럼 앞에 놈부터···,
집게발 공격을 요리조리 피하며 어깨를 한껏 뒤로 제쳤다 힘차게 도끼를 내리찍었다.
퍼억!
도끼날 전체가 전갈의 머리통에 박혔다.
“키킥!”
타타탓!
아직 죽지 않았다.
멍해짐의 효과로 동작이 느려졌을 뿐.
박힌 도끼를 뽑지도 않고 그대로 지나쳐 다음 전갈에게, 머리 위에서 찍어 내려오는 놈의 꼬리 독침을 슬쩍 피하며 날카로운 도끼날로,
서걱!
툭!
꼬리 끝이 잘려져 사막 모래 위에 떨어졌다.
그리고 징그러운 두 눈 사이로 도끼를 내려찍었다.
퍽!
휘리릿!
첫 번째 놈에게 박혀있던 도끼가 회수되자마자 다시 찍고,
콰직!
다시 뽑아 한 번 더!
콰악!
이번엔 처음 그놈에게.
콱! 콰악! 콱콱!
[14D코인을 획득하셨습니다.]
[11D코인을 획득하셨습니다.]
두 마리 한꺼번에 죽이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재미있다.
이게 동화율 133%의 효과인가?
계속 이어지는 신들린 사냥.
하면 할수록 재미있다.
흘러가는 시간.
어느덧 5시간을 꽉 채웠다.
이제 곧 있으면 게임 중단 권고 메시지가 뜰 터, 무시하면 되지만 1분마다 계속 울려서 여간 귀찮은 게 아니다.
‘얼마나 모았지?’
코인 계좌를 열어보니 약 5천 D코인.
‘10개만 까보자.’
열심히 했으니 보상도 있어야지.
‘제발 치유 물약.’
게임에서처럼 현실에서도 걸으며 뛰고 싶다.
그런데 몸이 다 나아도 게임을 계속해야 하나?
아마 그렇게 할 것이다.
사실 너무 재미있어졌다.
이미 접속 시 고통은 참을만한 것이 되어버렸고.
아무튼 첫 상자를 까자마자,
[주신(主神)의 축복이 D박스에 깃듭니다.]
‘오!’
[D박스에서 ‘진(眞) 비열한 습격 스킬 구슬’을 획득하셨습니다.]
스킬 구슬.
‘원거리 기술이네.’
가지고 있는 전설 무기와 천생연분이다.
휘두르기도 좋지만 투척에도 적합한 암살자 루인의 앙증맞은 머리 따개 쌍도끼, 게다가 투척 후 회수 기술까지 달려있으니.
이제 시전 기술 하나가 생겼다.
혹시 10개 싹 다 진(眞)이···,
[D박스에서 ‘고급 시가 한 개피’를 획득하셨습니다.]
‘꽝이구나.’
시가라니, 담배 끊은 지가 언젠데.
하지만 시가, 담배는 의외로 인기있는 소모품, 가상에서 담배맛과 피우는 기분은 고스란히 느끼면서 건강에도 아무런 영향을 안 끼치니까.
‘인벤토리에 넣어는 두고.’
그 이후로는 역시나 꽝! 꽝! 꽝···,
결국 오늘 소득은 처음 나온 스킬 구슬 하나.
‘다음엔 나오겠지.’
쉬었다 다시 하자.
맨날 싸우기만 하니 단조롭긴 하다,
무작정 몬스터와 싸우는 것만이 용병의 컨텐츠는 아니다.
오직 플레이어만이 듀플렉스 스페이스 세계관에서 용병의 자격을 가진다.
그래서 NPC의 의뢰를 받아 퀘스트를 수행할 수도 있고, 국가 간 전쟁, 혹은 영지전에 끼어들기도 하고, 길드를 조직해 세력을 확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나중의 일.
찬웅은 스킬 구슬을 삼켰다.
[아바타 케이가 스킬 : 비열한 습격을 익혔습니다.]
스킬을 배웠으니 한번 해봐야지.
‘이렇게 하는 건가?’
스피릿!!!
갑자기 손에서 쏜살같이 날아가는 도끼.
던질 때 흔히 하는 준비 동작도 없이 손에서 그냥 나가는 형식.
‘왜 ‘비열한’ 이란 말이 붙는지 알겠네.’
아무도 예상 못 할 것이다.
던지는 포즈도 없는데 손에서 도끼가 총알처럼 쏘아지니 말이다.
‘회수,’
휘리릿!
다시 날라와 손에 착 달라붙는 앙증맞은 도끼.
다시 몇 번 같은 동작을 반복한 후,
스킬도 파악했겠다, 그럼 대기실로 귀환, 로그아웃.
지이잉,
로그 아웃을 하자 자동으로 열리는 캡슐 뚜껑.
‘의자형과는 비교도 안 돼. 비싼 것이 이유가 있네.’
커다란 캡슐 안에서 편안하게 누워서 게임을 하니 적정 게임 시간만 아니라면 하루 24시간, 계속 게임만 해도 괜찮겠다.
게다가 20% 동화율 돌파까지.
‘언제 올지 모르니까.’
서둘러 캡슐에서 나와 전동 휠체어를 타고,
주소가 바뀌었는데 제대로 배달이 될까?
잠시 후,
딩동!
왔다.
어김없이 문 앞에 놓인 상자.
‘스킬 구슬이라.’
이걸 현실에서 먹어서 무슨 의미일까 싶다.
포스도 없는데.
그래도 먹어서 나쁠 건 없으니.
찬웅은 구슬을 꿀꺽 삼켰다.
목구멍으로 넘어가기도 전에 녹아 사라지는 구슬, 뭔가를 삼키니까 위장도 반응했다.
꼬르륵.
‘그래, 먹고 하자.’
찬웅은 배달 어플을 실행했다.
※ ※ ※
찬웅이 이사한 새 오피스텔 9층 복도에서 마스크와 모자를 푹 눌러쓰고 대화를 나누는 2명의 청년이 있었다.
“동구야, 그놈 여기 사는 거 확실해?”
“어, 902호.”
“혼자 사는 거 맞지?”
“걱정마. 다 확인했어.”
“하긴, 고아 새끼인데···, 이제 어떻게 할 거야?”
“들어가야지. 조용히, 문제는 놈이 순순히 문을 열어줘야 하는데···,”
뭐가 문제냐는 듯 김한출이 말했다.
“초인종 누르고 문고리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면 그냥 치고 들어가자.”
“안 열어주면? 겁먹고 신고하면 다음 기회는 없어.”
“···전기 충격기 같은 걸로 도어락 지지면 열린다던데,”
“요즘 나오는 건 안 돼.”
체구는 김한출에 비해 작지만 누구보다 잔인하고 교활한 박동구가.
“일단 기다려봐. 생각하는 게 있어.”
“뭘?”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니까···.”
그렇게 한참을 기다리던 중, 갑자기 통로 쪽 엘리베이터가 열리더니, 비닐봉지를 양손에 가득 들고 있는 한 남자가 내렸다.
배달원이었다.
“이거 혹시 902호 찬웅이한테 배달하는 거?”
“어, 잠시만요. 네, 맞습니다.”
“잘 됐다. 같이 먹기로 했는데, 제가 받아 갈게요.”
“그렇게 하세요.”
배달원은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이 많은 양을 혼자서 먹을 거라고는 생각도 안 했으니까.
비닐봉지들을 받아드는 박동구, 배달원이 엘리베이터 타고 내려간 걸 확인하고,
“오! 우리 동구 역시!”
“사람이 먹고는 살아야지. 병신 놈이 직접 밥을 해 먹을 리도 없을 테고, 전에도 편의점에 다녀오는 거 봤거든.”
“아하.”
“아무튼 됐다. 내가 배달원인 척할 거니까, 넌 문 열리자마자 밀고 들어가. 휴대폰부터 먼저 빼앗고,”
“알았어.”
친구 만나러 가자!
둘의 표정은 사냥감을 포착한, 욕망으로 번들거리는 눈빛의 들개와 같았다.
※ ※ ※
요즘 들어 식비만 하루에 10만 원, 워낙에 많이 먹어서 그렇다.
반찬 몇 가지 갖추고 집에서 해 먹으면 그보다 훨씬 줄어들겠지만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활력의 물약을 정회장에게 넘긴 건 참 잘한 일이었다. 돈이 훨씬 좋다. 특히 삼십 평생 쭉 궁색하게 살았던 자신에게 말이다.
여하튼 일이 잘 풀린다.
이렇게 살아도 되냐고 스스로 물어볼 정도로,
순간!
딩동!
초인종이 울렸다.
진(眞) 아이템은 이미 배달됐고, 그럼?
인터폰 화면을 보니 양손에 비닐봉지를 가득 든 사람 하나.
- 배달시키셨죠?
“네, 잠시만요.”
찬웅은 전동 휠체어를 끌고 현관문으로 가서 문을 열어줬다.
띠리릭!
바로 그 순간!
벌컥!
문이 열리자 두 명의 괴한이 무지막지하게 밀고 들어왔다. 심지어 신발도 벗지 않고 집안으로 들이닥쳤다.
“친구야!”
“강찬웅 맞지? 오랜만이야.”
“아이고, 우리 찬웅이 다리 다쳐 병신 됐다더니 정말이었네.”
뭐지?
이게 무슨···,
찬웅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누, 누구?”
“와! 섭섭하다. 우리 몰라? 고등학교 같이 다녔잖아.”
고등학교라니,
“나 김한출, 어후, 얼굴 보니까 확실히 떠오르네.”
“내 이름 기억나? 박동구, 반갑다.”
아···,
찬웅의 표정이 하얗게 변했다.
이제야 기억난다.
고등학교 시절 떠올리고 싶지 않았던 기억, 보육원 출신이란 멍에를 씌워 자신을 제일 많이 괴롭혔던 두 마리 개들.
당하고 있진 않았다.
모든 수단을 동원해 자신을 방어했었다.
물론 견디기 힘들었지만,
그런데 이놈들이 왜?
아니 그것보다 어떻게 알고,
갖가지 감정이 찬웅 안에서 소용돌이쳤다.
당혹, 두려움, 불쾌, 혐오, 그리고 분노···, 그래서 목소리를 쥐어짜듯 가까스로 말을 내뱉었다.
“···당장 나가! 경찰에 신고하기 전에.”
“에이, 친구끼리 경찰은 무슨, 그리고 어떻게 신고할 건데?”
찬웅은 탁자 위에 놓인 스마트 폰으로 팔을 뻗었다.
그러자,
퍼억!
김한출이 휠체어에 탄 찬웅을 발로 콱 밀어버리고,
“큭!”
그리고 휠체어에서 떨어져 나동그라지는 그를 보며 비릿한 미소로 조롱하듯 말했다.
“병신이..., 넌 우리가 우습게 보여?”
“야야, 살살 다뤄라. 왜 발로 차고 그래? 미안, 아팠어? 앞으로 말 잘 들으면 이런 일 없을 거야.”
김한출은 쓰러진 찬웅의 입에 수건 뭉치를 물렸다.
“으읍!”
“쉿! 가만가만,”
그리고 케이블 타이로 두 손목을 능숙하게 묶은 후 휠체어에 앉힌 후 눈앞에 찬웅의 스마트폰을 들이밀었다.
“패턴 풀어.”
“···.”
“패턴 풀라고! 눈깔에 힘 빼고.”
“···.”
“하아, 이 새끼,”
그 모습을 보며 비릿하게 웃는 박동구.
“천천히 해, 천천히, 급한 거 없잖아? 일단 이거 먹고 하자. 많이도 시켰네. 비싼 초밥까지.”
입술을 잘근 깨물며 휠체어에 앉은 찬웅의 두 뺨을 손바닥으로 장난하듯 때리는 김한출.
“야!”
“···.”
찰싹찰싹,
“다리만 병신이 아니라 머리도 병신이야?”
“···.”
찰싹찰싹,
“하아, 눈깔 좀 보소, 레이저 나오겠···,”
순간!
찬웅은 온 힘을 다해 수건 뭉치를 퉤, 하고 뱉어내면서,
“어? 이 새끼 봐라?”
자신의 얼굴로 다가오는 놈의 손가락을 힘차게 깨물었다.
빠드득!
“으아아악! 내 손가락! 이, 이 씨팔 놈이... 놔! 빨리 안 놔? 아아악!”
그때!
“하아,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돼?”
퍼억!
초밥을 먹다 말고 달려온 박동구가 미리 가지고 온 호신용 삼단봉으로 사정없이 찬웅을 내리쳤다.
퍽퍽! 퍽퍽퍽퍽!
“감히 반항해? 반항하면 어쩔 건데? 다리 병신 새끼야! 죽여줄까? 어차피 고아 새끼라 너 따위 찾을 사람도 없잖아.”
풀려난 김한출이 손가락을 부여잡고 악귀와 같은 표정을 지으며 찬웅에게 다시 수건 뭉치를 물렸다.
“개새끼가, 넌 죽었어.”
싸늘한 눈초리로 김한출에게 삼단봉을 넘겨주는 박동구.
“한출아.”
“으응?”
“지키고 있어. 적당히 하고.”
“아, 알았어.”
박동구는 제집처럼 싱크대로 가서 커다란 냄비를 찾아 물을 담았다.
“물 끓이려고?”
“그래, 이럴 땐 목욕 한 번 시켜주면 돼.”
전에 해본 일이다.
뜨거운 물을 맨살에 부어주면 반항은 사라지고 고분고분해진다.
그 와중에도 삼단봉을 휘두르는 김한출.
“어후, 손가락 끊어지는 줄 알았네. 이 씹새끼야!”
삼단봉 재질이 강화플라스틱이라 제대로 맞으면 죽을 만큼 아프다.
퍽퍽! 퍽퍽!
“욱! 우욱! 욱!”
“소리 지르지 마라. 안 그럼 더 맞는다.”
퍽퍽! 퍽퍽!
찬웅은 매질을 고스란히 견뎌냈다.
그래, 다리 병신 맞다.
부모 얼굴도 모르는 고아도 역시 맞다.
그런데 그게 뭐?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다.
심지어 하반신 마비라는 불행을 마주하고도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지금도 그렇다.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양아치 새끼들.’
정작 병신은 누군데?
퍽퍽! 퍽퍽!
아픔보다는 화가 났다.
벌레 같은 새끼들에게 왜 이런 꼴을 당해야 하지?
가슴속에 맺혀있던 울분, 억울함, 치솟아 오르는 뜨거운 열기.
그때였다.
갑자기 눈앞에 찬란한 빛이 펼쳐졌다.
‘음?’
뭐지?
마치 게임에 처음 접속할 때 보였던 것과 똑같은 빛무리.
‘아···,’
시간이 정지되는 느낌.
머리를 향해 떨어지는 삼단봉이 마치 슬로우모션 영화 컷처럼 천천히 내려온다.
감각이 예민해졌다.
자신의 주위에 닥친 모든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기분.
‘이건?’
우우우웅,
그리고 느껴졌다.
아랫배 깊숙한 곳에서 미세하게 느껴지는 굉장히 낯익은 기운, 현실에서 느껴질 리 없는 그 힘.
‘···포스?’
확실하다.
포스다.
찬웅은 무심코 손에 힘을 주었다.
툭!
명주실처럼 끊어지는 케이블 타이.
그리고 천천히 내려오는, 아니 실제로는 매우 빠르게 내려쳐지는 삼단봉을 그냥 맨손으로 잡았다.
덥석!